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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2회)

김성중
2019년 11월 12일
  


라이카 2


루의 뱃속에 태아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던 날 데이모스를 발견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먼지폭풍이 사라지고 루의 품에서 풀려나온 다음에도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생각이 복잡할 때 우선 달리기부터 하는 버릇을 평생토록 고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루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중에 말하기를 그녀는, 얼핏 인간 같지만 물갈퀴나 아가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인간은 아닌 것 같다는 내 말에 일차 충격을 받았고, 브레인워싱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에 재차 충격을 받았는데, 임신 소리마저 듣자 헛웃음만 나왔다고 했다. 그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는데도 루의 지성은 온전했고 관찰력도 뛰어났다. 땅속에 반쯤 묻혀 있던 데이모스를 먼저 발견한 것도 그녀였다.  
 
우리는 잔뜩 경계하며 그 이상한 물체에 천천히 다가갔다. 세탁기만한 크기에 호스가 달린  물체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긴 했지만 부식의 흔적 없이 매끈했다. 아래까지 파내보니 레일형 바퀴가 달려 있었다.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직관이 하나의 명령어가 되어 머리를 내리쳤다. 
 
‘저것을 가져가.’ 
 
우리는 고철로봇에 긴 끈을 달아 우주선까지 질질 끌고 왔다. 임신 초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나는 루가 무리하려 할 때마다 폭풍 같은 잔소리로 뜯어말렸다. 번번이 휴식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꽤나 더뎠다. 
 
로봇의 태양전지판을 깨끗이 닦아 햇빛이 잘 드는 창문 아래 놓아두니 꼭 화분에 씨앗을 심어놓고 싹트기를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연식이 오래된 기계에는 클래식한 기품이 있다. ‘당시의 최고사양’만이 가질 수 있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과거의 최첨단 기계의 고풍스러움이라고 할까. 로봇은 우리가 그 존재를 아주 잊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어느 아침 말러의 교향곡 5번의 선율이 우주선을 가득 채웠다. 기지개를 켠 기계의 정중한 인사였다. 충전을 마친 탐사로봇 데이모스는 ‘아홉번씩 아흔번’의 부팅 시도 끝에 반세기간의 동면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일곱번씩 일흔번 용서하라던 성경구절이 떠오르면서 저 양반도 꽤나 괴짜구나 싶었다. 차차 알게 되었지만 데이모스는 정말 쓸모가 많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창조주에 가까웠다. 데이모스가 발견한 ‘우물’이 호수로 변하고 커피포트만한 ‘태고수프’가 그럴싸한 생태계로 발전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우리는 젊은 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셋이 됐다. 유령 개, 냉동에서 깨어난 실험동물, 방전되었다가 되살아난 탐사로봇—아니다. 뱃속의 아이까지 더하면 넷이구나. 나는 항상 숫자 4를 좋아했다. 4는 직사각형의 안정감을 지녔고 바실리의 기타가 들려오던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외로운 우주 유랑은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데이모스는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루의 임신 주수를 알려주고 나중에는 태아의 심장 소리도 들려주었다. 그 놀라움이란! 전속력으로 우리에게 달려오는, 우주선 소리처럼 들리는 심장박동을 듣는 순간부터 내 본능은 살아났다. 처음부터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루는 잘 웃었다. 내부의 즐거움을 밖으로 보이는 데 아무런 문제를 겪어보지 못한 자들만 웃을 수 있는 방식으로. 어린애같이 순수하게 기뻐하면서 말이다. 
 
“저것 봐, 별들의 고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도 루는 경이로운 시선을 보냈다. 아기 침대를 만들던 데이모스가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토성의 고리처럼 자기만의 고리를 달고 있는 별 하나를 가리키던 루는 손가락을 들어 각도를 맞추고 약지를 아래로 내려뜨렸다. 마치, 반지를 끼우듯이. 
 
“봐, 예쁘지?”
 
젊고 예쁜 루. 생명의 장작불이 타버린 줄 모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지금까지도 내 심장에 아프게 남아있다.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데이모스가 비밀을 털어놓았다. 루의 남은 수명은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까지라고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루는 죽게 될 거야. 그녀의 역할은 뱃속에 있는 아이를 무사히 실어 나르는 것에 지나지 않아. 이미 맥박이 느려지기 시작했어.”
 
“태아와 루의 차이가 뭔데? 화성에서 지낼 수 있도록 루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 아니야?”
 
“태아는 화성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시간을 갖게 되잖아. 루는 지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간과 경험이라는 축적이 없어. 당분간만 견딜 수 있도록 만든 운반용 캐리어에 불과해. 알을 낳은 즉시 죽음을 맞이하는 물고기처럼.”
 
“그런데 왜 저렇게 예쁘고 착하게 만들어? 도대체 왜?”
 
인간들의 잔인함은 끝이 없었고, 인간 한명에 대한 나의 사랑 또한 끝이 없으리라. 나는 이 이상한 함수를 풀 길이 없었다. 느닷없이 치즈가 떠올랐다. 앞가슴에 난 하트 모양의 하얀 털을 잘 보이도록 내밀었던 성당 고양이. 루의 사랑스러움은 치즈의 하트처럼 무용하고 예쁘기만 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도저히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무서운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태아가 사라진다면? 그러면 루는 더 오래 살 수 있어?”
 
데이모스의 얼굴빛이 꺼졌다. 작동하지 않는 전자레인지처럼. 그건 ‘무표정’이었다. 답하기 어렵거나 연산이 불가능한 질문이 나올 때 데이모스는 텅 빈 얼굴이 된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성모님, 우리 루를 지켜주소서. 당신도 동정으로 잉태한 처지니까 저 애가 얼마나 가엾은 상태인지 잘 알지 않습니까. 게다가 여기는 화성입니다. 우리에게는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원하시면 제 벼룩들을 모조리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생사를 함께한 분신이지만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제발, 이 빌어먹을 여자야, 루를 지켜달라고!”
 
출산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우주선이 세대나 착륙했고, 그래서 집을 떠나 ‘우물’이 있는 은신처로 피해야 했고, 도착하자마자 루의 양수가 터졌다. 나는 공포에 질려 멀리서 번쩍이는 우주선의 화염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루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우물에 양수가 섞여 들었다. 자연분만 외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물속에서의 출산이 통증을 덜어줄 것이라며 데이모스가 내린 결정이었다. 데이모스의 기계 팔을 꽉 붙들고 있는 루는 번개를 맞아 두쪽으로 갈라지는 사람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우물에 피가 번졌다. 자기가 만든 피 웅덩이 속에서 루의 얼굴은 서서히 하얗게 변해갔다. 마침내 자궁이 열리자 나는 성모와 모든 성인들에게 필사적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코스텔로가 죽어갈 때처럼 기도는 어느새 욕설과 저주로 바뀌고 말았다. 어린애의 머리통이 비칠 무렵 루는 작별인사 대신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축 늘어져버렸다.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채.  
 
“멎었어. 심정지야.”
 
맥을 잡아보던 데이모스가 조용히 루의 눈을 감겨주었다. 화성의 오렌지빛 하늘을 담고 있던 루의 눈동자가 사라지자 일곱달 동안 유지됐던 직사각형도 무너져버렸다. 
 
그러자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고 이성이 돌아왔다. 남은 생명은 단 하나. 우리는 슬퍼할 새도 없이 죽은 루의 자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불 꺼진 창문에 노크하는 사람처럼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는 네 힘으로 나와야 한다고, 시간이 없다고 말이다. 
 
“거기에는 하늘이 없잖아.”
 
태아가 말을 하자 자기 몸을 등속에 집어넣은 거북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생경했다.
 
“먹을 것도 시원찮고, 물도 없잖아.”
 
“무엇보다, 엄마가 없잖아.”
 
마야, 그 당돌한 것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대꾸를 했다. 오렌지빛 하늘도 있고 우물도 있고 식량도 있다고 고분고분 대답해주다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말 더럽게 많네. 그만 나불대고 썩 나오지 못해!”
 
결국 마야는 데이모스의 팔에 잡혀 쑥 밀려나왔고 여느 신생아처럼 우렁차게 울었다. 나도 울었다. 울면서 미끄덩거리는 몸뚱이를 핥고 또 핥았다. 죽은 루가 가엾어서 눈물이 났고 엄마 없이 태어난 마야가 가엾어서 또다시 눈물이 났다. 너무 울어대는 바람에 코가 콱 막힌 상태에서도 나는 아이의 체취를 맡았다. 그 냄새는 또다른 직관으로 내게 명령을 내렸다. 저 아이는 반드시 지켜야 해. 
 
그후로 갓난쟁이를 어르면서 나는 늘 속삭인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를 가진 아이야. 우리 꼬맹이 정수리에서 나는 냄새보다 더 달콤한 건 이 세상에 없어. 
 
-
 
마야는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고 쑥쑥 자랐다. 
 
지구인들이 가루로 변해버린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마야가 태어나던 날 화성에 온 세대의 우주선들은 불시착 전부터 화염에 휩싸였고 생존자는 전무했다. 성경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급식 튜브에 진공 포장된 비상식량,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까지. 난파선에서 쓸 만한 물건을 가져오듯 우리는 잔해를 뒤져 식량을 잔뜩 챙겼다. 그후로도 몇년 동안이나 우리는 소풍을 가듯 우주선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건질 것이 없나 뒤지곤 했다. 
 
“누가 성당 개 아니랄까봐 걸핏하면 성경을 인용하고 그래?”
 
태어나기 전부터 말할 줄 아는 마야에게는 일관된 성격 하나가 있는데, 건방지다는 것이다. 자기가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아무리 까불어도 결국은 감싸주는 이모 1, 바로 나 때문일 것이다. 이모 2, 즉 데이모스는 기계라 그런지 너무 정이 없다. 인정사정없는 커리큘럼을 짜놓고 마야를 가르친다거나 편식을 고치려고 사흘을 굶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엄격함을 유지했다. 
 
“화성에서 얘를 박사로 만들 것도 아니고 대체 5개 국어는 왜 하는 거냐? 지구 언어를 이렇게 많이 배울 필요가 뭔지 당최 속을 모르겠다.”
 
“언어는 공부습관을 만들어 주고 지능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거야. 마야의 남아도는 지성은 적절하게 이끌어주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어. 뭘 좀 알고나 떠드시지.”
 
“그럼 간식이라도 늘리자. 어차피 먹거리가 빤한데 물릴 만도 하잖아. 쟤가 과일을 먹어봤냐, 신선한 채소를 먹어봤냐? 건조식품밖에 못 먹는데 어린 것이 안됐잖아.”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어릴 때부터 편식하고 단맛에 맛들이면 커서도 못 고쳐.”
 
“말 다했어? 거기서 개가 왜 나와?”
 
우리 둘이 다투고 있으면 마야가 “지겨워 죽겠네, 싸우지 좀 마”라고 느긋하게 말했다. 얄미운 것! 내 속도 모르고.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잠수 연습만은 안타까워 볼 수가 없다. 데이모스는 마야가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수영도 가르쳤다. 마야가 물갈퀴를 이용해 금방 물에 뜨자 이번에는 가라앉는 법을 가르쳤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귀 뒤에 묻혀있는 아가미로 호흡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저건 그냥 폼으로 달린 거야. 마야가 입과 코로 숨을 쉬지 언제 아가미로 숨 쉬는 것 봤어? 쟤는 그냥 인간 꼬마일 뿐이야. 물고기가 아니라고!”
 
억지로 잠수하다 구역질을 해대는 마야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면 데이모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했다. 
 
“성장이 끝나기 전에 진화를 완성해야 해. 화성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 지구인들이 또다시 침공해올지도 모르는 거잖아. 마야는 뭍과 물, 양쪽에서 살아갈 방법을 터득해야 해. 우리는 루가 죽었을 때 저 애를 지키겠다고 맹세했잖아. 만에 하나 우리가 없어지고 마야 혼자 남는다면? 너의 혼은 흩어지고 내가 고장 나버린다면? 우리 중에 생명체는 저 애 하나야. 우리랑은 다르다고.”
 
“나 혼자 남는다고요?”
 
마야가 토하다 말고 겁에 질려 울먹거렸다. 나는 벌벌 떠는 아이를 핥아주며 어깨너머로 데이모스를 째려보았다. 순간 앵무새의 새장을 검은 천으로 덮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앵무새는 그렇게 하면 입을 닥치던데 데이모스는 충전지를 빼놓던지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기견 출신인 나는 주제파악이 빠르다. 로봇에게 생활의 대부분을 의탁하는 처지니만큼 화를 억누르며 조용히 말했다. 
 
“저 애는 태고수프 속 박테리아가 아니야. 마야가 사춘기라는 걸 잊지 말아줘. 내 부탁은 그거 하나야.”

 


김성중
소설가. 지은 책으로 『개그맨』 『국경시장』 『이슬라』 등이 있다. 



3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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