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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몸 그리고 마음

하미나
2019년 11월 14일



 

여섯번째 여성, 하미나 님

여성과 몸 그리고 마음 



1.
‘여성’과 ‘몸’이라는 주제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지식의 세계에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아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식을 만드는 주체는 남성이었고, 그렇기에 자주 여성을 배제한, 때로는 너무도 오해한 지식이 만들어지곤 했다. 

몸 역시 자주 소외되었다. 왜냐하면 지식인에게 중요한 것은 몸보다는 마음(혹은 정신)이고, 나아가 몸이 주는 감각 경험보다는 이성과 사유를 통해 참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종종 합쳐지기도 했다. 남성이 이성적인 존재로 그려진다면 여성은 육체적, 감각적, 감성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식으로 말이다.

몸과 마음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고 후자가 더 객관적인 지식을 확보하기 좋다는 사고방식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를 시초로 들 수 있겠다. 데카르트는 흔히 근대 철학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그가 감각 경험을 불신하고 이성과 사유를 존재의 핵심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감각 경험을 신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감각 경험이 때때로 우리를 속이기 때문이다. 가령 추운 겨울날 30도의 물에 손을 넣을 때와 더운 여름날 같은 온도의 물에 손을 넣을 때 손이 느끼는 체감온도가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데카르트는 몸을 통해 얻는 감각 경험이 주관적이며 자주 착각을 일으키고 이것이 외부세계와 일치하는지 알 수 없기에 믿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내가 사유하고 있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의심한다는 것은 곧 사유한다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지식의 토대는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분명히 있다는 것. 

데카르트는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에게는 몸으로 얻는 경험보다는 사유를 통한 추론이 진리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었다. 데카르트의 분별 이후로 한동안 서양 지식의 세계에서는 몸보다 마음이, 느끼는 것보다는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2.
한편 어린 시절의 하미나는 데카르트처럼 몸과 마음의 구분,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 사이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현실과 상상을 분별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생각이 단지 생각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실제 감각으로 이어지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지금 기억나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렇다. 유치원 때는 어느 날 강한 예감이 들었다. 친구 6명을 불러 모아 육각 별 모양의 마방진으로 둘러앉아 눈을 감고 기도하면 가운데에서 분명 용이 나온다. 이 예감은 무척 강렬했고 나는 깊이 확신했다. 게다가 그렇게 용을 소환할 수 있는 날은 내 인생에서 딱 그날 하루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내내 친구들을 설득하며 수업이 끝나면 아롱이반에 부디 남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국 두명밖에 설득하지 못했다. 용을 만날 수 있던 내 인생 단 한번의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또 내게는 책꽂이의 세계가 있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 사이로 머리를 세게 집어넣으면 쑤욱하고 빨려 들어가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자꾸만 실패했다. 매번 머리를 충분히 세게 집어넣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현관문을 두들기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한 무리의 저승사자들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던 저승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었다. 엄마에게 저승사자가 우리 집 현관문을 계속 두드린다고 말하면, 엄마는 그건 저승사자가 아니라 비바람에 현관문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 저승사자였다. 이것은 진짜 경험일까, 가짜 경험일까? 이것이 단지 상상일 뿐이라면 나는 어째서 이들을 실제로 보았던 것일까?

가장 오랫동안 내게 미스터리로 남은 경험은 이것이었다. 자다가, 혹은 일상을 보내다가 느닷없이 미칠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오곤 했다.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엄청나게 두려웠다. 숨을 쉬기 어려웠고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땀이 삐질삐질 나고 몸이 떨렸다. 그러한 공포는 수분간 지속했다가 괜찮아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이 공포는 초등학생 시절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공포의 감각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지냈고, 해석은 인생의 시기마다 달라졌다. 당시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공포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생으로서 떠올릴 수 있는 이유를 갖다 붙여 생각했다.  

‘책장에 붙여놓은 띠부띠부씰이 떨어질 것 같아……’ 
‘어제 배운 나눗셈이 너무 무서웠어. 딱 나누어떨어지지 않아서 수가 계속 반복돼……’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때에는 그간 내가 잘못 생각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경험은 바로 귀신에 들렸었던 것이었다. 혹은 악마가 나를 시험한 것. 교회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그 공포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해주었고 나는 수긍했다. 더 자란 뒤에는 교회보다 책을 더 신뢰했다. 대학에 들어와 정신의학에 관심을 두고 여러 책을 읽으면서는 나는 그 경험에 공황발작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 공포는 정말 무엇이었을까? 띠부띠부씰을 아끼는 마음? 무리수가 주는 무한에 관한 공포? 아니면 보기 드문 아동기 불안장애? 이중 어느 것을 진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구분은 정녕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느낀 바는,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은 내가 지닌 문화적, 지적 자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그 표현 역시 가족, 학교, 미디어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개념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3.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싶다. 몸과 마음이 구별되지 않고 실제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서로 교류하며,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증상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증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및 중국 남부에서 발병하는 ‘코로(Koro)’는 남성의 페니스가 점점 쪼그라들어 복부로 밀려들어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극심한 공포와 불안 상태를 말한다. 코로를 앓는 사람들은 자신의 페니스가 실제로 멀쩡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더라도 여전히 불안을 호소한다. 1984년과 1985년 사이에는 중국 16개 도시에서 3천여 명이 집단으로 발병하기도 했다.

인도와 네팔처럼 남아시아의 힌두교 문화권에서 발병하는 ‘다트 증후군(Dhat syndrome)’은 자신의 소변에 정액이 섞여 빠져나간다는 믿음에서 오는 불안이다. 이로 인해 무기력, 권태, 발기부전, 조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힌두교 문화에서는 정액이 생명의 액체라고 여겨지는데, 이것이 매순간 빠져나간다는 믿음은 당사자에게 심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온다. 

일본의 대인공포증(Taijin kyofusho)도 비슷한 예다. 이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당황하는 증상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숨을 잘 쉬지 못하고 몸을 떨며 공황을 겪는다. 이 증후군을 겪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지닌다.

한국의 ‘화병(Hwabyeong)’ 역시 비슷한 병이다. 울화병이라고도 부르는 화병은 글자 뜻 그대로 분노가 억압되어 생기며 불면, 피로, 호흡곤란, 가슴 통증 등을 느낀다. 화병은 특히 농촌 지역일수록, 교육받지 못할수록, 여성일수록 흔하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증후군들이 한두명의 착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패턴화되어 나타난다는 점이고, 여기에 더불어 특정한 사회나 문화에서만 인지되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인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사인분류(ICD)처럼 전 세계는 이제 대부분 표준화된 질병 분류를 사용한다. 적어도 제도화된 의료 시스템 내에서는 그런 것 같다. 정신질환 역시 표준화되었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이다. DSM은 미국정신의학협회가 1952년 처음 발간한 이후로 현재 5판에 이르기까지 여러번의 개정을 거쳤으며 정신질환의 진단에 있어 가장 널리 사용된다.

DSM에 분류된 정신질환은 우리가 흔히 아는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등이고 이것은 전 세계에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앞서 소개한 코로, 다트 증후군, 대인공포증, 화병 등은 이에 잘 들어맞지 않았다. 그래서 DSM 4판에는 특정한 사회나 문화에서만 나타나는 ‘문화권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4.
문화권 증후군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정신적인 증상과 신체적인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화병을 앓는 여성들은 분노와 우울 외에도 가슴 통증, 소화 불량 등 신체 증상을 함께 호소한다.

캐나다 맥길대 사회및횡문화정신의학부 교수 로렌스 키르마이어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고통을 설명하는 ‘설명모형’이 문화마다 다른 것에 주목하는 학자이다. 키르마이어는 문화권 증후군과 같이 특정 문화권의 믿음과 이야기가 개개인의 관심을 특정한 감정과 증상으로 이끌고, 그밖의 느낌과 증상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말한다. 가령 한 문화에서는 장의 불편함이나 근육통의 느낌을 찾도록 암시를 줄 수 있고, 다른 장소나 시대에는 다른 유형의 증상이 합당하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키르마이어는 설명모형들이 환자의 마음에 해당 문화에서 기대하는 질병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우울증과 같은 질병의 원인과 증후, 경과에 관한 믿음이 자기달성적인 성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권 증후군은 이제 DSM에 간신히 부록처럼 끼어 있다. 한국 역시 젊은 여성 세대에서는 화병보다 우울증이라는, 미국을 중심으로 전해진 정신의학 설명모형을 이용한다. 그러나 문화권 증후군과 같이 사람들이 고통을 설명하는 모형이 문화마다 다른 것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호소하는 증상들이 때로 그 심적 고통의 원인에 대한 단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와 다트 증후군이 하필이면 페니스와 정액과 관련된 공포인 이유랄지, 화병이나 대인공포증과 같이 인간관계와 관련된 질환이 여성에게 호발하는 이유랄지 말이다.

사실 우울증의 미국적인 형태 역시 독특했다. 키르마이어는 고통스런 감정과 느낌들을 낯선 사람에게 기꺼이 공개하고, 동시에 마음의 고통을 의료 문제로 보는 성향을 지닌 것은 미국인이 유일하다고 지적한다. 다른 문화에서는 대체로 내적 고통에서 도덕적, 사회적인 의미를 찾기 때문에 자신의 공동체 내에 어른이나 영적 지도자들을 찾아가지 공동체 밖에 의사에게 도움을 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우울증을 호소하는 여성 중에서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무속신앙 등을 찾는 이들이 많다. 특히 정신과를 찾아가는 일을 어려워하거나, 찾아갔더라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실망한 경우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정신질환을 비롯해 자아에 관한 믿음 역시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수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문화는 기존에 사람들이 증상을 분류하는 방식을 바꾸고, 정상적인 행동과 상태, 그리고 병적으로 여겨지는 것의 경계선을 새로 그을 수 있다.

내 주변의 젊은 여성들은 이제 히스테리아나 화병보다는 우울증, 불안장애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이렇게 미국을 통해 들어와 보편화된 정신질환의 이름들은 지금 여기 한국에 사는 여성의 고통을 얼마나 잘 설명해주고 있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미나

과학사를 전공하고 여성과 우울증을 연구하고 있다.  
 



다음주에는 무용연구자 정옥희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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