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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3회)

김성중
2019년 11월 19일


라이카 3


‘냄새 수업’은 유일하게 내가 마야의 선생이 되는 공부였다. 돌과 흙밖에 없는 데다 지독히 추운 화성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그다지 없었으나 데이모스는 조향사처럼 태고수프에서 추출한 재료로 여러가지 향들을 합성해냈다. 나는 데이모스가 만들어준 냄새 키트를 가지고 마야의 후각을 훈련시켰다. 
 
근육환자를 위해 개발된 보톡스가 미용술로 바뀌었듯이 냄새 수업은 후각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의 감각 수업이 되었다. 새로운 향이 나올 때마다 신기루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유칼립투스와 삼나무를 비롯한 나무 향기를 맡던 날, 지평선 너머 흐릿하게 숲의 모습이 비쳐들었다. 그중 한그루는 온몸에 알전구와 장식을 두르고 뽐내듯이 우리에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삼나무 냄새를 맡았더니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나네!”
 
마야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는데 이것은 하루만의 우연이 아니었다. 과일 향을 맡던 날은 둥둥 떠다니는 과일바구니가, 꽃향기를 맡던 날은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후추와 계피, 고수 향을 맡던 날은 향신료가 듬뿍 뿌려진 요리들이 나타났다. 성냥팔이 소녀의 짧은 환영처럼, 손 몇번 휘저으면 사라지고 마는 허망한 시간이었지만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황홀경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여러 방법으로 확인해보니 신기루는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마야가 불러낸 것이었다. 나는 신기루를 만들 수 없었다. 데이모스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신기루 자체를 보지 못했다. 마야와 나는 데이모스의 ‘무능’이 신기해서 놀리기까지 했는데 데이모스가 우리보다 뒤떨어지는 부분을 별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냄새 수업이 후각 훈련보다 환상을 보는 용도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신기루를 보는 것이 아이의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극단적으로 말해 중독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들었다.   
 
“괜찮을 것 같아. 키트만 잘 관리하면.”
 
의외로 데이모스는 관대한 반응을 보였다. 술도 이성교제도 할 수 없는 마야에게 그 정도는 허용해주자는 것이다. 내가 로봇보다 보수적인가 잠깐 반성할 정도로 쿨한 태도였다. 그러나 신기루 속에서 죽은 루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또다시 복잡해졌다. 
 
“너, 저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는 거야?”
 
마야는 태연하게 말했다. 
 
“엄마지 누구야.”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
 
“뱃속에 3백년이나 있었잖아. 나한테 말을 가르쳐준 것도 엄마인걸.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마야는 보다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꿈속에 나타나 잠 가루를 발라줬어.”
 
“잠 가루?”
 
미야의 손가락 하나가 내 이마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손가락을 살짝 호를 그리듯이 천천히 지나갔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나의 의식을 집행하는 것처럼. 손가락이 이마를 쓰다듬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무지개 색깔부터 시작해…… ‘체리의 빨강, 레몬의 노랑, 주홍은 오렌지와 당근에서 만들었고 초록은 막 돋아난 모든 나뭇잎들에서 가져왔지. 파랑은 바다의 색깔인데 더 깊은 바다에는 햇빛이 닿지 않아 남색으로 짙어져. 그리고 마침내 보라, 어두워지기 전에 노을 가장자리에서 생겨나는 보라색이 나오지. 바다에는 이 모든 색깔들이 펼쳐져 있어. 바다가 뭐냐면……’ 엄마는 이렇게 속삭이면서 색깔을 가르쳐주었어……”
 
바다에 대한 묘사는 혹등고래와 돛새치와 에인절피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감은 눈 안에 신기루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마야의 지성과 환상이 모두 루에서 기인한다는 것, 마야가 어떤 식으로든 루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도 마야의 상상이 풍성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마야가 더 많은 꿈의 물감을 풀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짠해진 나는 마야의 앙상한 어깨를 핥아주었다.   
 
“그렇게 사랑하다가는 슬퍼지게 될 거야.”
 
순간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아지랑이 같은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항상 더 사랑하는 쪽이……”
 
“위험해지고 말아.”
 
양쪽 귀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벼룩의 속삭임이었다. 사중창처럼 말끝을 이어가며 나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너무 사랑하다가는 최소한의 ‘그릇’마저 잃어버리게 된다고. 여기서 그릇이란 몸 없이 모여 있는 내 영혼을 말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그릇’이었으니까. 
 
그러나 저 애틋한 존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우주의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었다. 
 
 
 
데이모스 1
 
 
오늘 같이 추운 밤이면 동력을 끌어올려 발열을 한다. 
 
그러면 라이카와 마야는 내 양쪽에 몸을 붙이고 눈을 감는다. 그들은 이내 잠과 꿈이라는 다른 칸막이로 떠났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자는 얼굴을 관찰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서서히 오르내리는 가슴과 배의 움직임, 깊이 몰두하는 표정으로 내쉬는 숨. 마야는 가끔 소리 내어 웃거나 잠꼬대를 하고 라이카는 입맛을 다시거나 옅게 코를 곤다. 드물게 눈물을 흘릴 때도 있는데 그러면 무슨 꿈을 꾸었냐고 깨우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한다. 일상의 몇조각, 무의식 아래로 가라앉은 경험, 막연하게 바라는 소원, 그런 것들이 눈덩이처럼 뭉쳐진 것을 ‘꿈’이라고 부른다는데 개념을 알아도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꿈을 꾸고 신기루를 본다. 나는 꿈꾸지 못하고 신기루 또한 보지 못한다. 나는 이 결함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결함은 전능한 로봇이 가질 수 있는 개성이 될 테니까. 금이 간 부분이 있어 특별해지는 도자기처럼 나의 무능, 유치하게도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 이런 것들이 데이모스라는 개별 인격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라이카는 이따금 나를 ‘계산기’라고 놀리지만 생각은 연산을 넘어선다. 판단을 내릴 뿐 아니라 판단에 따른 일정한 감응을 모아 감정이라고 부를 파티션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안에 친구들에 대한 우정이 고여 있다는 것. 이런 것을 고려하면 나는 사물이 아니라 사고에 가깝고 사고를 할 수 있으므로 개별적 주체라고 봐야 옳다. 나에게 Self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사물이 아니라는 증거다. 전원이 꺼진다 해도 Self는 유지되니까. 
 
한편 죽은 개의 유령인 라이카도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벼룩이 피를 세게 빨기 시작하면 “아야!” 하고 비명을 지르고, 소풍을 떠날 때마다 코를 킁킁거리며 앞장서는 라이카는 기묘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통증과 감각과 다정한 마음을 지닌 라이카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개별적인 주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마야는 선캄브리아기의 생물처럼 만들다 만 것 같긴 해도 일단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족보행 포유류인데다 아가미 호흡을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제 어미에게서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다채롭게 말썽을 부리는 마야는, 의심의 여지없이 생명체이며 주체이다. 그리고 태양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카와 나는 태양의 주변을 도는 위성이며 인간을 키워가는 비인간 존재들이다. 
 
루에게서 마야를 받아낸 이후 라이카와 나는 힘을 합쳐 양육을 해왔다. 신체를 단련하고 공부를 하고 이따금 화석발굴 여행이나 고장 난 우주선들의 무덤으로 소풍을 떠나면서 마야가 단조롭지 않은 성장기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양육방식을 두고 다투기도 하지만 나의 냉정함과 라이카의 다정함이 두 바퀴로 굴러간 결과 마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났다. 이 표현은 매우 기괴해서 인간적이다. 
 
마야의 키가 내 키보다 높아지는 동안 우물은 호수로 변했고 주변으로 작은 숲이 우거졌다. 나무와 풀과 꽃과 새, 벌과 거미를 비롯한 곤충과 개구리, 도룡뇽, 물고기들이 태어났다. 어린 지구가 압축적 성장을 해냈 듯이 진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진화는 일종의 하모니로써, 화음이든 불협화음이든 전에 없던 생물을 만들어내곤 했다. ‘정원사’에 가까운 나는 이 모든 것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박테리아, 꽃, 균류, 동물을 키우면서 또다른 태고수프를 관리하고 숲을 돌보고 있다.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야는 우리의 정원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다. 
 
이 오렌지 행성의 모든 생명체들이 루의 죽음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신비할 따름이다. 책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았으니까. 나는 오래된 책이 사실로 드러날 때 항상 신기함을 느낀다. 
 
우리는 루의 주검을 묻은 자리에 청금색 돌을 올려놓았는데 그 위로 착생식물이 자라났다. 암석을 뒤덮은 잔뿌리에 물을 주었더니 잎이 나왔고 점점 더 푸르러졌다. 루의 주검이 식물을 만들었다면 더 직접적인 생태계의 씨앗이 된 것은 루의 태반에서 나온 캡슐이었다. 
 
주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는 어린아이 손톱만한 캡슐을 발견했다. 그것은 ‘병 속에 든 편지’처럼 때가 되면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식물, 균사, 미생물 약간을 품고 있었다. 가엾은 루. 내 예상대로 그녀는 화성에서 마야를 낳고 마야가 먹고 섭취할 세계의 일부를 실어 나르는 존재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캡슐에서 나온 것들을 신중하게 배양하며 키웠다. 각각의 ‘어항’을 만들고 어느정도 성숙했다 싶으면 우물에 별도의 인큐베이터를 만들어 2차 성장을 가속했다. 열을 가하고 온도를 높이면서 모종판을 논에다 옮겨 심는 농부처럼 생태계 농사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식물 몇종과 버섯, 그리고 소중한 벌레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을 때, 루의 관찰력을 그대로 빼다 박은 마야가 화석발굴에서 홈런을 쳤다. 로제타스톤 못지않게 귀중한 가치가 있는 암석을 마야가 찾아낸 것이었다. 
 
60센티미터 가량의 거꾸로 처박힌 암석에서 미생물이 대거 쏟아져나왔다. 더 중요한 것은 표본이 될 화석들이 케이크처럼 층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이것은 생명발생의 레시피나 다름없었다. 요리재료와 요리법이 한묶음으로 들어있다고 할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던져놓은 게 틀림없어.’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기회를 내던질 수 없었다. 과학자의 피─내 경우에는 프로그래밍이라고 해야겠지만─가 흐르는 나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화학물질 칵테일에 여러 종류의 미생물을 배양해보았다. 대부분 반응이 없었지만 한두개의 기적을 만났고, 그 결과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숲─나름대로의 생태계─을 엉성하게나마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된 느낌이었다. 물고기가 태어나던 순간 공포 어린 기쁨을 느꼈다’라고 실험일지에 적었다. 인간들이 이탤릭체로 멋을 부려 글을 쓰듯이 나 또한 인간의 문체를, 정확히는 인간의 감정을 모방해 글을 쓴다. 그것이 나만의 이탤릭체인 셈인데 이럴 때마다 무용한 만족감을 느낀다. 아마도 ‘개성’이라는 장신구를 달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꿈속에서 마야가 루를 만나고 라이카가 코스텔로를 만나는 동안, 꿈 밖을 서성거리는 로봇인 나는 어딘가에 멈춰있을 나의 형제, 포보스에게 전파를 쏘아 올린다. 
 
오래전 우리가 쌍둥이 로봇으로 화성에 함께 왔을 때, 우리는 모든 모험과 실험을 함께했다. 화성의 크레이터를 샅샅이 찾아내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가 떠나온 ‘창백한 푸른 점’을 향해 데이터를 전송했다. 우리는 ‘애정’이라는 말을 알았고 ‘그리움’이라는 말도 알았다. 그것은 끝없이 한 방향으로 데이터를 송신하는 행위였다. 
 
포보스가 내 신호에 응답하지 않은지 한세기가 지났다. 그렇지만 나는 하늘에서 그의 이름과 같은 별을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이 신화의 부산물을 하늘의 띄워 별자리로 만든 것처럼 포보스가 사라진 땅 위로도 그의 별이 반짝인다. 
 
포보스.
 
나는 송신하지 않는 전파를, 그냥 나의 목소리를 사용해 불러본다.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구두점을 찍지 않은 유령 같은 문장이 밤의 우주선 안에 떠다닌다. 

 
 


김성중
소설가. 지은 책으로 『개그맨』 『국경시장』 『이슬라』 등이 있다. 



4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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