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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 호라이즌

김지연
2019년 11월 20일



듀얼 호라이즌 
 
 
밤새 불이 났대, 누군가 주차장에서 피운 불이 옮겨 붙었대
너는 펄럭이는 가림막 사이 시커먼 문을 보며 말했다
받은 부케는 백일 후에 태워야 행복해진다는 미신이 있다고도
 
뉴스에서 식당 주인은 이곳을 빠져나오면서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어
그럼 불을 피운 사람은 신의 일을 한 걸까?
 
밥솥이 뿜는 김이 드나들던 문틈으로 잿가루가 떠다니고 있었다
햇빛 속에서 더 시커멓고 선명하게
떠다니는 그것은 너무 작았다
 
친구가 낳은 아주 작은 사람의 선물로 너는 모래 놀이 세트를 골랐다 모래를 담고 쏟는 것을 반복해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쇼핑백에 담긴 그것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놀이터를 가로지를 때 모래의 형태는 우리의 발밑에서 순간순간 무너지고 있었다
 
신은 언제나 문밖에서 기다린대
너는 현관문을 연다
인도네시아의 어떤 섬에는 집집마다 신이 살고 있어서 하나의 신이 한명의 사람을 돌봐줄 수 있대
 
우리는 작은 서점 앞을 걷는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정말 작아지고 싶었어
신 하나쯤은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아까 그애 발 봤어? 손가락을 봤어? 얼마나 작은지 봤어?
그렇게 말하는 네 옆으로 아주 작고 새카만 개가 지나간다
 
여기까지 왔으니 소원이라도 빌고 가자
우리는 돌탑 위에 쌓인 돌 중 가장 작은 것보다 더 작은 돌을 올린다
 
더 좋아질 거야
모든 게 깨끗하고 새로울 거야
터미널 텔레비전 앞에 모인 사람들은 말하고
화면에서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가 무너지고 있다
 
가위에 눌렸을 때는 손가락부터 움직여야 한대
가장 끝마디부터 천천히 작게
구부러지고 펴지는 손가락을 보다 고개를 돌렸을 때
 
옆자리에서 잠든 네 무릎 위에는 주먹 쥔 손이 놓여 있다
그것은 작지만 충분히 작지 않아서 하나 위에 또 하나를 올려야 할 것 같다
 

 
 
*아룬다티 로이

 


미신(迷信)「명사」
인간과 가까운 곳에서 지내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신. 기도 대신 작은 지침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행할 때 미신의 자그마한 영성이 인간을 돌본다고 알려져 있다. 미신은 문지방을 밟지 않고, 밤에는 손톱을 깎지 않으며, 이사할 때는 가장 먼저 밥솥을 안고 집으로 들어갈까?
 


김지연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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