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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의 가슴

정옥희
2019년 11월 21일



 

일곱번째 여성, 무용연구자 정옥희 님

발레리나의 가슴 


 

발레 학원 선생님이 러시아로 연수를 다녀오신 후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아두고 눈을 반짝이며 말씀하셨다. “날개뼈를 아래로 끌어내리고 가슴을 쫙 펴야 해. 척추를 골반부터 뒷목까지 쭉 끌어올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풍선에 바람을 넣듯 상체가 부풀어 올라. 나 봐라. 이렇게 가슴이 없지만 마치 가슴이 엄청 큰 것처럼 보이지? 이 자세로 춤추는 거야.” 선생님의 등을 만져보며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 나는 살짝 움츠리면서 가슴을 작게 만들어야지.’ 가슴이 대책 없이 부풀던 중3 때였다. 
 

나의 발레전공생 시절은 중학교 2학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중2 때까진 ‘그 체격 좋은 애’였다. 콩쿠르 때면 무대로 걸어 들어와 시작 포즈를 잡기도 전에 ‘우와~’ 하는 탄성이 들렸다. 마르고 균형 잡힌 몸! 긴 팔다리와 작은 얼굴! 높은 발등과 유연성! 선생님들이 탐내고 친구들이 질투했다. 그런데 선생님 딱 한분이 ‘사춘기 되어봐야 알지’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셨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여러 요정들이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가운데 홀로 저주를 예언하는 카라보스 같았다고나 할까. 불행히도 그 선생님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중2 말에 월경을 시작한 후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골반이 넓어지고 허벅지가 두꺼워졌다. 가슴이 커지고 살이 차올랐다. 학교에서 ‘2차 성징기’는 몸이 아기 낳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 배웠지만  문제는 내가 발레를 전공한다는 것일 뿐. 
 

난 내 가슴을 혐오했다. 점프를 하면 눈치 없이 출렁대는 가슴이 부끄러웠다. 가슴은 몸통과는 다른 차원의 중력과 원심력의 지배를 받는다. 내 몸을 손끝부터 발끝까지 아무리 정교하게 조율하고 움직이더라도, 가슴만큼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점잖은 자리에서 눈치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꼴사납다. 튀튀를 입으면 보디스(bodice) 위로 가슴의 살집이 튀어나오고 양쪽 가슴이 눌려 가운데 선이 생기는 게 싫었다. 여성의 매력이라 여겨지는 전형적인 이미지이겠건만, 발레에서는 무겁고 미련해 보였다. 
 

학교 친구들과 발레단 동료들 중에 큰 가슴이 콤플렉스인 이들이 몇몇 있었다. 우리는 가슴을 가리고 축소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어깨끈이 얇은 레오타드보단 가슴을 충분히 덮는 레오타드를 주로 입는다. 레오타드 안엔 얇은 의상용 브래지어를 해서 가슴을 누른다. 문제는 공연이다. 가슴선이 드러나고 등판이 파인 튀튀를 입으면 가슴이 자유롭게 날뛴다. 거대한 가슴으로 고민했던 한 선배는 무대에 나가기 전 의료용 접착테이프로 가슴을 고정시켰다. 크기는 줄이지 못하더라도 출렁거림이라도 막기 위해서다. 공연을 거듭하다보면 피부가 헐고 미처 떨어지지 않은 테이프 접착제로 가슴이 얼룩덜룩해졌지만 무대 위의 수치심보단 나았다. 
 

발레단 생활을 마치고는 몸매니 다이어트니 가슴에 대해서 애써 잊었다. 남들이 보면 비슷비슷해 보여도 1, 2kg 차이로 비교당하고 좌절해온 커리어다. ‘앞으론 60kg가 되어도 받아들이리라.’ 평생 짓눌려온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습게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살이 별로 찌지 않았고 ‘젖살’도 서서히 빠졌다. 한참 후 내 가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된 건 아이를 낳고서다. 평생 생각해본 적 없던 유방의 본래 기능을 맞닥뜨린 것이다. 


아이를 낳고 젖이 차오르면서 가슴이 미친 듯이 부풀었다. 그저 혐오하기만 했던 가슴의 몽우리가 유선 조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모유를 생산하는 곳. 유선 조직에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먼지가 더께로 쌓였던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30년 넘게 겨울잠 자고 있던 유방의 깨어남은 오로라 공주의 기지개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공장은 덜컥 가동을 시작했는데 유통로가 미처 확보되지 않은 거다. 젖몸살 달뜬 몸으로 산후 유방마사지 센터를 찾아갔다. 마사지사가 유관을 따라 누르면 고였던 모유가 분출되었다. 마사지사의 가운으로, 내 얼굴로 사정없이 튀는 모유를 맞으려니, 내가 철저히 무시했던 존재에게 제대로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나는 곧 젖이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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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은 변한다. 때가 되면 가슴이 나오고 골반이 벌어지고 월경이 시작된다. 허나 내가 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던 이유는 발레에선 유아적인 몸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발레 교본엔 작은 머리와 긴 팔다리, 종아리와 비슷한 굵기의 허벅지, 긴 목과 작은 골반, 작은 가슴과 엉덩이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이의 밋밋한 몸에서 키만 훌쩍 자라라는 얘기다. 굴곡진 몸은 환영받지 못한다. 가슴뿐 아니다.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팔뚝 역시 쉬이 비난받는다. ‘쇠꼬챙이’ ‘빼빼로’ ‘젓가락’ ‘성냥개비’ 등 발레리나에 붙는 별명들은 튀어나온 모든 것을 부정한다. 튀어나올수록 찬사 받는 유일한 굴곡은 발등뼈뿐이다. 

유아적인 몸이라는 이상은 냉혹한 잣대가 된다. 발레전공생은 어려서부터 제 몸을 타인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법을 터득한다. 푸줏간에 놓인 고깃덩어리처럼 제 몸과 다른 몸을 부위별로 비교하고 평가한다. 

‘난 머리가 크고 허리가 두꺼워.’ 
‘왜 내 종아리는 짧고 알통이 울퉁불퉁할까.’ 
‘얜 나보다 다리는 길지만 허벅지가 두껍군.’ 

마음의 소리만으로도 괴롭건만, 평가는 공적인 언어를 통해 발화되고 교환된다. ‘냉정하고 전문적인 평가’니 질척거리는 추임새는 생략된다. 

“너 요새 살쪘다, 3kg 빼고 와.” 
“어머니, 얘는 무릎이 튀어나오고 어깨가 말렸네요.” 
“키가 작고 다리가 휘어서 아무래도 발레단은 어렵겠어.” 

이러한 말들이 성희롱이나 인신공격이 아닐 수 있는 까닭은 몸에 대한 정답이 존재한다고, 그래서 이를 기준으로 삼은 평가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적인 언어 역시 폭력을 휘두른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시험이 끝나면 담임 선생님이 학급석차, 전교석차를 교실 뒤 게시판에 붙였다. 갱지에 빽빽하게 인쇄된 숫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객관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성적이 며칠씩 붙어 있는 동안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도 위계와 수치심을 내면화하는 법을 각자 배워야 했다. 발레전공생들은 성적표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형국이다. 발레학원에서도 교실 게시판의 성적표처럼 매일 몸무게를 재고 벽에다 붙이는 선생님이 있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연습복을 입고 선 순간, 한발짝 떼기도 전에 그의 신체 자본이 가늠되고 계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떤 몸은 우월하고 어떤 몸은 열등하다. 그건 너무도 투명하고, 그래서 처절하다. 발레전공생은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고, 그로부터 의식과 분리하는 법을 체득한다. ‘너는 팔다리가 짧아서 어쩌냐’라는 말에 발끈하지 않을 내공이 쌓여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아적인 몸의 대가는 크다. 동화 『인어공주』에서 섬뜩한 지점은 인어공주가 인간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와 지느러미를 잃는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큰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칼로 에이는 듯 고통스럽다는 점이다. 유아적인 몸 역시 한순간 ‘획득’되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 여성이 사춘기 이전의(prepubescent) 몸에 머무르는 건 자연스럽지 않으며, 따라서 끝없는 사투를 통해서만 어렵사리 유지된다. 
 

부끄럽지만 사춘기 시절 나는 전쟁고아나 난민들의 사진을 보며 기아에 허덕인 몸들을 부러워했다. 저 정도로 말라야 하는데 내 허벅지가, 내 가슴이 부끄러웠다. 발레전공생들 중 많은 이들이 생리불순과 영양실조, 탈모와 빈혈을 겪는다. 그렇게라도 마른 몸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여긴다. 체형이 변화하고 지방을 축적하려는 시기와 치열한 경쟁을 통해 프로페셔널 무용수로 나아가려는 시기가 겹치기에, 여성의 몸이 겪어야 하는 변화를 힘껏 부정하고 거부한다. 발레전공생들은 저마다 이상적인 몸에 다가가기 위해 시도해보지 않은 다이어트 요법이 없고, 실패담이 수두룩하며, 정신적 방황의 타래가 끝없다. 한명 한명이 몸의 도서관이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몇이 프로페셔널 무용수가 되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자기혐오와 좌절감을 안고 나가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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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에서 몸은 권력이자 자본이요 계급이다. 그런데 발레에서만 그러할까? 아이돌 가수의 퍼포먼스에서, 패션쇼에서, 성형외과에서, 승무원 학원에서, 행사장 도우미들에게서, 게임의 여성 캐릭터에서, 광고에서, 만화에서, 유아적인 몸을 가진 성인 여성들을 마주친다. 그들의 일상은 발레리나와 놀랄 만치 닮아 있다. 좁디좁은 틀에 자신을 끼워넣기 위해 새 모이처럼 적게 먹고, 끝없이 체중계 위에 올라가보고, 폭식과 거식을 오가고, 자격지심과 불안감으로 얼룩져 있다. 업계는 치열하고 젊은 여성에게 몸은 자격증 같은 것이라, 갖추지 않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는 시작되었다. 다양한 체형의 패션모델이 주목받고, 꾸밈노동에 대한 각성도 이어진다. 발레학교에선 지나치게 마른 학생에게 건강 조언을 제공하고, 마른 몸보다는 근육이 탄탄한 무용수가 건강하고 아름답다는 캠페인도 많다. 하나하나 의미 있다. 헌데 외연은 넓어지는 듯해도 중심축은 좀처럼 이동하지 않는다. 권위 있는 발레단이나 발레학교는 여전히 길고 가는 유아적인 몸을 선발한다. 승무원들은 늘 바비인형 같고,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학 다리에 가슴만 풍선만하다. 인정하자. 어떤 업계는 다른 업계보다 더 억압적이다. 이런 업계에서 ‘나의 몸 그대로를 받아들이자’는 구호는, 주류에 가닿지 못한 이들의 변명처럼 처량하게 휘발되고 만다. 
 

꿈쩍도 않는 중심을 보며 상상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발레도 탈코르셋할 수 있을까? 그 결과를 발레의 ‘퇴보’가 아닌 ‘진보’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성이 굶지 않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몸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대중 앞에 선 여성이 어떻게 하면 외모 후려치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성이 드레스가 아니라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 도우미가 아닌 이가 건네는 상을 받는 날이 올까?  

그러니 발레리나의 몸에 대한 칭송을 멈추자. ‘어머, 역시 발레리나라서 아름다우시네요’ ‘우리 딸도 발레하면 몸매가 좋아지고 팔다리가 길어지겠죠?’ ‘발레리나는 종자부터 우월한가봐요.’ 우아하고, 아름답고, 날씬하고, 엄청 말랐고, 군살이라곤 없고, 뼈가 다 보이고, 머리가 조막만하고, 다리가 미끈하고……라며 건네는 말은 찬사가 아니라 이들의 몸을 옥죄고 동여매는 전족(纏足)이다. 몸에 대한 찬사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누군가가 칭송받을수록 나머지는 등급별 ‘몸뚱이’가 되어 다그침을 당한다. 춤은 정태(靜態)가 아니라 동태(動態)다. 찬사 역시 정태가 아니라 동태에 쏟아져야 한다. 


 



정옥희

무용연구자. 춤에 대해 쓰고, 말하고, 가르친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광저우시립발레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다음주에는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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