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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4회)

김성중
2019년 11월 26일


데이모스 2


소금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반벌거숭이의 앙상한 몸을 하고 쓰러진 인간 여자아이를 발견했을 때 가장 놀란 이는 나였다. 
 
겉보기에는 마야가 더 놀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야는 뱀을 처음 본 포유류처럼 길길이 날뛰고 화를 냈다. 전파망원경을 끼고 살면서 어떻게 화성에 인간이 있는 것을 몰랐느냐고 나에게 고함을 치는 마야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묻어났다. 마야는 실험동물로 태어난 엄마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있기에 인간을 향한 매혹과 증오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마야의 추궁이 옳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외부인, 특히 지구인이 출몰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지만 태고수프를 저으며 창세 놀이에 빠져있느라 경계를 소홀이 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과 방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했다. 
 
우리는 여자아이를 우주선 안의 격리실로 옮겼다. 일차적으로 오염제거 소독제를 뿌리고 반응을 체크한 결과 무해하다는 판독이 나왔다. 그래서 공용실의 침대로 옮겨 회복을 돕기로 했다. 마야는 저 애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냐고, 절대 ‘집 안’으로 들이면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라이카와 나는 아이를 회복시켜 정보를 묻는 편이 상황을 파악하기에 빠르다고 판단했다. 
 
의료기기에 연결하여 기본적인 검사를 실행해보았다. 바이오 모니터에는 모든 반응이 약화되고 운동기능이 떨어져 있는 것이 감지되었으나 특별한 병이나 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장기간의 영양부족으로 인한 탈진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였다. 끊임없이 몸을 떨고 이를 맞부딪치는 여자아이에게 모포를 덮어주던 라이카가 불쑥 말했다. 
 
“눈도 가려줘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여자아이는 눈꺼풀이 없었으니까. 누군가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눈썹 아래 오목한 곳부터 살점이 없는 아이는 의식을 잃은 지금도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반투명한 순막이 안구를 옅게 덮고 있지만 우주선의 밝은 조도에 피곤할 것이다. 
 
라이카는 천천히 움직이는 석류색 눈동자를 보는 것이 ‘부적절한 느낌, 뭔가 적나라하고 잔인한 노출’처럼 여겨진다며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기분 나쁘다는 말을 길게도 하네’라며 마야가 이기죽거렸지만 일단 수건으로 눈을 가려주었다.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눈동자가 라이카나 마야에게 불쾌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신기했다. 수치심은 고도로 복잡해 번역불가능한 감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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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기력을 회복한 여자아이는 이름이 ‘키나’라는 것과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순순히 털어놓았다. 
 
“켄타우로스호는 금성의 테라포밍을 위해 13개월 전에 지구를 떠나왔어요.”
 
머나먼 별까지 개척 사업을 하겠다고 지원한 사람들 중에는 문제의 소지를 가진 인물들이 많았다. 금성에 간다는 생각보다 지구를 등진다는 생각에 방점이 찍혀 있던 사람들은 고향별의 중력을 벗어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주선을 탈취하기 위한 반란이 일어나 모두가 궤멸할 만큼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간신히 진압이 이루어졌지만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장은 반란자들뿐 아니라 탐탁지 않던 사람들까지 한묶음으로 화성에 내려놓고 떠났다. 여기에는 눈꺼풀이 없어 보기 거북한 여자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인도에 버려진 해적 신세가 된 남자들은 얼마 되지 않은 자원과 여자들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말썽의 냄새를 맡자마자 키나는 가장 먼저 달아났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같이 죽기 싫어서였다. 
 
“눈꺼풀은 왜 그래?”
 
마야가 불편할 수도 있는 질문을 정공으로 던졌다. 막힘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키나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눈꺼풀이 있다면 두어번 깜빡거릴 시간만큼의,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다섯살에 눈꺼풀제거술을 받았어. 부모가 죄를 지었으니까.”
 
그 이야기는 좀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들을 수 있었다. 
 
부모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다섯살짜리의 눈꺼풀을 잘라버렸을까. 죄의 무게가 어떻든 간에 자식에게 저런 벌을 받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 마야는 그 순간부터 키나에 대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렸는데, 화성에서 살아온 자신의 성장기보다 더 혹독한 성장기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지구는 정말 끔찍해. 특히 인간들은.”

풋내기의 호언장담처럼 마야의 말은 공허하게 들렸다. 지구에 가본 적 없는 마야가 단정적으로 다 안다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야는 태어나 처음 보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지구에 대해서 묻고 또 묻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세상은 전부 그 푸른 별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자기의 지식이 얼마나 과녁에 맞았고 또 빗나갔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키나에게 말을 걸고 자꾸만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직감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라이카가 나중에 말해주기를, 자기는 처음부터 알아차렸다고 했다. 키나의 붉은 눈을 바라보던 마야의 푸른 눈이 얼마나 반짝거렸는지를, ‘박해받는 지구인’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마야의 맹목적 증오가 얼마나 빠르게 누그러졌는지를,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의 등장으로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말이다. 
 
“언제나 돌봄을 받기만 하다가 돌봐줄 대상이 나타나니까 신이 났겠지.”
 
라이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줄곧 키나와 붙어 있는 마야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말투였다. 
 
아닌 게 아니라 마야는 정성을 다해 키나를 돌봐주고 있었다. 세끼 식사를 챙겨주고 일년에 단 한번 허용되는 ‘생일 계란’까지 키나에게 주겠다고 우겼을 정도였다. 닭이 알을 낳은 것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이 생기는 족족 부화기에 넣어 병아리의 개체 수를 늘리고 있었다. 그러나 라이카의 부탁으로 3년 전부터 마야의 생일에는 계란 요리를 해주고 있다. ‘케이크도 못 만들어주는데 계란프라이 하나라도 먹이자’는 게 라이카의 주장이었다. 이 귀한 계란을 키나에게 먹여 회복을 돕는 게 자신의 ‘생일선물’이 될 것이라고 마야는 말했다. 
 
노란 계란, 반드시 반숙으로 해야 한다는 마야의 말대로 겉에 막이 살짝 생길 정도로만 조리한 계란이 키나의 앞에 놓였다. 마야는 기대를 잔뜩 품은 눈초리로 떠들었다. 
 
“‘용암 달걀’이야. 여기 가운데를 스푼으로 툭 건드리면 용암처럼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나와. 난 처음에 계란을 먹었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어. 너무 맛있어서. 황금을 녹여 먹어도 이것처럼 호사스럽지 않을 거라고 라이카가 말하더라? 당연히 황금보다 이게 더 대단하지! 살아 있는 닭이 낳을 알이라고. 내가 닭들을 얼마나 정성껏 돌보는지 안다면…… 물론 닭똥 냄새는 지독하지만 난 깃털이 달린 건 다 좋더라고…… 아참, 먹을 때 똥 얘기하는 거 아니랬는데. 아, ‘똥’이라는 발음 자체를 하지 말라던가?”
 
흥분한 마야는 이말 저말 늘어놓다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키나는 내 쪽을 보며 정말 먹어도 되는지 무언의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끄덕여주자 키나는 스푼으로 보동보동하게 부풀어 오른 노른자를 조심스레 건드렸다. 너무 살짝 건드리는 바람에 노른자는 한쪽으로 일그러지다 원래 모양대로 돌아왔다. 키나가 다시 한번 힘주어 톡 치자 마야가 용암이라고 이름 붙인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나와 흰자위를 덮었다. 
 
“브라보!”
 
마야와 라이카가 호들갑을 떨며 탄성을 질렀다.
 
조심스럽게 한 스푼을 떠먹은 키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구조된 후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처럼 일광이 좋은 날인데다 노른자가 터지자 태양이 터지기라도 한 듯 풍요로운 흥분이 우주선 안에 떠다녔다.
 
로봇이나 개로서는 알 수 없는 네트워크가 두 여자아이 사이에서 일어났다. 마야는 키나가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고 기력을 찾자 호수에 데려가 수영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둘은 어디든지 붙어 다녔고 무슨 말인가를 속닥거렸다. 라이카는 마야가 키나만 찾는다고 씁쓸해했지만 한편으로 전보다 활기차고 밝아진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키나가 오기 전 마야의 들쑥날쑥한 감정기복은 조울증 환자 못지않아서 우리 둘 다 ‘십대야말로 외계인’이라고 혀를 내둘렀기 때문이다. 
 
사이좋게 지내는 여자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라이카와 나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키나의 등장으로 셋만의 평화로운 시기는 끝이 났으니까. 이 땅에 눈꺼풀 없는 무해한 여자아이 말고도 다른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이상 대책을 세워야 했다. 
 
우리에게는 호수와 집, 정원이 있다. 황무지에서 초록을 너무 많이 누리고 있다. 우주선에서 반란을 일으킨 자들, 호전적인 지구인들에게 우리의 거처가 탄로 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했다. 
 
“우주선 주변에 해자를 만들면 어떨까? 물길로 주변을 빙 둘러싸고 물을 건너는 동안 방어할 수 있게끔 뭔가를 만들면 말이야.”
 
“그만큼 물이 충분하진 않아.”
 
“우리에게 공격용 무기가 뭐가 있지?”
 
“소형폭탄 두개와 핵무기가 있긴 하지만……”
 
루의 우주선에는 삼백년 전 무기가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할 일이 없었다. 위력이 확실한 핵무기가 있지만 이것을 사용하다가는……
 
“우주선을 수리해 달아나는 것은? 최후의 카드도 생각해야지.”
 
나는 뿌리를 내리다 못해 넓게 뻗어버린, 작은 나무와도 같은 우주선이 힘겹게 이륙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망망한 우주로 달아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루의 무덤과 그 주위를 둘러싼 우리만의 생태계를 다시 시작할 별이 있을까? 공격이니 방어니 하는 말을 나눌수록 모두 다 필요한 일 같았고 동시에 허황된 소리처럼 들렸다.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여기가 우리의 ‘그릇’이야.”
 
라이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 역시 동의했다. 우리는 그릇 밖으로 흘러넘치면 증발해버릴 물처럼 위태로운 존재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만에 하나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라이카가 시작한 문장을 맺지 못한 채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 생각의 나머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여러가지 일들을 실행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방어가 실패로 돌아가고, 다섯살짜리의 눈꺼풀을 도려내는 세상에서 온 잔인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는 상황이 온다면 마지막 카드는 자명하다. 죽음. 최대의 방어책은 우리 자신의 죽음이 될 것이다. 
 
마야는, 쉽다. 조금만 숨을 쉬지 못해도 심정지가 오는 생물체니까. 나는 정교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활을 위한 메모리칩만 남겨놓은 채 데이터를 삭제하고 어딘가에 잠겨 있을 수 있다. 라이카가 가장 어렵다. 라이카는 네마리의 식솔을 거느리고 있는 데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소멸하는 것을 택해야 하는데, 택한다고 한들 방법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사실상 목숨을 잃는 것은 생물체인 마야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잠깐 스쳐간 생각일 뿐이지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야를 지켜야 해.”
 
라이카가 내 머릿속을 뚫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불쑥 말을 꺼냈다. 죽음이라는 두글자가 지나간 것만으로도 불경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마야의 생명을 방어하고 적들을 물리칠 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 세계를 지켜나갈 것이다. 
 
“마야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으니까.”
 
라이카가 다시 말을 잇는다. 자라지도 않은 아이에게 세상과 생명을 뺏는 일은 지구에서나 벌어질 일이라고. 여기, 우리들의 작은 세계에서는 아니라고 말이다.  
 
-
 
모두가 꿈속에 잠겨 있는 밤, 나는 무기들을 꺼내놓고 있다.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으나 그러다 우리의 정체를 알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니 선제공격을 하는 방법이 가장 우위를 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세번째 무기…… 이 모든 고민을 단번에 끝낼 수 있는 핵의 마력이 나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이 무기를 사용하면 적과 함께 무해한 대기와 땅마저도 잃게 되고 겨우 일궈낸 생태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 사람들, 여기 못 와요.”
 
키나의 목소리가 문득 들려왔다. 어느 틈에 깼는지 얇은 잠옷을 걸친 채 내 앞에 서 있다. 
 
튼튼한 마야의 몸과 비교하면 애처로울 만큼 야윈 몸, 목소리는 낮고 작다.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키나의 머리카락은 정전기가 일어난 것처럼 곤두서 있었고 빛을 받아 백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변화만으로도 키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커 보이고 눈은 불타는 루비처럼 번쩍거린다. 그 눈은, 내가 마주보는 동안 색깔이 계속 변했다. 진홍빛에서 산호빛으로, 오렌지빛으로, 라벤더빛으로, 그러다가 느닷없이 터키 옥빛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진줏빛으로 흐릿해졌다. 에너지가 바뀌어 생체발광하는 외계인과 대면하는 것 같았다. ‘로봇이 아니라면 감당하지 못할 눈빛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침착하게 대화를 유도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
 
“봤으니까요. 미래를.”
 
오렌지색 행성에 또다른 별처럼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김성중
소설가. 지은 책으로 『개그맨』 『국경시장』 『이슬라』 등이 있다. 



5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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