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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역사책과도 같아서

윤정원
2019년 11월 29일
 



 

여덟번째 여성,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님

몸은 역사책과도 같아서 


 

나는 오른쪽 어깨 아래 상박에 두개의 켈로이드가 있다. 켈로이드는 상처의 진피층이 아물 때 콜라겐이 과다증식하면서 평평했던 피부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하나는 소위 불주사라고 불렸던 BCG 백신의 흔적이다. 초등학교 때 주사를 맞았던 작은 상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나 과음을 했을 때, 생리통이 유달리 심할 때 따끔따끔해지면서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내가 자초해서 생겼다. 본과 2학년 의대생 시절, 일년 동안 세상의 모든 병을 다 배우면서 생긴다는 건강염려증에 걸려 온몸을 관찰하는데 골몰하던 차, 피부과 수업에서 ‘악성흑색종’을 배우게 되었다. 흑반(검은 점)이 빨리 자라고 경계의 모양이 이상하면 피부암을 의심해보라는 수업을 듣자마자 오른팔에 생긴 작은 점 하나가 점점 크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부탁해서 조직생검을 받았고,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정상이 나왔지만 생검 후 대충 봉합해준 봉합사의 흔적을 따라 켈로이드가 또 생겨버렸다. 이후 민소매 옷이나 수영복을 입으면 오른 어깨를 항상 감싸게 되었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 줄여보려고도 하고, 성형외과적인 절제를 고려해보기도 했다(가 흉터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말에 포기했다). 그러던 중 지난 애인과의 경험이 완전히 내 관점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탐색하면서 어디에 있는 상처가 어떻게 생기게 된 건지, 어디를 만지는 게 기분이 좋은지를 읽어나가고 있었다. 켈로이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데 그가 흉터를 부드럽게 핥았다. 쭈뼛한 전율이 돌고 거슬리지만 기분 좋은 자극이 손끝까지 퍼져나갔다. 아, 이게 나한테 알람 같은 거였구나. 피곤하면 통증으로 알리고, 좋은 자극은 증폭시켜주는 센서등 같은 존재였구나. 통증신경과 콜라겐이 ‘과다비정상’ 증식한 게 아니라, 결핵에 걸리지 않을 면역력과 함부로 몸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교훈이 훈장으로 ‘더해졌다’고 생각하니 이젠 드러내는 게 그렇게 거슬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막상 드러냈을 때 사람들이 별로 관심도 없다. 지금은 작은 자극은 즐기고, 큰 통증에는 휴식과 통증크림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크게 아프게 되니 고마운 존재이다.

 

겨드랑이 털에 집착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자기애와 자기혐오, 부정과 긍정, 자신감과 절망이 하루에도 몇번씩 아니 몇분에 한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던 시기에, 이차성징이 시작되고 변하기 시작하는 몸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너무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거라는 마음과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마음 중에서 후자가 압도적으로 작용한 영역이 바로 몸이었다. 체육 시간 이후에는 남들 몰래 슬쩍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봤고, 스타일링을 할 것도 없는 똑단발에 아침마다 물을 발라봤다가 로션을 발라봤다가 다시 감았다가 학교에 가곤 했다. 그중 제일 꽂혔던 게 겨드랑이 털이다. 왜 구불거릴까 왜 냄새가 날까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성교육 책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자존감 낮은 아이에게 감정의 기본 값은 혐오였으므로, 제거를 결심했다. 남자가 없어 면도기가 없는 집에서 유일한 수단은 족집게였고, 털을 뽑을 때의 통증과 쾌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틀림없이 ‘매끈한 피부’라는 사회적으로 주입된 신체상에서 시작된 일일 텐데, 양말과 속옷까지도 규제받던 시절 내 몸을 스스로 통제, 혹은 가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발모는 어떤 탈출구 같은 기능을 하게 되었다. 후에 의대생이 되어 정신과 수업에서 털을 강박적으로 뽑는 발모벽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는 나의 욕구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꼈다. 레지던트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여의사 레이저 제모’만 하루 종일 하는 동기가 무료 시술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너무 오래 모근을 혹사시키다보니 색소침착이 되기도, 인그로잉 헤어로 인한 상처가 나기도 하는데 자존감이 낮을 때는 보기 싫다고 느껴져 일부러 기르기도 하고, 그러다 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왕창 뽑아버리기도 한다. 지금은 다양한 성교육 자료들을 접하고 소개하면서 어릴 때 이런 정보들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제모를 하든 기르든 뽑든 안전하게 하자, 그렇지만 남들 때문에 하지는 말자 같은 이야기들을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릴 적 내가 떠올라 혼자 민망해지곤 한다.
 

부모님이 두분 다 아프셔서 할머니가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키워주셨다. 할머니가 주 양육자가 되기 전, 부모님이 입퇴원을 반복해서 친척집을 전전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주일씩 또는 한달씩 가까운 친척부터 먼 친척까지, 고향인 진주부터 부산, 서울까지 돌아가며 맡겨지던 중이었다. 그 친척 집에는 학교에 안 가고 자기 방에만 있는 십대 사촌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는 나만 마주치면 온몸에 힘을 줘서 나를 꼭 껴안고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 발버둥도 쳐보고 물기도 해봤지만 힘의 차이는 역부족이라, 나는 다른 친척이 나타나서 사촌오빠가 나를 결박한 팔의 힘을 풀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본 어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보다 더 어린 다른 사촌동생이 “형이랑 누나랑 결혼한대요”라고 놀리는 장면과 숨이 막히는 압박감만 기억이 나고, 사실 다른 어디를 더 만졌는지, 얼마나 오래 그랬는지, 일부러 도려낸 것처럼 기억이 없다. 다만 그 일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에 꿈에서 가슴이나 성기를 더듬는 그의 손을 느낀 적도, 엉덩이 아래 그의 발기된 성기를 느낀 적도 있었다. 꿈인지 상상인지 기억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해 정신분석도, 그를 찾아가서 대면하는 시나리오도 준비해봤지만 직면하는 일이 무서워서 아직도 마음속으로 준비 중이기만 하다.

 

마침내 주 양육자가 정해졌고, 초등학교 저학년 손녀 둘을 갑자기 맡게 된 할머니는 학교에서 준비물로 찰흙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뒷산에 올라 소나무 뿌리 아래를 파 찰진 흙을 캐 오고, 초경이 시작되었을 때는 준비해둔 광목천을 건네주며 접어서 차는 방법을 알려준 분이었다. 생리대라는 단어도 입에 올리면 안 되어 ‘덴까이(할머니는 여성 성기를 이렇게 부르곤 하셨다) 마스크’라는 우리 가족만의 은어를 썼다. 난방비를 아끼느라 집은 항상 추웠고 나는 종종 허벅지 사이나 사타구니 안쪽에 찬 손을 넣어 녹여야 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다리 사이에 손을 끼고 있는 것만 보면 덴까이 만지지 말라고 손을 찰싹 때리시곤 했다. 내 몸을 만지는 일에 대해 나는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 나쁜 걸까, 만지는 게 나쁜 걸까, 내가 나를 만지는 게 나쁜 걸까, 덴까이는 나쁘고 허벅지는 괜찮은가, 나쁜 몸을 왜 만지고 싶어했을까, 누구에게 원해지는 몸은 안 나쁜 걸까. 늘 고민했던 몸에 대한 대답을 대학교 때 총여학생회에서 접한 페미니즘이 주기 시작했고, ‘아동청소년성폭력전담 해바라기센터’에서의 실습은 내 진로를 산부인과로 이끌었다. 내가 서른이 되던 해 할머니는 서면 철학관에 가서 점을 봤고, ‘너는 덴까이에 복이 있단다, 그러니 어서 결혼을 해서 애기를 낳아야 한다’고 친히 알려주셨다. 내가 수많은 덴까이를 보는 일로 벌어먹고 살 운명인 건지, 좋은 연애를 많이 한다는 운명인 건지, 어쨌든 저 점괘는 썩 마음에 든다.
 

칠십대 환자분이 말기 자궁경부암으로 호스피스를 위해 입원했다. 암 진단을 받은 지는 삼년째, 척수 전이로 인해 하지 마비 상태로 와병 생활을 한지 십개월째고, 이제 적극적인 항암방사선치료를 더 하지 않으려 우리 병원으로 왔다. 역시나 칠십대 쯤으로 보이는 남편이 그동안 계속 간병을 했다고 했다. 보통 여성암 환자는 혼자 오거나 언니나 딸이 같이 오지 남편이 오래 간병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웬걸, 수주일을 옆에서 지켜보니 요령 없이 힘만 써서 할머니 입에는 에구구 하는 소리가 달려 있고, 항상 옆에 있지만 감정 교환은 거의 없었다. 몸을 들어올리는 게 아니라 굴려서 옷을 갈아입히는 요령을 알려주고, 핸드폰에서 유튜브에 접속해서 음악을 재생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압권은 발이었는데, 와병 기간 동안 물수건으로만 목욕을 하다 보니 다리 전체가 각질과 욕창, 림프부종으로 심각한 상태였다. 상처간호사가 욕창 소독은 했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발이나 다리를 만져보거나 주물러 본적은 한번도 없었고, 할머니 역시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편의점에서 로션을 사오라고 해서 매일 회진 갈 때마다 발라주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할아버지가 하세요,라고 ‘처방’내렸고, 수면양말까지 사오라고 해서 신겨드렸더니 집으로 퇴원하실 때쯤엔 눈에 띄게 좋아졌다. 발 상태도, 두분의 관계도. 나는 한껏 고무되어 그다음부터는 ‘로션 처방’을 남발하는 중이다. 한두달에 한번 친할머니한테 가는데 로션과 발 마사지를 하다 보니 옆으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자세 때문에 왼쪽 대전자부에 욕창이 생긴 걸 발견할 수 있었고, 베개 위치를 바꿔주는 것으로 더 심해지는 걸 예방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무지외반증과 하지정맥류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항상 “병원 가~”라고만 말해왔는데, 발을 만지면서부터 엄마의 오랜 뾰족구두 생활과 최근에 기공을 하면서 편한 신발을 사서 신게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최근의 깊은 침체와 무기력의 나락에서 나를 건져 올려준 처방도 하루 한시간반씩 의식을 치르듯이 한 러닝과 샤워와 로션 바르기였다. 어깨나 허리의 뭉친 부위엔 힘을 줘보기도 달래보기도 한다. 거칠어진 뒤꿈치나 하지정맥류로 부은 다리를 만질 땐 내가 엄마의 고단한 삶과 체질을 닮았구나 하고 눈물이 난다. 환자들한테 ‘삼십대인데 유방 자가 검진 안 하세요?’라며 무안을 주던 나였지만 로션을 바르면서부터야 나도 제대로 하고 있다. 이 작업이 나를 살린 또 하나의 지점은, 기억도 일상의 힘 앞에서 희미해지고 덮일 수 있다는 점을 배운 것이다. 내 스스로 몸을 만지고 검진하는 것이 정례화되면서, 손을 때리는 할머니의 따끔함도 무뎌지고 불쾌한 섹스의 경험도 이불킥 몇번으로 사라진다. 내 몸과의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도 재정립한다. 어디를 만지는 게 좋은지 알게 되면 파트너에게 요구할 수도 있고, 이렇게 소중한 내 몸인데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꺼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몸을 관찰하며 건강과 병을 이해하는 법을, 몸을 만지며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을 애면글면 배우고 있다. 나에서 시작해서 타인과의 관계로, 다시 나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기억들과 내면의 어린아이와도 만나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이 완전하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완벽한 답도 없다. 모든 몸은 다 다르고 그 몸들의 역사는 더 다르니까. 아직도 셀룰라이트는 보기 싫을 때가 있고, 모공축소 화장품을 충동구매하기도 하지만, 헬스클럽 PT 선생님한테 힙업 운동은 거부하고 있다. 굴곡을 드러내는 옷과 절 바지 스타일의 옷을 다 좋아하지만 와이어 있는 브라와 사타구니를 조이는 통풍 안 되는 재질의 속옷은 거부한다. 생리주기에 따라 내 몸의 변화가 어떤지를 관찰하고, 어떤 습관이 생리통을 악화시키는지 관찰하며 커피와 술을 줄였지만, 감당할 수 없는 즐거움이나 흔들림이 있을 때는 먹기도 한다. 하나 원칙을 세운 건, 내게 의미 없는 타인을 위해 하지는 않으려는 노력. 예전에는 “너무 어려 보이시는데……” 하는 환자 앞에서 예전엔 전전긍긍하고 화장을 바꿔보고 했다면, 지금은 기다리는 다음 환자를 위해 감사히 가시라고 의뢰서를 써드린다. 불편한 술자리를 불편하다고 말했을 때 잃는 건 불편한 술자리밖에 없는 관계들만 남기려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몸을 사랑하라,라는 정언 명령은 말하기는 쉽지만 선언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셀카 보정 어플과 비싼 PT 수업이나 체형교정기, ‘급’이 다르다고 광고하는 건강보조식품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몸을 알아갈 수 있는, 여러 음식과 운동, 경험들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금욕과 위협 중심의 성교육이 아니라 정체성과 쾌락까지 담고 있는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 모두를 위한 몸 교육이 필요하다. 더 많은 몸에 대한 서사가 필요하다. 몸에 대한 말하기는 말하기만으로도 힘이 있다. 유튜브를 보며 질에 립글로스를 넣었다가 못 빼서 온 11세, 생리혈이 몸에 묻는 게 싫어서 한시간에 한번씩 생리대를 갈다가 화학성분에 의한 접촉성 피부염이 생긴 13세, 체육 시간 후에 친구에게 냄새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박적으로 몸을 씻다가 급기야 질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괜찮은지 봐달라고 오는 17세, 파트너와 같이 치료받아야 하는데 이야기를 못해서 계속 성매개감염 재발로 온 23세, 제왕절개분만 후 윗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발달장애 환자라 무시 받다가 결국 나중에서야 갈비뼈골절을 발견한 39세, 아동성폭력의 경험을 꺼내놓고 상담을 정기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성교통이 호전된 42세, 진료실을 찾는 환자의 대다수는 그들의 몸을 말하는 것으로 해답을 찾아간다. 나는 거들 뿐이다. 몸도 욕망도 성도 통증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모두가 모색도 하고 데이기도 한다고, 나도 그랬다고, 어떻게 더 잘 돌보고 협상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찾아나가자고. 진료실뿐만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미디어에서, 학교에서, 더 많은 공론장에서. ‘질병력’ ‘과거력’ ‘가족력’처럼,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과거와 현재의 요인들에는 ‘역사’와 같은 ‘력(歷)’이라는 글자를 쓴다. 몸이라는 역사책을 쓰고 읽어나가는 작업을 함께 해가며 내 역사책도 다시 쓰이고 있고, 내 역사는 다른 이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힘이 된다. 역시 저 점괘는 더 많은 ‘덴까이’들에게 복을 나누라는 운명인가보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다음주에는 고전문학 연구자 김경미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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