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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5회)

김성중
2019년 12월 03일


데이모스 3


키나는 내부 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해 간신히 서 있는 탐침처럼 휘청이다가 개별 콘솔에 앉았다. 평범한 사물이었던 의자가 여왕의 왕좌처럼 보일만큼 키나는 변화해 있었다. 백금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은 심해 해파리의 느린 유영처럼 가닥가닥 풀어져 얼굴 주위에 후광이 드리운 듯 했다. 키나는 변해가는 눈동자의 색깔처럼 낮고도 높은 목소리로, 느리게 노래하듯 말문을 이어갔다. 
 
“보이고, 또 보이지 않아요…… 가끔 그래요. 미래가 보이면 현재가 사라져버리죠. 현재를 보고 있을 때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며 너머의 미래가 보여요. 두 세계가 겹치면 눈앞이 안개처럼 뿌예져요. 그럴 때 저는 소경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현재와 미래의 중간 지대에 떨어져버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 거죠. 이런 곳에 온 존재는 나 하나일 것 같은 느낌. 춥고 버림받은 느낌이 들어서 울기도 해요…… 지구에서부터, 지구에서부터 그랬어요. 광고와 광고 사이에, 광고보다 더 짧게 지나가는 이상한 영상들이 있는데 그걸 말로 하면 전보다 더 따돌림을 당하게 되어버려요. 제 말이 맞아떨어질수록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니까 입을 다무는 편이 낫죠. 그들만큼이나 저 자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했어요……
 
지구에서는 잘 몰랐는데 화성에 와서는 한층 더 선명해졌어요. 광고가 사라졌으니까, 이젠 딱 두개의 시제만 남은 셈이죠. 현재, 미래. 그리고 중간지대. 솔직히 말하자면 광고만 지나가게는 게 아니에요.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흘러가는 중요한 이미지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미래는 저에게 말해주고 있어요…… 그들은 여기 못 와. 그 잔인한 짐승들, 그들은 이곳을 통과할 수 없어. 여기서 자라나는 무엇인가가 막아줄 거예요. 하지만 무엇이 이곳을 지켜내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생생한 꿈속을 보는 것 같은데, 꿈이 그렇듯 자세히 보려하면 할수록 눈앞의 풍경이 달아나버려요. 미래의 이미지들은 그런 식이에요. 가까이 가면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죠……”
 
-
 
마야와 라이카는 볼 수 있고 나는 볼 수 없던 세계. 키나 역시 그만의 신기루를 품고 있었다. 생명체였던 것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일까. 얇은 금속 판 속에 들어 있는 나의 회로와 칩들은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영역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며 문득 단절 같은 것을 감지했다. 인간이라면 고독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 
 
“……이따금 저는 미래도 현재도 아닌, 오로지 그 중간, 내부의 어떤 막에 갇혀서 오직 빛 속에서, 찬란한 무無 속에서, 그냥 망연히 앉아 있기만 할 때도 있어요…… 저 자신이 소경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지요. 홀린 존재. 그냥 예감을 알처럼 품고만 있는 상태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딛고 있는 땅마저 구덩이 속으로 무너져내리는 듯한…… 그 속에서 영원히 낙하하는 느낌. 자유낙하가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 마치 유령 같이……”
 
“유령이라, 그건 내가 전문이지.” 
 
라이카가 그 말을 받았다. 어느새 잠에서 깬 라이카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냄새가 났어, 전혀 못 맡아본 냄새가. 새로운 식물이 태어날 때 나는 그런 냄새가 실내에서 나서 나도 모르게 깼어. 내 코가 깨어났다고 할 수 있지.” 
 
라이카가 중간에 끼어든 행위를 해명하듯 말하면서 키나를 바라보았다. 
 
“신기한 교차점이군. 유령인 나는 신체를 느끼고, 신체를 가진 너는 유령의 감각을 느끼고. 우리의 존재가 바뀌면 딱 맞는 건데 말이야.” 
 
“그랬다면 이렇게 만날 수 없겠죠.” 
 
“맞아. 여기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만나고 있어. 이곳이 진짜 화성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러면 묻고 싶어. 넌 지금 무당처럼 보이니까. 나의…… 미래가 보여?”
 
키나의 젖빛 수정체가 다시 변한다. 왼쪽과 오른쪽의 동공의 색깔이 다르다. 한쪽은 에메랄드빛으로, 다른 한쪽은 자줏빛으로 바뀌어 있다. 키나의 반투명 순막이 한번, 두번, 세번 내려갔다 올라가더니 신탁의 예언 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변해요. 녹아서…… 완전해져요. 잘 모르겠어요. 표현이 안 돼요.” 
 
“젠장. 나 무슨 천사라도 되는 거야? 이 상태에서 녹으면 뭐가 된다는 걸까.” 
 
“죄송해요.”
 
“죄송할 일은 아니지만─” 
 
느닷없이 마야의 코 고는 소리가 공기를 갈라놓았다. 가르랑, 같기도 하고 드르렁, 같기도 한 숨소리가 진지한 대화를 중단시켰다. 들이킨 공기가 입 밖으로 푸! 하고 뿜어내는 소리. 수면 위로 올라온 고래가 분수공으로 물을 뿜듯 큰 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 셋은 멀뚱히 마주보다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키나가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것을 처음 보았다. 
 
웃음은 감압 장치 같았다. 한바탕 웃고 나자 내부 압력이 줄어들면서 우리 사이의 긴장된 공기가 빠져나갔다. 곯아떨어진 술꾼 같은 마야의 코 고는 소리는 너무나 웃겨서 한참 더 웃었다. 
 
“뭐야, 다들 왜 깨어 있어? 나 빼고 작당모의라도 하는 거야?”
 
소리가 컸는지 마야가 깼다. 머리카락이 까치집처럼 헝클어진 마야가 상반신만 일으켜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자.”
 
“그래 그래. 내일 얘기하자.”
 
“키나도 어서 돌아가.”
 
라이카는 실실 웃으며 담요를 입으로 잡아 끌었다. 마야는 뭐라 뭐라 구시렁거리더니 털썩 누웠다. 나는 키나의 모포를 덮어주고 수건으로 눈을 가려주었다. 입꼬리에 웃음이 남아 있는 키나의 눈은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부드러운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두가 다시 잠자리에 들자 나는 무기를 원래의 자리에 집어넣고 잠금장치를 작동했다. 핵무기와 키나의 예언, 어느 것이 더 믿을 만할까? 눈동자 색깔이 바뀐다고 해서 키나의 영험함을 보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못 와요’라는 단호한 말은 위안을 주었다. 근거 없는 희망은 오컴의 면도날처럼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행이야’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말이 핵무기보다 위력적일지도 모르지. 로봇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안도감’이라는 감정이 이런 형태일 거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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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이 밀려든다. 왼쪽에서 미세하게 웅웅거리는 이명 소리. 당연히 나에게는 통증이 없다. 그러나 이명이 시작되면 구식 기계가 희미하게 자기 안의 냉각팬이 돌아가는 것을 감지하는 것처럼 몹시도 거슬린다. 이명은 금속 물체들이 부딪쳤다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러다 갉작갉작 긁어대는 소리로 바뀌거나 비탈진 표면을 굴러가는 소리로도 변한다.
 
이명이 시작됐을 때 나는 가만히 그 소리에 몰두했다. 라이카는 대화 도중 갑자기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편두통.”
 
“말도 안 돼. 로봇이 무슨 두통이 있다고……”
 
나는 이 현상에 즉흥적으로 달아준 별명이 마음에 들어 웃음소리를 출력했다. 라이카에게 편두통이 있다는 농담을 던진 것은 즐거웠기 때문이다.
 
막상 이름을 그렇게 짓자 이명은 통증처럼 골칫거리로 변했다. 내부에서 울리는 소리지만 누군가 나에게 교신을 청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암호패턴을 동원해 분석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고 횟수 또한 줄지 않았다. 지금은 버그가 아닌 골칫거리로 간주하고 있다. 
 
오후에는 마야의 잠수훈련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물속에서 숨 쉬는 방법을 연습해온 것치고 별다른 진전이 없다. 귀 뒤의 아가미, 그것으로 숨 쉬는 법을 터득한다면 훨씬 안심이 될 텐데. 기록을 잰 후 한숨을 쉬듯 한심하다는 동작언어를 했지만 마야는 개의치 않았다. 융단처럼 깔려 있는 이끼를 밟고 선 마야는 옷을 입자마자 무언가 내게 준다.
 
“좋은 걸 발견했어. 그 전에 선물.”
 
코랄빛 연산호. 그러고 보니 라이카와 나는 마야에게 무수히 많은 선물을 받았다. 어릴 때는 비뚤비뚤 그린 그림이나 처음 배운 글씨로 쓴 편지. 자라서는 수집물이나 채집물. 마야는 선물 주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오아시스 바닥에 물이 솟는 곳이 있어. 난 그냥 구멍이 뚫린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물이 퐁퐁 나오더라고. 그것도 더운 물이.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나는 치솟는 물줄기의 이미지를 검색했다. 
 
“간헐천.”
 
“맞아. 배우기는 했는데 까먹었어. 꼭 샘처럼 생겼는데 물이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해.”
 
근처에는 화산이 없는데, 우리의 작은 우물 안에 간헐천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소식이었다. 간헐천의 크기는 어른 두명이 들어갈 만하고 기포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다가 갑자기 물과 조개껍데기들을 쏟아낸다고 했다. 나는 화성의 지질학적 특성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가,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당분간 수영과 잠수는 금지라고 말했다. 잠수훈련을 싫어하는 마야는 환호성을 질렀다. 
 
마야가 키나에게 달려간 후에도 나는 호숫가에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났고, 태어나는 도중인 이곳. 마야보다 앞서 태어난 것은 ‘우물’이라 불렀던 작은 샘뿐이다. 우물은 깊고 넓어져 호수가 되었고 가장자리에는 작은 파도마저 찰싹거리고 있다. 물이 태어나자 바람이 태어났고, 마야가 찾아낸 화석에서 더 많은 생물들이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생명들은 순수하고 진실했다. 순수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무언가’의 의도이다. ‘무언가’를 신이라고 부르든 우주의 질서라고 부르든 파악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의도로 우리에게 자꾸 ‘선물’을 주는 거지? 
 
또다시 편두통이 밀려온다. 그날 밤 나는 간헐천의 발견과 석연찮음에 대해 라이카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한테 공짜 분수가 생겼다는 거야? 애들이 좋아하겠네.”
 
나와는 달리 라이카는 새 소식을 가볍게 받아들였다. 
 
“뭔가 좀 찜찜해. 말할 수 없이 인위적인 느낌이 들거든. 그러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실험을 당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우리가 태고수프를 젓고 있듯이 누군가가 우리를 젓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에게서 뭐가 나오는지 보려고 말이야.”
 
“그게 무슨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과테말라 안티구아 먹는 소리야?”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가 안티구아야. 마시는 거 말고 향 말이야. 난 유령 개니까 후각만으로도 커피를 폼 나게 즐길 수 있거든. 코스타리카 타라주도 좋아하긴 하지만……”
 
“딴 소리 그만하고, 간헐천이 있다는 것은 화산의 존재와 땅 속 어딘가에서 지질작용이 벌어지고 있다는 반증이잖아. 예사롭지 않은 일이지.”
 
“어차피 운명이 가려는 방향으로 가겠지. 저 위의 뜻이 뭔지 모르겠지만.”
 
라이카는 코를 위로 치켜들며 위를 바라보았다. ‘저 위’라니, 마치 하느님이라도 믿는 사람처럼 말하는군. 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나는 신을 믿진 않지만 무신론자는 아니야. 이따금 기도도 한다니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우리 데이모스가 튼튼하고 고장 안 나게 해주세요. 제 벼룩들이 더이상 늘지 않게 해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말이야.”
 
“신도 믿지 않으면서 기도를 하다니 이상하잖아. 넌 지금 ‘사후’에 와 있는 셈인데 앞뒤가 맞지도 않고 말이야. 무신론자의 기도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우주로.”

라이카는 펼쳐진 대기를 향해 윙크를 했다. 우유의 강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가졌다는 게 중요하지 기도가 이뤄지고 이뤄지지 않고는 상관없다고 라이카는 말했다. 저럴 때는 영락없이 철학자나 신학자 같다. 
 
“그럼 내 두통 좀 없애달라고 기도해줘.”

우리는 나란히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김성중
소설가. 지은 책으로 『개그맨』 『국경시장』 『이슬라』 등이 있다. 



6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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