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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지는 몸

강진영
2019년 12월 12일
  



 

아홉번째 여성, 강진영 시인

쪼개지는 몸 


 

여성은 몸을 여러개로 쪼개놓는다. 
쪼개어진 여성은 파편들을 모으지 않는다. 
쪼개어진 하나들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일기장에서 적어둔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몸은 불안한 장소였으며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몸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여성으로 자라면서 점차 몸을 잃어갔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몸에 따라 매겨지는 세계에 살며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몸에 대해 혐오의 감정을 품어보지 않은 여성이 있을까? 세계와 불화하면서도 불화의 원인을 알지 못했고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공격은 내부를 향해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몸을 긍정하게 된 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몸에 대한 타자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던 계기는? 쾌락을 느끼는 일이 죄의식으로 뒤덮이지 않게 된 것은? 몸으로 충만한 에너지를 느꼈던 적은?

그것은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억압이 무엇이었는지 응시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불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면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된다. 쪼개어진 나의 몸 하나하나가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여전히 쪼개어진 채로 있는 것은 너무 어린 나이에 자신을 쪼개기 시작한 여자아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세계를 똑같이 살아가며 더 잘게 쪼개어져갈 아이들을 보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분리되는 몸


초등학생 1학년 아이들은 음악만 틀어놓으면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든다. 중간놀이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실은 텅 빈다. 여학생 남학생 구분 없이 모두 몸을 쓰러 밖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반 학생들이 좋아하는 수업은 운동장 놀이(즐거운생활) 시간이다.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몸을 쓰는 활동을 좋아한다.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몸과 하나다. 본격적인 운동의 기술을 익히며 운동장을 점유하기 시작하는 4학년이 되면 운동장에는 남학생들만이 보인다. 여학생들이 몸을 사용하는 활동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여학생들은 운동장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자농구부에 들어갔다. 농구장을 남학생들이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농구선수가 되자 여학생인 나도 농구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농구의 기술을 연습하거나 대회준비로 남학생들과 시합을 하면서 농구장을 실컷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사가 되어서 돌아온 학교 농구장은 여전히 남학생들의 차지였다. 분명 쉬는 시간에 농구를 하고 싶은 여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농구장에 여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농구의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4학년 체육시간에 농구의 규칙과 기본기술을 가르쳤다. 드리블, 패스, 슛을 매 시간마다 하나씩 가르쳐 기본기술을 익히게 했다. 농구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 여학생들도 열성적으로 경기를 했다. 여학생들은 농구가 재밌다고 얘기하며 레이업 슛까지 가르쳐달라고 했다. 쉬는 시간에 농구장으로 나가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변화가 기뻤다. 

그럼에도 여학생들은 점점 농구장과 멀어지게 된다. 슛을 가르치며 또다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여러 위치를 정해주고 슛을 연습시킬 때 여학생 중 대부분은 골대를 맞추지 못한다. 5, 6학년 학생도 마찬가지다. 자유투의 위치에서는 가능하게 되겠지만 3점슛의 위치에서는 골대를 맞추는 것도 어렵다. 내가 농구부였을 때도 이와 같은 곤란을 겪었다. 특히 내 포지션을 포인트가드로 지정해주는 바람에 어떻게든 3점슛을 성공해야 했다. 나는 선수였기에 남아서 수없이 연습했다. 그때는 내가 근력이 없는 것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나와 같이 슛을 성공시킬 수 없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문제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구 골대는 남학생 힘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학생이 즐길 수 있는 높이의 골대는 학교에 설치된 적이 없다. (선수가 아닌) 일반 여학생들이 슛을 던졌는데 골대에도 맞지 않는다면 농구에 대해 계속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못하는 것을 즐길 수는 없다. 그대로 빼앗기는 것이고 되찾기는 힘들다. 골대를 주었는데도(기회의 평등) 사용하지 않더라는 것은 여학생들이 농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농구를 좋아하지 않도록 만들어왔던 것이다.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다고 해도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 될 수 없다. 농구 골대의 기준을 남학생에게만 맞춰서는 안 된다. 지금 그대로의 농구장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여학생에게 남학생과 같아지라고 요구하는 평등이다. 여학생에게 맞는 농구 골대를 설치하는 것이 차이에 대한 평등이다.

여학생들이 농구장(더 넓게 운동장)에서 멀어지게 되는 데에는 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여성이 몸을 활발히 쓰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얌전한 몸가짐에 대한 교육은 몸에 대한 억압을 어릴 때부터 내면화하도록 한다. 여성의 몸은 잘 간직했다가 남성에게 넘겨줘야 하는 상품이다. 여학생들은 ‘왕을 위해 무언가를 해낸 남성에게 제공되는 상이 어여쁘고 얌전한 공주(여성)’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자란다! 그렇게 여학생들은 점차 몸을 사용하는 활동에서(그것을 좋아하는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에 맞춰 스스로를 억압하며) 멀어지게 된다. 몸과 하나였던 여학생들은 몸과 분리된다.

 


축소되는 몸


2학년 H는 내가 물을 많이 마시면 “선생님은 새싹인가봐요”라고 말하며 아이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던 아이였다. 연극 발표회에 나갔을 때 다른 팀에 비해 우리 팀의 복장이 초라해 보여 내가 미안해하자 “우리는 연극 즐겁게 했어요”라며 해맑은 웃음을 가르쳐 준 아이였다. H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스스로 행복을 즐길 줄 알았다. H가 5학년이 되기까지 나도 H와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H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었을 때 H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방학 동안 얼마나 다이어트를 했는지 빼빼 마른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활기찬 성격도 차분해졌다. H가 보여주었던 웃음은 볼 수 없었고 고민과 고통이 가득한 얼굴을 보았다. 그 사이에 H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무엇이 이 아이를 이토록 작아지게 만든 것일까. 

여성의 몸은 축소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져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과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 반면 남자의 경우 작은 것은 근심거리가 된다. 1학년 남학생 Y는 또래에 비해 유독 작은 학생이다. 어느 날 Y는 분노조절에 실패하여 불을 뿜어내는 용으로 돌변하였다. 부모와 상담한 결과 부모가 갖고 있는 불안감(아들이 작은 것에 대한)이 Y의 내면에 강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고정된 성을 강요하는 것은 여학생 남학생 모두에게 억압으로 작용한다. 몸에 대한 억압이 분노로 표출되는 것을 여러번 보아왔다. 

여학생 S는 짧은 머리를 좋아했고 남자친구들과 더 잘 어울려 놀던 학생이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면 “선생님, 그것은 평등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라고 지적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 그런 S도 고학년이 되면서 머리를 여성답게 기르도록 강요받았고 결국 긴 생머리를 하게 되었다. 이분법적인 테두리 안에 정해놓은 성역할을 습득하도록 끊임없이 강요받는 학생들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미디어는 몸에 대한 억압을 초등학생들에게로 빠르게 전파시켰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여성아이돌,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 유튜브에서는 끊임없이 축소된 여성 몸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학생들은 너무나 무방비한 상태에서 이를 학습한다. 논란이 된 베스킨라빈스 광고는 이 사회가 여학생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취급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초등 여학생들은 너무 일찍 성인 남성들의 시선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고(상대를 평가하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도록 교육받는다.

고학년 여학생들은 자신의 얼굴을 감춘다. 자신감이 없어지며 민감해진다. 남학생의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만난 여학생들이 학예회 공연을 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얼굴이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보여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었다. 어떤 반에서는 그 이유로 학예회 공연을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과 회의한 끝에 카드섹션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다. 카드가 얼굴을 다 가리기 때문에 얼굴을 보일 일이 없는 것이다. 함께 사진을 찍을 때도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유독 여학생들에게서 관찰된다.

현재 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화장품 사용이다. 학교는 화장품 사용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 수 없지만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도록 지도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난은 여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성인 남성의 눈이 만들어낸 미의 기준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대중문화와 용모단정한 학생다움을 강요하는 학교, 여학생들은 이중잣대 사이에서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화장품을 사용하여 예뻐지려는 여학생들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보여지는 것으로 취급하는 미디어와 이를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여학생들에게 자신의 몸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페미니즘 교육이 부재하는 교육현실이다.



쪼개지는 몸


여교사로서 나의 몸 또한 억압의 대상이 된다. 풀어진 맨 위 셔츠 단추를 채워주던 사람도 여교사였고 다리를 덮으라며 치마 위에 손수건을 얹어주던 사람도 여교사였다는 사실이 화가 나기도 했고, 그들 역시 수없이 쪼개어진 몸 중 하나였을 거라는 사실이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했다. 우리는 축소되고 분리되고 여러개로 쪼개져버렸지만 파편들이 힘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파편들은 다시 증식하여 유연하고 다채로운 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서핑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간다. 서핑은 전신 근력과 근지구력을 요구한다. 서핑은 근육을 쓰고 난 후의 충만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서핑은 보여지는 몸이 아니라 느끼는 몸을 돌려준다. 학생들에게 서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들과 체육수업을 한다. 여자 남자로 나누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실컷 사용하며 몸으로 전해지는 충만함을 느끼라고 한다. 외모평가를 하지 않도록 한다. 차이를 존중하라고 한다. 좋아하는 색으로 탈색을 한다. 설득되지 않는 억압에 대항한다. 화장을 하기 싫은 날에는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쌩얼이라고 물으면 쌩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들에게 여자 남자가 아닌 나다움을 보여주는 그림책을 읽어준다. ‘여자가’ ‘남자가’로 시작되는 오염된 언어를 함께 고쳐본다. 페미니즘 시를 쓴다. 쪼개어진 ‘나’들이 할 일이 참 많다……


 



강진영

시인. 2018년 『시인동네』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에세이를 쓰고 서핑을 한다. 
 



다음으로는 고전문학 연구자 김경미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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