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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주인공이 되는 인물들

김경미
2019년 12월 13일
 



 

열번째 여성, 고전문학 연구자 김경미 교수

죽어야 주인공이 되는 인물들


 

고전소설의 여성인물들은 유난히 수난을 많이 겪는다. 영웅소설의 영웅들, 남성인물들도 어려서부터 고아가 되고 고난을 많이 겪지만 여성인물들만 할까. 그래서 초창기 연구자들은 아예 여성수난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쟁고아가 되어 이곳저곳 전전하다 화재를 만나 발가벗겨지는 등 갖은 고생을 겪는 숙향이나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아예 자신의 몸을 팔아버리는 심청이나 사랑을 열행으로 실천하고서야 사랑을 인정받는 춘향이나 남편과 시어머니의 구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시집을 나간 뒤에는 개가하라는 압박을 견디다 못해 결국은 물에 빠져 죽은 향랑. 고전소설의 플롯은 이들의 수난을 보상하는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만 아예 죽어서야 존재를 드러내는 여성인물들, 죽어야 주인공이 되는 인물들도 있다. 바로 열녀전의 여성들이다.


열녀 이야기를 하자면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빼놓을 수 없다. 『삼강행실도』세종 당시 민간의 풍속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중국과 조선의 충신, 효자, 열녀 각 110편씩 모두 330편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싣고 있다. 충의 실천은 남녀 구분이 없지만 충신은 대개 남성이고, 효행 역시 남녀 구분이 없으나 대부분 효녀보다는 효자가 많이 실려 있지만 열행을 행한 사람들은 다 여자들이다. 조선 여성의 교과서로 정절의식을 널리 보급한 이 책에는 개가를 거부하여 스스로 코를 베거나 귀를 잘라낸 여성들, 왜적의 위협에 저항하며 죽거나 몸의 일부가 잘린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열녀는 『삼강행실도』 같은 교과서에만 실려 있는 존재였을까? 아니 조선시대 내내 열녀가 나왔고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더 많이 나왔다. 조선의 남성 문인들은 전란에서 정절을 지키다 죽은 열녀들, 남편을 따라 죽은 열녀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지금까지 열녀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열녀전에서 여성의 몸은 잘리고 베어져 훼손되거나 섹슈얼리티가 소거된다. 병든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태워서 바르고 손가락을 잘라 남편의 입에 피를 흘려 넣고 넓적다리 살을 베어 구워서 먹인다. 그뒤 남편은 병이 낫거나 며칠을 연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엽기적인 일들은 열행으로 칭송된다. 당시 이것을 기록한 남성 문인들은 실제로 열녀의 이런 행동들이 남편의 병이 낫게 하거나 명을 늘인다고 믿었던 것일까? 믿지 않았다면 이들은 왜 이처럼 칭송하며 기록했을까? 


남편이 죽은 뒤 따라 죽으려고 자신의 목을 세번이나 찌르고도 죽지 못해 피투성이로 친정어머니에게 발견된 스물한살의 여성, 칼로 정강이부터 무릎까지 찢고 피를 낸 여성.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일까지 기록한 열녀전에 빠진 것이 있다. 몸을 훼손한 당사자들의 고통에 대한 기록이다. 상처가 빨리 나았다는 기록을 덧붙이기도 한다. 열녀전만이 아니라 충신, 효자, 협객들을 기록한 이야기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런 장면들을 이데올로기가 신체의 고통을 압도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관습적 표현이었다고 넘길 수 있을까? 어쩌면 기록자들은 아예 그녀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열녀전은 이 여성들이 단호하게 조용히 자발적으로 망설임 없이 이런 일들을 수행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들의 몸은 정말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니면 침묵당한 것일까? 혹시 침묵을 깬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강도몽유록』이라는 작자 미상의 작품은 이 침묵을 깨는 목소리를, 고통스러운 몸을 보여준다. 몽유록은 ‘꿈속에서 노닌 기록’이라는 뜻을 가진, 고전서사의 대표적인 양식 중의 하나다.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고 작가도, 등장인물도 대부분 남성인 몽유록은 꿈속에 사람들을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아니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목격하고 돌아오다 꿈을 깨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강도몽유록』의 등장인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인 청허선사를 제외한 14명이 모두 여성이다. 그런데 청허선사가 꿈에서 만난 이 여성들은 그 모습도 말도 심상치 않다. 어느 날 청허선사가 꿈에서 지팡이를 짚고 달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려온다. 가서 보니 한곳에 여자들이 모여 있는데 모두가 서글픈 얼굴을 하고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하는 듯했다. 무슨 일인가 하여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연약한 머리가 밧줄에 묶이거나 칼날에 붙어 있고, 으스러진 뼈에서 피가 흐르고, 머리가 다 부서지거나 입과 배에 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둘러앉아 있는 여자들은 당시 영의정 김류, 강화도 수비를 맡았던 김경징, 정백창, 정선흥, 윤방, 장신 등 당시의 이름난 집안의 부인들을 비롯해 이름을 알 수 없는 선비의 아내, 기녀로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소위 정절을 지키다 죽은 열녀들로 그 죽음도 갖가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아들의 종용으로 자결한 여자, 강화도로 간신히 피난했으나 결국 오랑캐 칼에 죽은 여자, 마니산에 숨었다가 적의 칼날이 다가오자 절벽 아래 몸을 던진 여자,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은 여자. 이들은 모두 몸이 훼손되고 뼈가 부서져 온몸에 피를 흘린 채로, 입에 물을 머금은 채로 등장해서 각각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절의를 지켜 죽은 것을 받아들이지만 강화도를 수비하는 직책에 있었으나 지키지 못한 남편, 적에게 절하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한 남편, 강화도 유수로 강화도를 굳게 지켰어야 했으나 낮잠이나 자고 술에 취해 있었던 시아버지의 무능을 고발하고 적의 칼날이 닥치기도 전에 어머니에게 스스로 자결을 요구한 아들, 자신은 위험한 사지로 보내고 자기 아내만 구한 아들을 비판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래서 아들의 종용으로 자결한 부인은 자결한 것보다는 아들 때문에 스스로 자결하지 못하고 남이 권해서 이룬 정절로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 것을 염려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실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수비를 맡았던 김경징의 아들 김진표가 아내를 다그쳐 스스로 죽게 하고 그 할머니와 어머니에게도 적병이 가까이 왔으니 죽지 않으면 욕을 볼 것이라고 자결을 종용했으며 두 부인이 자결한 뒤 그 자리에 있던 부인들도 다 죽었는데 정작 자신은 죽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선흥의 아내 권씨에 대한 기록도 실려 있다. 권씨는 청나라 병사들이 닥치자 아버지와 절친했던 회은군 이덕인에게 가서 살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회은군은 그녀를 방관하고 남편 정선흥은 눈을 부라리며 “빨리 죽는 것이 옳다”며 죽음을 종용한다. 권씨가 칼을 들고 들어가니 회은군이 정선흥에게 가서 보라고 하는데 가보니 죽어 있었다고 한다. 


앞을 다투며 부인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기녀가 일어나 부인들의 높은 절의와 아름다운 지조는 하늘이 감동하고 사람이 탄복할 것이라고 하며, 충성스러운 신하도 의로운 신하도 없는데 부인들은 영예로운 죽음을 택했으니 무슨 슬픔이 있겠느냐고 칭송한다. 그런데 이 말에 좌중의 여자들이 일시에 울음을 터뜨린다. 서술자는 그 소리가 너무 참담해서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고 쓰고 있다. 절의를 칭송하는데 이 여자들은 왜 울음을 터뜨렸을까? 절의라는 말로 보상될 수 없는 고통과 원망의 소리 아니었을까? 『강도몽유록』은 여성들의 입을 빌어 당시의 정치적인 무능과 여성들에게는 가혹하게 절의를 요구하고 정작 자신들은 지키지 않은 지배사회의 이중성을 비판하면서 여성들이 당한 고통을 몸으로 보여주지만 정절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다. 


그러나 열녀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뒤 유학자들은 다시 오랑캐들의 침입에 대비했다. 개화기를 대표하는 유학자 전우는 집안의 부녀들에게 편지를 보내 위급한 순간이 오면 급히 도모해야지 조금이라도 늦추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다고 경고하며, 옛날 정녀들은 난리를 당하면 죽음을 결심하고 자신들의 옷을 단단히 꿰맸는데, 철저히 몸을 방어하고 아니면 죽으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진작에 단도를 차게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중국 금화(金華)의 대씨를 보니 날카로운 가위도 쓸 만한 것 같다고 한다. 대씨는 난리를 당해 온 가족이 잡히자 날카로운 가위로 목을 찔러 죽은 여성이다. 적들은 그녀의 죽음을 의롭게 여겨 남편과 아들을 놓아주었다. 외적이 쳐들어와서 욕보이려 하면 바로 죽어라! 이것이 전우가 집안 부녀에게 하는 말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할까? 전우는 ‘너희가 욕을 당하면 나는 죽으나 사나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집안의 여자가 욕을 당하면 집안이 욕을 당한 것이요, 나아가 나라가 욕을 당한 것이니 얼굴을 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몸에 집안과 국가를 올려놓고 여자의 몸에 대한 통제를 여자의 죽음을 합리화하는, 적국의 여자를 강간하면서 적국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오랜 남성 지배는 여성의 몸, 성에 대한 통제를 통해서 가능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열녀전에 나타난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이다. 열녀전에서 여성의 몸은 남편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쓰이는 도구이기도 하고, 남편이 죽으면 따라죽어야 하는 몸이기도 하고, 고통조차 잊은 몸이기도 하고, 남편을 먼저 보내고 따라죽지 못해 부끄러운 몸이기도 하고, 남은 아들이나 시집 식구를 봉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는 몸이기도 하고, 섹슈얼리티가 드러나지 않게 단속하는 몸이다. 열녀전은 여성 스스로 이를 수행하는 것처럼 그린다. 열녀는 집안의 영예일 뿐 아니라 실제로 경제적 혜택도 받게 해주었다. 


지금도 여전한 가부장체제는 여성의 몸에 대한 공격을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이토록 강고한 통제를 빠져나갈 틈이 없었을 것 같지만 여성들 스스로가 그 틈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스스로 따라죽기를 거부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몸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서사를 남겼다. 열녀가 남긴 유서, 남편이 죽은 뒤 따라죽으려고 마음먹었다가 주위의 만류로 살아남은 여성의 기록, 죽기 전에 부른 가사, 여성이 이야기하는 열녀 설화는 열녀전이 소거시킨 두려움, 고통, 슬픔, 욕망을 이야기한다. 그때 여자의 몸은 기존의 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장치이기를 멈추고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김경미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부교수.
 



다음으로는 스쿨오브무브먼트 최하란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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