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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심사기

문보영
2020년 01월 08일
 



노벨문학상 심사기

 
 
20**년도 노벨문학상 심사는 61년 하고 8개월 4일이 걸렸다
 
 
1년의 비밀
 
심사위원은 공정한 평가와 비밀유지를 위해 작은 벙커에서 합숙을 했다
 
주어진 모든 작품을 읽은 심사자들은 심사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했고
심사기간 연장을 요청하였다
 
얼마나 오래 걸리든
기다려줄 것을 
 
후보작 중 「가녀린 계단」은
개와 함께 산책을 하던 사람이 
자신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바로 자살의 뜻인데
이것을 출발점 삼아 다른 곳으로 가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15년의 비밀
 
그들은 더 기다렸다
3년 
8년
15년
 
기다리자
 
변한 것은 없었고 그사이
벙커에서 눈이 맞은 두 심사자가 아기를 낳았으며 그 아이의 이름은 
 
 
은 노벨문학상 심사자들의 손에 길러졌고
잘 먹고 잘 잤다
 
 
22년의 비밀
 
그들은 기다렸고 기다리는
그들을 
세상은 기다렸다
 
22년,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볼리비아 작가 산체스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목을 매 자살
 
작가의 자살이 심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만
호수에서 어떻게 목을 매 죽었을까
호수에는 천장이 없잖아
올해 7살이 된 이 의견을 제시
그런데 얘야, 너는 그걸 어떻게 아니
너는 호수에 가본 적이 없잖아
 
그런 대화가 오갔다
 
 
40년의 비밀
 
심사자 중 하나는 40년간 매일 밤, 벙커의 뚜껑을 열고 나가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남편과 아들이 보고 싶어질 날을 기다렸다
기다리자 
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 것이 많아 그녀는 매일 밤 소설을 썼다 그리고 어느 날
대작이 되었다
 
그러나 심사기간 중에 쓰인 작품을, 게다가 심사위원이 쓴 작품을 후보작에 올리는 건
옳지 않다는 의견에 심사자 전원이 동의했으므로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나이가 들어 자연사한 심사자도 생겼고
 
죽어서 벙커에서 실려 나온 심사자의 가족은 입을 막는다
 
“영 딴 사람 같아요”
 
영 다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심사의 묘미이기도 했기 때문에
 
세상은 떠들었고 항의했고 애원했다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심사위원들은 확고했다
 
기다려달라
얼마나 오래 걸리든
우리를
 
 
56년의 비밀
 
은 이제 사십대가 되었으며 심사자가 갖춰야 할 모든 자격을 갖추었다
사실 심사자들은 심사가 시작된 7일, 그러니까 56년 전 별이 많은 어느 날 당선자를 선정했다 
작가는 하메스 로드리고
 
56년간 그들은 단 한번도 자신들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번복
하지 않는 그들 자신을 
그들은 기다렸다
 
기다렸다
로드리고가 당선자가 될 때까지
 
 
61년의 비밀
 
20**년 7월 24일
총 8명의 심사위원 세상으로 나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다
심사 결과를 보석처럼 세상에 꺼내놓는 그들의 모습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다
평생을 심사에 바친 
심사 예술가들의 모습
 
61년은 후보자 중 하나였던 샤오핑이 눈을 감은 해였다
그는 후보자 중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작가였다
후보로 오른 
작가들이 모두 모두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이 심사의 꿈이었다 

 


문보영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책기둥』 『배틀그라운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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