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0

불타는 드라이브

허연
2020년 01월 11일
 



불타는 드라이브



빼다 박은 아이 따위 꿈꾸지 않기. 소식에 놀라지 않기. 어쨌든 거룩해지지 않기. 상대의 문장 속에서 죽지 않기.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연습을 하자. 언제 커피 한잔하자는 말처럼 쉽고 편하게, 그리고 불타오르지 않기.
 
혹 시간이 맞거든 대체휴가를 내고 
시골 성당에 가서 커다란 나무 밑에 앉는 거야. 촛불도 켜고
 
명란 파스타를 먹고 헤어지는 거지. 그날 이후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돌진하는 건 재미없는 게임이야. 잘 생각해. 너는 중독되면 안 돼.
 
중독되면 
누가 더 오래 살까? 이런 거 걱정해야 하잖아. 
뻔해, 
우리보다 융자받은 집이 더 오래 남을 텐데.
 
가끔 기도는 할게. 그대의 슬픈 내력이 그대를 엄습하지 않기를, 나보다 그대가 덜 불운하기를, 그대 기록 속에 내가 없기를.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덜컹하지 않기.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으니까. 또 생길 거니까.
 
너무 많은 길을 가리키고 서 있는 표지판과 
너무 많은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새들과 
너무 많은 바다로 가는 배들과 
너무 많은 돌멩이들.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

 



허연
1991년 『현대시세계』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가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