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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펄린

허연
2020년 01월 11일



트램펄린


 
그런 것들이다 내가 아쉬운 건
트램펄린 밖으로 떨어진 소년 같은 거
최선을 다해서 태연하고 최선을 다해서 일어서는 소년 
그런 것들이다
 
언제나 
어른들은 타협하고 소년들은 트램펄린에서 떨어지고 
 
그런 것들이다 내가 아쉬운 건 
 
하지만
트램펄린에 오를 때 
이미 준비된 실패였고 
예정된 마지막 장면을 후회하지 않았고 
 
트램펄린에 오를 때 
나 역시 이미 처지가 정해져 있었고
그걸 누구에게 말하지는 못했고 
 
그냥 트램펄린이란 트램펄린은 모두 불태워졌으면 좋겠다
 
자꾸 오르게 되니까 
또 최선을 다해 떨어질 테니까
떨어질 처지라는 걸 아니까 
 
트램펄린에 날 던지면서 말한다 
“말해줘. 가능하다면 내가 세상을 고르고 싶어.”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리라 믿었지만 
트램펄린은 그냥
나를 떨어뜨리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물론 
떨어지는 몇초가 달콤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트램펄린이란 트램펄린은 세상에서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허연
1991년 『현대시세계』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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