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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돌은 걷는다

장혜령
2020년 01월 11일


검은 돌은 걷는다



한번은 이런 시를 읽었다. 검은 돌에 관한 시였는데 첫 행과 마지막 행은 이러했다. “검은 돌은 검은 돌. 검은 돌은 걷는다.”
 
검은 돌은 검은 돌이고, 검은 돌은 검은 돌일 뿐인데, 어떻게 검은 돌은 걸을 수 있을까. 검은 돌이 진정 스스로 걷는다면, 검은 돌은 자신을 떠나야만 할 텐데, 검은 돌이 자신을 떠나서도 검은 돌일 수 있을까. 생각 속에서 나는 정처 없이 걷다가, 작고 가벼운 검은 돌 하나를 주워 집으로 왔다. 
 
나는 검은 돌 옆에 앉아보았다. 검은 돌은 검은 돌인 것 같았다. 검은 돌은 그러나 걷지 않았다. 나는 돌을 굴려보았다. 검은 돌은 구르고 또 굴렀지만 걷지 않았다. 나는 붉은 실을 가져와 검은 돌에 묶었고, 붉은 실을 끌고 다니며 검은 돌과 함께 집 안을 이리저리 산보했다. 그러나 검은 돌은 여전히 걷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검은 돌을 책상에 올려두었고, 그 옆에서 졸다가 깨다가 했다. 가을밤이었다. 창밖에서 귀뚜라미가 울었고 무언가 사각사각 나뭇잎을 밟고 지나갔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깊은 밤, 숲에서 소리가 난다.” 나는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소리는 방 안에서 나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했다. “깊은 밤, 숲에서 소리가 난다. 소리가 몸을 끌고 온대도 이상할 것 없는 밤이다.” 
 
그때 나는 검은 돌이 우는 것을 보았다. 검은 돌은 울고 있었다. 눈물 하나 흘리지 않는대도 우는 것일 수 있구나. 엎드려 울고 있는 뒷모습이구나. 나는 검은 돌을 쓰다듬으며 검은 돌의 마음을 위로하려 했다. 검은 돌 곁에서 검은 돌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 그러자 검은 돌의 목소리를 조금은 알아들을 것 같았다. 
 
검은 돌은 숲속에서 왔다고 했다. 숲의 안개는 한겹 베일처럼 늘 숲을 감싸고 있었다고 했다. 어느 날 칼을 든 남자들이 찾아와 몰래 안개를 베어갔다. 그날, 거센 비바람이 불었고 안개를 빼앗긴 숲은 짐승처럼 길게 울었다. 검은 돌은 빗속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검은 돌은 고요가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비에게서 배웠다. 비는 부딪히면서 빛났고 부서지면서 끝없이 말하고 있었다. 비는 냇물이 되어 흘렀고, 흐르는 냇물은 거침이 없었고, 막힘이 없었으며, 자면서도 흘렀고, 흐르면서도 꿈꾸고 있었다. 
 
오랜 세월 검은 돌은 물속에 잠겨 물고기들과 눈 마주치며 지냈고, 물 위로 어른거리는 바깥세상을 언제까지고 올려다보았다고 했다. 물속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 나왔는지 나는 검은 돌에게 물으려 했는데, 검은 돌은 그 오랜 기억 속으로 다시 잠겨들고 있었으므로, 숲과 어둠과 안개와 바람과 물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돌은 다만 엎드린 뒷모습으로 다시 잠들고 있었으므로. 
 
검은 돌은 검은 돌. 검은 돌은 다만 검은 돌이었고, 검은 돌은 아주 작고 가벼운 검은 돌일 뿐이었지만, 검은 돌은 걸어가고자 했고, 걸어가고자 하는 하나의 정신이었으므로, 걸어가고자 하는 것만이 그의 정신이며 또 마음이었으므로, 걸어가고자 하는 돌은 영원히 걸어가고 있었다.


 



장혜령
2017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사랑의 잔상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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