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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이문경
2020년 01월 12일


하지


 
상처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은 밤을 향해 걷는다
 
눈이 부실 때마다 주머니 속 사탕처럼
뭉개진 슬픔을 꺼내 먹으며
 
어떤 연인은 그늘 안에서도 안대를 쓴다
 
입술을 맞대고 서로의 숨을 훔쳐 마시거나
아무리 비벼도 돌아오지 않는 온기를 그리워하다 선잠에 들고
 
찬란한 햇빛 아래
 
귀여운 표정으로 애인을 울리는 그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른발에 뼛조각 하나가 더 있어
소리 내지 않고는 발 딛는 법을 모른다지
 
여름, 죽는 것보다 평생을 자는 게 낫다고 여기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기로 한다
 
목소리를 잃어버릴 것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릴 것
어제를 앓다가 내일을 통째로 지워버릴 것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자주 넘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뒤에 올 이를 위해 울음을 피처럼 뚝뚝 흘릴 수 있다
 
당신을 향한 문장을 벼리며 밤을 기다린다
 
진짜 버림받는 기분을 알 것도 같다
 
 


이문경
생활체육인.
책을 만들며,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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