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0

흉몽

이문경
2020년 01월 12일
 


흉몽
 
 
 
목공소 앞을 지나다 재채기를 했는데
눈을 뜨니 어젯밤이었다
 
자기 전 켜둔 초는 죽지 않고 살아서
흔들렸다 투명한 액체가 되어
심지가 전부 타버리기를 기다리며

영(靈)이 천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침 묻힌 손가락으로 촛불을 꺼야지
 
제사를 지낼 때면 아버지는 내게
본 적도 없는 이를 떠나보내게 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돌을 쥐고
손끝에 힘주는 법을 익혔지만
어쩐지 손바닥만 벗겨졌다
 
잔인한 일에는 스승이 없으므로
 
이제 나는 웃지도 울지도 않은 채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마지막 인사를 오래 묵히는 일에도 능숙해졌다
외로움은 바짝 건조시켜야 하고 
 
목공소 셔터 위 그래피티, 그 불가해한 문장을 벽지에 그리며
침대 밑에 붙여둔 부적을 기억해냈다
 
어디선가 꽃나무 불타는 향이 밀려왔다
 
부를 수 없는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이문경
생활체육인.
책을 만들며,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