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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오는 조상신 없다

정효정
2020년 01월 12일
 


 

주목: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쫓아오는 조상신 없다 
— 
어느 악플 수집가의 고백

 

생각해보면 세상을 탐험하는 것은 언제나 남자들의 몫이었다. 
백마를 타고 배필을 찾는 동화 속 주인공도 남자였다. 
그래서였나보다, 그들이 내게 욕을 한 이유는. 
그들이 할 일을 빼앗아서였나보다. 


경계를 넘자 한 세계가 무너졌다

옛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았다. 불결한 시신이 신성한 땅을 오염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녀 시신을 구분해 높은 탑에 올린 후, 독수리들이 쪼아 먹게 내버려뒀다. 남은 뼈는 탑 중앙의 깊은 구덩이로 떨어졌다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 조장은 금지됐다. 하지만 야즈드의 사막에는 아직도 조장터로 쓰이던 침묵의 탑이 남아 있다. 탑 위에 올라보니 구덩이는 시멘트로 메워져 있었고, 독수리 대신 이란의 불량한 청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탑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한때 시체나 뼈가 뒹굴었을 자리를 거닐며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선 묏자리 잘못 썼다고 꿈에 찾아오는 조상신은 없겠구나……’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할아버지 묏자리를 정할 때 지관을 불렀다. 조상의 묘를 잘 모셔야 자손만대 복이 깃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기였던 방송 「토요 미스테리 극장」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태어난 여자아이들의 윗입술이 하나같이 갈라져 있어서 시어머니 묘를 파보니 시어머니 윗입술에 나무뿌리가 지나가 있었다거나, 어떤 남자가 서른번에 걸쳐 이상한 꿈을 꾸어서 꿈풀이를 해보니 자손들에게 잊힌 조상의 묘가 있었다는 이야기들.

내가 나고 자란 세계에선 그랬다. 묏자리는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자손이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는 절대 파워를 지닌 장소였다. 하지만 국경을 넘자 조상신이 지배하던 세계관은 무너졌다. 이곳에 살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묘를 쓰지 않았다. 육신 따위 죽고 나면 불길하고 불결할 뿐, 오직 영혼만이 영원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묏자리 잘못 썼다며 쫓아오는 조상신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묘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침묵의 탑에서 실실 웃기 시작했다. 대체 어린 나는 왜 「토요 미스테리 극장」을 보며 조상을 잘 모셔야겠다고 다짐했을까.


2014년 이란, 페미니즘에 눈을 뜨다


세상이 분리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마치 「매트릭스」(1999)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을 먹은 것처럼. 스무살 때, ‘노동자 자본가 사이에 결코 평화란 없다’는 가사를 들었을 때가 그랬다. 평화가 있을 수 없는 구조를 깨닫자, 파업을 보며 ‘사이좋게 대화로 풀면 안 돼?’라고 묻던 천진하던 여자아이는 사라지고, 세상을 계급으로 인식하게 된 내가 남았다. 

2014년의 이란 여행 역시 그랬다. 나는 야즈드 침묵의 탑에서 빨간 약을 하나 삼켰다. 경계를 넘자 절대법칙은 무너졌다. 그동안 나를 옥죄던 수많은 삶의 규율들이 종이호랑이처럼 힘을 잃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이라는 또 하나의 강렬한 빨간 약이 있었다. 

1979년 이슬람혁명 후, 이란의 모든 여성은 긴팔 상의와 긴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루사리(russari)라 불리는 스카프를 쓰게 되었다. 여행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필 여름이었고, 날씨는 40도를 간단히 넘었지만 나는 착실하게 온몸을 천으로 가렸다. 이 문화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호메이니가 ‘반(反)서구’를 부르짖으며 정한 법이기에 일개 여행자가 안 따를 방도가 없었다.

한번은 이란의 여학생에게 대체 왜 머리카락을 가려야 하는지 물어봤다. 초심자의 스카프는 자꾸만 머리에서 벗겨져 내렸고, 그럴 때마다 이란 친구들이 ‘경찰이 너 잡아간다’고 놀려서 아주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는 ‘남성을 유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알라신이 그렇게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스카프를 쓰지 않고 다니다가 남성에게 나쁜 일을 당하면 그것은 여성의 잘못’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머리카락을 내놓고 다니면 나의 아름다움에 반해 남자들이 나를 강간할 것이기 때문에 스카프로 가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옆에서 혀를 차는 서양 여성과 달리,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밤늦게 다니니까 성폭행이나 당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으니까.

문제는 내가 그렇게 조신하게 온몸을 가렸는데도, 이란 남성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고, 혀로 핥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상하좌우로 쳐다봤으며, 오토바이로 골목길을 막아서고, 내 가슴과 허벅지를 향해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대체 나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스카프를 뚫고 빠져나온단 말인가. 그 이전에 ‘여성이 아름다움을 가리면 남성이 죄를 짓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신이 너무 단순한 게 아닌가. 한번은 오토바이를 타고 저 멀리서부터 나를 만지기 위해 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청년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일도 있었다. 여차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청년들은 외국 여자의 몸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신이 나 있었다. 열이 받은 나는 모스크에 대고 종주먹질을 했다. “아, 남자들이 유혹에 빠지는 게 문제라면 애초에 테스토스테론을 제거하는 게 간단하지 않았겠냐고요!” 

‘나는 너희들을 유혹하지 않기 위해 이 더위에 이렇게 노력하는데 어떻게 너희 남자들은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는 거니……’라며 매일 분노의 절규를 쏟아냈지만, 주변 이란인들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어떤 남자들은 원숭이와 같아서 재미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그러니 반응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만이 방법이야. 화를 내면 너만 손해야.” 

아아,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는 애 아니면 개니까 어쩔 수 없다’며 여성에게 ‘현명하게 행동할 것’을 당부하는 말들. 한국에서는 ‘개’라고 하는데 이란에서는 ‘원숭이’라고 하는 정도의 차이였다. 점점 여기가 한국인지 이란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스파한의 친구가 운전하는 차는 별의별 위협운전에 시달렸다. 그 친구가 스카프를 쓴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정말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이러다 우리가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저래’라며 길길이 날뛰는 내게 친구는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여자가 운전하는 꼴을 못 봐.” 

이쯤 되면 평행이론이 생각날 정도다. 평행이론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사는 인물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된다는 가설이다. 한국과 이란은 서로 다른 공간이지만 같은 패턴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늘 겪는 일이라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한번 각성하자 세상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세상엔 남성의 공간이 있고 여성의 공간이 있었다. 모든 공적 공간은 남성의 공간이었고, 여성의 공간은 안전의 이유로 분리되어 있었다. 여성이 허락된 공간을 떠나 남성의 공간에 진입하기 위해선 엄격한 심사가 필요했다. 옷차림을 평가받기도 했고, 태도나 실력을 평가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적 공간에 진입한 여성들은 위협을 받았다. 거리에서도 도로에서도, 남성들은 끊임없이 여성을 위협했다. 그것은 자신의 영역을 뺏기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공격이었다. 그렇게 여성들을 내쫓아놓고 그들은 뻔뻔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거봐, 위험하다고 했잖아.”

나는 여행을 하며 끊임없이 ‘왜 위험하게 여자 혼자 여행을 하냐’는 질문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내게 안전한 곳에 있을 것을 요구했다. 길 위에서는 남성들의 위협을 받았다.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러게 왜 여자 혼자 여행을 하고 그러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빌어먹을 평행이론의 세계. 시공을 초월한 여성의 삶이 이렇게 평행선 위에서 반복되고 있다면, 그 패턴을 깨트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2014년 이란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로 각성을 시작했다.


악플 수집가로 살게 되다

이란을 포함한 실크로드 여행을 다녀온 후, 2015년 1월부터 12월까지 오마이뉴스에 ‘당신에게 실크로드’라는 타이틀로 총 40편의 여행기를 연재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인데, 남성들은 여성이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싫어했다. 나는 매 연재마다 악플에 시달렸고, 나중엔 그들의 심리가 궁금해서 한꺼번에 분석할 요량으로 악플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플 수집’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악플은 ‘퉤, ×같은 ×’ ‘효정이라는 이름이 더러워요’ ‘인터내셔널 ××’ ‘흑색, 백색, 갈색 아이를 낳고 이라크 군벌의 14번째 첩이나 돼라’ ‘×같은 기자× 남혐 갈등이나 조장하고 있네’ ‘함 할래요?’ 등 다양했다. 초반에는 그 나쁜 기운에 시름시름 몸이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점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악플들을 모아서 분류하다보니, 여기에도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여자는 익은 음식과 같아서 남의 손을 타기 쉬우니 밖에도 못 나가게 했다. 유리그릇과 같아서 내돌리면 깨진다고.  
2. 여자는 집안일이나 해. 밖에 돌아다니면서 깝치지 말고.
3. 특히 여편네들 외국 것들 맛 좀 보려고 홀로 여행 갔다가 납치, 감금당해 평생 사창가에서 인생 종치는 거지. 
4. 한비야가 문제다. 한비야 책 보고 해외여행 갔다가 사고당하는 경우가 많음. 한비야 책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야 한다. 
5. 여행은 견문을 틔어주고 시야를 넓혀주지만 대부분은 남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그래서 배낭 하나 메고 오지로 여행 다니는 사람 중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관광을 하러 여행을 가는 게 사실이고.

그들은 ‘익은 음식과 같이 남의 손이 타기 쉬운’ 여성이 ‘집안일이나 하지 않고 깝치고’ 돌아다니는 게 싫었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여행을 하면 ‘외국 사창가에 납치, 감금당해 인생을 종친다’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얌전하게 집에 있어야 할 여자들이 한비야 때문에 여행을 가서 사고를 당한다며 “한비야 책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성의 여행은 허영에 빠져 돈을 쓰는 행위이며 “여행은 견문을 틔어주고 시야를 넓혀주지만 대부분은 남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며 여성의 여행을 폄하했다. 모두 다 여성의 여행을 막고자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들의 심리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다음 연재물에서였다. 나는 2016년 6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오마이뉴스에 ‘남자 찾아 산티아고’라는 타이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한 이야기를 연재했다. 백마 탄 왕자나 세상 밖으로 나가 공주를 찾는 줄 알았는데, 웬 노처녀가 해외까지 가서 남자를 찾겠다고 하자 댓글창에는 일대 파란이 일었다. 

1. 양남 ×× 찾아 삼만리
2. 동양 여자들 유명하지 않냐? 특히 대한민국 여자. 심지어 외국 남자들이 껌 하나(100원)로 꼬셨다고 자랑하더라. 유학녀와 외국여행 잘 가는 여자들은 문란하다는 게 통계 아닌가? 
3. 겁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다 성폭행 당해봐야 알지…… 시커먼 인도 남자의 정액이 자궁에 부어져서 임신했을 때는 이미 늦다. 

가장 많은 댓글의 유형이 서양 남성의 성기에 관련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들은 말끝마다 서양 남성의 성기를 언급하며 한국 여성이 서양 남성의 성기 때문에 ‘껌 하나’로 넘어가거나, ‘인도 남자의 정액이 자궁에 부어져서’ 임신하게 되는 상황에 분노했다. 이 분노의 근원이 어디인지는 다음 댓글에서 드러난다.

1. 그래, 자유롭게 살고 남자 찾아 떠나고 가서 즐기고 좋지. 누가 뭐라냐, 자기 자유인데…… 단지 그렇게 해놓고 한국 와서 시집 잘 가려고 내숭 떨면서 처녀인 척하면서 선보고 다니고 의사 찾고 그러지 말라고……
2. 자기 돈으로 여행 가는 게 뭐가 문제냐? 정말 문제는 저렇게 펑펑 쓰고 집값 비싸다고 징징, 남친한테 서울 집 하나는 해오라며 징징. 본인들은 3천만원 혼수로 땡치니 그게 문제지!!! 

이들은 ‘양남 ××를 찾아’ 자유롭게 살던 여성이 “한국에서 시집 잘 가려고 내숭 떨면서 처녀인 척”하면서 ‘의사 남편’ 만나는 상상을 하며 분노하거나, 자신이 강남에 집을 살 때 여성은 여행하느라 돈을 다 써서 ‘3천만원 혼수’를 해올까 걱정한다. 그들의 분노는 ‘결혼’이라는 주제와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이 누구인가. 한때 교실 급훈에 ‘네시간만 자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라고 적어놓고 열심히 노력해온 소년들이 자라 지금의 한국 남성이 되었다. 돈 많이 벌어서 예쁜 마누라랑 알콩달콩 살아야 완성되는 그들의 세계관은 이렇게 멋대로 세상 밖으로 여행하는 여성 때문에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성과 결혼해 조신하게 집안일을 할 여자가 없어진다는 불안감, 여성을 더이상 가두어둘 수 없다는 당혹감, 남성들이 여성의 여행에 악플을 달며 반대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쫓아오는 조상신 없다

남성들이 악플을 다는 심리를 가장 잘 드러낸 댓글이 있었다. 내가 이란에서 겪었던 성추행에 대해 썼던 기사에 붙은 댓글이었다.

이란을 디스하기 위한 글처럼 느껴지는군요. 혹은 성추행, 성희롱에 대한 피해의식에 쩔어 있는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라는 글쓴이 자신의 표현이 적당할지도…… 이란은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추천 여행지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여행 중에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이란인들은 친절하고 순수합니다. 아직은……

나는 이 댓글을 읽으며 칼로 베이는 듯 아프다고 느꼈다. 이 댓글을 쓴 사람도 이란에 여행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란에서 착하고 순수한 사람만 만났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란에서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내 엉덩이를 못 주물러서 안달인 남자들도 많이 만났는걸. 남성인 그가 가지고 있는 ‘이란의 아름다운 기억’은 여성인 내가 겪은 일의 겨우 ‘일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아름다운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란에서 성추행을 당한 나의 경험을 ‘성추행, 성희롱에 대한 피해의식’이라며 부정하고 폄하했다. 사실 모든 악플의 출발점은 그 지점이다. 악플은 수천년간 이어온 ‘남성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거대한 경고장이었다. 생각해보면 세상을 탐험하는 것은 언제나 남자들의 몫이었다. 백마를 타고 배필을 찾는 동화 속 주인공도 남자였다. 그래서였나보다, 그들이 내게 욕을 한 이유는. 그들이 할 일을 빼앗아서였나보다.

여성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남성의 세계’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세계와 세계, 존재와 존재의 대결이다. 남성들은 그동안 누려온 영역과 질서를 지키고자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게 허락한 영역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게 허락한 영역은 ‘안전한 감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이상 그들의 질서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여행을 하며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쫓아오는 조상신 없다.” 

묘를 쓰지 않는 이들에게 묏자리를 잘못 썼다고 쫓아오는 조상신이 존재할 수 없듯이, 그들이 아무리 내게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아도 나는 그저 코트 깃을 세우고 손 키스를 날리며 그들이 정한 경계를 넘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2017년 러시아를 여행할 때였다. 평소 샤머니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울란우데에서 부리야트 무당을 수소문해서 만났다. 그는 보드카를 허공에 뿌리고 내 조상신을 불러냈다. 나는 이 먼 시베리아까지 소환당한 내 조상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했다. 역시 무당은 내가 묻지도 않은 미래를 점지해줬다. 

“너는 내년에 결혼해서 아이를 한명 낳을 거야.” 

재미있는 건 3년 전 키르기스스탄에서 무당을 만났을 땐 네명의 아이를 점지 받았는데, 그새 한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아마 내 나이를 생각해 조상들도 좀 봐주신 듯하다. 나중에 무당과의 만남을 주선해준 세섹 아주머니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아주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지. 아이를 낳지 않으면 여자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전 같으면 이런 말들에 상처를 받을 법도 하지만, 난 그냥 싱글싱글 웃으며 답했다. 

“바로 그거예요, 세섹. 전 여자로서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여자는 여자로서 아무 의미 없이 살아도 되고, 남자는 남자로서 아무 의미 없이 살아도 되는 세상이 제가 원하는 세상이에요.”

이 부리야트계 러시아 할머니는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다’는 듯이 눈이 세모꼴이 되었지만 난 그냥 즐거웠다. 경계를 넘는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어느 세계의 법칙에도 속하지 않는 것, 누군가의 ‘착한 딸’이 되거나 ‘사랑받는 그녀’가 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강요받는 법칙에 주눅 들지 않고 코웃음으로 흥흥, 웃어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후, 나는 더 많은 여성이 경계를 넘길 바라며 여성 여행자에 관한 글을 쓰고, 여행 상담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이 채널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건 ‘여행 가서 이런 남자 조심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희롱, 성추행 대처법’도 주된 방송 주제다. 그동안 내가 겪었거나 주변 여성들이 겪었던 경험담과 노하우를 전달하며 ‘여성의 여행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상황’을 미리 알리고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사실 그동안 여행 분야에서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여행은 늘 막연히 환상적이라는 찬사 혹은 막연히 위험하다는 만류뿐이었다. 하지만 여행하는 여성이 알아야 하는 것은 여행지에서 생길 수 있는 온갖 문제상황과 대처법이다. 

마치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낯선 어른 따라가지 마라’ ‘불량식품 사먹지 마라’ ‘길을 건널 때 신호를 꼭 지켜라’라고 조목조목 가르쳐서 학교에 보내듯이, 여행이라는 큰 학교로 향하는 여성에게 ‘백인 할아버지들 조심해라’ ‘동양 여성에게만 집착하는 옐로우 피버(Yellow Fever) 주의해라’ ‘한국 아저씨 믿지 마라’ ‘성직자도 방심은 금물이다’ ‘성추행을 당했을 때는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이목을 집중시켜라’ 등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은 여성이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대처법을 알고 여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여전히 남성들의 악플에 시달리고, 그 부정적인 에너지들은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괜찮다. 악플은 경험과 활동반경을 넓히고자 하는 여성들의 존재가 그들에게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 악플이 많다는 것은 내가 여성으로서 나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악플은 나를 주저앉히지 못한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국경을 넘어버리면 그만이다. 이왕이면 더 많은 여성들과 함께.

괜찮다. 쫓아오는 조상신 없다.

 
    

 

남는 질문들


3 시원시원한 글에 공감하며 잘 읽었다. 그런데 무수한 나라들 중에서도 하필 특정 국가-종교-지역의 경험이 전경화되니 조금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이란 내에서 여성들의 저항의 움직임 같은 것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슬람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히잡, 할례, 명예살인 등을 내부에서 고발하고 문제화하면서 저항하는 움직임도 이전보다 자주 접하게 되는데, 필자가 여행할 당시에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정효정 이란에서의 경험을 주로 이야기한 것은 이란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한국의 남성들은 발끈해서 ‘명예살인을 하는 이란이랑 우리를 비교하다니’라며 부들부들 떨겠지만, 3일에 한명꼴로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여성이 뉴스에 나오는 나라에서 그거 좀 비교했다고 그렇게 예민하게 굴면 쓰나 싶다. 이란에서 「대장금」 「주몽」 같은 한국 사극이 인기 있는 이유는 여성의 의복에 노출이 없고, 여성이 차도르 같은 장옷을 쓰고 나오고, 처첩제도가 있는 등 가부장적 정서가 비슷해서였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는 사회에서 겪는 공통의 에피소드가 있다보니 이란에서 겪은 일이 내 각성의 촉매제가 되었다.

이란에는 늘 여성들의 저항이 있다. 생각해보라. 그 사회에서 사는 일이 얼마나 여성을 속 뒤집어지게 할지. 당시에도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라는 운동이 있었다. 이란에서 여성들이 히잡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히잡을 벗은 모습을 찍어 해당 페이스북 계정에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2017년에 비다 모바헤드라는 여성은 테헤란 혁명의 거리에서 히잡을 막대기에 걸치고 흔들다가 잡혀가기도 했다. 히잡에 항거하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늘어갈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남성 권력 간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히잡을 쓰거나 벗을 것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여성 당사자가 아닌 남성 권력이었다. 현재 유럽 등에서 강제로 히잡을 벗게 하는 것에 저항하는 여성들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3 최근 여성을 위한 여행잡지 『여행여락』 등 여성의 보다 안전하고 의미 있는 여행에 대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는데, 그런 여행을 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으로는 뭐가 있을까. 악플에 의연해지는 것과는 다른,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의 지점들이 궁금하다.
 
정효정 안전에 대한 이슈는 양날의 칼이다. 여성들은 안전도 해야 하고 또 ‘감옥’에서 빠져나오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안전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여행에 나서는 여성을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포기하면 여성의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대체 뭐가 있겠는가. 직장 상사가 그렇게 성추행을 하는데 직장은 어떻게 다닐 것이며, 불법촬영범이 그렇게 많은데 대중교통은 어떻게 이용할 것이며, 데이트폭력이 그렇게 많은데 연애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직장 상사에게 고소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이지, 직장 상사가 두려워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행하는 여성에게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막연히 자신의 감을 믿어라, 용기를 가지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식의 동기부여나, 또 위험하니까 무조건 못 간다는 식의 만류가 아니라 여행을 선택한 성인 여성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여행하는 여성이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서로의 경험과 여행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늘어나길 소망한다.
 
3 이란 여행에서의 ‘평행이론’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매력이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좀 들려줄 수 있을까.
 
정효정 호주 멜버른에서 거주할 당시 친한 이란 친구들이 있었다. 두명 다 이란 정부에 반대해 탈출한 경우였다. 그런데 이 친구들의 미의식이 남달랐다. 사진 하나를 찍어도 감각 있고, 음식을 그릇에 담는 일도 세련되게 해냈다. 이란에 가서 그 이유를 알았다. 나라 전체의 미적 감각이 높았다. 레벨이 다르달까. 이스파한이나 시라즈에서 느낀 건 ‘어려서부터 이런 모스크나 궁전을 보고 자랐으면 당연히 미적 감각이 높을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상점의 진열이나 일반 주택의 벽화 등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독특한 미의식이 살아 있다.

나중엔 페르시아어를 못 알아듣는 게 원통했다. 그들이 쓰는 단어도 분명히 아름다울 텐데 싶어서. 이란은 집집마다 하페즈의 시집이 있는 나라다. 시라즈의 하페즈 영묘에서 사람들은 시를 읊으며 여름밤을 보냈다. 지금도 그 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정도다. 미지근한 여름 공기, 8월의 더위에 지친 장미꽃, 관에 새겨진 시를 아이에게 읽어주던 아버지, 영묘의 기둥에 기대 시집을 넘기던 여인의 손끝,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물론 하페즈 영묘를 참배하고 숙소로 가는 길에 또다시 성희롱을 당했지만 말이다.

아아, 이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 양가감정을 어쩔 수 없다.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라였고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또 험한 일도 많이 겪었기에. 그래도 언젠가 이란에 다시 갈 것이다. 아비야네의 마리안느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마을에 살고 있는 그녀는 처음 보는 나를 재워주고, 낮은 문에 머리를 부딪치고 아파하는 나를 꼭 껴안고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었던 여인이다. 여행은 그랬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어깨를 감싸주고 함께 별을 보는 사람이 있었기에 늘 아름다웠고 또 떠나길 꿈꾸는 것이다.

 


정효정
방송작가, 여행작가.
SBS 「모닝와이드」, KBS 「트레킹노트」 등을 제작했으며,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 찾아 산티아고』를 썼다. 취미는 악플 수집과 크라브마가,
장래희망은 미스 마플처럼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돕는 현명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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