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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네 식구는 바퀴 위에서 산다

이주영
2020년 01월 12일
  


 

주목: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우리 네 식구는 바퀴 위에서 산다

 

캠핑버스로 종단하는 아메리카 여행

우리 네 식구는 바퀴 위에서 산다. 캠핑버스를 타고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해 우루과이,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를 거쳐 얼마 전 에콰도르 국경을 넘었다. 우리는 삼십대 중반의 부부와 두 아이로 이루어진 평범한 가족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면서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비교적 안정된 삶을 꾸려가던 우리가 이런 어마어마한 장기 여행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여행을 많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이동하며 사는 삶’을 실행해보고 싶었다. 소문난 관광지를 돌거나 ‘47개국 방문’ 같은 숫자 경쟁을 하는 여행이 아닌,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바퀴 위에 얹고 자전거를 타듯 움직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무전여행을 했던 남편과는 그런 면에서 죽이 잘 맞았다. 둘 다 유명한 관광지에 관심이 없고, 소셜미디어에 여행 사진을 올리는 것에도 소질이 없었다. 맛집에 가거나 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에도 그리 흥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들이었다. 그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었을 때, 그들이 현관문을 열고 사소하고 사적인 것들을 서슴없이 드러내주었을 때 우리는 진심으로 희열을 느꼈다. 다른 세계, 다른 문명, 다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되었을 때 우리는 결국 바퀴 달린 집으로 이삿짐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

길이가 십 미터에 달하는 이 캠핑버스는 90년대 지어진 작은 아파트 같은 인상을 준다. 작은 공간에 거실과 부엌, 화장실과 샤워실, 옷장과 침실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으니 한 사람이 지날 때 다른 사람은 비켜서야 하고, 화장실 문을 열려면 옷장 문은 닫아야 한다. 지금은 적응이 되어 이런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움직이지만 여행 초반에는 이동할 때마다 살림살이들이 떨어져 가슴이 철렁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자잘한 일거리는 또 어찌나 많은지. 일주일에 한두번씩 물탱크를 채워야 하고, 하수와 배설물을 직접 비워야 하고, 수시로 정리하지 않으면 어수선함을 면하기 힘들다. 강물에서, 주유소에서, 공원에서, 남의 집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자면 장작을 패서 밥해 먹는 어느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된 것만 같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빨래를 주무르다 허리가 뻐근해지면 빨래를 들고 공중에서 탁탁 물기를 털어낸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빨래가 허공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그러다 허리와 손목이 빠질 지경이 되면 남편을 불러 지휘봉을 넘기고 옆에서 수다나 떨면 될 일이다.

여덟살 큰아이의 공부를 돕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의욕만 앞섰던 몇달 동안은 시간을 정해 아이를 앉혀놓고 가르치려 했는데, 말 그대로 곤욕이었다.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라며 아이는 ‘수업’을 거부했고, 회유와 협박, 당근과 채찍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여행을 하며 변한 것은 엄마인 나였다. 이제는 칠판에 구구단을 적어 외우라고 하는 대신 아이와 마주앉아 공을 주고받으며 구구단을 노래한다. 함께 해변을 걸으며 신기한 동물들을 관찰하고, 미라가 있는 무덤에 가면 죽음에 대해 대화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남편이 퉁기는 기타 리듬 위로 아이가 즉흥적으로 노래를 지어 부른다.

빨래를 해주는 세탁기도, 아이를 교육해주는 학교도 없는 하루하루. 캠핑버스 여행은 그동안 당연하게 누렸던 많은 것들을 일상에서 걷어냈다. 즐기고 쉬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여행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의 이 시간은 거기에서 비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땅으로부터, 현실로부터 잠시 멀어져 색다른 공기를 경험하는 것을 여행이라 여긴다. 하지만 해를 따라 그림자가 움직이듯 이동하는 우리의 하루하루는 등에 자기 집을 짊어지고 기어가는 달팽이와 닮았다. 느릿느릿 땅을 기며 쓴맛, 신맛, 떫은맛, 지구의 모든 맛을 경험하는 달팽이의 일상. 우리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 낮고 느리게 흘러간다.

 
길 위의 세상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새로운 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장에 간다. 낯선 과일을 맛보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시장은 그 마을 분위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장터 인심을 보면 그 나라 사정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물정 모르는 외국인일 것이 뻔한 나 같은 손님이 오면 장사꾼의 눈빛은 입맛을 다시는 승냥이처럼 빛날 때도 있다. 그러나 웬만한 채소며 과일 가격은 훤히 꿰고 있으니 주의하시라. 시장이라면 지나치는 법이 없는 이 한국 아줌마를 얕보면 큰코다칠 수 있으니 말이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나는 갓난아이를 업고 물건을 파는 엄마들을 본다. 부모 대신 자리를 지키고 손님을 맞이하는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을 본다. 간이식당에서 엉덩이 한쪽을 겨우 걸치고, 혹은 그릇을 손에 들고 서서 국물로 배를 채우는 일꾼들을 본다. 안쓰러운 마음은 접어두고 나는 시장통의 살아 있음을 눈에 담는다. 누추하지만 상추 한주먹, 파 한단을 들고 나와도 장사를 할 수 있는 시장이 있기에, 동전 하나로 배부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장이 있기에 마음을 졸일 정도로 배고픈 사람은 없다.

식재료를 저렴하게 사는 것이 시장에 가는 가장 큰 이유지만, 아이와 함께 시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낯선 채소를 보면서, 새로운 길거리 음식을 맛보면서 나눌 수 있는 대화는 무궁무진하다. 많은 사람들이 큰아이에게 묻곤 한다. “여행 다니는 것이 좋니?” 아마도 우리보다 더 솔직한 대답을 해줄 거라 기대하는 모양이다. 아이는 정말로 솔직하게, “여행은 별로”라고 대답하곤 했다. 넓은 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던 때가 더 좋았다고 대답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모 좋자고 아이들을 고생스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여행으로 느낄 수 있도록 더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가 친구를 만들며 자신만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해 우리는 대안학교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큰아이는 볼리비아에서 ‘산의 꽃’이라는 산골 학교의 임시학생이 되어보았고, 지금은 에콰도르의 작은 해변 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또래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아이를 위해 특별히 긴 시간을 머문다. 얼마 전 맞이한 생일날, 학교 친구들을 초대해 해변에서 파티를 열었다. 혹등고래가 점프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앞니가 빠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이제는 자기가 크면 더 넓은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하리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여행은 별로라던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한 눈치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음은 여행에서 받는 큰 선물이다.

마을과 마을,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며 곡선을 그리듯 움직인다. 이동하며 만나는 따뜻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두려움으로 얼어 있던 마음을 녹여준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도 변함없이 우리가 원했던 것은 한가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때로 여행자들을 말썽꾸러기 취급하며 멀리하기도 하는 사람들, 어떻게 당당히 그들과 사랑에 빠질 것인가. 긴 여정의 의미이자 미로 같은 여행길을 밝혀줄 등불이 될지 모를 이 문제를 여전히 풀어가는 중이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도구를 챙겨 길을 떠난 많은 여행자들을 보았다. 산모들의 자연출산을 도와주며 여행하는 스페인 여자, 광대 공연을 통해 웃음을 주는 한무리의 여행자들, 실뜨기 놀이로 아이들과 화합하는 아르헨티나 부부, 동요를 불러주는 우루과이 젊은이들, 모두 현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생계와 기여, 유희와 생산을 오가는 이러한 활동들은 때로는 금전으로, 때로는 음식으로, 때로는 물질이 아닌 우정과 웃음으로 전환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준다. 여행을 떠나는 각자가 자신만의 도구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활동들이 여행자와 현지인들을 엮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때문이다.


마리솔과 이시스, 그리고 잊지 못할 아이들

우리의 무기는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이었다. 영상 제작을 업으로 삼는 우리 부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동안 빈민촌 아이들과 단편영화를 찍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로 작은 시나리오를 꾸리고, 연기하고 촬영하는 활동을 함께하며 ‘놀다’보면 아이들과 한결 친밀한 사이가 되곤 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워크숍을 한 곳은 볼리비아의 사마이파타(Samaipata)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들의 아이들이 워크숍을 통해 모였다. 마리솔은 쿠바 출신의 엄마를 닮아 꼬불꼬불한 머리칼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는데, 검게 화장한 눈매는 도시 출신의 콧대 높은 아가씨를 연기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페리코는 갈색의 긴 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내아이였다. 볼리비아 원주민 혈통의 실비아는 여느 원주민 여자들이 그렇듯 대화를 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늘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는데 참 성실한 아이였다. 열두명의 남매 중 열번째로 태어난 세레나는 부모님이 많은 아이들을 다 거두지 못해 근처 호텔 주인 부부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이시스의 엄마는 임신 기간 동안 힘든 일을 겪은 탓에 쌍둥이 중 한 아이를 잃고, 이시스는 팔이 덜 발달된 채로 태어났다. 반팔 소매 아래 드러난 세개의 손가락으로 물건을 움켜쥐는 이시스의 모습이 야무지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시간, 솔직히 말해 나는 이시스가 자신의 장애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여기면서도 카메라를 잡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시스가 촬영 감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볼을 세게 꼬집힌 것처럼 얼얼했다. 아이는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깍쟁이 같은 여자 주인공이 더러운 강물에서 넘어져 허우적거리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우리는 오케이 사인이 들릴 때까지 웃음을 참느라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웃기는 이야기를 좋아했고, 촬영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진지하게 몰두하면서도 틈만 나면 장난질을 쳤다.

볼리비아 아이들이 코미디를 선택한 것과 달리 페루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엘레나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가부장적이고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들은 페루 사회에서 심각하면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문제라고 했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던 이야기는 조금씩 살이 붙으며 딸의 하루를 다루는 이야기로 거듭났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상처받고 집을 나간 엘레나는 산 위에 있는 잉카문명 유적지까지 올라간다. 울고 있던 엘레나를 위로한 것은 비눗방울처럼 나타난 잉카족 요정이었다. 요정은 엘레나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제안한다. 엘레나와 요정이 춤을 추는 사이 수많은 다른 요정들이 나타나 모두 함께 춤을 춘다. 엘레나가 사라진 것을 알고 다급하게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는 결국 산 위에 쓰러져 있던 엘레나를 발견하고 그녀를 안아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나는 아이들이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또 한번 볼이 꼬집히는 얼얼함을 맛보았다. 한번쯤 겪었을지 모를 폭력에 대한 목소리가 시나리오가 되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아버지가 딸을 때리는 장면을 찍으면서 숨죽였던 촬영 날, 산 정상의 유적지에서 봄꽃처럼 화사한 전통 옷을 입고 춤을 추던 날, 그때 그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을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편집이 끝나면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해 상영회를 연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나는 화면을 보는 대신 어둠 속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자신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와 웃음이 번져갈 때 복잡하고 황홀한 수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 차오른다. 영화와 메이킹 필름 상영이 모두 끝나면 언제나 아이들을 무대 위로 초대한다. 그들이 주인공인 무대, 그들 모두가 주인공인 한편의 영화에 잠시 단역으로 출연한 우리들. 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아닌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다큐멘터리 같은 여행 말이다.

관중석에는 나의 아들도 앉아 있다. 아들은 팝콘을 집어 먹으며 옆에 앉은 친구와 수다를 떠느라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엄마에게는 관심도 없다. 그렇더라도 그저 말없이 보여줄 뿐이다. 물질적인 대가 없이도 우리의 열정만으로 순수하게 빛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돈으로 친구도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아이의 말에 말문이 막힌 적 있던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세상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보이지 않는 날개를 떠올리며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던 날, 우리 부부는 출발지에서 나무를 한그루 심었다. 라파초라고 하는 자주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 우루과이의 나무였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길을 떠나면서 기대와 흥분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할 수만 있다면 돼지머리를 구해다 고사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의 모든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부디, 여행길이 안전하도록 지켜주세요. 두 아이들의 건강과 웃음을 지켜주세요. 꼭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무 한그루를 심으면서 자연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빌었다. 나무를 심는 의식은 뿌리를 내린다는 상징이었다. 우리는 땅이 아닌 ‘살아 있음’으로 뿌리내리고 싶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많은 것들로부터 뿌리를 거두고, 정말로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소중한 하루하루를 바치고 싶었다.

촌스러운 입맛에 어울리는 다디단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는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캠핑버스 안은 어수선하니 고즈넉한 음악이라도 듣는 것처럼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제 오늘 앞마당 풍경이 또 바뀌었네, 중얼거리며 피식 웃는다.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했던 첫날의 마음이 그동안 뒹굴면서 많이 가벼워졌다.

점심시간, 네개만 만들어도 충분할 샌드위치를 열두개 넉넉하게 준비한다. 해변에서 공예품을 팔고 있는 다른 여행자 가족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이다. 일요일 오후이지만 겨울이라 관광객의 발길은 드문드문해서 아마도 벌이가 시원찮을 것이다. 그래도 속이 꽉 채워진 샌드위치를 한입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 아이들은 찬바람도 아랑곳 않고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샌드위치를 먹고 나면 다 같이 마테차를 돌려 마실 테고, 두런두런 수다를 나누는 어른들 뒤로 해가 저물면 아이들은 그림자가 되어 노을 앞을 서성일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아빠들이 아이들을 씻기는 사이 엄마들은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겠지. 여러명이 밖에서 먹기에는 피자가 최고라며 요리를 잘하는 한 엄마가 반죽을 시작하면 다른 엄마들은 반죽 위에 올릴 재료를 썰면서 해변에서 못다 한 수다를 이어갈는지도 모른다.

밤이 되고 분주했던 것들이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 되면 나는 어둠을 향해 눈을 감을 것이다. 쏴아아아 하는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 바다가, 그리고 그 바닷물 위를 어른거리는 날개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남는 질문들


3 이 경험들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관계의 지속성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 이렇게 이동하는 삶 와중에 어떤 특정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가 지속되는 사례는 없을지, 혹은 관계의 지속과 장소의 이동은 크게 관계가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주영 이동하는 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어느정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만이 관계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상대성을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계의 깊이와 밀도도 함께 나눈 시간만으로 좌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떠나면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 그들과 나눈 진한 우정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두텁고 단단하다고 느낀다. 또한 여행길에서 만나는 다른 여행자 가족들과 관계를 맺기도 한다. 또래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과 우연히 만나면 자연스럽게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목적지가 같다보면 지속적인 만남이 생긴다. 여행자 가족들과의 관계는 현지인들과의 관계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며 우리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3 아이들이 정규교육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실제로 여행을 통해 어떤 배움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이주영 정말로 두려웠다. ‘애들 학교는 어쩌고?’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학교에 안 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아이를 맡아줄 테니 우리끼리 여행을 가라고 하셨을 정도다. 본문에 썼듯이 처음에는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불안해서 어떻게든 수업 비슷한 것을 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책상에 앉혀놓고 책과 연필을 쥐여주는 것만이 배움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배움의 기회로 삼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살아 있는 경험들을 통해서 훨씬 더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여행을 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다. 지식보다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사람과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나아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의 형성을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여행을 하는 내내 생활을 꾸리기 위한 노동은 어떻게 분할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가령 요리와 설거지는 누구의 담당, 화장실 청소는 누구의 담당, 하는 식으로 부모와 아이들이 각자 담당 구역이 있을까? 그리고 이와 같은 가정 내 역할 분담이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달라졌는지, 아니면 달라진 바가 별로 없는지도 궁금하다.
 
이주영 아르헨티나 사람인 남편은 원래 가사에 참여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캠핑버스에서 생활하다보면 크고 작은 불편함들이 있는데, 물을 맘껏 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대신 집이 작기 때문에 청소를 금방 끝낼 수 있다. 요리와 빨래는 내가 하고, 남편은 청소와 하수처리를 맡는다. 집안일 외에도 캠핑카 생활에서는 차 정비도 중요한 과제인데, 그 부분은 전적으로 남편이 담당하고 있다.
 
3 이쯤이면 네 식구의 여정을 꼭 ‘여행’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동이 곧 삶일 때, 이를 두고 그럼에도 ‘여행’이라 이름 붙이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의 정착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여행 이후에 대해 계획이 있을까?
 
이주영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여전히 여행자의 시선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메리카 이후에 아시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앞으로 정착해서 살게 될지 계속 여행을 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캠핑버스 여행을 떠나기 전과는 확실히 다른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이주영
캠핑버스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한다.
여행 중에 만난 아이들과 단편영화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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