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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과 벤딩

오은교
2020년 01월 12일


 

주목: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여행기는 기본적으로 정주민의 서사다. 일상적 현실을 떠나 또다른 자기 자신을 구매하는 여행 서사와 조국을 떠나 삶을 리부팅하려는 탈조선 서사는 일시적인 소비를 통해 경험을 소유하는 체험의 서사와 비교적 장기간 비용을 치르며 새로운 질서를 몸에 새기는 도전의 서사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점이 있지만, 집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떠나거나,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아 떠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정주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정주의 욕망 자체를 언제나 자기동일성을 확인하는 보수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을 끊임없이 게토화하고 추방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정당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에게 이동이라는 경험을 경유하여 스스로의 입지를 확인하는 문제는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이미 정치적인 문제다. 인정 투쟁이 현실 사회에서는 언제나 영토 분쟁이 되듯이, 끊임없이 독점과 점거와 철거와 연행이 반복되는 이 땅에서 이동을 개인이 행사하는 ‘자유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여권을 만들 순 있어도, 아무나 비자를 받을 순 없듯이 여행과 이주 서사는 국경을 넘어가려는 자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출입국심사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신은 누구이며, 왜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가려 하는가.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출국하는 출국자 수가 매해 최고를 경신하는 오늘날, 국경을 넘는 일은 현존재를 모두 내던지는 실존적 감행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결심도 아니고, 외국이 대단히 이국적인 곳으로 상정되지도 않는다. 최근 한국 문학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행 소설들은 선진 문물을 체험하는 ‘그랜드 투어’나 난민이 되어 세계를 떠도는 디아스포라 서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드물지 않게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다. 따라서 최근의 여행 서사는 기념품으로 더 큰 자아를 챙겨오는 타자성 쇼핑의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한 인물이 처한 현실과 인식의 지정학적 위치를 탐색하고, 떠났거나 떠나지 않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물으며 물리적인 거리감이 발생시키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화합의 조건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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