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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문학3
2020년 01월 12일


 

주목: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


 

지금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을 때가 종종, 어쩌면 자주 있는지 여러분께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여기를 벗어나야 해, 그러면 뭔가 보일까?’1) ‘아, 여행가고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지도요.

지난 8월 31일자의 한 신문에선 “일명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휴가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과거 오랫동안 8일 정도에 머물렀던 유급휴가 사용 일수가 최근 몇년간 늘어나며 한국사회의 “휴가 사용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했습니다.2) 물론 노동자가 원할 때 연차를 쓰지 못하도록 눈치를 주거나 강제하는 등 “유급연차 사용을 두고 ‘갑질’하는 일터”가 여전히 남아 있고 휴가와 관련된 기본적인 규범마저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사업장도 많지만, 현재 고용노동부가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소식도 해당 신문은 함께 다뤘습니다.3) 삶의 내용은 일상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따라 채워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일상이 가능하기 위해 빠져나간) ‘일상 바깥’에서 내가 무엇을 겪는지에 따라서도 채워진다는 공감대가 바야흐로 형성되는 중인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에는 여행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그 편수 또한 늘었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지금 당장 어디에 있는지’를 자연스레 전달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서도 여행과 관련된 해시태그가 부지기수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여행에 관한 숱한 정보들 속에 파묻힌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여행’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리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진 못할 것 같다는 짐작도 한편으론 듭니다. 여행을 일종의 ‘탈출구’로 여기고 당도한 여행지를 ‘일상의 도피처’ ‘힐링의 터’로 삼았을 때 여행자인 우리는 혹독한 매일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듯 ‘탕진잼’을 외치며 더욱 소비지향적으로만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여행’이란 말에서 우리가 속한 일상을 ‘탈출하는’ 의미 이상의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여행을 소재로 삼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은 여행을 떠났을 때만이 찾을 수 있는 ‘진정한 자아’가 있다는 식의 얘기를 전하면서, 마치 진정한 자아가 지금 이곳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나’와 분리되어 ‘저 먼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여행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활기를 얻는 건 중요하지만, 여행지를 쉽게 낭만화하고 일상을 그저 견뎌야만 하는 곳으로 구별 지을 때마다 여행자의 소비 추구는 더욱 부추겨지는 듯합니다. 나를 위협하고 흔드는 낯선 경험들을 기꺼이 겪어내고 그러한 상황들과 교차하며 섞이는 대신에 ‘소비자’ ‘구경꾼’의 위치를 고집하면서 여행지를 ‘나’의 배경으로만 삼는 동안, 우리의 여행은 일상 바깥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자본의 흐름에 따라 일상 속 ‘나’를 더욱 견고하게 굳히는 이동으로 협소해지는 건 아닐까요? 소셜미디어 유저들은 자신의 타임라인에서 전시하기 어려운 장소로는 굳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에 어떤 다른 의미를 새길 수 있을까요?

문학에서 여행은 때로는 남성 인물이 자신의 위악적인 일상으로 회귀하기 위해 자폐의 미학으로 빠져드는 운명을 체험하는 계기나 자기 감수성을 강화하는 실천으로, 때로는 이동에 제한을 받아왔던 인물이 금기시된 선을 넘어 타자를 만날 수 있는 성장의 경로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문학사 연구에서 거론되어왔던 여행의 다양한 양상을 떠올리다보면, 영국의 소설가 겸 미술 비평가인 존 버거가 “자의든, 타의든, 국경을 넘든 시골에서 도시로 가든, 이주는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경험이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16세기 노예무역의 개시로 이미 예언된 새로운 종류의 폭력을 동반한 채 전에 없던 규모로 인간의 이동을 요구한다”4)고 했던 말도 더불어 떠오릅니다.

‘여행’이란 말이 가진 의미의 폭은 더 넓어질 수 있습니다. 〔문학3〕의 이번 주목 주제는 ‘여행, 다른 가치를 실천하는 이동’입니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여성들이, 장애인들이, 아이들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으로서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일상 바깥을 향한 이동’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넘어서, 자신이 있는 곳에서부터 삶의 풍경을 만들어가는 역동적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동을 통해서 무엇과 만나(려 하)는지,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일인 동시에, 지금 있는 곳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작의 방향성을 어떻게 구축할지, 그 범위를 우리 스스로가 넓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1) 스마일리스마일의 노래 「SmileySmile」 가사의 일부.
 
2) 정은주 「임직원 장기휴가 독려 효과... “신입도 15박 16일 떠나더라”」, 『한겨레』 2019.8.31.
 
3) 정은주 「부모상도 연차 쓰라 하고, 붙여서 못 쓰고... 여전한 ‘휴가 갑질’」, 『한겨레』 2019.8.31.
 
4) 톰 오버턴 엮음・신해경 옮김 『풍경들 — 존 버거의 예술론』, 열화당 20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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