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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념의 계절입니다

안희연
2020년 01월 12일
 


어느덧 가을의 문턱입니다. 맹렬했던 여름과 작별하면서, 어떤 의식처럼, 올여름은 내게 무엇이었나 곰곰 생각해보게 됩니다. 올여름 제가 보았던 가장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빙하 장례식’이었어요. 무심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마주한 장면이었는데, 700년간 레이캬비크 오크(OK) 화산을 뒤덮고 있던 빙하가 기후 변화(지구온난화)로 사라지게 되자 애도의 의미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이슬란드 총리, 환경운동가, 기후학자 등이 참석한 그날의 장례식에선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 적힌 추모비가 세워졌습니다. 화면을 통해 그곳을 마주하는 내내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아이슬란드(Iceland)’와 ‘그린란드(Greenland)’에 얽힌 또다른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북극권에 더 가깝고, 국토의 85%가 얼음으로 뒤덮인 땅은 사실 그린란드인데(그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국토의 11%만 빙하인 데다 기후도 온난하고 수목도 푸른 편이라고요) 최초 이주민이었던 바이킹들이 그린란드에 이주민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얼음(Ice)으로 뒤덮인 땅을 일부러 그린(Green)이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 반대로 살기 좋은 아이슬란드에는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불모지 같은 이름을 붙여놓았다는 이야기. 바이킹들이 바꿔놓은 이름 때문에 땅은 스스로의 정체성과는 어긋나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제 그것은 하나의 고유명사이자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땅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애석한 일일까요, 그저 피식 웃게 되는 농담일까요?
 
어쩐지 저는 이 두 에피소드가 문학에 대한 은유처럼 여겨집니다. 사라진, 사라질 것들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우는 마음은 모든 기억에 바치는 헌시 같았고, ‘사실’ 안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시선의 확장과 발견이야말로 문학의 중요한 몫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문학3〕이 ‘문학 - 삶’으로 잘못 읽히기를 바라는 바람처럼 말입니다.

어느덧 가을이 되어 또 한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한잔의 차를 마시기까지의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찻잎을 재배하고, 채엽하고, 몇번의 덖음(찻잎을 볶아서 익히는 과정)과 유념(찻잎을 비벼서 물에 잘 우러나게 하는 과정)과 건조의 시간을 지나야만 당도하는 세계. 삶의 모든 일은 그토록 요원하고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유념’이라는 과정에 유독 마음이 기웁니다. 찻잎을 비빈다는 것은 찻잎 입장에서 보면 마찰로 인해 짓이겨지거나 상처 입는 과정일 수도 있는데, 왜 그러한 과정에 유념(揉捻)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동음이의어인 유념(留念), 즉 ‘잊거나 소홀히 하지 않도록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여 생각한다’는 뜻의 유념이 떠오르는 것은 그저 우연일까요. 그린란드가 사실은 얼음으로 뒤덮인 불모의 땅이듯, 이 우연 안에도 무언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도 있겠습니다. 한잔의 차에 이르는 과정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면,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계시나요?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한 삶에서, 무엇을 유념하고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붙잡으며 살고 계시나요?

잘 우러나기 위한 계절. 하늘이 높아지는 계절. 바야흐로 유념의 계절입니다. 이 계절 당신에게 〔문학3〕이 향긋한 한잔의 차가 될 수 있기를. 차라고 쓰기는 했지만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그래서 우리를 좀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질문의 시작점이기를 바랍니다.


문학3 기획위원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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