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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머저리

문보영
2020년 01월 15일
  



비밀 머저리 


 
된장은 말한다. “연두부가 되면 모든 게 잘된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된장에게 묻는다.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상태가 연두부의 정의라고 된장(친구의 이름이다)은 말한다. 그건 무감각하고 비겁한 게 아니냐고 나는 되묻는다. 기대를 안 하지만 사랑은 있는 상태,라고 된장은 연두부를 재정의한다. 그게 뭐지? 나는 되묻는다. 사람의 가장 큰 약점은,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다시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점이야.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사람의 가장 큰 단점이야. 반면, 미간에 정신을 집중하면 연두부가 될 수 있어. 아무것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 나 자신에게 만족하는 상태랄까. 그런데 체념한 상태와는 또 달라. 된장이 말한다. 오. 나는 반응한다. 혼란 한가운데 연두부의 자리가 있어. 거기에 집중하면 돼. 된장이 말한다. 연두부는 일종의 태풍의 눈인가. 내가 질문한다. 그런데. 된장이 눈빛을 빛낸다. 정말 연두부가 되면. 된장의 눈빛이 진해진다. 신이 잡아가. 된장의 눈빛이 풀린다. 왜? 나는 따진다. 쓸 만한 사람이 되면 부리려고 데려가는 거지. 된장은 설명한다. 빵이 다 구워졌으니 오븐에서 꺼내자. 뭐 그런 건가. 내가 추측해본다. 연두부가 되면 죽어. 된장이 말한다. 그런데 너는 이 문단의 서두에서 “연두부가 되면 모든 게 잘 된다”라고 말했어. 내가 항의한다. 난 그런 말한 적 없어. 된장이 발뺌한다.  
 
방금 쓴 일기는 아무 말이다. 내가 아무 말을 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나는 비밀에 관한 글을 마감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비밀에 소질이 없다.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고 방금 한 말이야말로 나의 비밀이었다고 고백함으로써 이 글을 비밀에 관한 글로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나는 비밀을 함부로 다룬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밀을 자극해본다. 나는 친구에게 “난 비밀에 관한 산문을 써야 해”라고 알렸다. 그런데 집필을 자꾸 미루게 된다고 말하니 친구는 “주제가 광범위하네”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니 비밀이 문득 광범위하게 느껴졌다. 아무 말이나 지껄인 다음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은 비밀로 해주세요”라고 쓰면 되지 않을까? 친구에게 의견을 물으니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친구가 격려했다. 그래서 아무 말을 쓰려고 연필을 쥐었다.
 
그런데 아무 말은 어떻게 하는 거지?
 
문득 아무 말을 하려고 하니, 아무 말이 비밀보다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된장과 나눈 아무 말을 끄적여보았으나 분량을 채우지 못했으므로 비밀이라는 주제로 돌아와야 했다. 
 
비밀번호에 대해 말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내 네이버 아이디가 해킹을 당했다. 그래서 네이버에서 아이디 이용 제한 메일이 날아왔다. 내 아이디로 작성된 스팸성 게시글이 있는데 내가 한 짓이 맞는지 묻는 메일이었다. 그리고 한번 더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30일간 네이버 서비스 글쓰기가 제한된다고 경고했으며, 이용 제한 해제 방법을 안내해주었다. 본문에 첨부된 <회원님의 아이디로 작성된 스팸성 게시물>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서비스: 쪽지
제목: 파동 공략님 오늘도 대,박~
        ㄴ ㅏ세요...!!
사유: 스팸 홍보 
작성 일시: 2020-01-09 18:53
작성 IP: ***.**.*.***
 
누군가에게 대박 나라고 해서 스팸 처리되었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러잖아도 이보다 며칠 전, 네이버에서 세번이나 내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내 아이디가 새로운 환경에서 로그인되었다고. 새로운 환경…… 왠지 끌렸다. 새로운 환경은 분명 지금보다 나을 텐데. 거기에서라면 내 아이디가 잘 살지 않을까. 네이버는 다음과 같이 안내했다.
 
“아래의 로그인이 회원님의 활동이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회원님의 활동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화면 하단에는 두개의 버튼이 있었다.
 
아니요(내가 아닙니다) vs 네(내가 맞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와 <내가 맞다>의 대결 구도를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별일 있겠어’ 하고 무시했다. 그런데 자기 전, 한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누군가 내 아이디로 다시 로그인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자 걱정이 들었다. 정말 해킹당하면 어쩌지? 네이버 아이디가 도용된다면, 해커가 내 블로그도 털 수 있을 텐데. 내 블로그엔 비공개로 돌린 방대한 일기가 저장되어 있다. 누군가 그 일기를 읽기 위해 아이디를 해킹하는 거라면? 나는 허겁지겁 비밀번호를 바꾸고 여러가지 잠금장치를 달았다. 그리고 블로그에 들어가 많은 분량의 일기를 삭제하고 한글 파일로 저장했다. 그러나 이미 나의 아이디는 해킹당한 상태였고, 그 누군가는 이 세상의 또다른 누군가들에게 “대박 나세요”라는 쪽지를 보낸 상태였으며, 대박 나라는 말에 기분 상한 누군가 내 아이디를 신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해킹 소식에 조금은 안도했다. 내가 두려웠던 건 일기를 염탐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밀성을 도난당할까봐 두려웠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대박 나라고 해서 혼나는 편이 나았다. 
 
이번엔 비밀번호를 바꾸면서 조금 신중하기로 했다. 늘 쉬운 비밀번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SplashData라는 단체에서는 그런 머저리를 위해 매년 최악의 비밀번호 랭킹을 발표한다. 쉽게 들통나는 최악의 비밀번호를 공개함으로써 비밀을 잘 좀 손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가령, 2015년의 최악의 비밀번호는 123456였다. Jenny Whelan의 기사에 따르면, 영국의 국가 사이버 보안 센터(National Cyber Security Centre)가 공개한 바, 과연 123456이 해킹된 계정 중 가장 흔히 사용된 비밀번호였다고 한다. 해킹당한 계정 중 무려 2,300백만 개의 계정이 이 비밀번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123456이 비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게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머저리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이다. 비밀번호로 사람 이름을 쓰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 또한 Jenny Whelan에 의하면) 가장 흔한 이름은 Ashley였다. 다음으로 가장 흔한 것은 Michael, Daniel, Jessica 그리고 Charlie. 캐릭터 이름도 흔히 사용되는데, 가장 흔한 것은 Superman, Naruto, Tigger, Pokémon 그리고 Batman이라고 한다. 자신의 이름 혹은 누군가의 이름이 비밀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인간의 이름을 비밀로 사용하다니. 비밀 머저리. 그게 바로 나다. 나 또한 나의 반려 돼지 인형 말씹러(malchiper)를 비밀번호로 사용하니까.
 
아, 여기까지 쓰니 비밀에 관해서 할 말이 더 생각났다.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비밀이에요”라고 답하면 꽤 효과적이다. “키 몇이세요? 비밀입니다” “가장 죽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예요? 비밀이에요”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대신 프라이빗한 느낌을 주면서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묻는다면 모든 말에 “비밀이에요”로 퉁 치면 좋다. 누군가 내게 말 거는 게 싫을 때 이용하면 된다. 일명, 비밀로 발라버리기, 비밀로 조지기 수법인데……
 
   <예시>
 
   ─오늘 날씨 좋죠? 
   ─비밀입니다. 
 
   ─토마토 스파게티랑 리조또 두개 시켜서 나눠 먹을까요? 
   ─비밀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건, 비밀입니다.
 
   ─비를 맞고 계시군요. 우산 같이 쓸래요? 
   ─비밀이에요. 
 
   ─다음에 또 만나요. 
   ─비밀입니다.
 
이렇게 비밀 머저리, 비밀 꼴통이 된다면, 당신을 겪어본 사람은 당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쟤한테 말 걸지 마……” 하고 안내해줄 것이고, 그 덕에 사람들은 점차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며, 그 결과 당신은 혼자가 될 테지만, 어느 날, 모든 말에 비밀이라고 말하는 당신을 갑자기 이해하고 깊이 사랑할 유일하고 특별한 단 한 사람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과 내밀하고 정겨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은 비밀에 부쳐주세요. 진심입니다.

 


문보영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책기둥』 『배틀그라운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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