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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정원

신두호
2020년 01월 22일
  



 
삼림정원


 
하나의 생각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건널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다 바닥을 보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는 길들을 걸었다 바닥을 보며 걷는 사람을 조심하라 그는 머리 위보다는 발아래의 별자리들을 찾는 사람이다 같은 목소리가 같은 생각을 부르고 낮에는 어둠을 밤에는 빛을 찾아다니는 끊어지지 않는 길 위에 서 있다 더는 걷지 않으리라는 선언처럼 발은 건너야 할 곳 앞에 고정되었으므로 길은 끊겼다 돌아보면 더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가로등뿐이어서 하나의 생각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린다 불빛들은 밤에 무언가를 비춘 적이 있었을까 늘어선 같은 형태를 제외한다면 불빛이란 죄다 쓸모없는 것들이지 않은가 구하는 자가 얻듯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밝힐 수 있는 희미한 빛 그 빛이 아니라면 간격 속에 뿌리박힌 조명이란 퍼올려진 빛의 무덤이거나 어둠으로부터의 각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잎의 전부를 잃고 난 나무들만이 불빛들 속에 앙상하게 비춰질 뿐 길의 형태로 늘어선 나무들은 무엇도 길어 올리지 못하면서 길에서 벗어나려 한다 침범하는 마음으로 침범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에게로 건너가려 한다 완성되지 않은 생각 제자리에 멈춘 생각들로 닿을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끝없이 단절되면서 멈춰선 발을 대신하고 있다 모든 해변이 세상의 끝이라면 부드러운 모래들은 끝의 상징이 되는 것처럼 마른 가지들의 끝에서만 자라나던 잎 그 잎들은 바닥에서 한데 뒤섞여 또다른 끝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흩어져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사라져버렸음을 이제 안다 멈춰선 채 제자리를 이어가며 심어진 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것도 일종의 나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남겨진 길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선은 건너야 할 길에서 눈을 떼어야 한다 만들어지는 흐름이 지나간 흐름을 뒤쫓는 장면들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각자의 장소에서 길을 건너려 우리는 바닥을 향해 서 있다 각자의 생각을 완성하기 위해 뿌리내린 우리 건너야 할 길 앞에 막연히 놓인 우리는 나무들과 같아서 아직은 너머를 상상할 수 없다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에게서 눈을 뗄 수밖에 없다 돌아보는 일과 내다보는 일의 중간에서 푸른 불빛을 통과하며 스쳐 지나갈 모든 것을 기다린다 비로소 우리라고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움직임 속에는 비밀을 나누듯 마주치는 눈빛이 있고 우연한 마주침에는 완성된 생각이 깃들어 있었으면 한다 환영으로 물결치는 나뭇잎들과 바닥으로 기울어지는 불빛들 속에 서 있다 하나의 생각을 완성하기 위해 완성될 수 없는 하나의 생각을 위해 재촉하는 푸른 불빛 건너편에 서 있다 

 


신두호
201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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