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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공간

신두호
2020년 01월 29일



 
비밀의 공간


 
집 바깥을 나서는 일로서 외출을 굳이 분류해보자면 목적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외출을 하기 전 우리는 목적을 두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면서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목적을 가지거나 그렇지 않을 때 외출 준비는 다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외출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목적이 있으므로 우리는 목적에 따라 준비물들을 챙기고 몸을 씻고 옷을 입는다. 목적에 맞게 우리들은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목적지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나 만나야 할 사람들에 맞게 동선을 그리고 시간을 분배한다. 집을 나서기 전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그날그날의 일정을 확인하고 해야 할 일들을 미리 떠올려본다.
 
또다른 종류의 외출은 목적 없이 이루어진다. 어쩌면 이런 목적 없음이 외출을 더 외출답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 준비 과정은 목적을 가지는 때와 다르게 마련이다. 우선은 목적이 없기 때문에 이동이나 그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을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게 된다. 정한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이런 종류의 외출을 우리는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산책에도 나름대로의 목적을 설정할 수 있겠지만 목적 없는 외출의 정처 없음을 그것 그대로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외출이란 곧 산책일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느긋하게 방문하는 일을 산책이라고 한다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그야말로 정처 없이 떠도는 일 또한 산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목적 없는 외출의 가장 극단적인 형식으로서 산책이란 곧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이자 일종의 사소한 방랑이다. 만약 방랑이 뜻하는 바가 세계라는 무대를 떠도는 일이라는 식의 거창한 의미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 중 어떤 부류는 산책 속에서 방랑을 경험하고 오직 그러한 정처 없는 떠돎만을 산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출하기를 꺼리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산책이란 재앙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외출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이따금의 외출을 통해 해야 할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각자 공공연한 또는 비밀스러운 이유에서 특별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외출을 삼가는 경향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익숙하고도 안전한 영역 안에서 평온함을 찾기 때문일까? 그 안에서의 휴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불필요한 외출을 삼간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정처 없는 산책이 재앙에 가까운 일일 것이리라는 가정은 잠시 보류해두어야만 할 것 같다. 자신만의 평온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해온 사람이 아무런 목적 없는 외출로서의 산책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르기를 선호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외출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무관한 것이라고는 없는 그들만의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에 머물면서 그러한 경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외출을 즐기지 않는 것은 바깥 세계에 대한 염증 때문이 아니며 다만 그러한 자신만의 공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화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공간의 내면화라 부를 수 있을 이러한 자기화 능력은 다소 거창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세계를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직 및 질서화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을 조성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조성된 자신만의 특정한 공간 안에서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외출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자신만의 공간 안에 머무르기를 선호한다. 그러한 공간은 하나의 방 또는 여러개의 방들이거나 집의 한층이거나 아니면 집의 전체일 수도 있다. 외출을 가급적 피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르며 외출이 줄 수 있는 온갖 경험들을 대신할 방법을 찾는다. 거기에는 바닥이 주는 느낌에서 실내 공기의 질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생활환경 전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자기 자신을 외부 환경에 적응하도록 단련시키기보다는 하나의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로 한 이상 그는 환경을 조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자기와의 연관 속에서 계획해낸다. 하나의 특정한 공간을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은 일종의 작은 세계를 불러내는 것과도 같기에 비밀스러운 작업이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공간에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게 마련이고 그러한 공간의 통제에 누구보다 능숙한 이에게 그것은 비로소 은밀한 취향으로 감지되고는 한다.

자신만의 공간에 거주하는 자는 그만의 비밀 속에서 그것과 함께 생활한다. 만약 비밀을 단순히 감춰지고 숨겨진 사실을 간직하는 일과 한 개인의 인간적 성향의 일부로 생활로부터 내면화된 어떤 것으로 구분한다면 그는 후자의 것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공간을 자신과 무관한 것이라고는 없는 것들로 조성하기에 이러한 의미에서는 누구나 생활로부터 내면화된 비밀을 간직한다고 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비밀을 굳이 구분하려 드는 것은 무의미할까? 자기화를 거치지 않는 비밀이란 없으니 모든 비밀이란 생활공간으로부터 비롯된 그러한 것일까? 하나의 공간을 조성하는 일 속에서 그 모든 선택과 배제는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또는 싫어하는지 심지어 과연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까지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와 공간과의 연관은 떨쳐낼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 속에서의 반복적인 생활을 통해 우리들 중 누군가는 어느새 비밀스러운 존재가 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신두호
201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라진 입을 위한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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