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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1회)

곽재식
2020년 02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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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장보고가 망하고 15년이 지난 때(서기 861년을 말함), 한주(漢州) 지방(지금의 서울, 경기도, 충청북도 일부)에 장희(張姬)가 살고 있었다. 장희는 꼬마 여자아이였을 때부터 장보고의 무리 사이에 끼어,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심부름을 했다. 장희는 부지런히 일을 하여 제법 밑천을 모아 두었다.
 
장보고가 망하자 장희는 도망쳐서 한주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밑천을 축내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내다보니 장희는 마침내 모아놓은 재물이 모두 바닥난 것을 알게 되었다. 장희는 우선 마지막 한줌의 쌀로 밥을 지어 배부르게 든든히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집 안 창고가 아무것도 없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그런 즉, 당장 내일부터 굶게 될 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재물을 벌어야겠구나.”
 
장희는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 거리로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한해 전부터 그곳에서 도성인 서라벌로 갈 수 있는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장희처럼 장보고 아래에서, 청해진에서 일한 적이 있던 옛 부하들은 강물을 깊숙이 거슬러 이런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장보고 대사께서 염장에게 안타깝게 당한 뒤로, 장보고 대사의 재물과 배를 온 나라의 잡다한 무리들이 빼앗아 나누어 가졌으니 청해진은 갖가지 잡상인들의 차지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소.”
 
그 말을 듣고 누군가 “장보고가 망해 청해진이 다른 사람 차지가 된 것과, 강물을 따라 이곳에 배가 들어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렇게 안타까워하오?”라고 물으면, 장보고의 옛 부하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청해진이 잡상인들의 차지가 되는 바람에 거기에 밀려서 예전부터 일하던 장사꾼과 뱃사람들은 삼한 땅 구석구석 시골까지 들어가서 장사를 하게 되지 않았소? 한때는 큰 바다를 지나고 사막을 건너 서역까지 가던 사람들이 이제 이런 시골에 배를 타고 들어와 몇푼짜리 흥정이나 하게 되었으니, 안타깝다 아니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런 배가 나타나 팔고 사는 물건을 보는 것도 귀한 기회였다. 배가 드나들 때 마다 강물 가에는 서라벌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좋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근처 몇몇 마을 사람들은 구경을 하거나 장사를 하러 매번 북적거리며 모여들었다.
 
그곳을 한번 둘러본 장희는 목이 좋은 공터에 자리를 펴고 앉은 후에 깃발을 내 걸었다. 깃발에는 직접 이렇게 크게 글씨를 썼다.
 
“행해만사(行解萬事)”
 
즉 무슨 문제든지 말만 하면 다 풀어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장희는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불렀는데, 그 내용은 적당한 대가를 재물로 치르기만 하면 세상의 무슨 문제든지 자기가 풀어 주겠노라고 길 가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노랫소리가 나쁘지는 않았으므로 길 가는 사람들이 가끔 돌아보기는 하였다. 그러나 하루가 온종일 지나도록 장희에게 정말로 일을 맡기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장희는 아무 재물도 벌지 못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어떤 어린아이 하나가 윷놀이 도박을 하자고 찾아와서는 고기 반근을 내기에 걸었는데, 오직 그것을 땄을 뿐이었다.
 
“하루 종일 판을 벌려놓았으나 어찌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는가?”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장희는 하품을 하면서 한번 웃었다. 그러나 다행히 어린아이에게 딴 고기 반근이 있었으므로 우선 오늘 저녁은 이것으로 배를 채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희가 막 깃발을 내리고 자리를 걷어 치우려 하자, 한 남자가 장희 앞으로 뛰어왔다. 그는 한수생(漢水生)이었는데 무엇인가에 쫓겨서 오는 듯이 보였다. 한수생이 장희에게 말했다.
 
“낭자, 무슨 일이든 다 해주신다면 저를 지금 여기서 멀리 도망치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장희가 한수생을 언뜻 보니 얼굴이 허옇고 몸집이 흐늘거리는 것이 책이나 가득 쌓아두고 글만 읽은 듯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니 어깨와 팔은 굳세었으며 손에는 못이 박혀 있어 열심히 농사를 지은 기색도 있었다. 또한 한수생의 표정을 보니 이목구비가 멀끔히 잘생겼으면서도 순박한 데가 있었다.
 
장희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하기를,
 
‘봉을 잡았으니 이 남자를 적당히 구슬려 재물을 털어내면 한동안 먹을 것 걱정은 없겠구나.’
 
라며 기뻐하였다.
 
장희가 한수생에게 말했다.
 
“멀리 떠나려 한다면, 강물로 나아가 배를 타고 서쪽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오.”
 
“낭자, 나는 물길을 모르니, 부디 나를 살려주시오.”
 
“그렇다면 나를 따라 오시오.”
 
두 사람은 바쁘게 밤길을 걸었는데, 한수생은 무엇인가 겁나는 것이 있는지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다. 이윽고 움직이는 것이 곧 달려가는 듯해졌다. 그러니 장희의 발걸음은 느리지 않았는데도 한수생을 따라가기 어려워질 때가 많았다.
 
마침내, 장희가 물었다.
 
“도대체 누가 쫓아오기에 왜 도망치는 것이오?”
 
그러자 한수생이 길게 탄식하고 사연을 말하였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시 한수생이 사는 곳은 대여섯집 정도가 모여 사는 산속 마을이었다. 원래 그 마을 사람들은 뜻이 있어서 자신의 자식들을 학자나 벼슬아치로 기르기로 하였다.
 
“너희들은 다른 일은 하지 말고 오직 글공부만을 열심히 하거라.”
 
그리하여 그 마을 자식들은 농사 짓는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만 배우고 지냈다.
 
그런데, 작년 초에 어느 이상한 뱃사람이 마을에 나타나더니,
 
“이승에서 이 궁벽한 산골에 박혀 지내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오십년 인생살이가 끝나면 썩어 흙이 될 몸, 기왕에 한세상 사는 것 이런 골짜기에만 있지 말고 볼 것은 보고, 갈 곳은 가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 머나먼 서쪽에 가면 성스러운 사람들이 많으며 온갖 지혜에 밝은 현자들이 흔하다는 인도의 천축국(天竺國)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평생 이런 궁벽한 산속에서만 살다가 허무하게 그냥 늙어 죽기보다는 이왕에 태어난 삶, 인도의 천축국 같은 곳에 한번 가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라고 사람들을 꾀고 다녔다.
 
얼떨결에 온 마을 사람들이 거기에 휘말렸다. 그러다보니 며칠 사이에 부모들은 모두 여행 짐을 챙겨서 막대한 뱃삯을 내고 인도로 떠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우리는 인도 구경을 할 터이니, 너희들은 이제부터 너희들의 힘으로 살거라.”
 
그리하여 이 마을의 자식들은 하루 아침에 제 손으로 농사를 짓고 먹고살게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강가에 서라벌로 가는 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부모 없이 살게 된 한 마을 젊은이가 나섰다.
 
“서라벌에 가면, 천하에서 몰려드는 온갖 진귀한 음식과 향기로운 술들이 있고, 갖가지 치장을 한 아름다운 사람들과 한번 들으면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시를 읊는 시인들이 가득하다고 하오. 또한 온갖 학식을 갖춘 높은 학자들이 많으며, 갖가지 지혜를 써놓은 책 또한 많다고 하오. 그러니 우리 서라벌 구경을 한번 하지 않겠소?”
 
“본래 우리 고을에서 서라벌까지 가려면 길이 멀고 험했소. 그런데 이제 강가로만 내려가면 강물과 바다를 따라 바로 서라벌까지 가는 배가 들어오게 되었소. 그러니 이것은 분명 우리에게 서라벌에 가보라는 하늘의 뜻임이 틀림없소.”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서라벌 구경을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오직 한수생만은 여기에 반대했다.
 
“이제 우리 부모님들이 떠났으므로 우리 스스로 농사를 지어 우리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오. 금년에는 우리 손으로 처음 농사를 지어보는 것이니, 일이 익숙하지 않아 흉작이 될지 풍작이 될지 두렵다 할만 하오. 그러니 힘써 곡식과 재물을 아끼고 농사 일을 더 애써서 해야 하지 않겠소? 서라벌 나들이를 하며 재물을 써버린다면 일은 언제 하겠소?”
 
그러나 다른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들 한수생만을 남기고 서라벌로 구경을 떠났다. 한 마을 사람은 한수생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최소한 좋은 노래와 춤을 즐길 줄 알고, 또한 아름다운 시의 멋과 옛 성현의 지혜를 배우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그저 밥 먹을 걱정, 굶지 않을 걱정만 한다면 그것은 짐승의 삶이지, 사람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너 같이 오직 먹을 것 걱정, 재물 걱정만 하면서 짐승처럼 살 바에야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나으리라.”
 
이야기를 거기까지 듣던 장희가 한마디 중얼거렸다.
 
“본시 힘들여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따르기 싫은 법이요, 마음 놓고 지금 놀아도 된다는 말은 솔깃하여 따르고 싶은 법이지.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그럴 수밖에.”
 
계절이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도록 한수생은 논밭에서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마을의 다른 무리들은 떼 지어 서라벌의 시장터와 음식 파는 가게들, 학자들의 집과 도 닦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 등등을 여러차례 찾아가며 재물을 써 없앴다.
 
가끔 한수생이,
 
“이제라도 농사에 힘을 쓰지 않으면 위험하니, 이제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라고 하면, 마을 사람들은 서라벌에서 도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떠들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지금 고작 배를 채울 쌀을 한그릇치 더 거두느냐 마느냐를 두고 애를 태우고 있는데, 서라벌에서 현명한 학자들과 옛 스승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와 같이 한심한 짓이 없다. 무릇 지금 신라에는 얼마나 큰 일이 많으며, 얼마나 다급한 일이 많은 줄 아느냐? 신라에는 골품을 따지는 것이 나라를 해치는 큰 문제이며, 진골의 고귀한 사람들 간에는 옥좌를 노리는 역적들이 숨어 있으니 이 또한 천하에 난리가 나게 될 지도 모르는 큰 일이다. 뿐만 아니라, 북쪽에는 발해가 있고 남쪽에는 일본이 있어 삼한의 근심거리가 아닌가? 너는 이런 일을 얼마나 아느냐? 이렇게 온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일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지금 당장 쌀농사를 조금더 잘 짓느냐 못 짓느냐를 두고 너는 아등바등거리고 있으니, 너처럼 멍청한 것은 한평생을 그렇게 눈앞의 밥만 쳐다보며 살 뿐이다. 남이 짜놓은 그물에 걸린 것과 같이 그저 배를 채우려고 일만 하면 다인 줄 아는 것이 애처로운 너의 삶이 아닌가? 고귀한 지혜의 말을 따를 줄도 모르고, 천하의 중대한 일이 어찌 돌아가는 지도 모르면서, 그저 그렇게 시키는 대로 일만 해서 재물 모으는 것만 아는 멍청한 짐승 같은 삶이, 너의 삶이다.”
 
한수생이 한두번쯤 거기에다 대고 뭐라고 더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서라벌에 드나드는 마을 사람들은 “시를 읊는 것도 모르고, 노래가 아름다운 것도 모르며, 그저 모든 것이 밥 먹는 일인 줄로만 아는 소 같은 놈이다”라고 비웃을 뿐이었으므로 한수생은 이내 멈추었다.
 
그러다 마침내 겨울이 되었다.


 


곽재식
2006년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지상 최대의 내기』 등 다수의 소설과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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