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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들여다보기

한여진
2020년 02월 12일
 



 
우물 들여다보기


 
건물 뒤편. 다닥다닥 붙어있는 실외기 사이 한 가족이 산다. 
 
캔 하나를 까서 놓고 오면 잠시 후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잔뜩 쏘아보는 엄마고양이가 나오고. 그뒤를 이어 아기들이 나온다. 경쾌하고 서툰 발걸음으로. 흰색, 금색, 회색, 검정색이 뒤섞인 털뭉치들이 겨울 찬바람 앞에 일순 부풀어오른다. 꼬질꼬질하지만 나름대로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차림새이다. 엄마는 아기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나를 노려보다가 배가 부른 아기들이 서로 뒹굴고 멀리 뛰어나갈 기세를 보이자 허겁지겁 눈길을 돌린다. 
 
몰래 버린 가구들과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건축자재들, 깨진 화단 사이를 오가며 아기들은 즐겁다. 사방팔방 놀아볼 것 천지. 저기 도로변에도 가보고 싶고, 높은 곳에도 뛰어올라보고 싶고, 아까부터 큰 덩치를 가진 존재가 홀린 표정으로 여기를 쳐다보고 있는지라 가까이 가서 구경도 하고 싶은데 엄마는 초초하고 불안한 몸짓으로 아기들을 부른다. 엄마가 이해되지는 않지만 말을 안 들으면 목덜미를 물려 끌려오거나 솜방망이 펀치가 날아올 것이기에 아기들은 또 우다다 엄마의 뒤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나를 더 흘겨보고 엄마는 아기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건물 뒤편에도 이렇게 누군가 산다. 
 
세상만사 궁금한 것 없는 아이는 없어서 나도 ‘왜’를 입에 달고 살았다. 왜 우리는 철수보다 늦게 뛰기 시작한 영희의 속도를 구해야만 하는지, 왜 성냥개비 한개를 이동해 가장 넓은 도형을 만들어야만 하는지, 간혹 따라가던 성당에서 사람들은 왜 눈을 감고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내려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옵니다’ 하는지, 과연 그들이 무슨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건지, 그것들이 매일 밤 텔레비전에 보이던 파괴와 폭력과 비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어떤 아저씨가 어린 여자아이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는데, 그건 봐선 안 될 것이었는데, 왜 다들 그만 잊어버리라고만 하는지. 눈앞을 귀찮게 날아다니는 초파리를 손을 뻗어 내쫒으며 동시에 초파리가 좀더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게 가능한지. 모든 것들이 종국에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학급 분위기를 망쳤다며 자주 반성문을 썼고 엄마는 나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른들은 다 알 텐데 왜 묻는 말에는 대답해주지 않고 꼭 숙제는 했는지, 밥은 싹싹 다 먹었는지, 그릇은 설거지통에 넣어놓았는지, 일기는 밀리지 않았는지, 이불은 개었는지, 양치질은 삼분간 했는지 등등 어쩜 똑같은 이야기만 끊임없이 반복하는지. 어느 날 엄마에게 왜 내 말은 듣지 않는 거냐고 소리친 적이 있다. 깜짝 놀란 엄마에게 그건 너가 어른이 되면, 크면 다 알게 될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아무 걱정 말라는 답변을 들었던 것 같다. 
 
엄마가 말한 ‘지금’의 순간이 한참 지나도 여전히 아는 것은 없고 사는 건 힘겨워서 또 물었다. 왜 말해주지 않았는지. 친구의 속도를 계산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빨리 뛰어 결승점에 도착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성냥개비의 빨간 머리와 긴 꼬리에 골몰해봤자 우리들의 집은 넓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슬픔보다 훨씬 크고 훨씬 무궁한 슬픔이 저 밖에 있다는 것을. 신은 늘 한 박자 늦게 오거나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도 우리는 내일을 위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너는 그 시간에 거기서 놀아도 괜찮다고 아무 잘못이 없다고 그 아저씨는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왜 그때는 말해주지 않았는지. 
 
친구의 아버지는 운동권의 유명한 인사였는데 그래서 집에 오는 대신 높은 건물이나 크레인에 올라 소리를 질렀으며 종종 몸을 다치고 낯선 사람들이 무서운 얼굴로 집에 찾아오기도 하는 일생을 보냈지만 우리에게는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라고 할 때와 ‘그래선 안 돼’라고 할 때는 언제인지, 우리가 단호해져야 할 때의 표정과 그때 눈썹의 위치는 어디쯤이 좋을지. 근로계약서를 쓰기 전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어떤 법은 누구를 지키지만 반대로 누구를 지키지 않는 데 쓰이기도 한다는 것을. ‘아 더이상은 못해먹겠네!’ 할 때,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는 거실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뒤편 소파에 앉아 있었고 리모컨을 계속해서 눌러대자 무수히 많은 채널과 풍경과 사람과 말들이 지나갔다.
 
‘나 그만둘까?’
 
주어를 생략하며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건 회사이거나, 열심히 사는 일이거나, 글 쓰는 일이거나, 레고를 사 모으는 일이거나, 사람 관계일 수도 있었을 텐데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니들 세대는 좀 다를 줄 알았어.’ 
 
느닷없었지만 마냥 뜻밖이지는 않았던 그 말과 함께 화면은 계속 바뀌었고 화난 앵커가, 폭소하는 개그맨이, 발랄한 아이돌이, 억울한 스포츠맨이 지나갔다. 슬픈 사연들 뒤로 몸에 좋은 제철음식이 만들어지고, 누군가의 우승 소식이 들리면 금방 또 무너져가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다음도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나름) 오래 겪었지만 어른이 되지는 못했고 모르는 것만 점점 많아져 뭔가 사기당한 기분도 든다. 한편으로는 모든 걸 다 알 거라는 오해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존재란 슬프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은 겨우. 고양이가 사람 때문에 죽고, 사람 때문에 살고, 하지만 사람이 고양이 때문에 웃기도 하고 내일도 살고자 하는 이 어렴풋한 슬픈 세계는 사실 어른들도 차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거대한 비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온 정신을 다해 생각해봐도 단어를 고르고 골라도 그저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길고양이가 숨어들던 모습, 깜짝 놀라던 엄마의 모습, 그런 것들이 세상의 비밀 때문이라면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 
 
하지만 몰라도 되는 때가 있던 것처럼 모르면 안 될 때가 있다. ‘왜’라고 묻던 나와 오늘의 나는 똑같은데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일이, 비밀들이, 말해지지 않았을 뿐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 우리는 계속해서 묻는다.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생각해내기 위해서. 그것이 겨우 목덜미를 물고 안전하다고 믿는 곳으로 끌고 가는 마음, 세상 풍파와 불행들이 너를 비켜가길 바랬다는 말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에 너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일일 뿐이래도.
 
 


한여진
2019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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