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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고금숙
2020년 03월 10일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1)


“우리의 저항이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나치가 ‘인간 도살장’을 운영하며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큼의 지옥이 될 수 있는지를 몸소 시전할 때 터져나온 질문이다. 나는 저 짧은 문장이 징글징글할 만큼 짠했다. 이미 제 삶을 내놓은 자들이 서로를 향해, ‘우리의’ 저항이 무슨 소용이냐고 간절하게 답을 구하는 외로운 순간들. 조감도처럼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타임슬립처럼 시간을 빠르게 되감기하면 한 인간이 짊어졌을 무수한 ‘현타’의 순간들이 지워진다. 백장미단도 그들 중 하나였다.  

백장미단은 나치에 대항하여 뮌헨 대학교의 학생들과 교수가 만든 비폭력 저항 그룹이다. 그들의 저항에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같은 스펙터클도 없고 ‘쉰들러 리스트’처럼 유대인의 목숨을 구해내는 성과도 없다. 고작 교내에(뮌헨 시내도 아니고!) 나치의 반인륜적 행위와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뿌린 후 전원 사형당했다. 그러니 우리의 저항이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거냐고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백장미단에 속한 22살 조피 숄(Sophia Scholl)의 목숨 값을 치르지 않고도 결국 스탈린그란드 전투에서 독일은 패했을 거고 연합군은 원자폭탄을 터뜨렸을 거다.

 

‘지구 이생망’ 시대의 실천

텀블러, 스테인리스 빨대, 젓가락, 손수건, 생리컵, 반찬통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다가 까무룩 자괴감에 빠진다. 이 보따리들이 죄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런들 저런들 2050년에는 바다 속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총량이 더 무거워지고,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북극은 결국 다 녹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영구 동토층이 녹아내리며 생성된 호수 근처에서는 라이터만 켜도 화염이 솟구친다. 동토층에 봉인돼 있던 메탄이 풀려나 흥청망청 공기를 떠다니기 때문이다. 고압 송전탑 근처에 폐형광등을 가져가면 강력한 전자파 때문에 절로 불이 켜지는 것처럼. 메탄은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에 비해 21배나 강력한 온실가스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에 대해 스멀스멀 이야기한다. 쉽게 말해 더워서 에어컨을 켜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지구는 또 더워지고 그러면 또 에어컨을 켜고…… 이런 연쇄반응이 음의 되먹임이다. 한개의 도미노가 무너지면 시스템이 와르르 붕괴한다. 이 지경에도 세계는 완고하고도 멀쩡하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느니, 앞으로 10년 안에 급진적인 방향 선회를 못하면 인류 대멸종이라는데 쉬이 와닿지 않는다. 여기서 퀴즈 하나. 1분에 두배씩 증식하는 세균이 들어 있는 유리병이 있다. 이 병이 12시에 꽉 찼다고 할 때 세균이 병의 절반을 채우는 시점은 언제일까. 답은 11시 반이 아니라 12시 1분 전인 11시 59분이다. 11시 59분을 사는 세균들은 곧 멸망하리라는 경고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트럼프는 기후변화로 미국에 지독한 한파가 닥친 지난해 겨울 “기후온난화로 지구가 따뜻해지면 오히려 좋겠네”라는 요지의 트윗을 날렸다.

이쯤 되면 지구의 이번 생애는 망한 것이 아닐까. 내가 들입다 싸들고 다니는 플라스틱 프리 물건들, 애먼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발걸음, 떡 진 정수리에 전분을 뿌려가며 나흘에 한번씩 감는 머리, 손에 피를 묻혀가며 끼워 넣는 생리컵. 이런 실천들은 한겨울의 에어컨만큼이나 소용없을진저, 나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람? 슈퍼마켓에서 계산하다 말고 브로콜리를 받친 스티로폼 접시를 재사용해달라고 읍소하다 존재론적 고뇌에 빠진다. 이 자디잔 저항이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누구나 홀로 죽는다』2)라는 책에는 고작 18통의 반 나치 엽서를 배포하다 사형당하는 부부가 나온다. 그들은 이 저항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에 “우리 자신에게요.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의로운 인간이었다고 느끼게 될 거니까요. (…) 이 세상에 괜히, 헛되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라고 답한다. 이 대목에서 내 마음은 오롯이 가뿐해지고 사뿐해졌다. 손자병법식으로 말하자면 “이기는 것은 적에게 달려 있고, 지지 않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쯤의 태도가 절로 장착되었달까. 아니 뭐가 그리 비장해? 고작 엽서 돌리기에 목숨을 내놓고도 자신에게 의로운 인간이면 됐다는 ‘멘탈 갑’ 앞에서 무슨 소용을 찾는단 말인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이 시대의 저항은 게슈타포에게 쫓기지도 않고 목숨을 내놓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뻐근한 몸을 위해 스트레칭하듯 가볍게 혹은 노후를 위해 적금한다는 마음으로 실천해보자. 내 노력이 쓸모없다고 한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나로 말하자면 다음 세대와는 상관없는 무자식 상팔자에, 화석연료에 쩔어 에너지를 탕진한 시대에 젊은 한때를 보냈다. 개인의 실천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따져 묻다니 염치도 없지. 우리 세대의 인간들은 더이상 시니컬하게 굴거나 작은 실천의 쓸모를 셈할 자격이 안 된다. 「나는 자연인이다」(MBN 방송)에 나오는 분들만 빼면 우리 모두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윤리와 책임감을 껴안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모이고 들끓고 요구하는 사회적 물결에 참여하는 일이다. 


우리의 행동은 서로를 홀린다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행동을 촉구하며 청소년 등교 거부 시위를 일으킨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작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다. 그 배 위에서 “돌려 말하지 않겠다. 개인의 활동은 쓸모없지 않은가”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의견을 형성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답했다. 그녀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없는 배의 갑판에서 ‘대변만 담아요’라고 써진 양동이를 들고 웃었다. 그 행동이 북극의 빙하를 ‘얼음’ 하고 보존하지는 못할지언정 사람을 통한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을 일으킨다. 유럽 전역에 비행기 여행의 탄소발자국을 부끄러워하며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 운동이 시작됐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최근 기후변화를 걱정해 스웨덴 국민 23%가 항공기 여행을 줄였다고 분석했다.

우리의 행동은 서로를 홀린다. 심지어 동의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선풍기에 흔들리는 코털처럼 영향이 가닿는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 사회적 동물이냐면, 비행기에서 모르는 옆 사람이 물건을 사도 덩달아 구매할 확률이 30%나 높아진다. 나 역시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 저가 항공기에서 아무것도 안 먹겠다 하고선 옆 사람의 컵라면 냄새에 무너진 적이…… 툰베리의 대답처럼 개인의 행동은 여론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모아 집단행동을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된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상의 룰을 바꾸는 것은 사람의 머릿수, 즉 인해전술이다. 연쇄반응에서 스스로 폭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질량을 뜻하는 ‘임계질량’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고 무력한 실천들이 이어지고 머릿수에 머릿수를 더하는 양의 되먹임이 사람을 타고 흐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잘한 실천이 대체 뭔 소용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서로가 서로를 번식할 때라고 답하겠다. A4 종이를 42번 연속해서 접으면 지구부터 달까지의 거리보다 더 두꺼운 두께가 된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는 기하급수의 번식이란 아인슈타인의 표현처럼 불가사의할 만큼이나 엄청나다.


망원동 에코하우스에서 별일 없이 산다

나는 몇년 전 친구와 함께 망원동의 25년 된 다세대 빌라를 구입했다. 당시 그 동네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시민단체에 근무한 당시 내 연봉이 2천만원이 안 됐는데 1년에 전셋값이 2천만원 뛰었다. 한편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는 밀양에 가면 “송전탑 반대하는 외부세력은 전기 안 쓰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 기회(?)에 깔고 있던 전셋값에 약간 더 돈을 보태 덜컥 집을 사버렸다. 미쳐 날뛰는 전셋값을 감당할 수도 없었고 내 뜻대로 집을 고쳐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대안적인 공간을 만들고도 싶었다.

오래된 붉은 벽돌 빌라의 벽에 쌀겨를 구워 숯으로 만든 ‘훈탄’으로 단열을 보강했다. 바람이 새지 않는 고기밀 창호를 설치하고 에너지 효율 1등급의 콘덴싱 보일러를 달았다. 수도꼭지마다 절수기를 달고 4.2리터 물을 사용하는 초절수 양변기를 설치했다.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6리터 절수형 변기를 설치해야 하지만 보통 다세대 빌라에는 8~12리터형 일반 양변기가 설치된다.) 그에 더해 사용한 물을 양변기에서 재활용하고자 알아보니 이미 그렇게 나온 친환경 변기가 있었다. 문제는 대통령특허상을 받고도 유통이 안 돼 망해버렸다는 현실. 나는 철물점에서 세탁기 호스를 사와 세면대 아래 설치하고 양변기 물탱크로 연결했다. 세면대에서 사용 후 버려지는 물을 모아 양변기 물로 내리는 원리다. 업자를 모셔와 괴발개발 그림을 그려 설명했더니 ‘참말로, 뭘 꼭 그렇게까지’라는 표정으로 설치를 해주셨다. 벽지는 PVC 플라스틱인 주제에 신분을 위조한 실크벽지 대신 합지(종이) 벽지를 선택했다. 그리고 베란다에는 서울시 보조금에 자비를 보태 미니 태양광을 달았다. 

서울시 에코마일리지에 가입하면 가스, 전기, 수도 등 우리 집 에너지 사용량과 그 증감 추이를 알 수 있다. 어느 날 가입한 사실조차 잊고 있던 에코마일리지에서 에너지 절약자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홈페이지는 우리가 1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 사용량이 이전 거주인에 비해 무려 90% 이상 줄었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그러니까 같은 집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에너지의 10%만으로 산 것이다. 태양광이 ‘열일’하는 봄과 가을에는 가끔 전기세가 870원을 찍기도 한다. 전기세가 최고로 많이 나오는 한여름에는 약 8천원 정도 나온다. 가끔 맷돌을 돌리며 조선시대 모양새로 사냐고 궁금해들 하는데, 여름철 전기세가 말해주듯 우리 집에는 에어컨도 있고 청소기, TV 등 웬만한 가전제품은 다 있다. 다만 정수기, 스피커, 비데, 원두 그라인더 등 전기가 없어도 쓸 만한 물건은 비전력 제품을 사용한다. 

그 경험을 담아 『망원동 에코하우스』를 썼다. 서울 한복판의 오래된 다세대 빌라에서 친환경 리모델링을 하자니 친환경 건축 정보가 별 소용없었다. 마치 세면대 물을 재활용하는 이태리 디자이너의 양변기를 나폴리 항에서 실어와 인천 부둣가에서 받는 것 같달까. 신재생에너지인 지열 발전기를 설치하려면 15평의 기계실이 필요한데 우리 집 전체 평수가 15평이었다. 돈도 땅도 없는 도시 서민이 적용할 만한 친환경 기술이 많지 않았다. 도시에서 가장 편리하고도 가장 친환경적인 공간은 최신식 스마트 장치가 깔린 아파트다. 대기전력을 한번에 차단할 수 있고 빠져나가는 열을 재활용하는 열회수 장치나 사용한 물을 재활용하는 ‘중수도’ 등이 설치돼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돈 없는 서민이 서울의 최신식 아파트에 어떻게 입성하나. 1억이 넘는 테슬라 전기차가 경유차보다 친환경적인들 남의 떡일 뿐. (테슬라 대신 내게는 ‘망원동 SUV’로 이름 붙인 자전거가 있다.) 내가 망원동 빌라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친환경적으로 살 수 있다고, 그러니 우리 ‘노오력’해보자는 메시지였다. 나는 그 집에서 여전히 별일 없이 산다.

요즘 나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는 활동에 꽂혔다. 장바구니, 텀블러는 예삿일이고 천에 밀랍을 입혀 랩처럼 사용할 수 있는 밀랍랩, 날만 리필해 쓰는 스테인리스 면도기, 10년째 잉크를 리필해 쓰는 만년필, 나일론 실이 아닌 명주실 치실, 대나무 칫솔, 직접 만들어서 재사용 병에 담아 쓰는 치약과 화장품, 아크릴 수세미가 아닌 천연 수세미, 물티슈 대신 손수건, 휴지 대신 비전력 비데, 생리대 대신 생리컵, 티백 대신 차망, 생수 대신 비전력 정수기를 이용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저항이 무슨 소용이냐고 울부짖을 필요가 없다. 얼마나 ‘신박’하고 돈도 안 들고 몸에도 건강한지 나 혼자만 하기 아까울 지경이니까. 삶은 간소해지고 생활비는 줄어들고 기계 대신 몸을 쓰다보니 늙어서 연금보다 중요하다는 근육이 단련된다. 

참 좋길래 동네 사람들을 모아 망원시장에서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기증받아 대여하거나 동네 까페에서 자기 용기에 내용물만 담아가는 세제 소분샵을 운영하게 됐다. 또한 ‘쓰레기덕질’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람들과는,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주는 까페를 모니터링하고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요구하는 갖가지 활동을 했다. 거리에 버려진 컵을 주워 브랜드 별로 정리한 후 제일 많이 버려진 까페에 되돌려주는 ‘플라스틱 컵 어택’이나 버려진 컵에 예쁜 식물을 심어 국회의원들에게 재활용 법 개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손편지를 붙여 배달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마트에서 이중포장과 과대포장을 벗겨내 되돌려주는 ‘플라스틱 어택’ 등 서로 모여 직접 행동도 진행했다. 나만 해도 좋지만 같이 모여서 하면 제도적 변화를 가져오기 쉽다. 제도적 밑받침이 되면 일회용을 기본값으로 삼던 세상의 룰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담아 「쓰레기덕후소셜클럽」이라는 다큐를 만들었고 내년 여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옥랑상’ 수상 작품으로 상영된다. 


가장 마지막으로 오는 자들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 때

이 실천들이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사회문화적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택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고 있다. 삶을 돌본다는 감각을 경험할 짬도 없이 초과노동과 야간노동에 시간을 보내고 월세를 내기 위해 생활비를 아끼며 편의점과 배달음식에 삶을 아웃소싱하는 사람들, 그래서 역설적으로 쓰레기가 되는 생활로 삶을 버티는 사람들. 우리는 가방에 컵라면과 일회용 젓가락을 싸들고 12시간씩 홀로 일하다 죽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 이들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 때에야 개인의 행동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저항하는 밑감이 된다. 그러자면 생태적 움직임(걷기, 자전거 타기 등)과 탄소를 줄이는 친환경 행동에 기본소득을 연계하는 생태적 기본소득,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재생에너지, 플라스틱 대안, 환경교육 등 환경 일자리에 대거 자원을 투입하는 ‘그린뉴딜’이 필요하다. 우리의 실천이 타래를 이루어 각자의 삶을 바꾸고 선거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도미노가 돼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뉴딜 정책은 경제 대공황에서 세계를 구했지만 그린뉴딜은 아마도 인류의 멸종에서 우리를 구해내리라. 기후위기에 대한 저항은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가볍고 쉬운 실천인 반면 실패할 경우 역사적으로 가장 큰 기회비용을 치를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달렸으니까. 아, 그러니까 따지지 말고 지금 당장 뭐라도 실천하고 그 실천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는 삶을 살아요. 이 글이 조금이나마 그 마음이 들게 한다면 좋겠습니다.

 


 

남는 질문들

 

3 도심의 번듯한 스마트 주택에 살지 않아도 가능한 친환경적 삶의 구체적 사례가 생생해서 재밌게 읽었다. 독자들이 가장 간단히 시도해볼 수 있을 실천 한두개 정도만 소개해달라.
 
고금숙 첫째, 이사할 때 코드를 빼서 싸들고 갈 수 있는 베란다 거치형 미니 태양광을 설치한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으로 자부담 비용이 1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남향집이 아니거나 반지하 거주자의 경우 설치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태양광 펀드에 가입하거나 태양광 발전 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한다. 이 경우 펀드 이자 혹은 조합원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둘째, 비전력 정수기와 비전력 비데 사용. 비전력 정수기는 비전력 공방에서 만들어서 사용 중인데 물맛도 좋고 설치도 간편하다. 무엇보다 10년 동안 필터를 갈지 않아도 된다. 정수기와 비데는 본 기능보다 물과 변좌를 데우는 데 많은 전기를 사용한다. 밤에 잘 때라도 전원을 끈다.
 
3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다보면 함께 나눌 만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고금숙 ‘플라스틱 어택’ 때 비닐과 포장재로 코스튬을 하고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핼러윈 데이인 줄 알았다. 가수 박진영 씨의 비닐 바지는 저리 가라였다. ‘플라스틱 컵 어택’에 참여한 한 초등학생이 자기가 해본 체험학습(?) 중 가장 재밌었다고 연락을 했다. 이렇게 열심히 주운 800여개의 컵을 일일이 씻어 재활용센터에 재활용해달라고 연락했는데 모두들 테이크아웃 컵은 안 받는다고 그냥 버리라고 했다. 아, 정말로 재활용이 안 되는 것이 많구나 싶어 절망하던 차에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워크숍에 사용한다고 해서 직접 배달했다.
 
3 ‘그린뉴딜’을 정책화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정당을 통하거나 조직을 통해서 그것을 구체화할 수밖에 없겠다 싶지만) 그에 대해 좀더 들을 수 있을까? 덧붙여 개인이 (생활 실천뿐 아니라) ‘그린뉴딜’ 정책화에 참여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소개해주면 좋겠다.
 
고금숙 ‘그린뉴딜’은 정치다. 정치 구조가 변해야 가능하다. 기후위기 문제를 화상 입은 것처럼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이 대거 정치에 진출해야 한다. 비례연동형 선거제 시행, 선거권 참여 연령 낮추기를 통해 중년 아저씨들의 ‘그들만의 정치’가 깨져야 한다. 제발 내년 총선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환경을 위한 일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는 ‘셀프 그린뉴딜’은 어떨까 싶다. 스스로 대안이 되어 적당히 벌고 잘사는 모습을 구현해달라. 그 자체가 희망이자 그린뉴딜의 가능성이다.

 

 
고금숙
환경활동가. 망원동과 온라인을 기반으로 ‘쓰레기 덕질’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망원동 에코 하우스』(이후 2015)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슬로비 2019) 등이 있다.
 

 

 
1) 성소수자 인권정책 운동의 구호를 차용했다.

2) 한스 팔라다 지음, 이수연 옮김, 씨네21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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