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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한 일상을 위하여

오연재
2020년 03월 10일



그저 평범한 일상을 위하여

 

나는 2002년생, 올해 19살인 오연재다. 서울 마포구의 성미산마을에서 네살 때부터 자랐고 현재 성미산학교에 재학 중이다.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지난 3, 5, 9월에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열었고, 최근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및 조명래 환경부장관을 만나 기후위기 관련한 청소년의 요구사항을 직접 전달했다. 현재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의 청소년 기후활동을 조직하고 있으며,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와, 청소년기후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나의 미래를, 일상을 지키는 행동이다. 

2018년 1월 26일 엄마에게 문자 한통이 왔다. ‘큰일 났어. 빨리 집에 와줘.’ 그해 겨울은 모두를 추위에 떨게 했던 한파가 한반도에 찾아온 해였다. 한파로 인해 집 하수관이 얼어 윗집에서 사용한 물이 우리 집 베란다에 그대로 역류했다. 베란다의 물을 퍼내지 않으면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역류하는 즉시 퍼내야 했다. 물이 언제 역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그해 겨울을 보냈다. 집을 비워야 할 때는 지인에게 집을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6년간 빌라에 살며 처음 겪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빙하가 녹아 북극곰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투발루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어서 지구는 곧 멸망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이런 이야기는 나와는 관련 없는,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처럼 이야기되어 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몇년 들어 한파, 폭염, 태풍, 미세먼지와 같은 기상이변으로 크고 작은 불편이 나의 일상에 찾아온 것을 느낀다. 지금은 그저 기상이변으로 인한 불편일지라도 기후위기라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으로 이어져 내 생명을 위협하는 신호로 여겨진다. 내가 꿈꾸는 미래조차 기후변화로 인해 위협받고 있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안전하게 할 어떤 대안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아직 19살인 나에게 기후변화는 일상과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그래서, 이렇게 모였다

지난 2015년 약 190여개국이 모인 ‘파리기후협약’에서는 ‘지구온도 상승을 적어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하지 않으면 파국을 마주할 것’이라며 전세계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48차 총회에서는 파리협약에서 제시하는 2도 이내도 피해가 너무 클 것이기에 ‘1.5도 이내로 온도 상승을 제한해야 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지구온도는 1도 이상 올랐고 1.5도까지 채 8년도 남지 않았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최악의 물난리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스위스의 알프스에서는 빙하가 90%나 녹아내려 빙하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파키스탄의 사막에는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고, 호주에서는 높아진 기온 때문에 시작된 산불로 보호구역의 코알라 600마리 중 350마리가 죽었다. 2019년 현재 기후위기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피해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과 김해에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예측과 기상이변으로 쌀농가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의 미래는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정부와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열심히 과거의 성장만을 말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그게 인생의 답이라고 말한다. 기후위기가 우리가 살아갈 환경사회 전반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데 정부는 석탄 사용이나 탄소 배출에 무관심한 기업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정부의 장기적인 기후 관련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청소년의 목소리나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현재의 성장에만 손뼉 치는 기성세대들이 우리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데 우리의 의견은 어디에서도 중요시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래서, 이렇게 모였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 문제의 시급성에 공감한 한국의 청소년들이 2018년 8월에 만든 조직이다.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며 당사자들이 모여 정부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에게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가 꿈꿀 미래를 위해, 안전한 일상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해, 다양한 지역과 연령대의 청소년 약 75명이 모여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고 거리로 나가 행동하고 있다.


사회가 말하는 청소년, 내가 말하는 청소년

나는 일반 공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을 선택했다. 12년제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는 생태, 환경, 인권, 다양성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짜여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연과 친구가 되어보고 물건에 대해, 쓰레기와 과잉생산에 대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전환프로젝트’1)라는 활동을 통해서는 에너지와 적정기술에 대해 공부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지속 가능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고 나아가 같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청소년기후행동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 대안교육 과정에서의 고민으로 시작해 기후행동단 활동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렇지 않은 동료들도 있다. 실제로 행동단에는 공교육 현장의 청소년들이 더 많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느낀 문제의식으로 모여 기후위기로 인해 가장 오랜 시간 피해를 볼, 지금 대응하지 않았을 때의 책임을 고스란히 지어야 하는 청소년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사회에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수업 때문에 회의는 주말에 진행해야 하고, 시험기간에는 활동 자체가 중지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결석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눈치 게임을 해야만 한다. 한편,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되던 우리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참여를 한다는 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어른들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청소년기후행동은 단지 ‘학생’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나마 나은 경우에는 ‘미래세대’ ‘미래시민’으로 칭해지곤 한다.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더 먼 미래를 살아갈 존재가 맞는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주체적인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미래세대’라는 말은 ‘미래에 살아갈 사람’으로만 들릴 뿐이다. 청소년은 어른들이 남긴 미래를 수동적으로 물려받는 존재가 아닌 현재를 함께 만들어갈 의무가 있는 주체이다. 기후위기는 현재 우리 모두에게 닥친 문제이다. 우리 모두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당사자이며 우리 모두가 현세대이고 곧 미래세대이다.

지난 10월 학교에서 제주도로 이동학습을 갔다. 제주도의 아침 바다는 정말 좋았다. 서울의 바쁜 일상은 나를 무기력에 빠지게 했고, 기후위기는 답이 없는 공허함에 가까웠다. 며칠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고민하고 행동해도 바뀌지 않는 세상이 미웠고, 답답했다. 그런 시기에 방문한 제주도는 느리게 흘렀다. 주 대중교통은 버스뿐이었고 그마저도 배차시간이 길었다. 버스를 놓쳐 정류장에서 40분을 기다리기도 했다. 제주의 밤은 어두웠고 해가 지면 잠에 들었다. 그런 생활이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작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모두가 자는 새벽 혼자 자전거 끌고 나와 바람을 맞으며 보는 일출이 그렇게도 좋았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제주도는 많이 아팠다. 제2공항 건설, 비자림로 확장공사, 동물테마파크, 강정 해군기지까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름다운 곳이, 아름답도록 남을 수 있는 곳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매일 아침 8시 제주도청 앞에서 농성을 하며 싸우는 이가 있었다. 비자림로의 나무가 베어진다며 자다 말고 일어나 나무를 지키러 나가는 이도 있었다. 매일 아침 해군기지 앞에서 백배를 하며 구럼비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지만 제주도청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소수자의 이야기는 쉽게 배제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이든 외면해버리는 현실에 다시 한번 실망했고 나 또한 작은 목소리들을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광화문과 국회 앞에서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누군가가 자리를 지킨다. 피켓을 들고, 마이크를 쥐고 촛불을 모은다. 각자의 이야기와 분노, 외침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왜 이렇게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을까? 삭발과 단식투쟁, 투신자살이 당연해진 사회가 왜 낯설지 않을까? 여러 의문이 든다. 


나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19년 동안 나는 내 자신보다 남들을 위해 살아왔다. 남들이 좋아해주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고 싶다. 지금까지 지구의 자원을 부족함 없이 사용했기 때문에 나에게 기후위기는 스스로에게 떳떳해 질 수 없는 문제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을 시작하고 나이, 직업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가끔은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야 했고, 과분한 자리에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자리는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의 능력을 따지게도 만들었다. 지식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았기에 대화 속에서 나의 한계를 마주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무능력한 사람인 것만 같았다. 기후행동의 원년 멤버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나는 더욱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멋있는 말을, 더 많은 지식을, 더 영향력 있는 발언을 하는 완벽한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완벽이라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를 앞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고 평가하며 나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기만 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글이 써지지 않았고,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의욕만 잃어가며 자존감은 점점 더 바닥을 쳤다.

이런 나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스스로에게 더욱 솔직해지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부족한 점에 좌절하지 않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앞으로 나의 무력함을 마주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다.

나는 어떻게 생태적인 삶을 살 것인가도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모두가 필수적으로 비행기 보이콧을 하고, 채식을 하고,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패스트 패션과 트렌드를 따르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물건을 살 때, 일회용품을 살 때 그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트렌드에 쉽게 휩쓸리고, 마케팅에 쉽게 유혹당한다. 화학물질 덩어리인 화장품을 좋아하며, 대량생산과 대량폐기가 이루어지는 값싼 옷을 좋아한다. 동시에 나는 ‘2050넷제로’(Net Zero)2) 를 외치고 있다. 처음에는 두개의 얼굴을 가진 것 같은 나를 마주하며 괴리감과 모순을 느꼈다. 분명히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나의 습관과 생활 패턴이 밉기만 했다. 그리고 사실 아직까지도 고민이다. 나의 욕구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소비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도 진심으로 고민하고 행동할 것이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유별나고 예민하며 완벽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삶을 함께 꾸려갔으면 좋겠다.


 


 

남는 질문들

 

3 결석시위 현장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달라. 어떤 프로그램을 갖고 시위를 진행했는지 그때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오연재 한국에서는 2019년 3월 15일, 5월 24일, 9월 27일 총 세차례에 걸쳐 대규모 결석시위를 진행했다. 기존 시위가 가지고 있는 위협감과 거부감을 없애고 우리만의 즐거운 결석시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가을 운동회 컨셉으로 진행했다. 석탄 공격을 피하는 석탄 차기, 모두 한마음으로 지구를 구하자는 취지의 합동 제기차기, 여러 사람이 차례로 크기가 줄어드는 발판에 올라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지구의 면적이 좁아지고 있음을 체험한 ‘지구는 만원’,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머무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 박 터트리기 등의 게임을 마련했다. 또한 청소년들이 평가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점수를 발표하고 ‘성적표’도 공개했다. 이후 청와대로 행진하여 즐거운 팔박자 구호와 함께 성적표 그리고 우리의 요청이 담긴 ‘기후 통신문’을 전달했다. 운동회 컨셉 덕분에 현장이 즐거울 수 있었다.
 
3 기후행동 중 결석시위라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까? 해외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바통을 이어받은 것인지, 혹은 다른 방안이 없기 때문인지. 
 
오연재 결석시위’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청소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행동이다.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 앞에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는 2018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그것이 곧 전세계로 퍼져 결석시위의 시작이 되었다. 교육을 받을 의무가 있는 청소년이 결석을 하고 시위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결석시위가 주는 대중성과 영향력이 있다. 결석을 해야만 사회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결석시위는 청소년 당사자의 이야기를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3 청소년기후행동에서 전개하고 있는 다른 행동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를 직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변화를 찾기 위해 행동한다.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청소년 동료들을 모으고, 사회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2020년에는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청소년은 사회에서 투표권이나 정책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 당사자로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 활동가. 
현재 성미산학교에 재학 중이다.
 

 

 
1) 성미산학교 중등 교육과정으로, 도시에서의 '생태적 자립'과 '용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스로와 학교, 더 나아가 지역을 돌아보며 자립과 공존의 기술을 익히는 프로젝트이다. 

2)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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