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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동물로부터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면

김미정
2020년 03월 10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천만명인 시대라고 한다. 이 숫자는, 1인 가구 증가로 상징되는 가족구조 재편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편 실제로 이행된 것은 없지만, 2017년 5월 대선후보들이 반려동물 관련 공약을 경쟁하기도 했다. 출판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반려동물 관련 서적도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다. 펫비지니스, 펫이코노미 같은 말도 이제는 익숙해졌고, 마트의 반려동물 코너는 점점 확장되고 있다. 펫로스 증후군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염려하는 병증이 되었고, 이제 반려동물은 당당히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고 해도 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런데 안정되어 보이는 세계라 해도 불안정함, 균열이 없을 리 없다. 특히 그것이 결정적으로 드러날 때는 바로 재해, 재난, 전쟁 같은 비상시이다. 2019년 4월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을 때 함께 살던 반려동물과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재해민이 많았다.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악플과 여론은 여전했지만 한편으로 동물 관련 단체나 언론은 재난상황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실제 미국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반려동물 동반 피난·구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실제 재난상황에서는 반려동물을 둘러싼 정서적 갈등이 자주 분출되고, 동물은 재해 약자로 인정받지 못하곤 한다. 2014년 일본 최초 살처분 제로를 실현한 바 있던 구마모토시는 2016년 규슈지진 당시, 대피수용소의 한계로 인해 다시 살처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결정적일 때 그렇지 않다는 것도 분명했다. 진짜 가족이라면 유기되거나 살처분될 리도 없고, 다른 이들의 극심한 반대와 조롱을 마주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비상상황은 종종 일상의 균열과 모순을 단번에 열어젖힌다.

물론 당연하게도 우리 세계의 균열이나 모순은 재난상황에만 드러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2019년 5월 난민 활동가 지인들과 함께,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공원에 노숙, 집회 중인 양산 개도살 농장 구조견 활동에 다녀온 일이 있다.1) 처음으로 만난 개농장 구조견들은 내가 알던  토토, 똘, 콩이 아니었다. 실제 불법 개농장 사육, 도살 실태의 처참함은 또 별개의 문제지만, 식용으로 태어나거나 길러진 개들은 구조되기 전까지 철창 밖을 벗어나본 일이 없어서 산책을 한다거나 사람과 논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뜬장이 아닌 흙을 밟는 게 어색해서 펄쩍펄쩍 뛰기만 하고, 도무지 친화적이지 않았고,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 내가 알던 개와 같은 존재들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나의 이 표현도 어폐가 있다. 존재는 모두 종(種)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별자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개 안에서도 왜 어떤 존재는 애지중지 다뤄지고 또 어떤 존재는 처음부터 고기로 태어나서 길러지는 것일까. 개농장 구조견 노숙, 집회 활동을 처음 하고 돌아온 날 저녁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그런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지금은 세상을 떴지만, 당시 오늘내일하고 있던 유기견 출신 똘이에게 원기회복을 시킨다고 닭을 고아 먹이는 일도 꺼림칙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을 떠난 녀석들을 포함하여 비인간 식구들과 어쩌다보니 20년 넘게 살고 있었지만, 여의도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이들의 법적 지위가 인간의 ‘사물’ ‘소유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컨대 주인이 있는 동물의 학대나 피해에 대해서는 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 내 입맛을 사로잡고 있던 육식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쇠틀에 갇혀서 새끼돼지에게 젖을 먹이는(그 용도로만 살다 도축될) 어미돼지의 누워 있는 발을 보면서 그것이 먹는 ‘족발’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물의 발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적도 없었다. 그날 이후 생각을 거듭하게 된 것이지만, 착취와 수탈의 메커니즘은 남성과 여성,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젠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앞에 당도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온 것들, 텔레비전을 틀 때마다 없던 식욕도 만들어내는 먹방 프로, 겨울마다 나의 따뜻함과 안락함을 지켜주던 누군가의 가죽이나 털들. 이것은, 이 세계는 물론이요, 나라는 존재 자체의 조건과 모순을 생각하게 했다.

개와 고양이는 가족이고, 소나 돼지는 가축이라 여기는 우리 안의 모순은 어떤 문제의식의 출발점일 뿐이다. 어떤 동물은 ‘토종’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이 되고, 어떤 동물은 ‘외래종’ ‘유해종’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으며 생태계 교란, 침략자로 학살 대상이 된다. 어떤 동물은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동물은 죽여도 되는 대상으로 분류된다. 그 구분도 유동적이다. 토종 혹은 외래종, 유해종이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본질적인 것’은 본래 정해져 있는가. 그것은 누가 정하고 관리하는가. 생과 죽음에 직접 개입하고 작동하는 통치권력의 원리를 ‘생명정치’(bio-politics) ‘죽음정치’(necro-politics) 같은 말로 설명해온 논의들이 많았지만, 오늘날 이 원리의 가장 극단, 최전선에 놓인 존재가 한편으로는 비인간동물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인류의 사육, 목축의 사회사를 정리한 사회학자 데이비드 니버트는 말한다. 대량·속성 생명생산 기술, 즉 살리는 기술(이른바 축산혁명)은 20세기에 혁명적으로 발달했지만, 도살 기술은 인류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거의 제자리걸음이라고.2) 그의 말이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자명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그래도 인간이 먼저다’ ‘인간 문제도 첩첩산중인데……’라는 반론 혹은 비판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수년째 서울에서 유기견의 들개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서대문구에서는 재개발지역에 버려진 유기견을 포획하는 저소득층 공공근로 사업에 ‘실업자 또는 정기적인 소득이 없는 일용직 근로자’나 ‘행정기관 또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노숙인임이 증명된 자’를 투입하고 있다.3) 또한 수년 전부터 전국 각 지자체에서는 유해 야생동물 포획을 위한 공공근로사업에 저소득 취약계층을 투입해왔다. 한편 도축시설 작업장을 이주노동자가 메우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다. 생명을 직접 살리거나 죽이는 일, 즉 옛날이었다면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기피되던 현장의 최전선에 지금 누가 내몰리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단지 동물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다시 묻는다. 여성문제, 노동문제, 청년문제, 난민문제, 생태문제, 동물문제는 모두 별개일까? ○○의 문제가 ○○의 문제보다 중요하다고, 혹은 먼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늘 어디에서 서로 만나고 중첩되고 비껴가고 있는 중 아닌가? 그럼에도 그 모든 모순과 억압이 단번에 누적되는 장소들이 늘 있지는 않을까? 이것은 약한 자리를 경쟁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약한 자리의 구조를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생명, 동물을 시야에 둔다는 것은 바로 그 구조를 더 잘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존재를 향해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 존재는 무엇의 대가인가? 이 질문으로부터 생각해야 할 것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문학3 기획위원 김미정

 

 


1) 지금 동물 관련 활동이 주로 개 문제에 집중된 듯 보이는 것은, 단지 개가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라거나 개를 사랑해서라기보다, 모든 비인간동물을 통틀어 개의 법적 지위가 가장 모순적이고 분열적이기 때문이다. 즉 개의 지위는 반려견, 식용견, 마약탐지견, 군견, 도우미견 등등 매우 다양하고, 이에 따라 개는 축산법, 식품위생법, 동물보호법 등 상이한 법조항들의 적용 대상이다. 개를 둘러싼 법은 공략할 수 있는 취약한 지점이 많고, 모든 동물문제를 다룰 때 가장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이 공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ALiM: 같은 동물권 관련 연구·활동 모임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런 법적 허방이다.
 
2) David A. Nibert, Animal Oppression and Human Violence: Domesecration, Capitalism, and Global Conflict, Columbia UnivPr 2013.
 
3) 「개는 산으로 사라졌고 사람은 ‘밖’으로 사라졌다」, 『한겨레』 201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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