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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의 비밀

박시하
2020년 03월 11일



 
코나의 비밀


 
삐.삐.삐.
당신의 비밀이 유출되었습니다. 당신의 비밀이 유출되었습니다.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코나의 손목에 심겨진 발톱 심벌에 붉은빛이 깜빡거렸다. 코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한껏 켜면서 경고음을 듣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체가 되어 손목 피부 안에 칩을 심은 이후로 심벌이 붉은빛으로 깜빡인 일은 처음이다. 보통 그것은 보이지 않다가, 확인해보려고 꾹 눌러볼 때나 가끔씩 저 혼자 녹색으로 빛나곤 했다. 코나는 아늑한 담요에서 벌떡 일어나 수면캡슐 오픈 버튼을 눌렀다. 밖은 푸르게 빛나고 있었으나 평소와 다른 불길한 냄새가 떠도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코나의 심벌은 오작동을 일으켜 보라색이 된 적이 한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전, 칩을 심은 지 얼마 안 되어 칩과 코나의 몸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 일은 흔했다. 그러나 칩이 오작동을 일으켜 붉게 깜박거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순간 코나의 심벌에 다시 붉은빛이 들어왔다.
 
당신의 비밀이 제거되었습니다. 당신의 비밀이 제거되었습니다.
 
심벌의 발톱 모양이 검게 세번 깜박거리더니 꺼져버렸다.
 
코나는 비밀이 없는 시크리터, 아니 캐토가 되었다.
 
시크리터의 비밀은 크게 두가지 종류다. 선하고 아름다운 비밀과 악하고 추한 비밀. 전자는 가치가 높지만 드물다. 시크리티안은 어떤 희생을 했거나 선한 일을 했을 때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후자는 흔하고 다종다양하며 매우 많다. 자기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경우가 적은 것은 당연한데도, 그런 비밀을 가진 대부분의 시크리터는 자기 비밀이 비밀은행에 그대로 기록되는 바람에 능력이나 재산과는 상관없이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산다. 빈민가에서 어둡고 불안한 나날을 살지만, 그들은 저장고에 들어 있는 비밀을 털어놓으려 하지는 않는다. 비밀이 없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니까.
 
선한 비밀은 저장고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안전히 숨겨진다. 그 비밀들은 수가 적고 고결하므로 자손 대대로 이어지며 간직된다. 반면 악한 비밀을 가진 행성인이 수명을 다하면 그 비밀들은 그대로 폐기된다. 
 
코나는 자신의 붉은 수염을 매만졌다. 붉은 수염은 고귀한 비밀을 가진 시크리터의 자손이라는 표징이다. 코나의 할머니가 그 비밀을 코나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코나는 태어난 이후로 지금껏 최상층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귀족 거리의 최신 설비를 갖춘 아파트에서 신선한 날생선과 해산물을 먹었으며 아름다운 옷만을 입었다. 
 
캐토는 길에서 사는 방랑자들이다. 비밀이 없는 그들은 영혼이 없는 자로 간주된다. 세번 이상 심각한 범죄를 지었거나 살인을 저지른 시크리터는 모든 비밀이 공개된 후 캐토가 된다. 간혹 정치적인,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비밀을 빼앗기는 캐토도 있다. 
 
시크리티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캐토는 집을 가질 수 없고, 자손은 더더욱 가질 수 없다. 시크리티안은 원래 가족 단위로 사는 습성이 없지만 절친한 이들과의 친교를 갖는 것은 큰 기쁨으로 여긴다. 서로 몸을 비비고 핥아주며 친밀함을 표시하는 것은 그들의 건강한 몸과 정신에 꼭 필요하다. 친교는 물론이고 누구와도 접촉이 금지된 캐토의 삶은 거칠고 위험하며, 끔찍하게 외롭다. 그들은 대개 오래 살지 못하고 병에 걸려 일찍 죽는다. 코나는 가끔 멀리에서 울부짖는 캐토들의 소리를 들었다.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는 영혼 없는 자.
 
그렇지만,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코나는 자신의 칩이 꺼진 이유를 알고 있다. 시크리티는 침공을 당하고 있다. 코나는 자기도 모르게 발톱을 길게 내밀었다. 캐토 반항군과 지구인들이 드디어 비밀은행을 파괴한 것이다.
 
이제 이런 아침도 마지막이군.
 
코나는 키오판*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냉장실에서 생선을 꺼내어 반으로 나누었다. 날생선은 자기 몫이고, 나머지 반은 불에 익혔다.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의 노란 열매를 따서 익힌 생선과 함께 접시에 담았다. 오린나무**는 시크리티안에게 관상용일 뿐 먹는 것이 아니다. 열매의 껍질을 까면 시큼한 악취가 나서 시크리티안들은 질색을 한다. 하지만 유진은, 그것을 정말 좋아한다.
 
식탁 위에 두개의 접시를 올려놓은 코나는 유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유진은 지구인이다. 코나는 심하게 상처 입은 채 아파트 화단에 숨어 있던 유진을 발견한 이후 몰래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유진을 처음 봤을 때, 코나는 그런 무력한 종족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들에겐 강한 발톱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는 데다 후각과 청각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의 눈동자 속의 동그란 동공은 신비롭기 그지없고, 비록 별 쓸모가 없긴 하지만 시각 능력은 뛰어난 것 같다. 코나는 그녀를 치료하고 보호했으며 결국 그녀를 돕게 되었다. 코나에게 나쁜 비밀이 생긴 셈이지만, 귀족과 결탁한 지 오래인 비밀기록원들은 코나의 위험한 비밀을 확인도 하지 않고 묵인했다. 자업자득이었다.
 
유진에게는 시크리티안의 탐스러운 몸털은 없지만 얼굴 주변에 검고 윤기가 나는 긴 털을 길렀다. 그 희고 낯선, 무력하고 똑똑한 생명체를 코나는 사랑했고 결국 그녀의 종족과 연합했다.
 
비밀은행을 파괴하려는 유진의 계획을 알았을 때 코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지구인은 이 행성에서 공생하기를 원했고, 코나는 완전한 전복을 원했다. 세습되는 비밀 따위로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건 옳지 않다. 사소한 비밀이 있다는 이유로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시크리티안들, 그리고 비밀을 빼앗긴 캐토들. 시크리티는 타락한 행성이다. 자신에게 세습된 비밀마저도 정말 고귀한 것인지 더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물려받은 비밀을 저장해놓은 귀족들은 고귀한 종족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나쁜 비밀이 숱하게 있다는 사실을 코나는 안다. 그들은 단지 나쁜 비밀을 삭제할 돈과 권력을 가졌을 뿐이다. 귀족들은 오래전부터 미성체 캐토들을 포획해서 공공연히 노예로 쓰고 있었고, 심지어 그들을 성노예로 삼는 이들도 있다. 그런 캐토가 낳은 캐터리들은 낳자마자 흰 숲에 버려져 아무렇게나 혼자 자라난다. 구역질 나는 일이다.
 
비밀이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마저 알게 되자 코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비밀을 사고파는 세상이라니, 영혼을 파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꿈을 꾸었네 푸른 해가 붉은 바다로 사라질 때/보석처럼 서로에게 속삭였네/이곳은 붉은 행성 아름다운 발톱의 나라/비밀은 숲이 꾸는 꿈”
 
키오판의 노래 속에서 비밀은 ‘꿈’이었고 이 행성의 ‘보석’이었다. 코나는 캐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유진이 돌아오면, 그들은 함께 시크리티의 푸르고 거친 숲을 달릴 것이다. 붉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먹고 나무 열매를 딸 것이다. 자신들의 행성에서 더이상 살 수 없게 된 지구인들과 캐토들이 시크리티에서 공생하게 될 것이다. 누구도 외롭게 버려두지 않고, 모두가 같은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이야오옹. 
 
코나는 비밀스럽게, 그리고 마음껏 소리 내어 웃었다. 자유로운 삶,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삶. 코나가 선택한 새로운 비밀은 이제 그것이다. 모두가 비밀을 가질 것이다. 저장고 따위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간직하는, 소중한 이에게만 나눌 수 있는 진짜 비밀을.
 
비밀은 아름다운 꿈이 될 것이다. 
 


* 키오판(시크리티력 5549~5560), 일명 검은 수염. 귀족이었으나 평생 캐토들과 함께 산 캐토 반항군의 설립자이자 음유시인.

** 오린나무의 열매에는 태양이 푸른 시크리티에서 지구인에게 결핍되기 마련인 필수영양소가 들어있다고 추정된다. 지구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며, 유진이 코나의 아파트 화단에서 찾으려 한 것도 이 나무였다. 오린나무는 시크리티에서는 드문 노란 색 열매를 볼 수 있어 귀족들이 즐겨 키웠으나 효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박시하
2008년 『작가세계』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눈사람의 기회』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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