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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2회)

조해진
2020년 03월 12일


시징


사람들의 큰 흐름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영등포역 밖으로 나온 시징은 몇걸음 걷다 말고 문득 멈춰 섰다. 윤주의 방은 영등포역 주변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눈앞에 펼쳐진 복잡한 교차로와 수많은 행인들, 현란한 조명을 밝힌 대형 쇼핑몰들 사이에 주택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시징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구글 지도 앱을 열었고, 그제야 자신이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윤주의 방과는 반대편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윤주의 방은 영등포역 뒤편, 그러니까 후문 쪽에 있는데 시징은 방금 전 정문을 이용해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시징은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돌아섰다.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스무명 가량의 사람들이 겹겹이 앉아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단순하고도 빠른 템포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한국과 미국 국기를 양손에 쥔 채 흔들고 있었다. 조금 전엔 당혹감 때문에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유심히 보니 기이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스피커 옆에 서 있는 노인은 대형 십자가를 등에 이고는 노래 사이사이에 아멘을 외쳤는데, 노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단순히 포교를 하려는 집회는 아닌 듯헀다. 그렇다고 한국의 통일을 지지해달라는 공익적인 집회 같지도 않았다. 종말론을 맹신하는 이교도들의 집회이거나, 최악의 경우엔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집회일 수도 있었다. 어스름이 내려온 거리에서 시징 외엔 그 집회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는데, 시징에게는 그 거대한 무심함마저 인상적이었다. 마치 집회에 관심을 갖지 말자고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혹은 그들의 요구는 무시해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듯, 퇴근 무렵의 사람들은 집회 주변을 빠르게 지나쳐갈 뿐이었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은 후에도 시징은 자주 뒤를 돌아봤다. 정체불명의 집회에 호기심이 생겨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모두의 시선에서 비껴 있는 그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만 같아서였다. 에스컬레이터 중간 지점부터 집회는 시징의 사각지대로 들어갔고, 그쯤에서 시징도 그들로부터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영등포역 후문은 정문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이긴 했다. 후문 밖에도 식당들이 있었고 채소와 과일, 고기를 파는 작은 상점들도 제법 많았지만 전반적인 풍경은 주택가가 맞았다. 식당 간판 중에는 간자체도 보였으므로 이 동네에도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걸 시징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의 행정구역은 스물다섯개의 구(區)와 사백개가 넘는 동(洞)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등포구에 포함되는 대림동과 신길동엔 중국인들이 유독 많아 차이나타운까지 형성되어 있다고, 시징이 종종 접속하는 한국여행과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시징은 휴대전화 속 구글 지도를 보며 일단 왼쪽으로 걸었다. 걸을수록 식당과 상점들이 적어지면서 겨울나무들이 띄엄띄엄 서 있는 공원이 나왔는데, 윤주의 방은 그 공원이 시작되는 지점과 맞닿은 원룸 건물 4층에 있었다.
 
원룸 건물의 외관은 붉은 벽돌로 되어 있었고 공동현관문엔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윤주가 이메일을 통해 미리 일러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엔 캐리어가방을 번쩍 들고 계단을 올랐다. 이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건 에어비앤비 사이트에도 나와 있는 정보였다. 각각의 층엔 네가구씩이 정사각형 형태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1층에서 4층까지 오를 때까지 그 어떤 현관문 너머에서도 인기척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시징은 놀라웠다. 란콰이퐁에 위치한 시징의 아파트는 이곳처럼 깨끗하진 않지만 늘 소란스럽긴 했다. 소음의 주된 성분은 아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였는데, 시징은 해질녘 발코니에 서서 구체적인 얼굴들이 지워진 그 웃음소리를 듣는 시간을 좋아했다.
 
시징은 윤주가 알려준 두번째 비밀번호로 402호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안쪽으로 들어선 순간, 훈기 속에 켜켜이 스며 있던 옅은 체취가 시징의 코를 자극했다. 거주인이 자주 먹는 음식이라든지 애용하는 상표의 화장품, 청소를 하는 주기와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빈도 같은 생활 패턴을 통과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정제되고 또 정제된, 거주인의 순수한 냄새일 것이다. 타인의 집에서 타인의 냄새를 맡는 건 시징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시징은 성인이 된 이후로 친구나 동료의 집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그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적도 거의 없었다. 은철을 제외하면 시징의 공간에 배어든 냄새가 남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시징이 어떤 자세로 잠을 자고 나쁜 꿈에서 깼을 땐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별다른 습관은 무엇이고 무방비의 자세는 어떤지, 평소보다 우울하거나 고독할 땐 무얼 하며 시곗바늘의 균등한 간격을 견디는지, 그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은철뿐인 것이다.   
 
시징은 일단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메인 조명인 형광등을 켜자, 침대와 싱크대뿐 아니라 화장실 안쪽의 변기까지 한꺼번에 시징의 시야에 들어왔다. 시징은 방 한가운데로 32인치짜리 캐리어가방을 옮겨놓은 뒤 그 위에 걸터앉았다. 앉을 만한 곳이 없어서였다. 창가 쪽 테이블─책상과 식탁으로 겸용되는 테이블인지 이 방에 다른 테이블은 없었다─에 딸린 의자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시징이 앉기엔 너무 작아 보였고, 씻지도 않은 채 새 침구가 깔린 침대 위로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캐리어가방에 앉은 채로, 시징은 좀더 본격적으로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헤드가 따로 없는 싱글 침대, 서랍이 여러개인 수납장과 바퀴가 달린 개방형 옷장, 냉동실과 냉장실이 분리되지 않은 미니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밑에 설치된 소형 드럼세탁기, 시징이 보기엔 하나같이 그 쓸모에 충실하면서도 최소한의 면적만 차지하는 일인용 사물들이었다. 이 방에서 거주인의 기호와 성향을 드러내는 유일한 사물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힌 5단짜리 책장뿐인 듯했다. 군살이 없는 단신의 여자를 시징은 상상했다. 군살이 없고 단신이며 창백한 종이 냄새가 나는 여자, 밖에서는 합리적이고 신용할 만하다는 평판을 듣더라도 이 방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밀밭을 혼자 걷는 듯 순간순간 위태롭도록 외로워지는 사람, 그러니까 혼자 먹고 혼자 자는 데 익숙해졌으면서도 가끔씩 밀려오는 외로움에 쉽게 생애의 끝을 상상하는 부류…… 그렇게 상상을 이어가자 어쩐지 시징은 윤주를 다 알아버린 것만 같았고, 어딘가에서 그녀와 우연히 마주친다면 한번에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집을 보며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을 유추하는 건 은철에게서 배웠다. 여행을 할 때마다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통해 타인의 집을 빌려온 은철은 집의 크기와 구조, 가구와 소품의 배치, 그리고 체취와 습관의 흔적으로 거주인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6년 전, 시징의 아파트로 큰 배낭을 메고 들어온 날, 그날도 은철은 아파트 내부를 쭉 한번 훑어보더니 시징에 대해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몇년째 착용한 적 없는 옷과 구두들, 손잡이가 떨어진 프라이팬과 전선이 끊어진 어댑터, 과월호 패션잡지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의 교과서까지, 시징의 아파트에는 당장 내다버려도 상관없는 것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긴 했다. 은철의 짐을 놓기 위해 가구를 옮기거나 수납장을 비울 때마다 폐건전지, 일회용 젓가락, 녹슨 못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단추들이 끊임없이 굴러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은철은 시징을 놀렸고 시징은 한때는 다 필요한 것들이었다며 항변하거나 딴청을 피웠다. 그날의 작은 소란을 떠올리자 웃음이 났다. 그런데…… 
 
시징은 금세 웃음을 거두고는 자신의 발등을 골똘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쩌자고 영등포에까지 와버린 것일까.  
 
인터넷 쇼핑몰을 함께 운영하는 동업자이긴 하지만 투자지분은 월등하게 높은 사촌형 챙이 올해부터 한국에서 유행하는 옷을 카피하여 판매하자고 제안한 건 작년 늦가을의 일이었다. 서울의 쇼핑가에 진열된 옷을 상점주인 몰래 찍어 포트폴리오로 만드는 업무를 시징이 거절할 이유나 권한은 없었다. 서울 출장이 결정된 이후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숙소를 구하던 시징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새로 업로드된 윤주의 방은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은철의 고향인 영등포, 그리고 은철이 좋아하던 타인의 방, 이 절묘한 조합은 시징을 흔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게다가 윤주의 방은 호텔보다 저렴하면서도 게스트하우스처럼 사생활이 침해받을 위험도 없었다. 사이트에 등록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방이라서 이전까지 한번도 고객이 이용한 적 없다는 것 역시 시징은 마음에 들었다. 윤주의 방을 발견한 순간부터 시징으로선 그 방을 예약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오게 된 것이다, 한 시절 포구였던 도시의 일인용 방으로. 
 
창문을 통해 뿌연 노란빛이 번져 들어오면서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려온 건 시징이 캐리어가방에서 내려와 짐을 꺼내고 있을 때였다. 시징은 그 노란빛에 결박된 듯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숨까지 죽였다. 도무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영등포와 타인의 방이라는 조합에 기차까지 들어오다니, 마치 이 여정 자체가 은철을 소환하는 제의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건 은철을 대변하는 세가지 키워드니까, 그 셋의 총합이 바로 은철이므로. 
 
노란빛이 창문에서 다 빠져나가고 기차 소리가 멀어진 뒤에야 시징은 자세를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정리는 포기했다. 대신 맥주 한잔을 마신 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걷다 보면 거짓말처럼 포구가 나올지도 몰랐다. 은철이 고향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면 남몰래 상상했던, 그러니까 탐조등과 그 탐조등 불빛이 알갱이로 분해되어 반짝이는 강물, 정박한 배와 떠나가는 배, 물고기 냄새와 갈매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늙은 샤먼의 애절한 노랫소리가 있는 포구……  
 
시징은 휴대전화와 지갑, 그리고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눈길이 갔던 테이블 위 메모지를 챙겨 윤주의 방에서 나왔다. 



3회에 계속됩니다.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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