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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캡

차도하
2020년 03월 18일



 
헌팅캡


 
헌팅캡을 쓴다
  
헌팅캡을 쓴다고 사냥꾼이 되는 건 아니다 헌팅캡을 쓰면
헌팅캡 쓴 사람이 된다
「헌팅캡을 쓴다」고 쓴다고 헌팅캡을 쓰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처럼
  
헌팅캡을 쓰고
밖으로 나간다 이건 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외침이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걷는다
무성하게 자라난 풀, 손과 발, 말,
  
말을 타고 사냥하는 일을 말이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말은 비밀이 될 수 없다
아무도 안 물었는데 손에는 이빨자국
저항흔이라고 부르자
피가 난다
  
나는 어떤 질문에 대해 비밀이에요,라고 답할 순간만을 기다려왔으나
아무도 내게 그것을 묻지 않았다
   
말처럼
나는 걷는다 내가 걷는다고 내가 걷는 것은 아니다, 걷는 것은 바람
걷히는 것은 구름 나는 바람 없이
뛰어다녔다
   
시체를 묻기 위해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비밀은 무덤뿐이라고
   
여겼다 거대한 매립지를 지나치다
헌팅캡을 발견하기 전까지
  
여기던 것을 어기기 전까지 나는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헌팅캡을 쓴 사람처럼
총소리처럼
  
마지막 모자로 무덤을 받은 사람은 어두운 밤에 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빈 뒤통수를 만져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차도하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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