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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3회)

조해진
2020년 03월 19일


미정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미정은 천막 안에서 문영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주 뒤 혜화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모바일 청첩장이 첨부된 문자였다. 로스쿨 동기로 현재는 금융과 조세 소송을 맡는 로펌의 변호사라고 했던가. 언젠가 문영과 단둘이 저녁을 먹었던 중국식당이 기억 속에서 서랍처럼 열리면서, 한마디로 돈에 눈먼 속물이죠,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이내 진지한 애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좋은 사람이라고 정정하던 문영의 얼굴이 제법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투명한 유리잔에 난반사된 조명이 문영의 눈가와 입가에서 물결처럼 일렁였던 것도. 축하한다는 답장을 보낼 차례인데 그러지 못하고 액정만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이, 문영의 번호로 또다른 문자메시지가 왔다. 새로 온 메시지에는 미정을 걱정하는 문장이 가득했다. 밥을 잘 먹고 잠은 잘 자는지, 경찰과 충돌이 잦다는데 다치진 않았는지, 제주 사람들의 텃세는 없는지, 무엇보다 여전히 그 사건 때문에 스스로를 탓하고만 있진 않은지, 사실 저는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그렇게 이어지는 문장들…… 그 사건이라면 S인권법재단에서 미정이 마지막으로 전담한, 성소수자 K병사가 군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을 뜻하는 것이리라. 지난여름,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 그 소송을 계기로 미정은 재단에서 퇴사했다. 문자를 모두 읽고 나니 제주에 온 뒤로 문영에게 연락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미안했다. 미안한 동시에, 그 미안함 뒤에 안전하게 숨어 있고 싶은 마음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떤 미안함은 편리하다는 것을 문영이 알까. 누군가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 둘레에 벽을 쌓아서 자신에 대한 의심과 혐오, 그리고 열등감을 사전에 차단해주는 그런 미안함도 있다는 것을.  
 
미정은 문영을 알게 되면서 혼자만의 달리기 경기를 시작했다. 문영은 모르는 경기, 문영이 모른다는 걸 미정은 아는 경기, 그 경기에 룰이 있다면 경기를 의식하는 쪽만이 패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뿐일 것이다.  
 
처음부터 문영이 S인권법재단에 소속된 변호사였던 건 아니다. 미정이 재단에서 간사로 일한 지 6년쯤 되었을 때 재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신입 변호사가 필요했는데, 그때 채용된 변호사가 문영이었다. 로스쿨 학생회장 출신으로 변호사 시험에 통과한 뒤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던 인재가 비영리 단체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재단 사람들이 한동안 흡족해했던 기억이 난다. 첫 출근 날부터 문영은 미정을 한눈에 알아봤지만 미정에겐 문영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날 퇴근 무렵에야 미정의 책상으로 다가온 문영은 신입생 때 미정이 참여했던 모의재판을 보았다고, 법대에 온 건 그저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는데 그 모의재판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법조인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고, 늘 멀리서 흠모하는 눈빛으로 미정을 지켜보곤 했으니 종종 뒤통수가 가려웠다면 그건 분명 자신의 눈빛 때문이었을 거라고, 한껏 신이 난 얼굴로 쉬지 않고 말했다. 그때였을까. 자신에게는 오랜 꿈을 단념하게 한 사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단념된 꿈에 대한 열망을 갖게 했고 그 사람은 실제로 그 꿈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때부터……

그때부터, 방향도 목적지도 없는 달리기가 시작된 것일까.
 
그 모의재판은 미정이 졸업을 두 학기 앞두고 참여한 법대 행사였다. 독재시절 고문 경험으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던 과거 운동권 출신이 고문실에서 자신을 치료하던─그리고 그 치료의 목적은 오직 하나, 고문을 연장하는 것이었다─군의관을 고소하는 재판이었고, 미정은 원고인 운동권 출신의 변론을 맡았다. 재판은 매끄럽게 진행됐고 성황리에 끝났지만, 미정은 자신이 그 재판에 끝까지 집중하지 못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재판에서 미정의 논리는 국가 폭력에 동조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단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직업정신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는데, 미정이 흔들린 건 상대 변호사 역할을 맡은 동기가 베트남전쟁을 예로 들며 반론을 펼치면서부터였다. 베트남전은 한국이 참전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고, 당시 한국 군인들이 저마다 비윤리성을 의식하며 전쟁을 거부했다면 한국은 국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되었을 거라고, 모든 역사에는 비윤리적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동조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 있고 우리는 그 개인들 역시 희생자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동기는 말을 이어갔다. 미정은 순간 주변 풍경이 하얗게 표백되는 걸 느끼며 동기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뒤에야 미정은 다시 정신을 차렸고 그런 식의 무심한 침묵의 동조야말로 범하기 쉬운 범죄일 뿐이라는 원론적인 재반론을 펼쳤다. 정의의 대리인인 양 차분히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머릿속은 들끓는 수치심으로 터질 것 같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미정은, 대학 강당에 마련된 그 임시 법정이 자신에게는 마지막 법정으로 남게 되리란 걸 예감했는지 모른다. 
 
“뭐 해?”
 
보경 언니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어느새 천막 안으로 들어온 보경 언니가 구석에서 잠이 든 대학생 활동가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보경 언니의 본명은 보경이 아니지만, 여기선 다들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보경은 그녀와 십오년을 함께 산 딸의 이름이었다. 
 
“그냥 있어요, 세미나는 끝났어요?” 
 
미정이 휴대전화를 도로 패딩 점퍼 주머니에 넣으며 묻자 그녀는 재미없어, 대답한 뒤 크게 하품을 해 보였다. 옆 천막에서는 오후 4시부터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제주도청 간부와 국토부 직원들이 주민들에게 제2공항 건설의 타당성을 홍보하는 설명회에서 반론을 펼치기 위해 준비차 마련한 세미나였다. 공항에 갈 일이 없었다면 미정도 그 세미나에 참석했을 것이다.
 
“참, 이따가 우리 집에 올래? 내가 가리비랑 홍합 넣어서 술찜 해줄게.”
 
보경 언니가 싱긋 웃으며 제안했다. 미정은 난처했다. 일주일 전부터 오늘 아침까지, 그녀에게 서울에서 오는 친구 이야기를 적어도 열번은 했을 것이다. 
 
“오늘 친구 오는 날인데, 에이, 또 잊은 거예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낸 순간, 미정은 그녀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금이 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보경 언니는 미정이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거절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미정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서귀포 중문의 집은 보경 언니의 지인이 장기 여행을 떠나면서 위탁한 곳으로 보경 언니네 집과는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었다. 보경 언니에게 신세를 진 데다 사는 곳이 가까웠으므로 미정은 보경 언니의 초대를 거절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넉달 가까이 일주일에 두세번씩 그녀와 저녁 식탁을 공유하다보니 미정은 그녀의 위태로움만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녀는 거의 매일, 그러니까 미정을 부른 날이든 부르지 않은 날이든 취할 때까지 마셨고 취한 뒤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되곤 했다. 지켜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슬픔,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찰랑거리는 잔잔한 슬픔이 아니라 살갗과 내장을 태워버릴 것 같은 거친 슬픔이었다. 미정은 실제로,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난폭하게 웃다가도 돌연 해쓱해진 얼굴로 보경을 찾는 그녀에게서 탄내를 감지하곤 했다. 그럴 때 미정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를 침대로 데려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었다. 미정도 지쳐가고 있었다. 술 취한 사람의 맨얼굴에, 그 맨얼굴과 꼭 닮은 생전의 엄마를 떠올리는 일에, 무엇보다 보경 언니와 어느새 불행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자각에, 이런 삶, 그러니까 희망이란 것이 가까스로 살아 있음을 의미할 뿐인 이런 삶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속물 같다고, 미정은 종종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문영과 달리기 경기를 하는 것이나 보경 언니의 불행에 감염될까봐 두려워하는 것 모두 속물의 본능 같기만 했다.
 
열흘 전, 천막촌에 필요한 식료품을 사러 도청 근처 시장에 들렀다가 윤주에게 충동적으로 전화한 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니라고, 그런 마음은 결코 속물적인 게 아니라고, 그저 당연한 반응이며 누구라도 그 정도의 질투와 회피에 휩싸였을 거라고, 미정의 상황을 속속들이 안다면 윤주는 분명 그렇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윤주는 미정이 속물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특히 인권법재단에서 미정이 하던 일을 누구보다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막상 윤주와 통화를 하면서는 무턱대고 제주에 놀러 오라는 제안만 했을 뿐인데, 전화를 끊고 나서야 미정은 윤주에게서 속물이 아님을 확인받는 것보다 손님을 빌미로 당분간 보경 언니네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앞섰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친구가 최근에 실직했다기에 쉬고 싶을 때까지 쉬다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세미나 끝나고 다 같이 플래카드 만들기로 했는데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네. 그럼 미정씨, 우린 내일 봐.”
 
보경 언니는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듯 미정의 말을 막으며 그렇게 대꾸하고는 서둘러 천막에서 나갔다. 마침 부스스 잠에서 깬 대학생 활동가를 건너다보며 미정은 고요하게 웃어 주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선 대체 언제 전화 줄 거냐는 아버지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아버지가 미정과 통화하고 싶은 이유라면 충분히 짐작이 갔다. 고모 말에 따르면 오래 앓던 당뇨병과 녹내장이 최근에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받았다고 하니, 아마도 아버지는 미정에게 그 보상금에 대해 상의하려는 것이리라. 알면서도, 미정은 이번에도 발신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답장도 따로 보내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서였다. 보상금에 욕심을 품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보상금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로 그 돈에 비인간적인 오물이 묻어서라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자격이 없기도 했다. 미정이 열살 무렵 부모가 이혼할 때, 미정은 엄마보다 열다섯살이나 많은 데다 몸에서는 상한 과일냄새가 나던 아버지를 엄마와 함께 버렸다. 서로의 생일이나 명절 때 안부전화를 주고받는 것 외엔 따로 연락하는 일이 드물었고, 일년에 한두번 아버지가 혼자 사는 강화도 집을 방문하는 날에도 버스 시간을 핑계로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미정은 늘 아버지에게 인색했다. 단 한번도, 병든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 
 
문영에게든 아버지에게든 문자 한통 보내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는 사이 버스는 제주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한 일도 없이 미정은 피곤했다. 버스에서 내려 공항까지 걸어가는데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지금이 신구간(新舊間)이라서, 그러니까 지상의 신들이 하늘의 신에게 일년간의 업무를 보고한 뒤 새 업무를 부여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시기라서 유독 추운 거라고, 천막촌의 제주 토박이들이 해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물론 절기상의 이유겠지만, 신구간 기간엔 이상하게 날씨가 궂은 경우가 많다고도 했던가. 새벽쯤엔 바다의 습기를 수집한 이 공기덩어리가 눈이나 진눈깨비로 변성되어 날릴지도 모르겠다.
 
미정은 찬바람을 가로질러 곧 공항 로비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강풍으로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방송은 다행히 들려오지 않았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십분 정도 기다리자 게이트에서 걸어 나오는 윤주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일년 만이었다, 윤주의 얼굴을 보는 것이.  


4회에 계속됩니다.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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