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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7회)

곽재식
2020년 03월 19일



영군은 요새의 뒤편 공터에 있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그는 긴 창을 휘두르며 무예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한수생은 먼저 영군에게 인사의 말을 했다. 그리고 영군의 무예에 대해 칭송하며 감탄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신라 군사와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장군.”
 
그러자 영군은 다시 한번 허공에 창을 휘둘러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힘써 무예를 연마하고, 백제를 되찾는 일에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면 간혹 이길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한수생은 그 말을 듣고 영군이 휘두르는 창을 자신도 붙잡아 비슷하게 따라해보려 하였다. 그러나 창이 너무 무거워 한수생은 제대로 들고 있을 수조차 없었다. 한수생은 영군에게 말했는데, 그 목소리가 간곡했다.
 
“장군, 그러나 저는 창칼을 잡아본 적이 없고, 도끼와 몽둥이는 도무지 힘에 걸맞지 않으니 도대체 무슨 무예를 어떻게 익히는 것이 좋단 말입니까?”
 
영군이 대답했다.
 
“지금 소서궁의 남쪽 아래 터에 가면 움막 세곳이 있는데, 그 움막에 새로 온 병사 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셋이 도위께서 이끌고 나가 함께 신라 배를 공격할 무리입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 온 병사들에게 서대사법(西臺射法)을 가르치니 도위께서도 그 세 사람과 같이 서대사법을 익혀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한수생이 되물었다.
 
“서대사법이란 무엇입니까?”
 
“옛날 고구려의 고담덕(高談德, 광개토대왕을 말함)이 백제에 쳐들어와서 군사들이 크게 패하고 백제가 위태로워졌을 때, 싸움을 잘하는 장수와 병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급히 다시 병사들을 모으기 위해, 노인과 아녀자들을 서대(西臺)라는 곳에 불러 모아놓고 아주 쉽게 화살을 쏘면서도 적을 괴롭히기에는 좋은 방법을 알려주며 연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바로 그 수법을 서대사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요즘 장군과 장군의 부하들이 화살을 쏘는 수법도 바로 서대사법입니까?”
 
“그렇습니다. 서대사법이 대대로 전해 내려왔으니, 지금은 서대사법이 바로 우리의 장기이며, 우리 군사가 화살을 쏘는 것이 매섭다고 하여 서해의 여러 해적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까닭도 바로 서대사법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영군은 서대사법을 배울 수 있는책과 활과 화살이 있는 창고를 알려주었다.
 
 
6.
 
한수생은 영군의 말을 듣고 창고로 가서 책과 무기를 챙겼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싸울 세 졸개들을 찾아 움막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한수생은 움막을 돌며 세 졸개들에게 책과 무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흘 뒤에 신라 군사와 싸우러 떠날 때까지 서대사법을 열심히 연마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한수생은 그 졸개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첫번째 졸개에게 가니, 첫번째 졸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난가을에 주사위 노름에 빠져 모아놓은 곡식을 다 잃었으며, 그다음에는 땅을 모두 팔아 재물을 만들었는데 역시 노름꾼이 저보다 주사위 노름을 잘하는 바람에 그것마저 다 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형제와 부모의 집과 땅을 몰래 빼돌려 다시 노름을 했는데 또 노름꾼에게 패해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 꼴을 당하고 나니, 어찌 신라 조정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한수생이 물었다.
 
“노름에 이겨서 재물을 가져간 것은 노름꾼인데, 왜 신라 조정이 원수라는 거요?”
 
그러자 첫번째 졸개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막막해하고 있을 때, 상잠 장군께서 보내신 백제의 검사(劍士)가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신라 조정이 백제를 간교하게 짓밟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신라 조정이 사악한 꾀로 백제를 무너뜨린 뒤로, 신라 조정에는 속임수에 밝고 악행을 꺼리지 않는 무리들만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름을 벌이는 약아 빠진 노름꾼들이 있어도 조정에서는 잡아가지 않고, 몰래 부모 형제의 땅을 팔아 노름 밑천으로 삼는 일이 있다 해도 조정에서는 그것을 무효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신라 조정의 간교한 자들은 모두 그런 것을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합니까?”
 
“그렇습니다. 이렇듯 신라 조정이 간특하여 제가 이렇게 망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제가 그 원수를 갚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 손으로 저를 망하게 한 신라 조정을 무너뜨리고 그렇게 해서 옳은 일과 바른 일을 하는 백제가 다시 세워지면, 저 같이 억울한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며 저는 다시 재산을 되찾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수생은 첫번째 졸개에게 당부했다.
 
“좋소. 그렇다면 반드시 신라 조정을 이길 수 있도록 나흘 동안 서대사법을 열심히 연마하시오.”
 
첫번째 졸개가 대답했다.
 
“내 평생의 원수를 갚을 길이니, 목숨을 걸고 활 쏘는 것을 연습하겠습니다.”
 
그리고 한수생이 두번째 졸개에게 가니, 두번째 졸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난 봄에 술을 팔면서 춤을 구경하는 곳에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한두잔의 술을 마시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맛을 보다보니 세상에 향기로운 술은 끝없이 많았으며, 같이 어울려 춤을 추다보니 세상에 기분 좋은 몸짓도 끝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곧 매일같이 밤을 새우며 술에 취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래도 부모께서 물려주신 재물이 많아 굶주리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밤에 가장 기분이 좋게 취했을 때에 춤꾼들을 모두 집에 데려와 불춤을 같이 춘 적이 있었는데, 그만 술에 취해 실수를 하는 바람에 집에 불이 나서 모든 재산이 다 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불이 옆집으로 번져서 옆집도 불타 없어졌으니, 신라 조정에서는 저 때문에 옆집까지 망했다고 하여 제게 벌을 주려 하였습니다. 그런 꼴을 당하고 나니, 어찌 신라 조정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한수생이 물었다.
 
“취해서 불을 내게 된 것은 술에 취했기 때문인데, 왜 신라 조정이 원수라는 거요?””
 
그러자 두번째 졸개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막막해하고 있을 때, 상잠 장군께서 보내신 백제의 검사가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신라 조정이 백제를 간교하게 짓밟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말씀인 즉, 신라 조정이 사악한 꾀로 백제를 무너뜨린 뒤로 신라 조정에는 속임수에 밝고 악행을 꺼리지 않는 무리들만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불이 난다고 해도 달려와서 불을 꺼줄 수 있는 사람을 조정에서는 충분히 마련해두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작은 불도 크게 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누군가 집이 불에 타서 망했다고 해도 조정에서 그것을 위로하기는커녕 불을 낸 죄를 씌우니 죗값으로 재물을 뜯어갈 궁리만 하고 있는 판입니다. 이러니 어찌 신라 조정에 간교한 놈들만 가득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합니까?”
 
“그렇습니다.]이렇듯 신라 조정이 간특하여 제가 이렇게 망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제가 그 원수를 갚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 손으로 저를 망하게 한 신라 조정을 무너뜨리고 그렇게 해서 옳은 일과 바른 일을 하는 백제가 다시 세워지면, 저 같이 억울한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며 저는 다시 재산을 되찾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수생은 두번째 졸개에게 당부했다.
 
“좋소. 그렇다면, 반드시 신라 조정을 이길 수 있도록 나흘 동안 서대사법을 열심히 연마하시오.”
 
두번째 졸개가 대답했다.
 
“내 평생의 원수를 갚을 길이니, 목숨을 걸고 활 쏘는 것을 연습하겠습니다.”
 
세번째 졸개에게 가니, 세번째 졸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작년 여름에 빚을 내고 물이 잘 들어오지 않아 아무도 사지 않으려는 비탈의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콩 농사를 크게 지었습니다. 물이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재작년에 비가 많이 오는 것을 보았으므로 물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비가 별로 오지 않았으므로 농사는 모두 망했고 빚 때문에 저는 제 몸을 노비로 팔아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 꼴을 당하고 나니, 어찌 신라 조정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한수생이 물었다.
 
“비가 오지 않은 것은 하늘의 뜻인데, 왜 신라 조정이 원수라는 거요?”
 
그러자 세번째 졸개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막막해하고 있을 때, 상잠 장군께서 보내신 백제의 검사가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신라 조정이 백제를 간교하게 짓밟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본시 하늘은 선한 자를 돕고 악한 자를 벌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신라가 사악한 꾀로 백제를 무너뜨렸으니, 어찌 하늘이 신라를 미워하여 벌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이렇게 사악한 꾀를 부리는 무리들이 조정에 가득하니 그자들 역시 하늘이 미워할 것은 당연합니다. 그 때문에 하늘이 노하시어 신라 땅에 비를 내려주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나라는 부모가 자식을 보살피듯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입니다. 하지만 농사가 망하여 빚을 갚지 못하고 굶고 노비가 될 판인데도 조정은 저를 돌보아주지 않았습니다. 벼슬아치들은 제가 바닥까지 망해서 이제 곧 죽을 판이 되었는데도 자기들의 배를 불리며 놀고 먹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조정의 관리들이 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합니까?”
 
“그렇습니다. 이렇듯 신라 조정이 간특하여 제가 이렇게 망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제가 그 원수를 갚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 손으로 저를 망하게 한 신라 조정을 무너뜨리고 그렇게 해서 옳은 일과 바른 일을 하는 백제가 다시 세워지면, 저 같이 억울한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며 저는 다시 재산을 되찾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수생은 세번째 졸개에게 당부했다.
 
“좋소. 그렇다면, 반드시 신라 조정을 이길 수 있도록 나흘 동안 서대사법을 열심히 연마하시오.”
 
세번째 졸개가 대답했다.
 
“내 평생의 원수를 갚을 길이니, 목숨을 걸고 활 쏘는 것을 연습하겠습니다.”
 
한수생은 세 졸개들에게 서대사법을 연마하라고 당부하는 것을 마치고 자신도 공주의 침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수생은 나흘 동안 틈이 날 때마다 서대사법에 따라 활을 쏘는 것을 익혔다.
 
“조금이라도 화살을 잘 쏘게 되어야 내가 살아날 구멍이 생긴다. 화살 쏘는 것을 한 번 연습할 때마다 그만큼 내 목숨이 살아날 구멍이 넓어진다.”
 
한수생은 그렇게 되뇌이면서 힘을 다해 대단히 많은 화살을 쏘아보았다. 활시위를 당기는 팔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힘줄을 따라 시퍼렇게 멍이 들었으며 손가락과 손바닥에는 온통 물집이 잡히고 터져 피가 철철 흐를 정도였다. 그래도 한수생은 멈추지 않고 장갑을 구해서 끼고 더욱 열심히 활 쏘는 재주를 익혔다.
 
한수생은 활 구경을 해본 적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활쏘기가 대단히 엉성하였다. 그러나 서대사법을 꾸준히 따라해보니, 과연 활 쏘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특히 유용한 방법이었다.
 
“화살 한대로 먼 데에 있는 작은 과녁을 맞추는 것은 어려우나, 여럿이 모여서 여러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한꺼번에 쏘면 여러 화살들 중에 반드시 몇 개는 맞아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서대사법이다. 어찌 정묘한 수법이 아닌가? 또한 활 쏘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활시위 당기는 힘이 약한 사람이라도 조금씩 단련하며 익힐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과연 이곳 사람들이 뛰어난 무예로 자랑할 만하다.”
 
이에 한수생은 기뻐하며, 다른 세 졸개를 찾아갔다. 한수생은 졸개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서대사법을 얼마나 익혔소?”
 
그러자 세 졸개는 각각 이렇게 대답했다.
 
“신라 조정에서는 아직도 노름꾼들을 붙잡아가지 않았으므로 그놈들을 언제고 다시 만나면 저는 또 노름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저는 하루 종일 주사위 노름을 하며 이기는 법을 궁리하였습니다. 주사위 노름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활을 쏠 틈이 거의 없었으므로, 화살은 두발을 쏘아보았을 뿐입니다. 이 또한 간교한 신라 조정 때문에 제가 아직까지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라 조정의 사악한 관리들에게 붙들려 갔을 때에 그놈들이 내 다리를 묶었던 적이 있으니, 아직도 다리가 아파 오래 서 있으면 왼쪽부터 저려옵니다. 다리가 빨리 나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거나 누워 있기만 해야 했으므로, 화살은 한발을 쏘아보았을 뿐입니다. 이 또한 간교한 신라 조정 때문에 제가 아직까지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 되면 신라 조정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잠을 이루지 못하니, 낮이 되면 졸음이 밀려 와서 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무지 활 쏘는 것을 익힐 틈이 나지 않아, 화살은 한발도 쏘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또한 간교한 신라 조정 때문에 제가 아직까지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졸개들의 말을 듣자, 한수생은 기운이 빠져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망연하여 멍하니 바다 쪽을 보았더니, 신라를 공격하기 위한 배들이 한척, 두척,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죽을 때가 되었구나.” 
 
한수생이 힘없이 말했으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가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8회에 계속됩니다. 

 


곽재식

2006년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지상 최대의 내기』 등 다수의 소설과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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