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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텐

차도하
2020년 03월 25일



텐텐


 
찬장 어딘가에 텐텐*이 있어. 그런 것은 비밀이 될 수 있다. 일곱살 때 나는 텐텐의 맛을 좋아했고 텐텐은 한번에 한개만 허용되었으므로 나는 텐텐을 마구잡이로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찬장에 있는 오목한 접시 밑에 텐텐을 숨겨두었고 그것은 비밀이었다. 비밀이므로 나는 텐텐을 더 먹고 싶었고 비밀이므로 장소를 알아내고 싶었지만 구태여 찾아내어 다 먹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한번에 하나만 허용된 텐텐, 소중한 기분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반면 차도하는 텐텐과 달리 비밀이 될 수 없다. “차도하는 비밀이 많은 여자다.”이런 식으로 적으면 매력적인가? 다시 말하지만 차도하는 지구에서 비밀이 될 수 없고, 비밀이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차도하는 비밀이 많은 여자다”에서 비밀인 것은 비밀뿐이므로 차도하는 텐텐처럼 될 수 없다. 그래서 차도하는 꽤 우울했는데
  
어느 날 차도하는 텐텐과 자신이 구조적으로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지구 어딘가에 차도하가 있어. 그런 것은 비밀이 될 수 있다. 이 두 문장을 떠올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목한 접시 밑에 텐텐이 있듯이 지붕 밑에 차도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차도하의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접시가 우주고 지구가 텐텐일 수도 있다. 차도하를 포함한 사람들은 캬라멜의 끈적끈적함을 담당하는 성분일 수도 있다. 지구가 모르는 무언가가, 지구가 모르는 무언가에게 지구를 꺼내주며
 
“너 이거 하루에 하나만 먹는 거다 알지.”
 
그러면 멸망도 기분 좋을 텐데. 차도하는 시도 때도 없이 멸망을 생각했다. 텐텐처럼, 멸망은 입으로 굴리기에 너무 좋은 발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멸망 멸망. 하지만 지금은 비밀 이야기를 하는 중이니, 멸망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자.
 
언제부터 내가 차도하가 되었는가? 그런 이야기가 비밀이 될 수 있겠다. 적어도 내가 텐텐을 하루에 하나씩 먹던 시절에 나는 차도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비밀’이라고 하면,
 
아조씨랑 비밀 친구 할래?
 
가 먼저 떠오른다. 나는 이 농담을 무척 싫어한다. 어린아이가 가져야만 하는 비밀은 텐텐 말고 없었으면 좋겠으니까. 나와 내 친구들은 비밀이 많았고 그중 차도하가 있었다. 비밀이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차도하는 이따금 아주 어렸을 때를, 엄마가 하루 하나씩 텐텐을 꺼내주던 때를 생각했지만
 
다시 그전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차도하가 어렸으므로, 차도하가 아직 차도하가 아니었으므로, 그때 미루고 또 미루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도하는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미룬다는 건 그 일을 뚝 떼어내서 미래로 보내버린다는 게 아니고, 데드라인을 늘리는 것이라는 걸. 그러므로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걸. 따라서
  
멸망은 지금 진행 중이라는 걸. 그것이 지구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려던 비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다. 아직 내가 언제 차도하가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직 차도하가 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름을 그렇게 획득했으므로 우선은 차도하가 되기로 약속했을 뿐이다. 차도하란 무슨 인물이냐면
 
1. 사소한 일에 상처받지 않으며
2. 밤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기분에 시달리지 않고
3. 누군가 자신을 칼로 찌를까봐 걱정하지 않고
4. 문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며
5. 밤길을 정처 없이 하염없이 걷지 않고
6. 옷을 살 때 괴로워하지 않고
7. 자신을 밑 빠진 독이라고 비유하지 않는
8. 침착하게 사랑하는 양손을 가진
 
인물이다. 나는 차도하가 되는 걸 한참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말했다시피 미룬다는 건 그 일을 뚝 떼서 미래로 보내버리는 게 아니므로, 나는 차도하가 되고 있었고, 0.1차도하, 0.3차도하라고 말하고 다닐 수는 없어서 누가 내 이름을 묻는다면 “차도하입니다”라고 답했다.
 
이게 내가 차도하가 된 경위이며 내 비밀이다. 차도하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차도하는 지금 바닥에 엎어져서 눈을 감고 멸망이 먼저 올지, 내가 차도하에게 먼저 도착할지 생각하고 있다. 영양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영양제는 정말 신체에 도움이 되는가. 신체는 어디까지 자라나. 잘 자란 신체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신체를 가진 쪽은 나인가 차도하인가. 옷을 입을 땐 누구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하나. 자꾸만 원피스를 사고 싶은 건 내 쪽인가 차도하 쪽인가. 머리를 자르고 싶은 건. 기르고 싶은 건. 글을 쓰고 싶은 건. 차도하는 이제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헷갈렸지만 누가 언제 이야기를 꺼내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이 있다는 게 도하의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예컨대 어렸을 때 먹었던 간식들. 간식을 숨겨놓은 장소. 찬장. 오목한 접시 밑. 금색 껍질. 바스락바스락. 타원형 츄잉 캔디. 따듯한 곳에 놔두면 형체를 알 수 없게 녹아내리는. 사탕. 캬라멜. 저녁 먹고 나서 하루에 하나씩. 입안에서 굴리고 씹으면 끈적하게 달라붙는. 딸기맛. 약맛. 맛있는. 키 크는 기분. 자라는 기분. 소중한 기분.
 
그러면 도하는 일어나서 어제 허물처럼 벗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고 세수도 하고 간식도 먹고 글도 쓰고 하는 것이다.
 

* 한미약품에서 판매하는 비타민, 순환기영양제 ‘텐텐츄정’. 다홍색, 딸기향, 사각 또는 타원형의 씹어 먹는 정제.
 


차도하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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