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1

완벽한 생애(4회)

조해진
2020년 03월 26일


윤주


그릇 부딪치는 소리에 설핏 눈을 뜬 순간, 윤주는 반사적으로 옆자리부터 살폈다. 몸에 밴 관성이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잠들었다 깨어나면 곁에는 대개 선우가 있었고, 그럴 때 눈에 들어오는 잠든 선우의 옆얼굴을 윤주는 좋아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평화로운 얼굴이었으니까, 꿈에서는 그도 날개를 단 짐승처럼 자유로울 것이므로, 무의식 상태에선 가난에든 가난한 마음에든 등급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창 너머에선 돌담과 나뭇가지와 풀잎을 휘감는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방문 틈으로는 빵과 커피, 그리고 기름에 익어가는 계란과 베이컨 냄새가 스며들었다. 어젯밤에 미정은 이 집의 소유주도 임차인도 아닌, 그저 임시로 거주하며 관리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밝혔는데 따로 집세는 내지 않더라도 각종 공과금은 분명 미정의 몫일 테니 앞으로는 자신이 먹을거리를 담당해야겠다고, 윤주는 침대에서 내려와 이불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미정의 뒷모습이 보였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여전히 쓸쓸하게 낯설어서 윤주는 금세 고개를 외로 틀었다.   
 
공항에서 미정을 발견했을 때, 윤주는 사실 속으로 충격을 받았다. 기억 속에서 늘 앳되기만 했던 미정이 또래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서였다. 예전보다 살이 내리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엔 이른 기미가 올라와 있긴 했지만, 단지 그런 요인들로 미정의 인상이 변화된 건 아닌 듯했다. 캐리어가방을 대신 끌며 앞서 걸어가는 미정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아주 짧게 자른 머리칼이 미정을 예전과 달라 보이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걸 윤주는 알 수 있었다. 아무런 미적인 고려 없이 그저 효율성을 기준으로 마구 자른 듯한 그 헤어스타일은 자유로운 사람의 상징이나 표본이 아니라 너무 일찍 세상을 차단한 수행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제야 윤주는 지난 일년 동안 미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소원해졌어도 미정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언제라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연락할 수 있는 사이라고 믿어왔지만 공항을 빠져나올 때쯤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년의 시간이 무심한 마음의 환산치였다는 것을……
 
미정이 식탁에 커피와 토스트, 스크램블을 내려놓는 동안 윤주는 서둘러 씻고 나온 뒤 식탁에 앉았다. 미정은 토스트를 반쪽만 먹었고 스크램블에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천막촌에는 단식 중인 활동가도 몇명 있다는 말에 윤주는 좀더 먹으라는 말을 얹을 수 없었다. 제주에서 미정은 제2공항 건설을 저지하는 활동가로 살고 있으며 이 집을 소개해준 사람도 같은 활동가 중에 한명이라고 했다. 모두 제주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근데, 방송국은 왜 그만뒀어?”
  
그새 포크를 내려놓은 미정이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 물었다. 윤주는 그냥, 얼버무리며 소리 없이 웃었고 웃은 뒤엔 너는? 되물었다.
  
“너는 어쩌다가 공항에 관심이 생긴 건데?”
  
나? 하는 얼굴로 윤주를 건너다보던 미정이 이내 윤주처럼 웃었다. 윤주와 미정은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며 잠시 함께 웃었다.  
  
미정이 천막촌으로 떠난 뒤 윤주는 다용도실에 꺼내온 청소기를 밀면서 어젯밤엔 대충 훑어보고 말았던 미정의 임시거주지를 좀더 꼼꼼하게 살폈다. 방 두개에 거실을 겸한 주방이 있는, 제주에서는 흔한 단층 돌담집이었다. 평범했지만, 집안 곳곳에 활용된 원목과 돌 재질의 인테리어만큼은 이 집의 독특한 표식처럼 보였고 그 표식의 의미는 절대적인 안전 같다고 윤주는 생각했다. 집주인은 은퇴한 교사 부부로 2년 전부터 제주에 내려와 이 집을 수리하고 살았는데, 최근 미국에서 사는 딸 부부가 둘째아이를 낳아서 육아를 도우러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라고 했다. 안전한 집을 소유하고 유지할 만한 조건을 다 갖춘 사람들이었다.
 
청소를 마친 뒤엔 식재료를 사러 외투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차도로 이어지는 길은 비포장 상태였는데 새벽에 흩날린 진눈깨비가 드문드문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게 보였다. 담벼락과 지붕 위, 살얼음의 표면,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의 가지 끝에. 그러게…… 윤주는 차도를 향해 터덜터덜 걸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지나고 나니 다 그냥이 되네. 
  
방송국에 출근하지 않은 지는 벌써 한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달 전, 평소보다 일찍 녹음실에 도착해서 대본을 정리하고 있던 윤주는 프로그램 진행자인 입사 이십년차의 베테랑 최 아나운서와 올봄부터 연출을 맡은 서 피디가 녹음실 안쪽에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피디는 윤주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했고, 아나운서는 오년 가까이 함께 프로그램을 일궈온 작가를 특별한 사유도 없이 해고한다면 다른 작가들에게 반발심을 불러올 수 있으니 조심스럽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작가들도 이해할걸요? 애초에 김 피디가 이 자리에 꽂아준 거, 방송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서 피디의 그 말에 그제야 윤주는 그가 무엇을 문제 삼는지 알 수 있었다. 
  
잦은 휴학으로 이년이나 늦게 졸업한 데다 방송국 피디 공채에서 연달아 떨어진 윤주가 취업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내세울 만한 스펙 하나 쌓지 못한 탓도 있었다. 수십번의 면접 끝에 가까스로 증권사 영업팀에 들어가게 됐는데, 막상 그곳에서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이니 채권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시발년이어디서약을팔아천하의개년같으니우리만나서얘기할래요그쪽도지금흥분한거맞죠…… 때때로 윤주는 이유도 모른 채 그런 욕설과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고, 그 언어들은 지독한 번식력으로 순식간에 윤주의 일상 전체를 장악해갔다. 오염된 귀를 어떻게 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양쪽에 매달고 퇴근길에 오르면 같은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이 마치 유리산의 꼭대기에 세워진 성채처럼 보이곤 했다. 스물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방송국 스크립터 채용에 지원한 건 그래서였다. 피디와 스크립터의 격차는 컸고 스크립터 월급으로는 기초적인 생활도 불가능했지만 증권사의 진저리나는 전화기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스크립터로 채용된 윤주가 처음으로 투입된 곳은 당시 정권에 반대하는 입장을 철저하게 배제하거나 왜곡하는 내용으로 악명이 높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담당 피디가 김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김 피디가 라디오 국장으로 승진하여 프로그램을 떠나면서 윤주에게 지금의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메인작가 자리를 주선해준 것이다. 스크립터가 서브작가 기간도 없이 메인작가가 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어서 뒷말은 많았지만 김 피디의 호의가 진심이라는 걸 적어도 윤주는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는 윤주가 다른 스크립터나 서브작가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시사프로그램에 지쳐 있다는 것이나 경제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투명한 마음으로 이해해준 사람이었다. 그때 거절해야 했을까. 윤주는 지금도 판단할 수 없었다. 아니면, 정권이 바뀌면서 방송국에서 퇴출된 김 피디를 따라 나도 청산되어야 옳았던 걸까. 가끔은 그런 의문이 나사처럼 상흔을 남기며 윤주의 가슴속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피디님도 윤주씨 또래의 여동생이 있다면서요. 최 아나운서가 다시 말했다. 저는 피디님이 윤주씨를 여동생이라고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내 동생은 로스쿨 다니는데. 아나운서의 말에 서 피디가 어물어물한 말투로 그렇게 대꾸하자 윤주씨도 법대 출신이잖아요, 아나운서가 다시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그 대화가 충분히 농담의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했는지 이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 때문이었다. 그들이 웃지 않았다면, 한 사람의 생계를 놓고 그렇게 웃지만 않았어도, 윤주는 녹음 직전에 말도 없이 사라지는 무책임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원론적으로, 그러니까 최대한 좋은 대본을 그들 앞에 내놓는 방식으로 그 상황에 대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윤주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기회가 와서 잡았을 뿐이고 애정을 갖고 노동했으며 그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아 꾸려졌던 삶, 평범해 보이지만 그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늘 바빴고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는데 이 세계에선 그런 삶이 언제라도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윤주를 무기력하게 했을 것이다. 윤주는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피디와 아나운서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극장과 커피숍, 혹은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의 휴게실에 앉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표류하는 배 같았다. 삼십오년 가까이 살면서 제대로 누려본 적 없는 느슨한 시간이 수화물 상자처럼 실려 있는 배…… 시징을 통해 영등포의 어원이 포구라는 걸 알고 윤주는 웃었는데, 하루 종일 바깥에서 배회하다가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열 때마다 기우뚱거리는 허술한 배에서 내려와 닻을 내리고 밧줄을 매는 사람의 이미지가 그려지곤 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걸으니 하나로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일렬로 정리되어 있던 카트 하나를 끌며 윤주는 식료품 코너로 갔고 식빵과 우유, 두부와 애호박과 양파, 고등어 두마리와 돼지 앞다리살 한근, 마지막으로 딸기와 밀감을 카트에 담았다. 계산대에선 젊은 부부와 두 아이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손을 합쳐 카트에서 물건을 꺼내는 중이었는데, 그 모습이 한때 그려보았던 미래의 재현 같아서 윤주는 그들에게서 좀처럼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떠돌고 싶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떠도는 삶이란 이미 충분히 경험했고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했다. 사춘기 시절 아이엠에프로 아버지의 이어폰 공장이 파산하면서 부모님은 서산에 있는 백부의 고깃집에서 일하게 됐고, 윤주와 여동생은 세명의 이모들 집을 차례로 전전하며 십대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모들의 가족이 윤주 자매를 냉대했던 건 아니지만, 윤주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가족을 이루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는 미래를 꿈꾸게 됐다. 그러니까 한곳에 정박한 흔들리지 않는 집에서…… 여건이 안 되는데도 무리하면서까지 대학에 간 것도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건, 선우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선우의 전화가 신경 쓰였다. 
  
6개월 만에 그가 전화한 이유라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윤주를 만나야 조금이라도 울분이 풀리는 어떤 상황이 생겼을 것이고, 그 울분은 이번에도 그의 아버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뇌출혈과 알코올성 치매와 두 다리의 마비를 연달아 겪으며 응급실과 입원실, 그리고 요양원을 들락거리게 됐고 그때마다 선우에게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한여름 공사장에서 쓰러진 그가 응급실에 실려가는 바람에 윤주와의 제주 여행이 취소된 건 시작에 불과했다. 영상 장비를 사려고 점심 값을 아끼며 이년이나 부은 적금 통장을, 방송국 공채 시험을, 안정된 연애와 결혼을, 지금 일하고 있는 금속공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그의 아버지는 그 자신조차 모르게 아들의 손에서 하나하나 알뜰하게 제거해갔다. 윤주는 휴대전화를 꺼내 선우의 번호를 한창동안 들여다봤고,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액정을 껐다.   
  
윤주는 방송국 피디를 준비하는 대학 내 스터디 모임에서 선우를 처음 만났다. 이상한 건 둘 다 학과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따로 만나 커피 한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연애가 시작되어 있었다는 거였다. 아마도 그 스터디 모임에서 윤주와 선우만 편의점과 커피숍과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와서일 것이다. 아르바이트 구인 정보라든지 사업장 별로 선호하는 구직자 유형, 혹은 최저시급에서 몇백원이라도 더 챙겨주는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공유하다 보니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고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한달에 한번 정도는 각자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모텔에 가기도 했다. 외로워서였다. 돈 걱정 없이 학점을 관리하고 영어를 배우러 해외에 나가고 비싼 영상제작 강의를 듣는 스터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외로웠다. 자꾸만 끈이 풀리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자고, 잘 달리고 싶고 잘 달릴 수 있는데도 패배가 결정된 경기를 물려줄 수는 없다고, 다른 선수들이 매끄럽게 달리는 동안 끈을 다시 매기 위해 수시로 주저앉아야 하는 경험을 세대에 걸쳐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비참하다고, 비참하게 이용당하는 것뿐이라고, 침대에 나란히 누운 채 딱 한개비의 담배를 나눠 피우고 있노라면 선우는 그렇게 말을 이어가곤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유전적 단종이라는 그 화제가 나오면 윤주는 4인 가족이니 흔들리지 않는 집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 위해 그저 담배 연기만 올려다봤다. 어차피 결론이 없는 소모적인 논쟁이 될 뿐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기화된 허무 같기만 했던 담배 연기에 마음이 뺏겨서이기도 했다, 어른이 된 것 같았으니까. 대학에 가면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한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생이 되어보니 감당이 안 되는 것 투성이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에게 용돈 정도는 주고 싶었지만 특성화고에 들어가면서 이르게 직장에 다니게 된 동생이 오히려 윤주의 교통비를 대줄 정도였다. 강의실과 도서관과 아르바이트 자리를 반복해서 오가다 보면 하루가, 한 학기가, 그리고 일년이 흘러가 있곤 했다. 
  
시징, 영등포에서 포구를 찾았나요?
  
마트에서 나와 양손에 비닐봉투를 쥔 채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윤주는 또다시 시징에게 마음속으로 문장을 썼다. 불가능한 장면인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포구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자꾸만 상상됐다. 그가 마주보는 포구가 엽서의 그림처럼 평화롭기를, 손에서 놓쳐버린 탓에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영역에 갇혀버린 팔년 전 제주의 어느 바닷가와 닮아 있기를, 그러나…… 
  
그러나, 그런 곳이 있다고 믿는 희망은 기만적입니다.   


5회에 계속됩니다.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