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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긋지긋한 진실

김상혁
2020년 04월 08일



 
이 지긋지긋한 진실


 
비밀, 하면 열여섯에 갔던 교회 청년부 수련회가 떠오른다. 중학교 졸업 후 캐나다 토론토에 잠시 살면서 나는 교회 수련회를 세번 따라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내 인생 아닌 것 같은 장면들뿐이다. 우선은 2박 3일이라는 일정 자체가 어린 나에게는 초현실적이었다. 물론, 특히 유스호스텔로 불리던 곳에 갇힌 채 몰래 가져온 술이나 마시는 걸 무슨 대단한 일탈처럼 여겨야 했던, 그 외박 같지 않은 외박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캐나다 교회 수련회는 뭐랄까, 어른과 신의 간섭이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무인도 같았다. 저녁 예배가 끝나면 그런 무인도에서, 호기심 가득한 십대 스무명이 들판에 피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돌발적이고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더 순진하고 노골적으로 말해 누구와 어떻게 키스라도 한번 해보기를, 정말 미치도록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이 너무 가깝고 수많은 나머지 밤하늘이 무게를 못 이기고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나는 그 수련회에서 밤하늘을 올려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밤하늘 밑에서, 고소하게 익어가는 건 나뭇가지 끝에 꽂아 불가에 세워둔 마시멜로만이 아니었다. 산속이라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고 어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더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갓 바다를 건너온―또한 2박 동안 무서우리만치 아무 일도 없었던― 나에게, 좁은 담요 한장 속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어깨와 가슴팍에 기댄 십대 남녀를 보는 일은……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 꼭 노인이 아이처럼 흥겨울 때만 나이를 잊는 건 아닐 것이다. 더 위험하고 행복한 쪽은 그 반대가 아닐까. 하여튼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날의 흥분과 선망을 잊을 수가 없다.
 
하이라이트는 ‘촛불 앞에서 비밀 말하기’였다. 모닥불이 꺼지고 숙소로 돌아와 우리는 꼭 그 짓까지 마쳐야 직성이 풀렸다. 너무나도 유치한 놀이라서 지금 돌아보아도 얼굴이 빨개질 것만 같다. 실제로 세번 가운데 마지막 수련회에선 이 비밀 말하기 놀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어린 우리라고 끝내 몰랐겠는가? 우리가 자기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안달 나 있었다는 걸. 우리가 이 가운데 누구를 몰래 사랑해왔으며 그걸 알리려는 뻔한 마음이 우리를 촛불 앞에서 한없이 정직하게 만들었다는 걸. 게다가 우리의 뻔뻔한 정직함에는 성경책도 한몫하였다. 성경책에 손을 얹은 채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관념에 의지하여, 아이들은 에라 모르겠다, 스스로 원하기도 하였던 바, 어떤 질문에도 진실을 말하였던 것이다. 규칙은 간단했다; 1)촛불을 차례로 돌린다. 2)촛불을 쥔 사람이 아무에게나 질문을 받는다. 3)한 사람에게 총 세번의 질문이 가능하며, 패스(답하지 않음)는 한번만 가능하다. 4)패스가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답을 거부하면 벌칙을 받는데, 이게 또래 남자애가 수행하기도 힘든 벌칙(팔굽혀펴기 30회 등)이 대부분이어서 여성은 자기 벌칙을 대신 받을 남자를 지목하는 게 관례다. 5)한 사람이 총 두번의 촛불을 받으면 게임이 끝난다.
 
끝까지 낭만적인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사실 이 비밀 말하기는 철저히 ‘주인공’을 위한 게임이기도 하였다. 가령, 과정 2)에서 아무 질문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질문을 받기는 하였다. 그래야 촛불이 다음 사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체 누가 ‘오늘 아침에 뭐 먹었어?’처럼 쓸데없는 질문에 답하면서까지,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고 싶어한단 말인가? 수련회에서 놀던 스무명 가운데 캠프파이어와 비밀 말하기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열다섯 정도는 항상 관객이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그들은 무대에 오르기를 간절히 원하는 관객이었다. 완전히 신실하거나 완전히 시니컬하거나, 아니면 나처럼 새로운 환경과 언어에 적응하기 바쁜 아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그 사랑의 무대에 오르고 싶은 게 당연했다. 과정 4)에서 곤란한 질문을 받은 여자아이가 대신 벌칙 받을 남자를 구하지 못해 팔굽혀펴기를 하다가 쓰러지고, 누군가 ‘이제 그만 봐주자!’ 같은 정의로운(?) 말을 하기도 했던 상황 때문에, 어느 순간 나는 그 놀이를 전혀 즐길 수 없었다.
 
비밀 말하기 놀이라는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우선은 내가 거기 있었다. 재미없다고 곧 나가버리기가 민망하기도 했고, 혹시 나에게도 로맨스가 있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정말……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랬다. 나도 비밀을 만들고 싶었고, 그걸 말하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의 비밀이길 간절히 바라였으며 그러한 비밀이 나와 그를 여러가지 의미에서 하나로 묶어주기를 또한 바라기도 했다. 민망해서, 아니면 혹시나 하는 기대로 남아 있던 나와 함께, 당연하게도 로맨스의 주연들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주인공 무리에 제대로 끼지 못하였다는 내 열등감 때문인지, 내 말이 그들을 비난하는 뉘앙스였나 좀 반성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정말, 아무도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어린 우리를 자극한 것은 비밀이 지닌 어떤 측면이었다.
 
‘비밀’이 들어갈 자리에 ‘진실’이란 단어를 대신 넣어도 웬만하면 뜻이 다 통한다는 거. 말할 수 없는 비밀, 숨겨왔던 비밀, 우리만 아는 비밀…… 그리고 이와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 말할 수 없는 진실, 숨겨왔던 진실, 우리만 아는 진실 등과 같은 변주들. 그런데 이처럼 어떤 비밀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 비밀의 내용 아닌 형식일 것이다. 어릴 적 수련회에서 우리는 키스하고 싶었거나 그게 아니면 키스에 관하여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교회가 음란하다고 말하는 생각에 관하여 노골적이고 싶었다. 우리는 노골적으로 음란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그리 하기에는 너무나도 순진하였기에, 그때는 어린 마음에 진심으로 신을 사랑하고 두려워하였기에, 비밀이라는 형식에 기대어 그렇게 하였다. 진실과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는 그렇게 해버렸던 것이다.
 
 


김상혁
2009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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