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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6회)

조해진
2020년 04월 09일


미정


천막촌에서는 자유 발언과 인디 가수의 무대가 포함된 촛불문화제가 새벽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활동가들이 오랫동안 준비하며 기다려온 행사였지만 천막촌 분위기는 어제보다, 어제의 어제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어제는 이십일 넘게 단식을 이어오던 활동가가 응급실에 실려 갔고, 그제는 천막촌 두 동에 전기가 끊겼다. 전기 공급 중단 조치는 도청이 조만간 천막촌을 기습적으로 철거할 거라는 소문에 살과 뼈를 붙이는 증거이기도 했다. 난민인권센터와 연대하여 예멘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장터를 열었던 활동가 일부가 행인들로부터 힐난뿐 아니라 욕설까지 들은 것도 그제의 일이었다. 난민일 뿐 범죄자도 테러리스트도 아니라고, 이곳에서 함께 노동하고 살면서 세금을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고 했다. 장터에 참여했던 대학생 활동가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활동가와 시민 사이에 몸싸움이 날 뻔했다고, 마음 약한 활동가들, 특히 보경 언니의 상심이 컸다고, 다들 속상해서 팔다 남은 술을 조금씩 나눠 마셨는데 보경 언니가 갑자기 너무 서럽게 울어서 깜짝 놀랐다고도……
   
“근데 보경 언니가 보경이를 부르면서 울던데, 언니 이름이 보경이가 아니었나봐요. 그럼, 보경이는 누구예요?”
 
대학생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끝에서 물었다. 대학생은 천막촌에 합류한 지 겨우 한달밖에 되지 않아서 보경 언니의 사연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미정은 보경 언니 이외에는 아무도 그 이야기를 대신 전할 수 없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고, 대학생도 미정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듯 더 묻지 않았다.   
   
미정은 누군가의 자유 발언을 흘려들으며 활활 타오르는 초만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각선 앞에는 보경 언니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실루엣은 허물어졌다가 가까스로 복원되길 반복하고 있었고, 그건 미정 눈에만 보이는 한 사람의 온전한 불안이었다. 밤 열시, 그녀가 지난 몇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시던 시간이었다. 
  
보경 언니를 처음 만난 건 십년 전, 모의재판이 있던 그해였다.
  
모의재판이 끝난 뒤 미정은 한동안 학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겨울방학이 시작됐을 땐 바로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미정이 갈 수 있는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 제주였던 것이다.
  
제주에 도착하고 처음 일주일은 내내 걷기만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걸었고, 어두워질 무렵에야 숙소로 돌아와 그날 발바닥에 새로 생긴 물집에 연고를 바르곤 했다. 그러는 사이 로스쿨 진학이라든지, 그때만 해도 제도적으로 남아 있던 사법고시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니, 제주에선 그저 포기한 꿈에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 연습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베트남에서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상상할 능력이 있는 한 자신에게는 법정에서 옳다고 믿는 것을 변호하거나 판결할 자격이 없다고 미정은 생각했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의 딸로 태어난 것을 취소하거나 번복할 수는 없으므로. 그건 탄원도 항소도 불가능한 판결이니까. 이상하게도 그때는 사법고시 준비에 드는 비용이든 로스쿨 학비든 감당할 처지가 아니라는 현실적인 이유는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러 제주 남쪽을 걷게 되었을 때, 백여명의 사람들이 길 위에서 동일한 박자에 맞춰 무릎과 팔꿈치,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하는 불교식 절을 올리는 낯선 광경과 맞닥뜨린 미정은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절을 하던 사람들 중에는 미정을 유심히 보던 중년 여성도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보경 언니였다. 그녀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천이 해진 운동화를 신은 채 머뭇머뭇하던 미정에게 다가오더니 함께하자고 무람없이 말을 건넸다. 여행자일 뿐이라고 대답하며 미정이 쑥스러워하자 이 행성에 여행자 아닌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왔고, 그 담백한 농담에 미정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한시간에 백배씩 하루 천배를 채우고, 다시 한달 동안 삼만배를 완성하는 긴 여정 중에 있다고, 해군기지 건설을 막는 것, 평화를 지키는 것, 그것이 여기 모인 사람들의 바람이라고, 사람들을 흘끗거리며 어설프게나마 절 동작을 따라하는 동안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연한 입김이 짙어지면서 등허리가 땀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미정은 어느새 절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완전히 몰두하게 됐고, 취소나 번복이 불가능한 싸움에서 알게 모르게 부상당한 상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날부터 미정은 강정에 삼일 연속 머물며 하루 열시간 이상씩 길 위에서 절을 했고, 밥차가 오면 식판에 밥과 국, 반찬을 받아와 보경 언니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밥을 먹었다. 서울로 올라가던 날, 공항까지 따라온 보경 언니가 게이트 앞에서 미정을 안아주며 보경에 대해 처음으로 말해주었다. 중학생 때 제주로 캠프를 왔다가 숙소가 무너졌다고, 재판을 수십번 했지만 숙소 부실공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아무도 보경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이전의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남편과 아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혼자 제주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고, 제주의 모든 난개발 현장에 나타나 피켓을 들었고 스크럼을 짰고 단식을 했다.
  
언제까지라도,라고 공항에서 그녀는 말했다.
  
“언제까지라도 난 이 일 할 거야. 나중에 우리 보경이가 엄마 자랑스럽다고 칭찬해주면 돼. 난 그걸로 돼.”
  
언제까지라도……
  
미정은 여전히 실루엣이 흐트러지는 보경 언니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언제까지라도 붙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내게는. 
  
미정은 이내 손에 든 촛불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소주 한병을 샀고, 식당으로 사용되는 천막으로 들어가 선반에서 빈 텀블러를 꺼냈다. 텀블러에 맥주와 소주를 적당히 섞어 붓는 동안 다행히 천막을 들춰보는 사람은 없었다. 
  
법을 잘 모르거나 법의 보호를 받을 만한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 가령 직장에서 다쳤거나 병을 얻었는데도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라든지 성폭력 가해자의 위증으로 학교나 직장에서 배제된 여성들, 혹은 친척이나 지인에게 지원금을 갈취당한 지체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소송 절차와 방법을 알려주는 그 일이 어쩌면 미정에게는 언제까지라도 붙들고 싶었던 무언가였는지도 모르겠다. 기부금을 관리하는 일이나 정기 기부자들에게 세액공제를 안내하는 행정적인 업무도 미정은 즐겁게 했고, 주말에 따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없는 급여를 받으면서도 일을 그만둘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문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미정의 세계로 들어온 문영은 미정이 거짓된 만족에 취해 있는 건 아니냐고 묻고 또 물었다. 법정에서 변호사로든 판사로든 직접 싸우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는 건 아니냐고, 자신에게 옳은 것을 변호하거나 지지할 자격이 없다는 그 결론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합리화가 아니었냐고, 그러니까 제대로 확인한 적도 없는 아버지의 비인간적인 행위는 단지 핑계일 뿐이지 않느냐고……  
  
목소리 없이 문영은 계속해서 물었고, 미정은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평등한 업무 파트너이자 사이좋은 대학 선배인 양 굴면서도 미정은 아무도 모르게 문영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결핍감을 바라봤던 셈이다. 텅 빈 풍경을 닮은 결핍감이 아니라 금세 폭발할 것처럼 안이 꽉 차 있는 결핍감이었다. 미정은 혼자서만 심장이 터질 듯 달려야 하는 경기가 지겨웠지만 그 무형의 경기장은 미정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사건이 터졌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군대 내에서 크고 작은 폭력에 시달렸다는 K병사를 도와 군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하고 있을 때, K의 파트너로 알려진 또다른 병사가 실은 K에게 강제로 성추행을 당한 거라고 군인권센터에 신고를 한 것이다. K는 소송을 포기했고, 휴가를 나와서는 자해까지 시도했다. 미정은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둘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지만 어느 쪽의 거짓도 들추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자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미정은 결국 K병사 일이 있고 한달 만에 인권법재단에 사직서를 내게 됐다. 퇴사하고 처음 얼마간은 출소한 사람마냥 자유를 느꼈다. 집밖으로 거의 한발짝도 내딛지 않는 폐쇄된 동선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였다. 재단 사람들에게 했던 말, 더이상 출근할 곳이 없으니 친구들도 만나러 다니고 여행도 하겠다던 미정의 그 말은 상상 속 폐건물과 다를 것 없었던 것이다. 집에서 두문불출하자 집 곳곳에는 금세 쓰레기가 쌓여갔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속도가 하도 빨라서 과정을 계속 지켜봐온 미정조차 놀랄 정도였다. 집이 이렇게 빨리 쓰레기로 뒤덮일 수 있다는 것에, 언제라도 쓰레기가 될 수 있는 인생이었다는 것에, 미정은 때때로 웃음이 났다. 궁금하기도 했다. 그 끝을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은 애초에 갖지 말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고민을 거듭하고 애쓰며 투신할수록 생애는 엉망이 되는 것인지, 미정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 무렵 보경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이전에도 간간이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는 주고받았지만 그녀가 직접 전화를 걸어온 건 드문 일이었다. 전남편에게 양육비 청구소송을 하려는 동료 활동가에게 S인권법재단을 소개해주었는데, 재단에서는 미정이 퇴사했다고 하니 보경 언니도 적잖이 당황했던 모양이다. 함께하자고, 그때도 보경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직장에 매인 게 아니라면 제주에 내려와 함께 활동해보자고, 부담 갖지 말고 휴가라고 생각하고 내려오면 된다고, 사뭇 산뜻한 목소리로 그녀는 이어 말했다. 미정은 처음엔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지인이 외국에 나가게 되면서 제주 집을 관리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그녀의 또다른 전화를 받았을 땐 마음이 흔들렸다. 며칠 뒤 미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주인에게 전세계약 해지의 뜻을 전했고, 큰맘 먹고 청소대행업체도 불렀다. 쓰레기를 모두 처리해준 초로의 남자가 마지막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면서 미정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했을 때에야 미정은 자신이 그 집을 일종의 속죄양으로 대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집에서 훼손되는 시간이 마땅한 결과라는 듯, 현재를 절박하게 방치하는 것이 보속이라도 된다는 듯. 미정에게는 제주에서의 활동은 신념이 아니라 타협인 셈이었다. 아니, 어쩌면 치유인지도 몰랐다. 어쩌다가 공항에 관심이 생겼느냐고 윤주가 물었을 때 미정은 하마터면 관심이 없으면 안 되냐고 되물을 뻔했다. 
  
신념 없는 활동가로 사는 것이 나쁜 거냐고……
  
미정이 텀블러를 든 채 보경 언니 옆으로 다가가 앉자 그녀는 서운함을 억누른 조금은 어색한 미소로 미정을 맞아주었다. 미정은 곧 그녀에게 텀블러를 건넸고 내용물을 파악한 그녀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선물이야.”
  
미정의 말에, 어둠 속 보경 언니의 얼굴이 그제야 가까스로 환해졌다.  
  
생일을 축하해.
  
보경 언니가 텀블러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 한모금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정은 속으로 속삭였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던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 때 보경을 낳아서 그 무렵엔 유독 그 애가 생각난다는 말이. 어쩌면 어제는 보경의 생일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어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상관없었다. 하나의 생명이 이 행성을 처음 방문한 그 날짜는 언제까지라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7회에 계속됩니다.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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