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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11회)

곽재식
2020년 04월 14일



그 말을 듣고 영군이 물었다.
 
“대포고래는 힘이 센 해적의 두령으로 이름을 떨친 자인데, 그대가 홀로 대적할 수 있겠소?”
 
“서쪽 바다의 해적들 사이에서 이제 저 또한 이름이 가볍지 않습니다. 비록 영군 장군이나 상잠 장군의 훌륭한 무예에는 미치지 못하나 저 역시 활과 칼을 쓰는 재주를 조금은 익혔습니다. 대포고래는 부하들 사이에 자신의 위세를 드높이고 싶을 것이니, 제가 홀로 나아가 서로 힘을 겨루자고 하면 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잠이 다시 장희에게 물었다.
 
“그러나 어찌 그대가 대포고래와 홀로 대적한단 말인가? 또 무슨 속임수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인가?”
 
그러자, 장희가 소리를 높여 외쳤다.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제가 대포고래를 이기지 못한단 말씀이십니까? 백제 조종세업의 종묘사직에 깃들었던 영령들이 제 칼을 같이 잡아주실 것이고, 죽은 수십만 백제 군사들의 한 맺힌 기운이 칼날에 서려 있는데, 제가 왜 이기지 못할 거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마침내, 시험 삼아 장희가 먼저 홀로 나아가 대포고래와 대적을 하는 것으로 정해졌으니 공주는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대포고래의 소굴을 향해 찾아가기 전, 상잠은 먼저 자신과 항상 같이 다니는 칼잡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기로,
 
“너희는 도위의 부하를 돕는다고 하면서 같이 따라갔다가, 혹시 그자가 무슨 속임수를 부리는 것 같거든 바로 칼로 베어 처치해버리도록 하라. 돌아와서는 대포고래와 싸우는 혼란한 와중에 죽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라고 했다.
 
이윽고 싸우는 날이 찾아왔다. 장희는 상잠의 부하인 칼잡이 둘과 함께 작은 배 한척에 올라 [타고] 대포고래의 소굴을 향해 나아갔다. 배에는 흰 천을 꽂은 깃대를 사방에 달아, 싸우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히도록 했다.
 
장희와 칼잡이들이 탄 배가 나아가자, 대포고래의 부하들은 멀리서 장희를 보았다. 대포고래의 부하들은
 
“공주해적이 나타났다!”
“공주해적이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장희가 가까이에 오자, 그중 하나가 칼을 들고 장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자 다른 부하가 말했다.
 
“조심하게. 공주해적은 홀로 관군이 조세를 싣고 가는 배 수십척은 부수어버렸다는 마귀 같은 자일세. 신통한 법술을 익혀, 한 손을 앞으로 내지르면 배가 가라앉고, 다른 한 손을 앞으로 내지르면 배에 싣고 있던 쌀과 옷감에 불이 붙어 사라진다는 말까지 있으니, 모두가 두려워하는 해적 중의 해적이네.”
 
그 말을 듣고 부하는 더욱 겁을 먹고 칼을 든 손을 달달 떨었다.
 
그러자 장희가 먼저 해적들끼리 하는 인사를 건넸다.
 
“장보고는 개밥과 같고─”
 
그러자, 대포고래의 부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같이 인사했다.
 
“그 자식들도 개 같이 생겼다.”
 
장희가 대포고래를 만나기 전까지 잠깐 실랑이가 있기도 했다. 특히 대포고래의 부하 중에 비단잉어는 장희를 의심하여, 그가 대포고래를 혼자서 만나겠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장희 일행이 위협을 받자, 장희를 따라온 칼잡이가 대포고래의 부하 몇몇을 쉽게 제압했다. 그의 솜씨는 상당히 뛰어나서 비단잉어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마침내 대포고래는 장희를 만나주기로 했다.
 
“서해의 주인이라는 대포고래가 어찌 내 몸의 절반도 안 되는 저 조그마한 것을 무서워하겠느냐?”
 
대포고래는 그와 같이 웃으며, 장희와 함께 단 둘이서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장희는 천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장막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칼잡이가 놀란 얼굴로 장희를 보자, 장희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여기 지도를 찾아왔으니, 어서 서경으로 돌아가세나.”
 
라고 하였다.
 
 
10.
 
장희가 돌아오자, 영군은 감격하여 소리쳤다.
 
“나는 무예를 많이 익혔기 때문에, 사람의 겉모습을 보면 대개 그 사람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난지 짐작할 수 있다고 여겼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무예가 대포고래를 단숨에 이길 정도인지는 몰랐소. 과연, 세상이 넓고 사람이 많으며 내가 모르는 것도 끝이 없음을 다시 알겠소.”
 
또한 공주는 한수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우리가 보물 지도를 얻게 되었으니, 이것은 좋은 부하를 기른 그대의 공이오.”
 
그러자 한수생은 공주를 향해 네번 절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이 모든 것은 다 공주께서 덕이 높고 복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공을 세웠겠습니까? 제 부하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틈틈이 무예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고 애쓴 듯합니다.”
 
한편 상잠은 장희가 가져온 두루마리를 펼쳐 보고는 찬찬히 살폈다. 두루마리 이곳저곳으로 눈길을 옮길 때마다 상잠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점점 더 짙어졌다.
 
“이것은 실제로 이백년 묵은 천이다. 이 두루마리가 정말로 백제가 망하던 시절의 물건이 맞구나.”
 
그리고 상잠은 두루마리에 쓰인 글자를 하나둘 짚어가며 읽었다.
 
“필치가 흔한 사람의 솜씨가 아니니, 과연 옛 백제 조정의 귀한 사람이 쓴 글씨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그 말을 듣고 영군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정녕 풍 태자께서 남기신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틀림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풍 태자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 엎드려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기분이 들떠 기뻐하는 기색이 만연했다.
 
“공주께 지도를 바치옵니다.”
 
상잠은 지도를 공주에게 공손히 건네주었다. 공주가 지도를 보니, 지도에는 백제의 조정에서 쓰던 의례 문구가 이곳저곳에 쓰여 있었다.
 
그러나 정작 지도의 중앙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작은 동그라미가 셋[이]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위쪽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에는 “팔(八)”이라고 적혀 있었고, 왼쪽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에는 “십오(十五)”라고 적혀 있었으며,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고 다만 동그라미 중앙에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아래 적힌 글자 밑에는 자리가 넉넉히 비워져 있었다.
 
공주가 모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지도에 ‘팔’이라는 글자와 ‘십오’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상잠이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공주를 향해 말했다.
 
“글자가 적힌 곳 아래로 자리를 한참 비워두고 있으니, 이는 쓸 것이 있으나 감히 쓰지 못했다는 뜻 아닌가 합니다.”
 
한수생이 상잠에게 물었다.
 
“써야 하는데, 감히 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영군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그리고 영군이 입을 여는데,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백제 옥좌의 주인이신 임금님은 우리가 가장 높이 떠받들어야 하는 분이며, 항상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분이시지만, 감히 그 이름을 입에 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임금님의 이름을 써야 하는 자리라면, 써야 하는데 쓰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이는 풍 태자께서 직접 기록하신 깊고 큰 뜻이 담겨 있는 지도라 할 만합니다. 백제 조정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신 풍 태자님께서 남기신 유물을 지금에 와서 이렇게 보게 되다니, 저는 울음을 참지 못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수생이 상잠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팔과 십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상잠은 다시 공주 앞으로 나아가더니 고개를 숙였다. 상잠이 말했다.
 
“지도에 적혀 있는 팔이란 백제의 여덟번째 임금님의 이름인 고이(古尒)를 뜻하며, 십오란 백제의 열다섯번째 임금님의 이름인 침류(枕流)를 뜻하는 것인가 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장희가 외쳤다.
 
“그렇다면 지도의 두 섬은 고이도와 침류도, 두 섬을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가운데에 점이 찍힌 섬은 고이도와 침류도 사이에 있는 섬일 것이다. 이는 바로 옛날 먼 바다로 뱃사람들이 나아갈 때에 가끔 들르던 갈매기섬을 말하는 것 아닌가?”
 
장희의 말을 듣고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웅성거렸다.
 
“풍 태자의 보물은 갈매기섬에 묻혀 있다.”
“망한 백제의 가장 귀한 보물들이 전부 갈매기섬에 묻혀 있다!”
 
한수생 또한 감탄했다.
 
“백제의 옛 사람들이 남긴 지도이니, 백제의 역사에서 따온 말로 설명을 써 넣었던 것이군요. 이제 세월이 몇백년이나 지났고 백제의 역사를 알 리가 없는 해적떼들은, 이 지도를 갖고 있었다고 한들 읽을 줄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영군이 다시 울먹이며 공주에게 말했다.
 
“과연, 백제의 주인을 찾아 백제의 보물 지도가 돌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공주 만세!”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울부짖으며 “공주 만세”라고 소리쳤다.
 
며칠 후, 공주가 머물던 섬의 모든 사람들이 몰려나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 사람들 사이에는 “풍 태자가 남겨놓은 막대한 보물이 있을 것이므로 그 보물을 다 담아오려면 이 배들로 부족할지 모른다”라는 말이 돌기까지 했다.
 
장희와 한수생이 탄 배는 그 모든 배들 중에 맨 앞에 서서 갈매기섬으로 향했다. 갈매기섬은 육지에서 한참을 떨어져 먼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었으므로, 망망한 물 위를 오랫동안 한참을 헤치고 나가야 했다.
 
며칠 간 바다를 달린 끝에 배들은 갈매기섬에 도착했다.
 
배를 대고 보니, 해변에는 썩어가고 있는 낡은 배나 부서진 배의 조각 같은 것들이 떠다녔다. 가끔 이곳을 지나가던 다른 해적이 섬에 들러, 얕은 개울물이 흐르는 곳 옆에서 밥을 해 먹은 듯한 모양이 있는 듯하기도 했다. 해적떼들이 약탈을 하다가 끌고 온 사람을 해친 흔적도 보였다.
 
장희는 해변을 돌아보더니 홀로 탄식했다.
 
“이곳은 본래 청해진 장보고 대사의 배가 천축(天竺, 지금의 인도), 파사(波斯, 지금의 이란)와 같은 넓은 바다로 나가기 위해 들르는 곳이었건만, 대사께서 세상을 떠나고 나니 이제 더는 넓은 바다로 나아갈 사람이 없어져 고작 십몇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이렇게까지 망해버렸구나. 옛날의 그 아름답던 배들은 그저 썩어 없어져가고 있으며, 한낱 해적떼들이나 찾아와 죄를 짓는 더러운 곳으로 변했는가.”
 
곧 영군, 상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뒤이어 오자, 장희는 황급히 눈물을 닦고 얼굴을 바꾸었다.
 
영군이 장희에게 말을 걸었다.
 
“상잠 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섬의 깊은 땅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고 하셨소.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만한 곳이 어디에 있겠소?”
 
장희가 대답했다.
 
“이 섬의 가운데에는 큰 우물이 있습니다. 항상 물이 잘 나오던 곳이었으니, 어쩌면 그 속에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길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오늘 하루는 해변에서 자고 내일 날이 밝으면 우물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이 그럴듯하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배를 대고 해변에서 밥을 지어 먹고 그날 밤을 보냈다.다들 기분이 좋았으니 술을 마시고 노는 무리들도 있었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므로 바닷가 한쪽이 밤새 떠들썩했다.
 
이튿날이 되자, 사람들은 저마다 보물을 담아올 자루와 지게 같은 것을 들고 줄을 지어 섬 가운데의 우물을 향해 걸어갔다.
 
우물은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보살피는 사람이 없어서 거의 무너져 있었다. 상잠은 부하들에게 무너진 우물의 돌더미들을 치우라고 말했다. 한동안 돌을 치우고 나니, 뻥 뚫린 구멍이 나타났다. 장희가 우물 속에 자갈 조각을 던져보았더니 한참 후에야 자갈이 떨어져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우물 물이 마르지 않았소.”
 
맨 먼저 가장 무예가 뛰어난 영군이 우물 아래로 밧줄을 드리운 뒤, 그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우물 바깥에서 줄에 횃불을 묶어 내려주자, 영군이 불을 밝혀 우물 안쪽을 살펴보았다. 영군이 뭐라고 외쳤으나 우물 바깥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넓습니다.”
“내려오십시오.”
 
하는 소리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우물 아래로 내려가기로 하고, 밧줄 몇개를 더 내려 튼튼히 하였다. 또한 공주까지도 우물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공주께서 이렇게 위험한 곳에 직접 내려오실 까닭이 있겠습니까?”
 
“백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풍 태자의 보물을 처음 보는데 어찌 종묘를 이어갈 내가 없어서야 되겠느냐?”
 
공주는 그렇게 말했다. 때문에 우선 공주를 의자에 앉히고 의자에 비단끈으로 그 몸을 묶게 한 뒤, 한수생이 의자를 짊어지고 내려가기로 했다.
 
일행이 모두 내려와보니, 과연 영군이 말한 대로 우물 바닥은 매우 넓었다.
 
바닥에 발을 딛고 서서 한참을 걷고 달릴 만한 넓이였다. 즉 이곳은 우물이 아니라 넓은 동굴이 있었는데, 그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땅 위에서 보기에만 우물처럼 보였던 것이다.
 
우물 안은 캄캄하여 횃불을 이리저리 비출 때마다 그 주위만 일렁거리듯 보일 뿐이었다. 바닥에는 물이 차 있어서 찰랑거리는 물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리고 우물 구멍으로 드는 햇빛이 내려와 바닥에 가득한 물 가운데를 비추었다. 빛이 비추는 모양 때문에 물은 기둥 모양의 빛나는 덩어리가 되어 있는 듯하였다.
 
“저 곳이 심상치 않아 보이니, 저 물속에 무엇인가 있지 않겠습니까?”
 
영군이 가운데 빛을 받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대로 한수생과 부하들은 물 한 가운데로 가서 그 아래를 파보기로 했다.
 
“물이 제법 깊습니다.”
 
동굴 가장자리 쪽으로는 물이 겨우 발목까지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니 한수생의 허리까지 물에 빠질 만큼 깊이가 깊었다. 때문에 그 자리에서 흙을 파고 아래에 묻힌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수생과 부하들은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한수생은 그곳에서 손바닥 길이 정도 되는 길쭉한 쇠막대기 같은 것 하나를 찾았다. 오랫동안 흙에 묻혀 있어서 완전히 녹슬어 있었으며, 그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상잠이 말했다.
 
“저것은 분명 열쇠다. 그렇다면 저 열쇠로 열 수 있는 자물쇠가 어디인가 있지 않겠는가?”
 
상잠의 말을 듣고 우물 아래로 내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흩어져 횃불로 이곳저곳을 비추어 보았다. 그러다가 영군이 물이 천천히 흘러가는 동굴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무엇인가 커다란 것이 있습니다.”
 
영군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에는 뗏목과 비슷한 배가 하나 있었다. 그 크기는 크지 않아서, 서너 사람이 올라가면 충분해 보였다. 그 가운데에 갈대나 대나무를 엮어 만든 지붕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미 다 썩어서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저 배 안에 무엇인가가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일행은 모두 그쪽으로 다가갔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는 듯했지만, 점차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상잠이 가장 앞장서 뗏목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걸어갈 때마다 물을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더 시끄러워졌는데, 그러자 그 소리가 재촉하는 것 같은지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 빨라지고 첨벙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공주께서 발목을 적시게 될 터이니, 부디 저에게 업히십시오.”
 
다만 한수생만이 공주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와 한수생은 맨 뒤에서 사람들을 따라갔다.
 
상잠이 뗏목에 먼저 도착해보니, 과연 그 안에는 커다란 상자가 하나 있었다. 상자 위에 횃불을 갖다 대자 커다랗게 써놓은 글씨가 보였다. 그 글씨는 “백제대보(百濟大寶)”, 네자였다.
 
“과연 뛰어난 글씨이니, 분명 조정의 높은 사람이 썼음이 틀림없다.”
 
상잠의 기괴하게 웃는 얼굴이 횃불에 일렁거려 보였다. 상잠이 말했다.
 
“어서 열쇠를 가져와보라.”
 
이때 공주가 말했다.
 
“장군은 들으라. 백제 조정이 남긴 가장 큰 보물을 하늘의 도우심으로 드디어 우리가 손에 넣게 되었느니라. 이 기쁜 때에, 내가 직접 그 보물을 먼저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공주는 기뻐하며 웃었다. 상잠이 따라 웃었다.
 
그런데 상잠이 웃는 모양이 이상하였다.
 
 

12회에 계속됩니다. 

 


곽재식

2006년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지상 최대의 내기』 등 다수의 소설과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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