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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7회)

조해진
2020년 04월 16일


윤주


미정이 아프다. 
 
죽을 끓이기 위해 냉장고에 남아 있던 야채와 돼지고기를 꺼내 손질하면서 윤주는 수시로 미정이 누워 있는 방 쪽을 살폈다. 나흘 전 자정 무렵에야 미정을 부축하며 집까지 데려다준 중년 여성은 아무래도 미정이 갈비뼈를 다친 듯하니 곁에서 잘 지켜보다가 통증이 심해지면 바로 연락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다음 날부터 미정은 천막촌에도 나가지 않은 채 방에만 머물렀고, 활동가들이 찾아오면 현관에서 인사만 나눈 뒤 돌려보내곤 했다. 먹거나 씻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겨야 할 때는 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감싸곤 했는데, 통증으로 인한 무의식적인 행동 같았다. 잠도 설치는지 점점 잿빛으로 변해가는 미정의 얼굴을 어떤 마음으로 마주봐야 하는지, 윤주는 어렵기만 했다.  
  
미정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흘 전 윤주도 그 현장에 있었다.
  
미정이 철야 집회로 귀가하지 않은 다음 날, 윤주는 햄과 토마토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도청 가는 버스를 탔었다. 활동가는 미정의 새 직업일까. 버스 안에서 윤주는 문득 궁금해졌다. 계약서와 사무실, 그리고 아마도 급여도 없을 그 일을 직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때껏 미정은 제주까지 내려와 새 공항 반대에 투신하게 된 이유나 과정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고, 미정도 더 묻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렸을 땐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방을 뒤져봤지만 우산은 없었고, 대신 틈날 때 읽으려고 챙겨온 시사잡지 한권이 보였다. 시끄러웠다. 잡지로 대충 머리를 가린 채 제주도청 쪽으로 빠르게 다가가는데, 여러 소음이 합쳐진 웅성거림이 조금씩 크게 들려왔다. 도청 앞에 도착하자 그 소음은 쫓아내려는 사람들과 버티려는 사람들의 마찰에서 빚어졌다는 걸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회색 점퍼를 입은 경찰들과 목장갑을 낀 남자들은 천막을 철거하는 중이었고, 조금 전까지 천막 안에 있었을 사람들은 몸으로 그들을 막고 있었다. 바닥에는 반대, OUT, 철수 같은 문구가 적힌 팸플릿과 노란색 현수막, 부서진 안경과 납작해진 운동화 한짝과 찢긴 우비가 한데 엉켜 있었다. 평화집회를 보장하라며 반복적으로 외치는 목소리, 고함과 비명, 호루라기 소리와 기자들이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그 모든 소란을 에워쌌다. 
  
도청 정문은 통제되고 있었으므로 윤주는 도청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 채 일단 눈으로 미정을 찾았다. 미정은 현관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서 몇명의 사람들과 팔을 엮은 채 서 있었는데, 우비의 모자가 벗겨져 얼굴이 온통 빗물에 젖은 상태였다. 마침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무원 몇명이 윤주 옆으로 오더니 윤주처럼 뒤꿈치를 들어 도청 안을 건너다보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윤주는 미정의 안전을 살피기 위해 좀더 오래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뒤에 샌드위치를 건넸을 것이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사다주었을지도 모른다. 육지 것들이 와서 제주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새 공항이 들어서면 관광객도 늘고 땅값도 오를 텐데 그걸 배 아파하는 거라고, 그들 중 누군가는 말했고 누군가는 거들었다. 제주 방언이 조금씩 섞여 있는데도 그들의 말이 정확하게 전달되고 그 말 속의 감정까지 바로바로 해석된다는 게, 무엇보다 서 피디와 최 아나운서의 웃음소리가 그 대화의 뒤편에 배음처럼 깔려 있다는 게 윤주는 당혹스러웠다. 
  
윤주는 곧 돌아섰다. 그새 얇은 잡지가 쓸모없을 정도로 빗줄기는 굵어져 있었지만 우산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 도청에서, 아니 가상의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그 웃음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맹렬한 마음뿐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중문 집으로 돌아와선 반찬통에 넣어둔 샌드위치를 물도 없이 꾸역꾸역 먹어치운 뒤 샤워를 했고, 밤까지 긴 잠을 잤다. 
  
죽은 다 익어 있었다. 미정이 누워 있는 방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 미정은 어제보다 더 해쓱해진 얼굴로 방문을 열어주었다. 죽을 끓여놓았다는 윤주의 말에 미정은 힘겹게 웃어 보였고 예의 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짚은 채 한발 한발 식탁에 가서 앉았다.
  
“병원엔 왜 안 가보니?”
  
식사가 시작되고, 아주 느린 속도로 죽을 떠먹는 미정을 건너다보다 윤주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미정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의료보험비가 체납됐어.”
  
무심한 말투였다. 너무도 무심해서 하마터면 윤주는 아무런 쓸쓸함 없이 제 몫의 죽을 마저 떠먹을 뻔했다. 윤주가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두 눈만 끔뻑이고 있는 사이 걱정 말라고, 미정이 이어 말했다. 
  
“활동가 중 한명이 정형외과 의사를 소개해준댔어. 이번 주 안에 진료받을 수 있을 거야.”
  
화가 났다. 갑작스러운 두통을 동반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화였다. 더 그곳에 있다가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라고 쏘아붙이기라도 할 것 같아 오히려 그게 걱정될 지경이었다. 어쩌면 도청에서 엿듣게 된 사무원들의 대화를 함부로 떠벌릴지도 몰랐다. 
  
“바람 좀 쐬고 올게.”
  
말한 뒤, 윤주는 의자를 소리 나게 뒤로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끝까지 미정의 시선을 피한 채 휴대전화와 외투만 챙겨서 급하게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무작정 걸었다. 걸으면서, 미정과 지난 일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그저 각자 고투해야 하는 직장과 인간관계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뿐이라고 여기고 말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윤주에게 미정은 고난을 자처하는 고행자처럼 보이곤 했는데, 아마도 미정이 재단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랬을 것이다. 미정에게서 재단을 찾아오는 가난하고 기댈 데 없고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 것이 윤주는 때때로 불편했다. 아니, 매번 불편하기만 했다. 충분한데, 자신뿐 아니라 부모님이든 여동생이든 선우든 하나같이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걸 떠올리면 충분히 괴로운데, 더 절박하고 더 고립된 사람들까지 걱정하고 연민하는 건 힘에 부쳤고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했었다. 윤주가 불편해하는 기색은 무심결에 드러났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미정은 어떤 벽에 대해 생각하곤 했을 것이다. 윤주와 만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서도 신발을 벗다 말고,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그 벽에 대한 생각은 이어졌을지 모른다. 
  
한참을 걸은 듯했지만 윤주는 멀리 가지 못했다. 더 걷는 것도 무의미했다. 제주에선 딱히 갈 곳이 없는 데다 지금 당장 제주를 떠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윤주의 방에는 아직 시징이 머물고 있었고 사회생활 이년 만에 도피하듯 결혼한 여동생은 벌써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신세를 질 형편이 아니었다. 백부의 집에 얹혀사는 부모님에게는 윤주가 가고 싶지 않았다. 윤주는 휴대전화를 꺼내 여전히 부재중전화 목록에 떠 있는 선우의 이름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기억이 났다. 
  
팔년 전, 제주로 떠나기 이틀 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선우의 전화를 받은 윤주는 교대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선우는 접수대 창구 앞에서 직원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응급실에 실려온 아버지를 당장 중환자실로 옮겨달라는 선우의 요구에 직원은 유일한 보호자가 아직 학생이니 연대보증인이 필요하다며 맞서는 상황이었다. 그날 선우의 아버지는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가지 못했다. 윤주는 지금도 선우가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고 끊고를 반복하다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아 흐느끼던 모습을 바로 어제 일인 듯 기억하고 있었다. 철컹, 선우 앞으로 무거운 쇳소리를 내며 셔터 하나가 내려온 듯 선우가 안타까울 정도로 고립돼 보였다는 것도. 물론 그때는 그후로 연쇄적으로 이어질 동심원 모양의 불행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날로부터 삼년이 지난 어느날, 선우에게서 방송국 피디나 영상제작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진짜 꿈이 되어버렸다는 자조적인 말을 듣게 되리란 것 역시 적어도 그때는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다.  
  
윤주는 통화 버튼을 눌렀고, 몇번의 신호음이 지나가자 무턱대고 통화가 연결됐다. 일하던 중에 전화를 받았는지 여보세요,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금속을 자르고 붙이고 다듬는 기계음이 딸려왔다. 두 사람이 번갈아 여보세요를 반복한 끝에야 기계음은 조금씩 엷어져갔고, 이내 뜻밖의 소식이 윤주에게 전달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그날, 전화한 날……”
  
순간 윤주는 내쉬는 숨마저 불경하게 느껴져 흡, 하며 입술을 닫았고 한참 후에야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해, 몰랐어……”
  
“나도 얼결에 장례 치렀는데, 뭐.”
  
“……”
  
“윤주야.”
  
“응.”
  
“……네가 명복을 한번 빌어줄래?”
  
“……”
  
명복을 빈다고, 윤주가 가까스로 말하자 저편에서 가늘게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선우가 지금 있는 곳은 공장 뒤편인지 이번엔 지나가는 새의 날갯짓 소리가 윤주의 세계로 딸려 들어왔고 윤주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마워, 대답해놓고 선우는 또다시 연거푸 중얼거렸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비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전해진 두번째 인사는 딱히 대상이 없다는 걸, 윤주는 알 수 있었다. 통화는 곧 종료됐다. 만나자거나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은 생략된 채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중문 집에 도착했을 때, 비스듬히 서서 설거지를 하는 미정의 뒷모습이 보였다. 윤주는 빠르게 싱크대로 걸어가 미정을 밀어낸 뒤 소매를 걷어붙였다. 도로 식탁 의자에 앉은 미정이 등 뒤에서 윤주를 불렀다. 왜,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미정은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윤주야, 난 여기가 편하고 사실 갈 데도 없어. 그게……”
  
“……”
  
“그게, 내 잘못인 거야?”
  
“……” 
  
아직 컵과 수저를 씻지 못했지만 윤주는 그대로 수도꼭지를 잠갔다. 천천히 미정 쪽을 돌아보자 미정은 방송국 이야기 좀 해달라며 특유의 소년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주에 와서 처음 보는 미소였다. 윤주는 웃고 말았다. 정말 듣고 싶은 게 맞느냐고 윤주가 묻자 미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윤주는 이내 미정 맞은편에 앉았고, 그 이야기가 어떤 순서로 전해지든 마지막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은 시징에게 메모를 쓸 때 미처 적지 못한 문장이기도 했다. 윤주는 이제야 그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윤주 자신으로부터. 당분간은 그 말에 기대어 무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윤주는 믿고 싶었다. 저편의 미정은 이미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하염없이 윤주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8회에 계속됩니다.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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