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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8회)

조해진
2020년 04월 23일


시징


얼마나 잔 것일까.
  
시징은 누운 채 손을 더듬어봤지만 손목시계나 휴대전화는 잡히지 않았다. 시야가 온통 캄캄한 걸 보면 해가 진 이후란 건 분명했지만, 잠 속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들어갔는지는 계산되지 않았다. 하긴, 이 방에선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거나 차곡차곡 쌓이지 않았고, 대신 굴절되고 왜곡되다가 어느 순간 지워져버리곤 했다. 모든 감각과 생각의 행로가 과거의 몇몇 장면들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작은 타임머신과도 같은 방…… 시징은 그 이유를 잘 알았다. 기차 때문이었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할까, 은철이 기차와도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은철이라면 창문에 노란빛이 어른거리다가 뒤이어 경적 소리가 들려오는 이 방에, 그러니까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다른 세계로 이주한 듯 조명과 소리, 진동의 크기가 달라지는 지금 같은 순간에 깊이 매혹되었을 거라고 시징은 확신했다. 기차를 보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줘서 좋다고 은철은 말하곤 했다. 정주에 대한 의무가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고도 했고, 기차라는 사물에서 환기되는 이미지—풍경이 흘러가는 창문, 바람이 작게 소용돌이치는 연결통로,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플랫폼을 가득 채우는 발소리—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홍콩에서도 은철은 도시의 전경이 아니라 트램이 보고 싶어서 빅토리아피크에 가곤 했고, 가끔은 전망대 벤치에 앉아 대략 십오분 간격으로 피크를 오르내리는 트램을 구경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센트럴에서의 첫 만남 이후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시징이 온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열망을 참지 못한 채 용기를 내어 은철에게 전화했던 그날도 은철은 빅토리아피크에 있었다. 
  
“내가 왜 여행을 시작했는지 알아요?”
  
그날 산책 중에 은철이 물었다. 나란히 걷는 내내 손가락 끝이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에만 온 신경을 쏟느라 발끝까지 긴장해 있던 시징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은철의 옆얼굴을 흘끗 보았다. 은철은 대학 졸업 바로 전 학기에 휴학을 하고는 아시아 여행을 시작했다고 이어서 말했다. 홍콩에 오기 전엔 일본과 대만을 여행했고 홍콩을 떠나면 마카오와 태국, 베트남에 들른 뒤 마지막엔 인도에서 한달 이상 머물다가 귀국할 예정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 여정이 홍콩에서 멈춰버리라곤 은철 역시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꼰대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오더니 나더러 취업하고 결혼하기 전까진 여자를 좋아하는 척해달라는 사정하는 거예요. 똑똑한 꼰대가 뭘 모르고 그런 말을 했을 리는 없고, 처음엔 농담하나 했다니까요.”
  
시징은 그 상황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은철은 딤섬 식당에서 이미 말한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 꾸준히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왔고, 그 정체성이 무시도 멸시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인정되기를 바랐다고. 실제로 은철은 어머니와 누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친구들과도 거부감 없이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자신의 생애에서 용감하고도 투명한 투쟁을 해왔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예외였다. 그에게는 도무지 은철의 투쟁이 통하지 않았다. 한때는 학생운동을 했다지만 현재는 중도보수파에 중산층인 그는 아들의 정체성이 아들에게서 계급적 안정과 자본의 혜택을 제거하는 폭탄 같은 것이라고 단정했던 것이다. 여전히 어떤 나라들에선 동성애자가 승진과 성공에서 차선으로 배제되고 동성끼리 가정을 이루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그날 꼰대랑 싸우다가 뺨을 맞았거든요. 근데 꼰대가 내 뺨을 때리자마자 날 끌어안고 우는 거예요. 나는 결혼도 못할 테고 애도 없을 테니 늙어서는 어디 시립병원 같은 데서 혼자 죽고 말 거라면서. 아빠란 사람이 아들 앞에서 울다니, 그거 반칙 아닌가요? 어쩌라고, 그렇게 나오면, 어이없어 진짜. 아무튼 그날 이후로 더이상 집에 있을 수 없겠더라고요.”
  
이어진 그 말에 시징은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무턱대고 은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와 눈을 맞춘 채, 사랑을 고백하는 소년인 양 숙소에서 나와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은철에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진짜 집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다. 은철은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듯 이내 시징의 어깨에 이마를 댔고, 잠시 뒤 두 사람은 틈 하나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멀기만 했던 기차 소리가 조금씩 증폭되어 들려왔다. 두 사람의 결합을 기념하는 축포 같다고, 시징은 그 순간 믿고 싶었다.  
  
은철이 시징의 아파트에 들어와 산 지 석달 만에 떠나버린 건, 혹시 그 아파트에까지 아버지의 목소리가 유동하는 공기를 타고 스며든 탓은 아니었을까. 은철이 떠난 뒤 시징은 생각하곤 했다. 악몽의 형태로, 혹은 시립병원에서 혼자 임종을 맞는 상상 속 장면으로 변형된 나쁜 공기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은철은 누구였을까.
  
영등포에서 태어났다는 것, 시징보다 여덟살이나 어렸지만 이제는 그도 이십대 후반이 되었다는 것, 아버지를 피해 여행을 시작했지만 주기적으로 그에게서 여행 경비를 받았고 연락도 자주 했다는 것,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으리란 것, 기차를 좋아했고 게이라는 것, 이 정도가 시징이 은철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와 만나는 동안엔 그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떠나고 나니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을 만났던 것인지 시징은 아무것도 규정할 수 없었다. 시징은 은철이 다니던 학교 이름을 몰랐고 가족과 살던 서울집의 주소를 알지 못했으며, 그의 부모나 형제의 연락처도 미리 받아놓지 않았다. 시징에게는 은철이 누구의 자식이고 어떤 그룹의 일원이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은철이 메모 한장만 남겨놓고 시징의 아파트를 떠난 뒤에야 시징은 그와 연결된 끈이 형편없도록 허술했다는 걸 깨달았다. 은철이 휴대전화를 받지 않고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자 더이상 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그날 이후 은철과의 연락은 완전히 단절됐다. 한 사람을 만나서 알아가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은 내부에 끝없이 계단이 이어지는 건축물과도 같은데, 영원히 그곳에 있을 줄 알았던 건축물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며 남겨진 건축물의 파편으로는 아무것도 복원할 수 없다는 것이 시징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때로는 그 덧없음이 은철의 부재보다 더 시징을 괴롭혔다. 
  
추웠다. 이불을 목까지 덮으면서도 시징은 강렬한 추위를 느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으려 했던 강남역 지하상가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쉬었는데도 어젯밤부터 시작된 뼛속까지 결빙되는 것 같은 추위는 그대로였다. 내일 출국하려면 기운을 내야 하고 그러려면 무언가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의욕이 일지 않았다. 대신 시징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아득한 슬픔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두 팔로 몸을 받친 채 가까스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은철이 윤주의 방에 와 있었다. 잰걸음으로 방을 오가며 열려 있는 캐리어가방에 자신의 옷과 소지품을 던져 넣는 은철을 시징은 두 눈이 아프도록 뚫어지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반가우면서도 고통스러웠고, 고통스럽다가도 뜨거운 환열이 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시징은 다정히 묻고 싶었지만 몸살 기운으로 빚어진 환시가 대답을 해줄 리 없다는 건 시징도 잘 알았다. 
 
시징, 방금 전에 한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버지가 아프대. 수술도 받아야 한다나봐. 그래서 급하게 떠나게 되었어. 짐을 다 싼 은철이 창가 테이블에 앉아 메모지, 윤주가 남기고 간 그 메모지에 그렇게 써내려갔다. 시징…… 시징, 쓰고 나서 은철은 고개를 들어 방안 곳곳을 눈에 담은 뒤에야 다시 펜을 쥐었다. 시징, 근데 그거 알아? 이 아파트에 처음 왔을 때 말이야, 몇년 전에 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떠올랐어. 밀밭을 혼자 걷는 사람을 그린 풍경화였는데, 그림 속에서는 걷는 사람의 뒷모습만 나오는데도 나는 그 얼굴을 본 것만 같았지. 시징, 너무 혼자 있지 마. 생애의 끝을 미리 가정하지도 마. 사실은 네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어. 그렇게 마저 쓴 은철이 캐리어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가려 할 때, 방안으로 노란빛이 번져들면서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방과 이 방에 함몰된 과거의 시간을 둥글게 에돌며 지나가는 저 기차는 홍콩 빅토리아피크에서 출발해서 알 수 없는 미래의 도시로 떠나가는 것만 같다고 시징은 생각했다. 은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징의 예감대로 그는 이 방에 매혹된 듯 보였다. 시징은 하염없이 은철의 뒷모습을 건너다보며 이곳에서 혼자 늙어갈 홍콩 사람을 걱정하며 갈등하는 그 얼굴을 상상했다. 상상했지만, 그런 기대감은 불완전한 위로로 남을 것이고 시징은 그런 위로라면 전부를 이미 겪은 것만 같았다. 
  
기차가 완전히 멀어진 뒤에야, 은철은 도로 테이블에 앉아 메모지에 한 문장을 더 썼다. 그 문장을 시징은 기억했다. 육년 전 그날 저녁, 회사에서 돌아온 시징은 컴컴한 아파트 거실에서 그 메모지를 발견했고 선 채로 메모지에 적힌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기다려달라거나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동안 고마웠다는 마지막 문장이 시징에게는 특히 해석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해석되지 않는 그 문장을 곰곰이 떠올려보다가 시징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새 은철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안 돼, 속삭이며 시징은 침대에서 내려가 거의 기듯이 테이블까지 갔고 손을 뻗어 메모지를 집었다. 어차피 모든 것이 환상이라면 육년 전에 없었던 문장을 지금은 찾아낼 수 있을지 몰랐다. 이제 그 문장은 기다려달라거나 다시 돌아오겠다는 식의 미래를 약속하는 내용이 아니어도 되었다. 그저 후회하지 않는다는 문장 한줄이면 적어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되어줄 터였다. 시징은 자꾸만 감기려고 하는 두 눈을 주먹으로 세게 문지르며 메모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환영인사와 방에 대한 보충설명이 이어졌고, 윤주가 최근에 직장을 그만둔 것이라든지 시징에게 방을 빌려주면서 제주로 내려가 있을 거라는 개인적인 사정도 적혀 있었다. 
  
시징, 혹시 당신도 홍콩에서 도망친 건 아닌가요? 
  
메모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도망치는 게 맞습니다. 도망치는 건 무섭지 않은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사실 단 하나인데 그건……
  
메모는 거기서 끝났고, 은철이 덧쓴 글자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주 「완벽한 생애」 연재는 한주 휴재합니다.
5월 7일에 올라올 9회를 기다려주세요.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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