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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아도, 비밀을 맞아도, 무던히 버티기에 그 이름은, 곳

이원하
2020년 05월 06일



 
비를 맞아도, 비밀을 맞아도, 무던히 버티기에 그 이름은, 곳


 
닿으면 아픈 게 있고
닿으면 이상한 게 있고
닿으면 소리치게 되는 것이 있어요
기억 아닌 추억이 몸에 닿으면 그래요
 
추억 안에는 인적이 드물어요 그래서
발견되는 모든 것에다 마음을 빼앗기게 돼요
멈추지 못할 테지요
 
속만 새카맣게 타버린 순백의 꽃이 보여요
아네모네처럼 생겼다는 혼잣말이 나와요
나는 이 앞을 떠나지 못해요
 
아네모네가 아닌 꽃들은
마르지 못하거나 시들면 망가지거나
자꾸 겁을 먹거나 화를 내는 것이 보통인데
속만 까맣게 타들어간 아네모네는 그저
나와 다를 바 없는 것이 특징이에요
 
밤에는 숨죽일 줄 알아요
낮에는 말이 많고 자주 얼굴을 떨구고
표정을 감추기보단 버려버리고
손발을 잃은 김에 처진 어깨도 잃는 것이
나와 다를 바 없어요
 
앞장서서 무언가를 좋아해본 적 없는데
아네모네 앞을 떠나지 못하겠어요
 
내 앞에서 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맞는 말이 되지요
 
아네모네의 이름에는 두번의 대답이 들어있어요
그가 잠시 떨어져 지내자고 말했을 때
네,
그가 이제는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네,
나도 두번 대답했어요
 

 


이원하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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