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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금융예술인이 되기로 했다

이랑
2020년 05월 12일
    

 

  

'키워드3' 일곱번째 키워드는 '코로나'과 '생활'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지금을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첫번째 글은 '금융예술인' 이랑 님이 보내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댓글과 투고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투고하실 분은 이메일 munhak3@munhak3.com으로 A4 3장 이내의 완성된 글을 보내주세요.
한분을 선정해 연재의 마지막 지면과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 중 한분께는 문학지 11호와 신간을 선물로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코로나-(금융예술인)-생활

 


코로나 시대에 금융예술인이 되기로 했다

 
2011년부터 조금씩 일본 활동을 시작했다. 근 십년간 일년에 한두번이던 일본 출장이 작년부터 한두달에 한번으로 매우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일년 총수입의 40% 정도가 일본 활동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올해는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리라 예상하던 참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시대가 시작됐다. 
 
마지막 방일은 2020년 2월 일본 서쪽지방 투어였다. 다섯개의 지방도시를 돌며 다섯번의 라이브를 하는 일정이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30명도 채 되지 않았기에 예정대로 떠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출발하는 날 인천공항에서는 (당시 확진자가 가장 많았던) 중국행 비행기 대부분이 운항 중지였다. 그 때문인지 공항 내부는 굉장히 한산했는데, 낯설도록 조용한 공항을 걷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마스크를 박스째 옮기는 공항직원들을 보며, 저 마스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다. 마스크 사재기가 한창이라 약국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마스크를 사기 쉽지 않던 때였다. 게이트 앞에도 마스크 박스가 탑처럼 쌓여 있었는데 공항직원들 용인지 비행기에 태워 어디로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천공항에서는 한명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두시간을 날아 오사카공항에 도착해보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버스를 타고 첫번째 행사지인 고베에 내리자 마스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오사카보다 더 적었다. 그럼에도 마스크 사재기가 시작된 모양인지 약국마다 ‘마스크 없음’이라고 쓰인 종이가 눈에 띄었다. 다행히 공연장에 찾아온 관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어 안심이 됐다. 공연 후, 사인보다는 악수를 청하는 일이 많은 일본이었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악수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책상에 미리 써붙이고 사인회를 진행했다. 다니는 지역마다 마스크는 품절이었고, 이를 예상해 한국에서 미리 챙겨온 마스크를 하나씩 꺼내 썼다. 열흘간 일본 서쪽지방을 이동하며 국내에서 점점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매일 확인했다. 
 
공연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 3월에 또 예정된 일본 일정을 위해 15일짜리 공연비자를 신청했다. 그리고 발급된 비자를 찾으러 가기 하루 전인 3월 6일, ‘무비자 입국금지 및 일본 대사관 발급 비자효력 무효화’ 뉴스가 발표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일본 대사관에서 발급한 비자가 붙어 있는 내 여권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어 당장 여권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분증을 손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꽤 불안해졌다. 비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3월 일정은 곧 취소되었고, 비자와 관계는 없지만 국내에서도 공연 취소 소식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6월까지 예정된 모든 공연의 취소 및 연기를 알리는 메일이 하루에도 몇개씩 들어왔다. 그것들을 읽고 있자면 스멀스멀 불안감이 찾아들었다. 모두들 힘든 시간이겠거니 하면서 잘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도 악몽을 꾸며 새벽에 눈뜨기를 며칠이나 반복했다. 이른 새벽 침대에 누워 ‘이게 대체 무슨 불안감인가’ 중얼거리는데 그렇게 중얼대는 문장의 ‘이게’가 뭘 의미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건 ‘사회적 불안감’이라며, 본인도 요즘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공연이 전격 취소된 3월의 수입 내역을 살펴보았다. 3월 한달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할 수 있는 두건의 일을 했다. 서평 하나, 추천사 하나를 쓰고 받은 금액은 총 30만원이었다. 그간 내 수입의 많은 부분이 행사를 통해 충당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업자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개인사업자와 마찬가지인 프리랜서에게 한달 사업수입 30만원은 충격적인 숫자였다. 행사를 뛸 수 없는 시기라 사업수입을 더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뭔가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불현듯 ‘금융수입’을 올려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의 정석』보다 두꺼운 기초 금융서적을 사서 금리와 주식 편을 먼저 읽어보았다. 주식 계좌를 만들고 예금 계좌에 있던 돈 일부를 옮겨 주식을 샀다. 하지만 혼자서 판단하고, 혼자서 실행하는 게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현재 내 금융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어 재무설계를 받아보기로 했다. 저 멀리 강남에서 내 작업실이 있는 망원동까지 찾아와준 설계사는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었다. 새 친구를 사귀는 기분으로 이것저것 궁금했던 걸 댐처럼 한꺼번에 쏟아내니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상담이 끝났다. 여전히 궁금한 게 많았기에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고, 이후 그에게 두번 더 금융 강의를 들었다. 
 
기초지식을 조금씩 알게 되니 직접 금융관련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갑내기 설계사의 세번에 걸친 열정적인 강의가 한몫했던 것 같다. 그리고 3월 말, 재무설계를 받았던 회사를 찾아가 면접을 봤다. 월간지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열일곱살을 시작으로 예술대학 졸업장에, 전부 예술 관련 경력만 길게 나열된 이력서를 보고 회사의 여러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그 자리가 신기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면접 당시 그렇게 서로를 신기해했던 본부장과 나는 15~20분의 면접 동안 서로에게 못다한 질문을 더 하기 위해 따로 식사약속을 잡았다. 며칠 뒤 우리는 회사 근처 한식당에서 만나 천천히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들의 세계가 SF 같았고, 그는 내가 우주인 같다고 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하나의 한식당에서 만나는 신기한 순간이었다. (비싼 한식당이었기에 계산은 본부장이 했다.) 
 
4월부터 모든 해외입국자는 2주간 자가격리를 하게 됐다. 혹 가까운 시일 내에 공연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어 일본에 공연을 하러 간다고 해도, 돌아와 2주 자가격리를 하게 되면 또 여러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해외 출장 계획을 세우기에 너무 큰 리스크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진 2020년 예상 (엔화)수입을 앞으로 금융업무를 통해 채워나갈 수 있을까. 의문과 기대를 품고 입문이 그나마 쉬운 편인 보험설계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생 처음으로 인터넷 강의도 수십시간 듣고, 문제집도 풀고, 혼자 시간을 재며 모의고사도 보고, 하나씩 해나가는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서 진행되는 교육 일정이나 시험 일정도 계속 밀리고 있어 실제로 자격증을 따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사회적 불안감으로 어떤 일도 집중이 안 되는 와중에 틈틈이 공부라도 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며칠 전에는 금융인으로서의 첫 걸음을 스스로 격려하는 마음으로 SNS 프로필에 ‘금융예술인’이라고 써보았다. 앞으로 무슨 일들이 생길까 여전히 한치 앞을 모르겠다. 그건 금융인도 예술인도 누구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랑
뮤지션, 영화감독. 정규앨범 「욘욘슨」과 「신의 놀이」가 있고, 지은 책으로 『이랑 네컷 만화』 『내가 30代가 됐다』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오리 이름 정하기』 등이 있다. 이랑은 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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