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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살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이원하
2020년 05월 13일



 
모르고 살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예전에는 무당 앞에 앉으면 금전운에 대해서만 묻곤 했었어요. 그런데 올해는 내 남편이 언제쯤 생기냐고만 물었네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알 길이 없었고,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살면서 한 남자에게 사랑 좀 받아보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하듯 질문을 끝내자, 무당은 보이지 않는 기운을 느끼기 시작하더니 내게 단호히 말했어요. 명예와 남자, 둘 중에 하나만 소유할 수 있다고. 절대로 둘 다 가지지 못한다고. 대신에 그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얻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이런 애매하고도 단호한 무당의 한마디에 나는 구겨지는 목소리로 읊조렸어요.
 
“둘 중 무엇인지 이미 알 것 같아요.”
 
4월의 봄날, 우연히 바라본 날씨예보에 대설특보라는 글자가 눈에 띄어서 망설임 없이 강원도로 향했어요. 진부행 열차에 오르니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했어요. 내가 표정을 이상하게 지어도, 손으로 입술을 뜯어도, 김 서린 창문에 고백을 적어도 참견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더없이 편안한 열차 안이었어요. 날씨예보와는 다르게 창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괜찮았어요. 사실 눈 내리는 풍경이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기에, 그곳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다른 일이 있었기에, 미래가 닥치지 않은 현재의 상황이 너무도 편안했어요.
 
열차에서 내리고 버스로 몸을 옮겨 깊은 산속으로 향했어요. 산이 별로 없는 제주도에 오래 살다가 와서 그런지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는 상황이 신비로웠어요. 승객은 나 하나뿐이어서 흥분될 때면 지어지는 표정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어요. 50분가량 오르고 오르니 날씨예보 그대로 산속에 폭설이 내리고 있었어요. 무지막지한 폭설에 감탄하며 “4월의 봄날이 이래도 되는 건가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허리를 숙여 바닥에 쌓인 눈을 한움큼 집으며 “뭉쳐지지 않는 눈 좀 보세요. 이런 눈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라고 외쳤지만, 그것은 절대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때부터 날씨가 주는 예언에 가슴이 찔리기 시작했지요.
 
잠시 몸을 녹이기 위해 들른 절에서 스님이 대추차 두잔을 준비해주셨어요. 사람은 하나인데 왜 두잔이나 주시냐고 물으니 스님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셨어요. 하는 수 없이 혼자서 두잔을 깔끔히 비워내야 했어요. 얼어붙은 몸에 뜨거운 대추차가 해답과도 같았기에 거뜬히 삼켜낼 수 있었어요. 해답을 잔뜩 마셨는데도 인생은 쉽게 흐르지 않았어요. 뭉쳐지지 못하는 사랑을 놓아주든 녹여버리든 해야만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대추차의 결말을 맛보고 난 뒤 절을 벗어나려는 나에게 스님이 한마디 하셨어요. 눈길이 미끄러우니 둘이서 사이좋게 손잡고 내려가라고.
 
“전 지금 혼자인데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부터 스님은 자꾸만 내 옆에서 다른 존재를 보는 것 같았어요. 스님은 선명한 것보다 희미한 걸 더 잘 보는 사람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건 이상하잖아요. 희미한 그것은 사람인가요? 명예인가요? 묻고 싶었지만 물어지지 않았어요. 내 마음은 현명하지 못해서 그것이 명예가 아니길 바라고 있었어요. 희미할지라도 그게 남자라면, 그 남자를 사랑으로 선명히 키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혼자 다니는 걸 이렇게도 좋아하면서 왜 이리도 사랑을 원하는 것인지. 도대체.
 
나는 곧 혼자서 부다페스트로 떠날 거예요. 그곳에서 잠시 정착했다가 돌아올 생각이에요. 혼자서 밥 잘 먹고, 혼자서 잘 돌아다니고, 혼자서 집도 짓는 사람이지만 둘이어야 가능한 사랑을 미친 듯이 원해요. 살면서 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어요. 내 얼굴이 못나서 그러나 싶어 거울을 한참이나 들여다본 적 있었어요. 성격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많은 친구를 사귀어보기도 했었어요. 답이 있을까 싶어 책만 읽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래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만들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사랑받는 방법은 세상이 소유한 비밀일까요. 세상이 혼자만 알고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지요. 비밀이 없다면 사랑이 가능해질 텐데.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 가정하면, 사실 그날 스님이 본 희미한 존재는 사람이 맞았어요. 무려 남자이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그가 우리가 함께였다는 사실은 비밀이라고 하였기에 나는 혼자인 사람으로 남아있는 거예요. 내 사랑은 즉 비밀. 비밀이라서 내 진심은 늘 외롭고 나에게 기대며 나를 괴롭혀요.
 

 


이원하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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