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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마지막회)

조해진
2020년 05월 14일


편지들


시징, 제주로 가기 전 이 메모를 남깁니다.
  
이 방이 당신의 이번 여행에서 최적의 숙박 공간이 되길 바라지만, 에어비앤비 사이트에도 이미 밝혔듯 물리적인 결함이 많은 방이긴 합니다. 블라인드는 고장 난 지 오래고, 화장실의 수압이 낮으니 변기를 사용한 뒤엔 레버를 오래 누르고 있어야 하죠. 현관 조명은 접촉 불량으로 자주 깜박이다가 꺼지곤 할 테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상점이 문을 닫고 행인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밤과 새벽에는 기차 소리가 당신의 수면을 방해할지도 모르겠어요. 하긴, 당신에게는 그 기차 소리가 어선이 물결을 가르는 소리로 번역되어 들릴 수도 있겠군요. 당신이 그랬죠? 영등포라는 지명이 영등굿이 행해지던 포구에서 유래했다는 여행서적의 한 구절을 읽고 내 방을 선택했다고요. 솔직히 당신의 이메일을 받기 전까지, 나는 영등포의 어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영등굿이 풍어와 무사를 비는 한국의 샤머니즘 퍼포먼스 중에 하나라는 것, 그리고 지금껏 정물과 다르지 않게 보였던 한강이 한때는 배를 내보내어 물고기를 낚던 조업의 현장이자 악천후에는 난파와 조난의 가능성이 내재된 공간이었다는 것을 당신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입니다.
  
시징,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까요?
  
한달 전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온힘을 다해 쥐고 있던 끈 하나를 놓쳤습니다. 그 끈을 붙잡고 있어야 이 생애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막상 놓아버리니 자유로운 만큼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요, 나는 제주로 도망치려는 것입니다. 도망치는 건 무섭지 않은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사실 단 하나인데, 그건……
  
시징, 부르는 말에 시징은 메모지에서 눈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에디가 신발들이 담긴 상자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상자에 넣을 신발 또 있냐고 물었어.”
  
“아니, 더 없어. 그냥 그 상자만 옮기면 돼.”
  
대답하며, 시징은 방금 전 서랍장 뒤에서 주운 메모지를 바지 주머니 안으로 슬쩍 밀어넣었다. 에디는 신발 상자와 다른 물건 몇개를 더 챙겨 현관문 밖으로 옮겼고 시징은 서랍장 안에 있던 속옷이며 양말을 비닐팩에 넣기 시작했다.
  
이사 날이었다. 
  
란콰이퐁을 떠나 몽콕에 있는 아파트로 에디와 함께 이사를 가는 날인 것이다. 몽콕으로 거주지를 옮기면 출퇴근에 좀더 시간을 할애해야 하겠지만, 대신 몽콕에서는 란콰이퐁의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조금 더 큰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돈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은행의 것이고 이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챙에게서 가불도 받긴 했지만, 시징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에디가 살던 토카완의 아파트는 누우면 두 발이 벽에 닿고 싱크대 옆에 변기가 있는 성냥갑 같은 곳이었는데, 시징은 먹고 배설하는 행위가 최소한의 구분 없이 혼재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공간에서 에디를 계속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에디는 서점에서 받는 월급의 칠십 퍼센트를 그 방의 임대료로 내고 있었다. 에디가 시위를 포기하지 않는 건 터무니없이 비싼 임대료 때문이기도 했다. 고작 그런 방에 월급의 칠십 퍼센트를 퍼부으며 살아간다는 건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미래를 받아들이겠다는 암묵적인 동의이기도 했으므로. 홍콩에는 하나의 아파트를 다시 몇개의 방으로 개조해서 나누어 이용하는 서브 디바이디드(sub-divided) 하우스가 흔했고, 여유 공간이 없어서 오직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하는 코핀 홈(coffin home)이라든지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새장 아파트도 있었다. 홍콩의 살인적인 집값이 본토 사람들의 이주와 투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홍콩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아까 뭘 보고 있었던 거야?”
  
그새 상자 몇개를 더 옮기고 온 에디가 서랍장 안을 거의 다 정리해가던 시징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혹시, 연애편지?”
  
에디가 코를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물었고 시징은 아마? 애매한 말로 호응해주었다. 에디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메모지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열여덟살 때부터 한번도 연애가 끊긴 적이 없다고 밝힌 에디는 시징에게 틈날 때마다 말하곤 했다. 너에게는 더, 더,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해. 
  
에디와는 그가 일하는 서점에서 만났다. 
  
작년 초여름의 어느 날, 온라인 쇼핑몰의 유통사 직원과 침사추이에서 미팅을 마친 뒤 지하철역 쪽으로 걷던 시징은 예고 없이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와 하나둘 펼쳐지던 우산들을 건너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홍콩이공대가 그 근처에 있었다. 홍콩이공대는 2019년의 시위에서 최후의 보루로 남았던 곳인데, 시징에게 비와 우산과 시위, 이 세 단어는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조합이었다. 영등포와 타인의 방, 그리고 기차의 조합처럼. 
  
홍콩이공대 안 풍경은 여느 대학 캠퍼스와 다르지 않았다. 새로 페인트칠을 한 바닥이라든지 흰 천으로 파손된 부분을 가려놓은 건물이 눈에 띄긴 했어도, 몇달 사이 학교는 거의 원상태로 복구된 듯 보였다. 경찰의 봉쇄와 진압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그해 11월, 이곳에 최루탄과 화염병뿐 아니라 벽돌과 불화살, 심지어 실탄까지 날아다녔다는 걸 상기하면 과도하게 진압된 평온이라고 시징은 생각했다. 그때 이곳에서 체포된 수백명의 사람들을 텔레비전으로 언뜻 본 적이 있는데 하나같이 젊었고, 다치고 굶고 지친 얼굴들이었다. 어느 순간 시징은 멈춰선 채 자신의 구두 끝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벗겨낸 듯한 페인트 자국 아래로 스프레이로 쓴 룽(榮)이라는 글자가 드러나 있었다. 몇시간 뒤, 그 글자가 시위 도중 자살한 청년의 이름 한 글자라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에디였다.    
  
서점은 홍콩이공대 후문 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시징은 낡은 건물 꼭대기층에 자리한 서점 입간판을 보고 책이나 한권 구입할 생각에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에디를 만난 것이다. 책을 추천해달라는 시징의 말에 에디는 책장을 돌며 책들을 꺼내왔고 시징은 주로 인문서였던 그 책들을 모두 구매했다. 계산한 카드를 주고받을 때, 뜻밖에도 에디가 먼저 사적인 질문을 해왔다. 이름과 사는 곳, 서점 방문이 처음인지 같은 것…… 시징이 홍콩이공대에서 본 글자에 대해 말을 꺼낸 건 에디의 그런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날, 에디는 시징에게 시위 중 사라지거나 자살한 청년들에 대해 슬픔과 울분을 오가며 한참을 이야기했고, 시징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쏟아내는 그에게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다음 날부터 시징은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면 그 서점으로 갔다. 에디와 연인이 되는 과정은 극도로 조심스러웠지만 매순간이 기적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점이 반정부 단체의 아지트라는 것도 알게 됐는데, 사실 그 정도는 시징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반정부 단체라고 해봤자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중반에 이르는 평범한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조직하고 시위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을 받는 게 전부라는 것, 그러니까 조직원의 나이대와 그 소박한 규모가 오히려 시징을 놀라게 했을 따름이다. 등교와 시험과 숙제 같은 학생의 본분도 잊지 않는 그들이 애틋해서 시징은 얼마 후 그들의 정기후원자 중에 한명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가명을 썼고 에디도 마찬가지였는데, 시징은 에디를 에디라고 부를 뿐, 그의 본명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사 갈 아파트에 에디의 짐도 들여야 했으므로 시징은 짐정리 중에 물건들, 특히 과거 속에 멈춰 있는 물건들을 거의 다 버렸다. 이삿짐 트럭이 오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자며 에디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러 나갔고, 시징은 발바닥에 힘을 주며 휑뎅그렁한 아파트 곳곳을 느리게 걸었다. 그렇게 하면 이 아파트에서 흘러간 생애의 일부를 영원히 이곳에 저장해놓을 수 있다는 듯이. 주머니 속 메모지가 떠올랐다. 메모가 미완으로 끝난 걸 보면 윤주 역시 전달의 목적을 갖고 메모를 쓰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윤주가 본 적도 없는 게스트에게 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메모를 쓴 데엔 애초에 자신이 영등굿이니 포구니 하며 쓸데없이 알은체를 하는 이메일을 보낸 탓이 컸을 것이다. 여행서적 같은 건 사실 읽은 적도 없었다. 그때는 그저 거짓말을 해서라도 윤주의 방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메모지를 쓰레기봉투에 담으려던 시징은 이내 손을 거두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윤주의 방은 시징에게 은철 그 자체였다. 윤주의 방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 초여름 날에 은철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날 굳이 홍콩이공대에 들렀던 건 영등포역 앞에서 마주쳤던 청년, 진실에 태연하게 무지했던 그 청년과는 다른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던가. 명백한 건 그날 시징이 홍콩이공대에 가지 않았다면 서점이나 에디는 시징의 생애와 무관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시징은 도저히 메모지를 버릴 수 없었다. 시징은 메모지를 도로 주머니에 넣은 뒤 휴대전화로 이메일 계정에 접속했다. 편지함에는 아직 윤주의 이메일 주소가 남아 있었다. 시징은 윤주에게 답장을 쓰기도 전에, 일년 전의 게스트가 보내기엔 어색할 수 있는 사적인 이야기로 그 내용이 채워지리란 걸 예감했다. 

 
*
 
시징,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습니다. 
  
일단 당신의 소식이 무척 반가웠어요. 새로운 사랑을 만난 것을 축하하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당신의 또다른 시작을 응원합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나도 이사를 했습니다. 영등포의 그 방을 떠나 지금은 새 직장 근처인 망원이란 곳에 살고 있죠.  
  
홍콩의 자립을 위해 남몰래 애쓰고 있는 당신의 용기에는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어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콩에서의 당신의 용기가 서울에 있는 내게 또다른 형태의 용기로 당도했다는 것을요. 당신의 답장을 읽고 며칠 뒤, 나는 일년 전 내 노동을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사과를 요구했으니까요. 당신의 이메일을 읽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무턱대고 도망친 내 무책임에도 잘못이 있다고,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죠. 다친 마음을 드러내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이었죠. 아나운서와 달리 피디는 끝내 내게 사과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습니다. 그에게 내가 일을 하고 그만두는 과정에서 내 잘못은 없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하니까요. 일년 전, 내가 그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었죠.  
  
시징……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당신에게 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이틀 전, 나는 예전의 연인이 일하며 살고 있는 도시에 내려갔습니다. 그가 늘 대기실 같은 도시라고 표현하던 곳이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기로 한 곳,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도시…… 그에게 전할 말이 있다는 핑계가 그나마 조금은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최근에 새로 취업한 독립프로덕션에서 신입 피디를 구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가 관심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 도시에 도착해서도 그에게 전화하는 건 쉽지 않더군요. 그와 헤어져 있던 시간은 실재하는 공백이니까요. 사랑을 잃은 채 살았던 서로의 삶에 대해 그와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가 일하는 공장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저녁 7시 즈음 공장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거리를 둔 채 그를 따라갔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오래된 주공 아파트 앞이었죠. 그에게 전화하는 것을 망설이는 사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던 그가 다시 나타났고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그대로 닫았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죠. 완만하게 배가 나온 맑은 인상의 여자가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가 가정을 이루어 새 생명을 맞을 준비까지 했다는 것이, 시징, 나는 아프게 놀라웠습니다. 나와 만나는 동안 그는 늘 그런 것에 회의적이었죠. 거의 경멸에 가까운 회의였기에, 나는 그 견고한 감정에 금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파트 근처에 있는 시장을 한바퀴 돌며 고기와 채소, 과일을 사더군요. 그들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유아용품 상점이었습니다. 나는 쇼윈도 너머로 유모차니 아기 신발을 구경하는 그들을 멀찍이 선 채 지켜봤습니다. 그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내가 그의 연인일 때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 그것을 깨달은 순간에야 우리가 이미 이별한 사이라는 것이 실감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그의 세계에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아내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보았죠. 내 미행을 그녀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그가 패브릭 장신구가 달린 모빌을 집어 계산을 하는 동안, 그녀와 나는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습니다. 그들이 공장에서 만났다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죠. 그가 일하는 금속 공장엔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많다고 들은 적이 있으니까요. 어느 순간, 그녀가 웃었습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토록 해사하게 웃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얼결에 그녀를 따라 웃다가, 그가 계산을 마치기 전 나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그가 아직 간직한 사진에서 내 얼굴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녀는 내 미행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도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시징, 나는 이제 유아용품 상점의 쇼윈도 너머로 보았던 풍경을 통해 그와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 풍경은 수하물센터로 연상되는 망각의 영역 어딘가, 가령 열쇠 달린 상자나 먼지로 가득한 선반의 구석 같은 곳에 보관될 것이고, 나는 아주 천천히 그 사람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게 되겠죠.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물론 나는 여행자답게 좀더 가뿐해질 것입니다.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완벽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시징, 새로 이사간 곳은 어떤가요?
  
사실 나는 홍콩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홍콩(香港)이 그 이름처럼 향기로운 항구 같은 곳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죠. 나는 홍콩의 분위기를 영화를 통해 배웠는데, 그 영화들은 대개 1990년대 만들어졌으니 내가 한시절 흠모했던 그 풍경은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시장과 야외 식당들, 낡은 아파트 발코니에 걸려 있는 빨래와 빨래 사이로 보이는 비행운, 좁고 복잡한 골목, 낙서로 가득한 공중전화 박스, 가파르게 이어지는 계단들과 그 계단 끝에 있는 흐릿한 가스등…… 시징,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던 홍콩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이야기를 내 상상 속에 있는 나무 구멍에 묻으려 합니다.
 
   
우정을 보내며, 서울에서 윤주



지금까지 「완벽한 생애」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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