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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寓話) 우화(遇畫)

김도희
2020년 06월 11일
 



우화(寓話) 우화(遇畫)


1. 가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동물정치

Scene #1
‘커다랗고 둥그런 돔(dome) 아래 정장을 입은 인간들이 치고 박는 몸싸움을 벌인다. 고성도 수시로 오간다.’ 누군가는 그걸 두고 ‘동물국회’라 불렀다. ‘커다랗고 둥그런 돔 아래 정장을 입은 인간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걸 두고 ‘식물국회’라 불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러한 비유가 얼마나 대단히 큰 오류였는지가 속속 증명되고 있다. 각국에서 「세계동물선언」과 「동물권리장전」을 채택하고 헌법에 동물의 존엄성과 인격성을 규정한 이래, 동물들이 국회에 등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자잘한 이권을 가지고 쌈박질할 겨를도, 적당히 눈치 보며 게으를 틈도 없었다. 이를 간파한 카이사르는 일찍이 자신의 재임시절 말[馬]을 원로원으로 영입하는 선구안을 보였거늘.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은 「공장식 축수산업 금지 및 생츄어리 전환법」 「동물착취산업금지 특별법」 「동물실험대체법」 「동물차별금지법」을 가장 먼저 통과시키고, 특별위원회로 ‘현행법상 동물을 차별, 혐오, 학대, 착취, 무시하는 법령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삭제하고 개정하는 TF’를 설치하여 ‘열일’하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동물인지감수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각 정책마다 동물인지예산을 책정한다. 매해 국정감사철이면 모든 정부 부처 장관들의 심장이 쪼그라든다는 후문이다.

Scene #2
법무부에는 동물권국(局)이 설치되었다. 기존의 인권국은 동물권국 안으로 흡수되었다. 법무부 소관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모든 부처들의 협의체로서 여기서 배제되는 건 농림식품부 정도다(축산부문은 폐지되었다). 주된 업무는 의회의 ‘현행법상 동물을 차별, 혐오, 학대, 착취, 무시하는 법령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삭제하고 개정하는 TF’와 함께 법령을 발굴하여 각 부처의 의견을 수렴한 후 법제처의 검토를 거쳐 정부 입법으로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다. 법령뿐만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또는 언론에서 동물을 비하하는 인간언어의 관행적 실태를 조사하고, 모니터링하여 이를 금지하거나 대체할 대안을 제시한다. 그밖에 교육부와의 협업으로 영유아 인간에게는 동물들의 존엄한 생명, 고유한 습성을 배우면서 VR을 통해 풍부한 감정을 체험하게 하고, 정규 교과과정에 동물윤리학과 동물행동학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한 것, 보건복지부와의 협업으로 학교, 군대, 병원, 집단생활 시설, 교도소에서부터 영양학을 고려한 채식 식단을 도입해 사회 전반으로 확장한 것은 정책 모니터링단으로부터 1, 2위를 다투는 성공적 정책으로 꼽힌다. 다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의 판결 이후 발생할 천문학적 ‘배상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재정부와 함께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Scene #3 
기업이나 국가처럼 실체가 의심스러운 것들도 법인격이 주어지는 마당에 동물의 법인격이 최근에야 인정되다니, 누군가는 의아하게 여겼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물에게는 독자적인 인격은커녕 인간들이 식용, 반려용, 전시용, 체험용, 실험용, 사냥/피사냥용, 장식용, 전투용, 탐지용, 도우미용 등 ‘용도’에 의해 구획했던 ‘사물’로서의 취급만이 유효했다. 특히 ‘소유물’임을 전제로 한 유기-, 유실-, 유해-라는 분류는 ‘모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쨌거나 동물이 소송 당사자로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재판에서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인, 통역인, 신뢰관계 동물의 동석, 동물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재판받을 수 있는 원격 재판 등의 장치가 추가되자, 법정은 크고 작은 소송으로 금세 북새통이 되었고 동물대리 전문로펌도 급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법원은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앞두고 있다. 청구인은, 이른바 ‘공장식 축산업’의 최대 피해자인 소, 돼지, 닭이다. 형사법적으로 인간의 대량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고, 민사법적으로 그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본 재판은 지구 전역에 생중계될 예정이다. 비교적 작은 법정에서도 재판은 한창이다. 수상형 감금시설의 돌고래, 육상형 감금시설의 코끼리, ‘까페’형 감금시설의 라쿤, ‘축제’형 살육현장의 연어, 실험실형 학대현장의 비글, 열대림의 오랑우탄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의 동물재판 과부하로 인해 사법당국은 특별법원으로 동물재판소 설치를 적극 검토 중이다.


2. 정상동물 이데올로기의 퇴장

‘그 일’은 기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징후는 충분했다. 23마리 돼지들이 살던 우리가 2,000마리를 수용하는 돼지‘고기’ 생산시설로 탈바꿈된 때부터. 수생동물들이 ‘톤’(ton)단위의 무게로 셈해지고 바다가 텅텅 비어간 때부터. 걸리지도 않은 전염병이 두려워 땅을 파고 동물들을 산 채로 묻은 때부터. 인간 없이 동물들끼리 잘 살던 삶터를 불태우고 밀어버린 때부터. 이성에 도취된 나머지 진화의 정점에 인간 이외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은 때부터. 그중 인간들이 어느 한순간이라도 멈칫했다면 동물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세기 중반 이후 인간중심주의가 급속도로 팽창하고 극단적인 동물 소외현상이 만연하면서, 자생적으로 생존을 유지할 수 없는 모순에 부딪친 인간들 대다수는,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외면하거나 혹은 부정하였다. 체제의 모순이 극에 달하면 봉기가 일어나듯, 몇차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끄떡없던 인간들에게 동물들은 미생물, 바이러스와 협공하여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인간들은 급하게 떠올린 어떤 과거대로 긴급조치라는 걸 발동했지만 예상대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물이 기본적으로 국가나 국경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직접적으로 긴급명령의 수범자는 오로지 인간뿐이기 때문이었다.

시간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백년간 참아왔던 고통들이 무색하게도 지구상에 인간의 숫자가 딱 절반이 되자 휴전이 선포되었다. 인간의 ‘동물먹기 중단’ ‘동물삶터파괴 중단’ ‘동물산업화 중단’ 협약이 체결되었고, 그 위에는 더 큰 조건이 있었다. 바로 동물의 정상성을 구획할 수 없게 하는 것. 이것은 비단 신체적 차이나 지능적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훈련되는 동물, 먹히기 위해 사육되는 동물,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 감금되는 동물, 인간의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실험대에 오르는 동물, 다른 종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로 죽어도 되는 동물이란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든 동물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음식, 장난감, 사냥감, 장식품, 무기, 도구로 나뉘는 순간 정상동물 이데올로기는 작동한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대하는 모든 행위는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 따라서 추가적으로,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을 개조하기 위한 조치로서 그들의 꿈속에 들어가 이 문구를 심기로 이면합의가 이루어졌다. ‘모든 인간이 깊은 곳에서 동물인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깊은 곳에서 인간이다.’


3. 인공지능 동물번역기의 부상

‘동물혁명’에는 ‘동물감정신경학’(animal affective neuroscience)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및 ‘동물소통학’(animal communication)의 급속한 발전이 크게 한몫했다.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마저 부정한 인간들이었지만, 신경생물학자 팬크세프(Jaak Panksepp)가 모든 포유동물의 원시뇌에 7가지 영역, 즉 탐색(seeking), 분노(rage), 공포(fear), 욕정(lust), 근심(care), 공황/슬픔(panic/grief), 놀이(play)에서 원초적 감정을 가진다는 것을 밝혀낸 이래, 이제는 통상 23가지 이상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즘은 이성과 감정의 영역이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신경감정 매커니즘 이론’(neuroemotional mechanism theory)과 동물은 관계성 속에서 고유하다는 ‘동물복잡계 이론’(animal complexity theory)이 대세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종별 감정의 보편성과 특이성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일부 동물의 경우 인간이 원리적으로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가설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동물에게 있어 최대의 축복이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훌쩍 뛰어넘고 나자, 인간들은 스스로 할 수 없는 미션을 인공지능에게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영역이 동물에 관한 것이었다. 가령, ‘계산동물행동학’(computational ethology)이란 분야가 있는데, 기존의 동물행동학에 인공지능 기술을 더한 이 연구는 초반에 포유류에 한정되었다. 포유동물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의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한 후 머신러닝 알고리듬을 이용하여 동물의 의사와 감정을 추론했다.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을 접목하여 신경회로를 통해 교차검증에 성공한 이후, 이 기술은 흔히 ‘동물번역기’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곤충류에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으며, 동물의 신체를 스캔하는 것만으로 어떤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는지를 파악하여 각 신경세포에 해당하는 의사와 감정을 도출해내고 있는데, 그 정확도가 93.5%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만 스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동물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데이터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신경권(neurorights)의 법적·윤리적 문제가 아직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하다.

‘동물언어학’은 과거 동물행동학과 결합하여 돌고래나 박쥐가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넘어서 초음파로 하는 대화나 조류나 곤충류가 집단적으로 하는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전통적인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였다. 혹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더라도 동물과 인간이 한 공간에서 반려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음성언어와 몸짓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사실적 영역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언어나 행동을 통해 동물의 의사를 알아내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을 뿐, 인간의 의사를 동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였다. ‘동물언어행동소통학’(animal language and behavior communication, 약칭 동물소통학)은 일방적인 ‘훈련’이나 ‘강요’가 아닌 방식으로 동물과 인간 상호간의 소통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최근에는 인간과 다른 종을 넘어 인간 외 종간의 소통학도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 동물소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순전히 실무적인 필요에 의해서였다. 동물혁명 이후 ‘공인동물어통역사’ ‘동물진술조력사’는 줄곧 인간들이 선망하는 직업 최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동물번역기’가 중요한 수단이 된다.


4. 미술관으로 간 동물당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요즘 세태를 풍자하는 우화의 한 장면으로, 누군가에게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급진적인 매니페스토로 느껴지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진지한 이데아라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자. 물론 그들은 이것이 매우 의인화된 시각에서 구성된 시나리오임을 인정한다. 촘스키(Noam Chomsky)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가끔 엉뚱한 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사실 자신들이 엉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진실이 있다면, 그것을 밝히기 위해 말해져야 할 꼭짓점에 동물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데아를 실현시키기로 했다. 철학적 기반을 만들고, 정치세력을 조직하고, 대표를 선출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로 한 것이다. 흔히 인간은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을 할 때 정치인의 몸짓을 하곤 한다. 목덜미에 칼을 꽂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인간이라는 족속임을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적진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상대를 주시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다.

이 모든 ‘작전’의 발원지로는 미술관이 가장 적합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미술관이 가장 안전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의 오래된 미술관 한구석에 잠입하여 ‘동물정치’를 선포하고 ‘동물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관이 아닌 다음에야 동물을 ‘위한’ 정치도 아니고, 동물에 ‘의한’ 정치가 가당키나 했을까. 인간들은 오직 예술의 영역에서만 현실-너머를 수용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포유동물인 개와 절지동물인 게가 당대표로 나설 수 있는 다른 곳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위적인 퍼포먼스마냥 굴었지만 사실 그것은 온전히 그들이 바라는 대로였다. 그들은 생물량(biomass)에 비례하여 의회를 구성하고, 절지동물, 어류, 환형동물, 연체동물, 자포동물, 포유류, 선충류, 포유류, 조류, 곤충류, 거미류 등 16개 종이 모여 연합동물당을 발족했다. 당의 비전은 동물의 해방, 기후의 회복, 지구의 재야생화, 당의 미션은 ‘동물의 정치가, 지구에서 영속하도록 복무한다’로 정했다. 2050년까지 7개의 강령, 33개의 정책 관철을 천명했다.1)

그 배경에 ‘동물권 운동’의 오랜 역사가 있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정당운동’으로서 동물당 운동의 선봉에 섰던 네덜란드의 동물당(Parti voor de Dieren, PvdD)은 창당 이후 4년 만에 원내 진출, 현재는 상하원 총 7석으로 의회에 안착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2) 포르투갈도 원내에 진입하였으며, 뒤이어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14개 국가를 비롯해 전세계 총 19개의 동물당이 활약하고 있다. 그들의 뒤에는 ‘동물해방전선’(ALF), ‘동물의윤리적처우를바라는사람들’(PETA), ‘씨셰퍼드’(Sea Shepherd), ‘동물의친구들’(Friends of Animals),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 등 수많은 동물권 단체들이 있고, 다시 그 뒤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질문에 “고통스러울 때와 행복할 때 중 언제 죽고 싶냐”고 일갈한 톰 리건(Tom Regan), 동물에게 비인도적인 행위를 일삼는 것을 ‘종차별주의’로 규정한 피터 싱어(Peter Singer),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에 있다고 한 헨리 솔트(Henry S. Salt), 고통을 느끼는지 여부를 권리의 기준으로 제시한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같은 이들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5. 다시, 추상과 구체를 넘나드는 동물정치

그렇다면 현실은 어디쯤 와 있을까. 천신만고 끝에 동물들이 의회, 정부, 법원에 입성한다 한들 동물해방이 실현될까. 글쎄, 만일 그게 가능했다면 유색인종, 장애인, 여성은 이미 해방되고도 남았어야 한다. ‘권리’라는 틀로 모든 윤리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흔히 모두에게 권리가 인정되면 평등한 세상이 올 것처럼 생각하지만 권리 역시 많은 경우 수직적이다. 흡연권은 생명권에 의해 금연권에 밀리고, 알 권리와 프라이버시권은 매번 엎치락뒤치락한다. 그것이 제도나 정책으로 가면 더욱 심해진다. ‘긴급성’과 ‘중대성’이라는 저울질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게다가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진 체제에서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불편하고 분열을 야기한다. 철저하게 그들의 비자발적 희생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차마 부정할 순 없지만 한번 인정하면 평생 죄의식을 짊어져야 하므로. 

사실 ‘동물’이라는 개념도 ‘인간’이라는 개념만큼이나 문제적이다. 실체가 온전히 표상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데다 다분히 가변적이고 경과적인 개념이어서 궁극적으로는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일 동물을 다시 정의할 수 있다면, ‘함께 존재하는 모든-다른 자들의 ‘관계’를 끝없이 정립해가는 과정이자 확장해가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다만, 그 관계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동물들이 인간을 법정에 세우고, 모욕, 착취, 학살 등의 죄를 묻는 과정을 묘사한 『동물들의 인간 심판』3)에서는, 모든 인간의 머릿속에 그 자신이 발가벗겨진 채로 정글 바닥에 버려지는 악몽을 심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집행유예라는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실제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기에 말 그대로 ‘혁명’ 아니면 ‘멸종’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현실공동체에 동물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에 ‘본래적’인 주체란 없다. 랑시에르( Jacques Rancière)의 말을 빌리자면, 정치의 본질은 불일치이고, 정치란 그동안 자격없는 자, 몫 없는 자로 배제되었던 존재들이 그들 자격과 몫을 요구함으로써 공동체 내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것이다.4) 따라서 동물이 정치적 주체로 선다는 것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고, 소리를 내어도 들리지 않던(혹은 쾌/불쾌의 표현 정도로만 여기던) 무수한 불화의 장면들을 공통의 감각으로 보이고 들리게끔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한쪽의 역할만 강조된 채 혼란스러운 개념으로 남아서도 안 된다. 정치화는 인간과 동물이 지구를 공유한다는 사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인간은 동물에 대한 책임이 있고, 동물은 감수성과 행위성을 갖춘 주체로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시작되어야 한다.5) 그런 점에서 맨 앞의 장면들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이미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있는 힘껏 고민해서 간신히 찾은 답이어야 한다는 것, 발버둥친 딱 그만큼 세상은 넓어진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동물, 아니 동물의 탈을 뒤집어 쓴 인간들의 최소한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남는 질문들

 

3 ‘동물인지감수성’ ‘동물의 법인격’ ‘동물재판소’ 등의 용어들이 무척 흥미롭고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 너무 요원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동물권 문제는 언급해주었듯 늘 긴급성과 중대성이라는 저울질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며, 인간중심주의가 만연한 이 세계에서 너무 급진적인 것(혹은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들이 필요할까? 물론 “권리라는 틀로 모든 윤리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고는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현실적인 차원의 동물정치는 무엇이며, 특히 법제적 차원에서는 어떤 작업들이 필요할지가 궁금하다.

김도희 글에서 언급한 ‘목덜미에 칼을 꽂고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은 몇년 전 실제로 스페인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스페인 동물당은 투우장에서 소의 목과 등에 창을 꽂은 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 투우사의 모습에 위선적인 동물학대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전통문화로 여겨지던 투우나 소몰이축제에 논란을 촉발했다. 현재 스페인 일부 지역에서 투우는 금지되고 있고, 유엔에서는 미성년자들에게 투우 관람 금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법제적 차원에서는 글쎄, 헌법에 동물의 권리를 명시한다든지, 동물보호법, 실험동물법, 동물원법 등등 정비할 법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우선 동물에게 법인격을 인정해 재판을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도롱뇽 소송이나 산양 소송이 안 되었던 이유는 동물이 재판의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 따라 인간의 대리나 후견도 불인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도, 조선시대 한반도에서도, 90년대까지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에서도 동물재판은 이루어졌다. 동물이 직접 원고로, 피고로, 피고인으로,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최근 뉴질랜드에서는 강에 법인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동물재판이 다시 가능해지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3 ‘불일치의 장면을 드러내는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인 것의 시작을 알릴 수 있다고 했을 때, ‘삶 정치’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결국 공감적 상상력을 키우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전부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혹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을까?

김도희 지금 그 불일치가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지구환경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를 통해서 말이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 같지만 외국에서는 이러한 인수공통감염병의 근본원인을 인간들이 동물의 서식지에 침범하고 파괴하고 접촉하는 과정에서 옮겨 온 것으로 보고, 감염병에 취약한 공장식 축산, 나아가 육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분석도 들려온다. 에볼라, 니파,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등 감염병의 60% 이상이 (야생)동물로부터 기인한 것인데, 그걸 보고도 아무것도 배우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이지 절망적이지 않나. 감염병 사태와 동물의 문제, 환경의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고, 심지어 그 주기도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상상력을 키울 필요도 없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동물정치의 필요성은 현전하고 있다.

3 인간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비인간동물이 느낄 수 있다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비슷한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공감의 능력, 그에 기반한 정치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또한 공감의 정치 너머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동물감정신경학’의 일환으로 ‘동물복잡계 이론’을 언급했는데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

김도희 글에서 얘기한 것 중 ‘동물행동학’ ‘광유전학’ 정도를 제외하고, ‘동물감정신경학’ ‘계산동물행동학’ ‘동물소통학’ 이런 것들은 기존의 학문을 가지고 이리저리 조합해본 가공의 학문들이다. 물론 어느 실험실에서는 실제로 연구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웃음) 원래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은 물리학에서 출발해 근래에는 사회경제학적으로도 널리 적용되고 있는데, 상호 관련된 여러 요인들이 합쳐져 나타내는 전체적인 거동을 연구하는 이론이다. 예컨대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다보면 어느 순간 같은 박자로 치게 되는데 그런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물복잡계 이론’은 ‘동물 감정신경학’을 토대로 동물의 감정을 도출하고, 그중에 동물 간의 교감과 공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동물 집단 전체의 어떤 거동이나 특성을 연구하는 이론이 아닐까 상상해본 거다.

 

 
김도희
동물권연구활동모임 알림(ALiM:)과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동물, 정신장애인, 홈리스의 정치에 관심이 많다.
고양이 선생님들을 모시고 있다.
 

 


1) 동물당 매니페스토(animal party manifesto) “동물들은 어떻게 투표하는가 혹은 우리는 어떻게 동물에게 투표하는가(how animals vote, or how to vote for animals?), 작가그룹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 일민미술관 2020년 3월 24일~6월 21일; 동물당 홈페이지 partyofanimals.org 참조.
 
2) 네덜란드 동물당 홈페이지 partijvoordedieren.nl 참조.
 
3) 호세 안토니오 하우레기 외 『동물들의 인간 심판』, 김유경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7, 217~19면.
 
4) 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길 2008, 223~27면.
 
5) 코린 펠뤼숑 『동물주의선언』, 배지선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9, 61~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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