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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

양경언
2020년 06월 11일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1)



레이첼 서스만(Rachel Sussman)의 『위대한 생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윌북 2015)에는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오래된 생물들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현대예술가인 저자가 2004년부터 약 십여년간 전세계 학자들과 협업하여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유럽, 남극 등을 오가며 2천살의 바오밥나무, 8만살의 사시나무 무성번식 군락 같은 생물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포착한 프로젝트이지요.    

사진은 시간의 찰나를 붙잡는 예술이라고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굳이 ‘움직임’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서스만의 작업에는 오래 산 나무를 떠올릴 때 우리가 으레 상상하게 되는, 커다란 둥치를 가진 나무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닙니다. 멀리서는 숲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체가 한그루인 나무에서부터 백년에 1cm씩 자라는 이끼, 날카롭고 뾰족한 잎으로 덤불을 이루고 있어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자칫 지나치기 십상인 나무 등 여러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자기 삶의 몫을 다하기 위해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는 자세, 생존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나섭니다. 그렇게 살아온 삶이란, 인간의 인식으로는 가늠이 잘 되지 않는 심원한 시간성으로 채워진 것이겠지요. 저자의 말마따나 “인간종이 세상에 등장한 지 20만년쯤 지난 뒤, 인류가 시간을 다시 0으로 설정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고령의 나무가 인간사적 사건들뿐 아니라 자연사적인 사건들을 몸에 새기며 한층한층 쌓아온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장대한 우주의 소박한 구성원인 인간에게 필요한 ‘겸허’에 관해 떠올립니다. 인간인 우리는 결코 지금 이곳의 많은 일들을 장악하지 못합니다. 다만 이해하고, 적응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따름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기간 중에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실내에서 가꾸는 식물이나 창밖으로 비치는 나무의 사진을 올려두곤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식물을 곁에 두면 좀처럼 소란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그로부터 위안을 구하기 위해 식물에 눈길을 주는 것이리라 짐작하는 이도 있겠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가 순탄치 않으니 대신 선택한 방식 아니겠느냐는 걱정에서 비롯한 생각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우리는 그간의 일상에서 한발 물러나 다른 일상을 구성해야 하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의 언어만으로는 소통이 불가능했던 존재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교감해야 하는지 배우기 시작한 게 아닐까요? 혹은 그간 우리가 언어로 한정해온 감각을 다시 살펴야만 하는 때에 다다랐는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누구의 얼굴로 ‘우리’를 대체해왔는지에 대해서 다시 묻는 기회를 맞이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어쩌면 처음부터 고령의 나무들, 혹은 그이들로 비유되는 존재의 언어를 다만 받아들이고, 섞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다음이 예비되는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의 삶을 관통하는 시간이 재구조화되는 사건이니만큼 ‘코로나 시대’라는 표현을 쓰는 일이 영 어색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문학3〕 2020년 2호는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준비했습니다.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광장에 모였던 방식과는 다르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문학몹을 따로 떨어진 자리에서 진행하면서 기획위원들 역시 ‘누구’와 ‘무엇’에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떠올리며 살았습니다.

이번 호부터 〔문학3〕은 황인찬 시인을 기획위원으로 맞이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끝 이후의 시간을”2)지금 이곳에서 고민하는 시인의 걸음과 더불어 앞으로 〔문학3〕이 만들어갈 ‘달콤새콤’한 활동을 기대해주세요. 〔문학3〕이 출발했던 2017년부터 기획위원으로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신용목 시인께 그간의 활동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구든지 벗으로 대할 줄 알던 신용목 시인의 태도를 늘 새기면서 앞으로도 〔문학3〕은 움직이겠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사회 곳곳의 문제가 새삼 가시화되었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어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지, 무엇을 고려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일에 〔문학3〕 역시 힘을 보탤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긴긴 시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나무들과, 특정한 바이러스를 의식하며 일상을 보내야 했던 우리의 시간을 경유하여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임을 실감하면서요.

 



1)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248면.

2) 황인찬 「사랑을 위한 되풀이」, 『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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