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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도둑

강성은
2020년 06월 16일



의자 도둑


의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 길 위에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가 다음엔 둘이, 셋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늘더니 열개가 넘게 되었다. 하나가 부러지면 누가 집에서 하나를 가지고 오고 또 하나가 부러지면 근처 재활용가구를 버리는 곳에서 누가 하나를 주워왔다. 그러다보니 마을에서 의자를 새로 산 사람은 밤사이 헌 의자를 그 틈에 세워두었다. 새로운 의자를 발견하면 신입이 들어왔네, 하고 누군가 말했다. 
  
아직 튼튼한데 누가 버렸지? 누가 말하면 천사가 버리고 갔나보지. 누가 말했다. 
  
장마철 의자들이 비를 맞고 있으면 누군가 비닐로 덮어놓았다. 겨울철 눈이 쌓이면 지나가던 사람이 다가와 쌓인 눈 위에 장갑 낀 손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썼다가 쓱 치우고 지나갔다.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져 수북이 쌓였다. 봄이 오면 겨우내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나와 빈 의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밤이면 길고양이들이 모여 앉아 잠을 잤다. 가끔은 취객이 의자에서 구부린 채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아침에 누가 와서 깨울 때까지. 
  
맥주 이름이 새겨진 초록색 플라스틱 의자, 등받이가 구부러진 의자, 등받이가 떨어져 나간 의자, 팔걸이가 떨어져 나간 흔들의자. 크레파스 낙서가 가득한 의자, 못에 콕콕 찍힌 의자. 푹신한 방석이 달린 의자, 교실에 있던 나무 의자, 바퀴가 하나 빠진 사장님 의자,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대는 벤치.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잃어버린 제자리를 찾은 듯 천천히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의자들이 모여 있는 길은 마을 어귀 수령이 백년도 넘는 느티나무의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주민들이 그 길을 지나갔고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정확히 누가 그 길을 지나가는지 알았다. 오늘은 철물점 박씨가 보이지 않는군. 어디 아픈가. 말하기도 했고 슈퍼집 애는 학교 마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보이지? 말하기도 했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물 한잔을 건네기도 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 마을을 들어서면 뉘집 찾아요? 묻기도 했다. 의자에 앉은 것은 주로 노인들이었다. 아침부터 앉아 있는 사람, 점심 먹고 나오는 사람,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람, 저녁이 되어도 집에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여름에는 밥을 싸 와서 나눠 먹는 사람도 있었고 싸움이 나면 몰려가 참견하기도 했다.  
  
어느날 아침 제일 먼저 의자에 앉으려고 왔던 김은 뜻밖의 풍경에 놀랐다. 의자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의자들이 사라져 빈자리가 된 곳에서 김은 어쩔 줄 몰라 서성거리고 있었다. 최도 신도 이도 구도 나왔지만 김처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 저녁에만 해도 여기 있던 의자들이 몽땅 사라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세상에, 의자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의자가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딜 갔겠어요. 
  
의자에 발이 달리긴 했잖아요. 
  
그건 발이 아니잖아요. 움직일 수도 없는데.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거 참. 
  
누가 훔쳐갔나 봐요. 
  
그런 낡은 의자를 누가 훔쳐가요. 
  
혹시 재활용가구 수거차가 와서 싣고 간 게 아닐까요. 
  
수요일이잖아요. 재활용가구 수거차는 금요일에만 오는 걸요. 재활용 딱지도 안 붙었고. 
  
그럼 도대체 의자를 누가 가지고 갔을까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파출소에 신고하는 건 어떨까요. 정순경이 훔쳐간 놈을 잡아줄지도 모르잖아요. 
  
누가 버린 의자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해요? 우리가 의자 주인도 아니고. 
  
길가에 내놓은 의자에 주인이 있나요. 
  
그러니까요. 주인도 아닌데 어떻게 잃어버려요. 
  
최가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의자가 사라진 자리에 어두운 표정의 노인들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아침이었다. 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 모여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난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요. 
  
왜요?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죽치고 있는 게 귀신을 보는 것 같대요.  
  
우리가 죽기라도 했나요? 
  
죽기를 바라는 모양이네요. 
    
입을 삐죽이며 최가 말했다. 
  
귀신이라뇨. 우리가 얼마나 떠드는데요. 이렇게 시끄러운 귀신도 있어요? 
  
흥분한 이가 소리를 높이자 모두 한마디씩 하며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는 사이 윤과 정과 박이 합류했다. 
  
여러분, 좀 조용히 해보세요. 그렇다면 더더욱 이 사건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에요. 의자 도둑을 꼭 잡아야 해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의심 가는 인물이라도 있나요? 최근에 수상한 인물이 여기 온 적은 없고? 
  
다들 아무 말없이 어제와 지난주와 한달 전을 떠올려봤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난 어제 몇시에 잤는지도 기억이 안 나. 
  
신이 잠에서 덜 깬 표정으로 말했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없다면 이제부터 찾아봐야죠. 
  
내 생각엔 한명이 아닌 것 같아요.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의자들을 가져가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럼, 혼자선 다 옮길 수 없지. 여럿이 같이 한 게 분명해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에 노인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계속 서 있었더니 다리가 아픈데 지금 집에서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으면 안 될까요? 
  
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신이 말했다. 
  
우리 집엔 남는 의자가 없어요. 
  
돗자리라도 가지고 오면 되죠. 
  
안 돼요. 여기가 무슨 유원지도 아니고. 이러니 사람들이 싫어하죠. 
  
김이 인상을 찌푸리고 결연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늙은이들이 아니에요. 마을을 감시해야 해요. 의자 도둑을 잡으려면 태평하게 의자에 앉아 있을 겨를이 없어요. 그러지 말고 마을을 둘러봅시다. 
  
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뒤돌아 수없이 뻗어나간 골목으로 흩어졌다.  
  
저녁이 되자 윤이 의자를 하나 들고 와서 앉았다. 정도 의자를 들고 나타났다.  
  
마침 우리 집에 흔들리는 의자가 하나 있었어요. 
  
우리 집에도 아들이 어릴 때 쓰던 책상 의자가 있어서. 
  
다음 날이 되자 박이 의자를 들고 나타났다. 
  
옆 동네까지 가보니 거긴 버린 의자가 세개나 있던 걸요. 다 들고 올 수 없어서 얼마나 아쉽던지. 
  
진짜예요? 의자가 너무 새 건데. 
  
무슨 소리야. 요즘은 새 의자를 버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그 동네는 특히 더 많더라구. 
  
새 의자를 왜 버려요? 
  
요즘은 눈 깜박할 사이에 새 의자가 헌 의자가 돼. 우리가 보기엔 새 의자 같아도 그 사람들이 보기엔 아닌 거지. 
  
참 요상한 사람들이네. 
  
의자는 그렇게 하나둘 다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김 혼자서 탐정처럼 이 집 저 집 쑤시고 다녔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자 어디서 의자 하나를 구해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의자 도둑 사건은 잊을 만하면 노인들의 화제에 올랐지만 새로운 의자가 잃어버린 의자를 잊게 해주었기 때문에 오래 가진 않았다. 그리고 노인들은 새로운 의자보다 더 빨리 늙어갔고 몇해가 지나가 의자 도둑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김도 이도 최도 윤도 박도 정도 사라졌다. 그들이 앉았던 의자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길에 사람도 없는 팔월의 대낮, 쌀을 배달하러 왔던 누군가 의자를 발견하고 다가와 땀을 닦으며 앉았다. 
  
왜 의자들이 이렇게 많이 놓여 있지요? 
  
먼저 앉아 있던 누군가 대답했다. 
  
글쎄요. 아주 오래 전부터 의자들은 여기 계속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못 보던 의자들이 점점 더 모여드는 것 같아요.    
  
모여들다니. 재밌는 말이네요. 의자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아무도 없을 때 의자들은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굴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저 의자로서 놓여 있는 것뿐인데도.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았다. 비닐을 덮어주는 사람도 눈을 쓸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여름의 태양 아래선 그대로 바래져갔다. 
  
깊은 밤 심상찮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태풍이 몰아치자 의자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쳤다. 아주 높이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갔다. 도시를 횡단하고 바다를 건넜다. 태풍이 소멸할 때까지. 사람들은 잠결에 무서운 바람 소리를 들었지만 잠 속에서 나는 소리인지 잠 밖에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젯밤에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누군가 말했다.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누군가 답했다.   



3회에 계속됩니다.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가 있다.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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