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2

주마등 임종 연구소(2회)

박문영
2020년 06월 18일



허이경은 워봇을 향해 걷다가 몸을 돌렸다. 낮은 깃대에 분홍색 손수건이 묶여 있었다. 누군가 웅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에 놓인 소파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려도 되지만 거기 앉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워봇 앞에 왔을 때만큼은 혼자인 게, 충분히 혼자인 게 위안이 된다는 걸 다들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원자 중 누군가 워봇을 쓰고 있을 때 분홍색 손수건을 표식으로 달아두자는 제안을 했고 이곳에 오는 이들은 거기 수긍했다. 창가 탁자에는 언젠가부터 작은 수납함이 놓였고 그 안엔 여러장의 손수건이 들어 있었다. 라벤더 성분이 들어간 방향제, 채도가 높은 수채화 엽서, 휴지, 거울, 담배, 쿠키, 젤리. 테이블 주변 물품은 조금씩 바뀌었다. 소형 냉장고에는 모과 청이나 밤 찹쌀떡이 들어있기도 했다. 몇몇 지원자들이 주말 외출 때 챙겨 온 음식물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 앉아 소지한 사진과 편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미 수집해둔 데이터가 숱한데도 그들은 묵주를 돌리듯, 무게와 양감이 있는 물체에 손을 뻗었다. 그리운 이의 모습을 바로 확인하는 것보다 상상할 때가 더 좋았다. 보지 않을수록,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대상은 더 아름다워졌다. 남루하고 험악했던 일화가 부드러워졌다. 사별한 남편의 발 대신 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올리고 자던 지원자는 반려동물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무게가 제각각인 주머니를 만들어 여기 두기도 했다. 콩 주머니보다 모래주머니가 인기를 끌었다.
    
─진짜 구식이죠? 물려받은 건데, 같이 쓰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맛은 여기보다 나아.
  
커피머신을 설치한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 며칠 전에 만난 그는 체험을 마친 누나가 세상을 기쁘게 떠났다고 했다. 허이경은 아래층까지 갔다 오는 길에 사람이 없으면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식당 카페테리아는 24시간 열려 있지 않았고 복도 중앙 탁자에 놓인 커피는 쓰디썼다. 오래된 원두로 내린데다 며칠을 방치한지도 모를 그 커피엔 손도 대기 싫었다. 
   
무심코 건물 밖으로 나가려던 허이경은 통유리 문에 어깨를 부딪혔다. 입구는 잠겨 있었다. 뭘 하려고 했는지,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자신도 또렷이 알 수 없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1층 로비 왼편 커튼 밑으로 흐린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14분 21초의 홍보 영상물, 1분 정도의 암전, 다시 14분 21초의 영상이 끝없이 상영되는 공간이었다. 커튼 근처를 지날 때면 가벼운 재즈, 포크, 뉴에이지 음악이 나지막이 흘렀다. 허이경은 커튼을 살짝 들췄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맨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이야기를 놓쳤더라도 계속 앉아 있으면 된다. 어디서 시작하더라도 원은 돌고 시간은 충분하다. 허이경은 이곳에도 가끔 오게 될 거라 생각했다. 어둡고 작은 곳이 필요했다. 
  
도입부가 지나서인지 꽤 극적인 장면들이 나오고 있었다. 배우자로 보이는 남자를 발견한 여자가 눈물을 흘렸다. 남자 뒤로는 큼직한 단독주택과 뭉게구름이 자리했다. 둘은 긴 포옹을 나눴다. 오리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저게 뭐야.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허이경은 깜짝 놀라 숨도 쉴 수 없었다. 
  
─죽으면서 저런 걸 보고 싶다고? 저게 마지막 꿈이 된다고?
  
바닥에 앉아 있던 아이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언니, 설마 운 건 아니지? 
  
허이경은 이 아이가 장에스더라고 짐작했다. 스물을 앞둔 주마등의 가장 어린 지원자였다. 되바라졌다, 애정결핍이다, 허언증이 심하다는 불만이 돌았다. 가출한 지 오래에 폭식을 한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조차 평판이 좋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반말을 하기 때문인가. 허이경은 놀라지 않은 듯 물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어요?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왜 물어? 
  
홍보 영상의 배경음악이 줄어들고 연구원의 음성이 깔리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파노라마로 재배치되는 거죠. 지원자가 선택한 단속 구간들을 더 조밀하게, 더 생생하게 확장할 수 있습니다. 복원 가능해요. 회상을 위한 상담 및 시뮬레이션을 전문 인력과 첨단 장비가 병행해 맡거든요. 편도체와 해마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중앙 측두엽이 기억을 잘 조합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건 외부 자극을 통해 청각 위주의 신경만 일깨웠던 기존 임종 과정과 달라요. 기억과 관련한 모든 감각을 살아나게 합니다. 몸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죠. 흔한 VR 인터랙티브 콘텐츠와의 차이도 분명합니다. 그건 남들의 설계이고 이건 지원자 스스로의 설계라 할 수 있어요. 시공간과 상황이 선별 기억을 따라 체계적으로 형성됩니다. AI가 실시간으로 제작해요. 스쳐가는 주마등이 아니라 골라내는 주마등에 가깝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개별 면담과 트레이닝을 통해 면밀히 편집된 서사는 만족도가 높습니다. 
  
─재미없어. 다음에는 좀, 진짜 궁금한 걸 물어.
  
장에스더가 커튼을 재끼고 나가며 말했다. 허이경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스크린에는 어느새 서재 앞에 앉은 명소장이 있었다.
  
─뇌 검사는 짧고 간단합니다. 마이크로 CT 스캔 방법 역시 임상시험 결과 안전성 기준을 통과했죠. 뇌손상 환자를 포함해 중증장애인도 보호자와 함께 주마등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사회 취약계층부터 이곳을 선택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연구소에는 다양한 지원자들이 함께합니다. 주마등은 안전하고 쾌적한 죽음 그리고 소외 없는 임종문화를 지향합니다.
  
공개된 바와 달리 이곳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이들은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 그리고 실직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일반 임상시험과 달리 신체가 건강하지 않아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원자 120여명의 평균 연령은 76세로 주로 저소득층이었다. 여성이 전체 참여자의 83%를 차지했다. 간병인의 성비 역시 비슷했다. 그런데도 인터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자는 폐암에 걸린 50대 남성 교수였다. 
 
─동정 받고 싶지 않았어요. 자책도 지쳤고요. 결국 제 몸인데요. 저는 방치되는 노후, 구걸하는 삶을 이제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더는 뺏기지 않을 겁니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봤잖아요. 각국의 정부가 가장 먼저 손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누군지. 은근슬쩍 외면해버리고 싶은 이들이 누군지요. 성가시니까 알아서 없어지면 좋았겠죠. 연금이며 보험이며 돈도 많이 드는데 티가 안 나. 그러니 군말 없이 사라져라. 알아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걱정하는 척하면서 떠미는 짓거리 한두번 봅니까? 운전하지 말라고, 나돌아 다니지 말라고, 밖이 위험하다고. 우리가 이걸 못 알아들어요? 방해되니까 눈에 띄지 말고 그냥 빨리 죽으라는 소리를? 그래도 입 밖으로 꺼내진 말았어야죠. 노인들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듣게 하진 말았어야죠.
 
명소장은 모든 지원자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였지만 그에게는 따로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그의 직장이 어느 대학이었는지는 알았지만 전공인 노어는 곧잘 잊었다. 지원자들과 명소장의 대면 시간은 짧았다. 그는 서두의 축약 내용만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전자약정서는 98페이지에 달했고 후반부는 영문 도표였다. 
  
─조항 한번 살펴보시고요. 
  
열에 일곱은 화면 글씨가 흐릿하다고 느꼈다. 그나마 큰 글자는 메타데이터, 리포지터리, 스키마 같은 용어라 뜻을 알 수 없었다.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물어봐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지원자들은 터치펜으로 확인했음, 설명 들었음 같은 말을 어렵게 남겼다. 
  
 홍보 영상엔 논란 중인 수술 내용도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다. 주마등에 들어오는 지원자들은 내장형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레이저로 두개골을 뚫은 뒤 소형 칩을 삽입하고 점착 실리콘을 덮으면 끝나는 간단한 절차였다. 구멍은 직경 2mm로 매우 작았다. 가상공간에 접속하기 위한 기기와 어지럽게 얽힌 전선, 별도의 장갑, 고글, 헬멧, 수트는 여기서 필요하지 않았다. 명확하고 원초적인 수술 방식은 그 육체성 때문에 비난을 받곤 했다. 오락에 미친 겁쟁이들, 죽음을 대면할 용기도 없는 세대, 비겁하고 이기적인 집단. 염세, 탐욕, 도피, 우려, 악영향. 부정적인 단어로 시선을 잡아채려는 게시글은 끊이지 않았다. 수술 과정과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 기사와 도식 아래에는 지원자들에 대한 공격이 따랐다. 과도한 예찬도 문제였다. 이곳 사람들은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영위하는 주체적인 시민인 동시에 안락사의 영역으로까지 환락을 끌어들이는 나약한 환자들이 되었다. 용기가 없으면서 용감한 사람이 되는 일이 가능했다. 머리까지 뚫다니 치밀하다, 머리를 뚫다니 무모하다. 어떤 인간으로도 불릴 수 있었다. 상반된 수사가 뒤섞이면서 그들을 엮는 특질은 뭉개졌다. 연구소 밖 인파처럼 이들의 색깔과 무늬도 단일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꾸준히 상기하는 사람은 적었다.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죠? 
  
─부작용이 당연히 있다는 전제를 두시네요. 
  
─수도 없겠지만 바쁘시면 대표적인 것만 말씀해주세요.
  
─개인에 따라 구토, 어지럼증, 식욕부진과 같은 부작용이 따를 순 있죠. 그런데 그건 여타의 수술과 비슷해요.
  
상담 첫날, 명소장에게 서류철을 내민 남자 직원이 피식 웃으며 방을 나갔다. 허이경은 그가 가까이 왔을 때 상의를 살펴봤다. 이름이 정오라 외우기 쉬웠다. 페퍼민트 향이 강하게 끼쳤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프로그램 실행 시 중요도에 따라 크기나 형상이 다소 왜곡될 수는 있어요. 지원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이 시시각각 회상을 돕는 환경이니까요. 그러니 원하는 만큼 체험하시되 혼란을 줄이려면 하나의 상황에 집중하는 게 낫겠죠. 아, 원하지 않을 때는 얼마든지 중단 가능합니다. 꿈보다 주도적으로 의지를 발휘할 수 있거든요. 체험은 무의식보다 의식 가까이에서 진행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안락사 자체도 연기하거나 철회할 수 있어요. 
 
전문가들의 화법이 그렇듯 묘하게 열린 답이었다. 주마등에 들어온 지 보름이 좀 지났을 뿐인데 모든 게 옛일 같았다. 허이경은 입소 후의 날들을 순서대로 꼽아보길 단념하고 커튼 밖으로 나왔다. 어둑한 로비 중앙 홀에는 고인들의 기억 일부가 담긴 사진이 8개의 액자로 걸려 있었다. 액자 아래에는 폴리염화비닐을 축적해 만든 조소가 전시되어 있었다. 주마등에서 임종을 맞이한 어머니를 기리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잔물결, 모래톱, 뼛조각을 닮은 오브제 옆엔 같은 재질의 손이 함께 포개져 있었다. 기억이 정갈할 수 있다는 착각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이걸 온전히 잡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연출이었다. 이런 이미지는 관념으로 이어진다. 오래 볼수록 헛된 신념에 물들 것이다. 허이경은 팔짱을 낀 채 액자 가까이 다가갔다. 주황빛 실선으로 이뤄진 상은 복잡한 듯 고즈넉했다. 자세히 보니 들판에 선 사람이 보였다. 밀려드는 망각과 싸우려는 듯 준엄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자였다. 허이경은 바로 입을 벌리고 뒤로 물러났다. 여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을 여러번 깜빡였다. 허탈한 웃음이 났다. 액자 유리가 자신의 얼굴을 반사한 것뿐이었다. 허이경은 멀찌감치 떨어져 전시 공간을 눈에 담았다. 액자들 위편 벽에 뭔가가 있었다. 간접 조명등이 비추는 라틴어 글귀가 은은히 빛났다.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한다면 죽음을 준비하라. 



3회에 계속됩니다.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SF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에세이툰 『3n의 세계』, 환경 만화에세이 『천년만년 살 것 같지?』(공저) 등이 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