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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강성은
2020년 06월 23일



구멍


그때 나는 구멍 속에 있었다. 좁고 길고 어두운 동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나 자신도 스스로를 볼 수 없는 곳. 몸을 뒤척이다가 아무래도 쥐구멍 속에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쥐가 된 걸까.  
  
밖은 환했다. 따사로운 빛의 물결 사이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없으니 살 것 같아요. 
  
아이들이 없다면 우린 다른 삶을 살았겠지. 
  
엄마와 숙모의 목소리였다.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얼마나 갈까요.
  
아이들이 돌아오려면 아직 멀었어. 그 사이에 우린 잠깐 쉴 수 있을 거야.   
  
낮잠을 잘 수도 있겠지요. 
  
엄마와 숙모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아이들 중에 나는 없었다. 내가 사라진 걸 어른들은 모르나보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엄마와 숙모에게 알리고 싶기도 하고 알리기 싫기도 했다. 조그만 소리로 엄마를 불러봤지만 내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들은 엄마와 숙모가 이 구멍 속을 본다면 비명을 지르고 집게나 부지깽이를 쑤셔 넣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발 한발 뒷걸음을 쳐서 집밖으로 냄새 나는 하수구로 달아나야 하겠지. 거울에 비춰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징그러운 꼬리를 단 역겨운 쥐인지. 별수 없이 나는 그들의 대화를 계속해서 엿듣고 있었다. 
  
아이들만 없다면. 
  
숙모는 곧 울 것 같았다. 숙모는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그리고 지금 숙모의 배 속에 또 사촌동생이 들어 있다. 엄마도 아이를 더 가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엄마는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숙모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그런데 숙모는 왜 울면서 아이들만 없었으면 하고 말하는 걸까.   
  
엄마와 숙모는 사과잼을 만들고 있었다. 사과를 몇번이나 헹궈내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서 마당에 걸어놓은 커다란 가마솥에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잼을 만들려면 주걱으로 오래 저어야 한다. 향긋한 냄새가 미풍에 실려 마당에서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엄마와 숙모는 겨울이 되기 전 과수원에 떨어져 상처 난 사과를 모아 잼을 만들곤 했다. 잼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이고 이웃에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이웃들은 우리에게 김치나 떡이나 집에서 담근 술 따위를 나눠주었다.    
  
나는 어디 있는 걸까. 마당 한 귀퉁이 가마솥이 걸린 자리까지 목소리가 전달되는지 거리를 가늠해보고 내가 있는 구멍의 위치도 짐작해보았다. 수돗가에서 대문 사이 축사 근처일 것이다. 축사는 비어 있다. 
  
마당에는 쥐구멍이 많다. 우리 집에는 쥐가 많다. 우리 집에는 사람 수보다 쥐의 수가 더 많다. 쥐들은 한낮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면 크고 작은 소리를 내며 마당과 집안을 돌아다녔다. 천장과 마루 아래, 벽과 기둥 사이에서 새끼를 치고 음식을 훔쳐 먹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 어디선가 집안으로 작은 쥐들이 기어 들어오곤 했다.   
  
가끔씩 엄마는 식은 밥에 쥐약을 섞어 눈에 띄지 않는 집 안 구석에 놓았다. 쥐새끼들은 다 때려잡아야 한다고 밥에 약을 섞으며 엄마는 말했다. 쥐약을 섞은 밥은 예쁜 분홍빛이었다. 이상하게 식욕이 사라지는 색깔이었다. 쥐약을 먹고 죽은 쥐들은 하수구에 버렸다. 쥐약을 먹고 옆집 고양이도 죽었다. 고양이는 마대자루에 넣어 멀리 가서 버렸다. 옆집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찾으러 다녔지만 엄마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구멍 속에서 쥐와 마주칠까 겁이 났다. 내가 지금 들어와 있는 곳이 다른 쥐의 집일지도 모른다. 이 쥐구멍을 벗어나야 했다. 
  
쥐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눈이 부셨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혹시 나는 두더지일까. 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쥐구멍 더 깊숙한 곳으로. 내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데 도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손도 발도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 뒷걸음질 치다보면 꼬리부터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꼬리를 발견한다면? 잽싸게 잡아 올려 바닥에 패대기칠 것이다. 
  
언젠가 나와 사촌동생들이 발견한 쥐꼬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불에 탄 채로 시커먼 물체가 되어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꼬리를 보고 그것이 쥐라는 걸 알았다. 사촌동생이 걷어차서 하수구에 빠졌다. 
  
나는 다시 앞으로 움직여 구멍 입구로 왔다. 주둥이만 내밀고 눈은 감은 채로. 
  
어떻게 해야 하지 망설이고 있을 때 사촌동생들이 울부짖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얼굴과 옷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숙모는 인상을 찌푸리며 수돗가로 데려가 동생들의 옷을 벗겼다. 빨래통에 옷가지를 집어넣자 빨래통은 더이상 닫히지 않았다. 저 애들은 늘상 어디선가 맞거나 때리거나 진흙을 묻히거나 물에 빠진 생쥐꼴로 나타난다. 엄마와 숙모의 대화는 사라지고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수돗가에서 물소리만 들렸다. 
  
잼은 다 익었을까. 
  
나는 태양이 꺼져가는 마당 한편에 머리를 내밀어보기로 했다. 눈부심은 사라지고 어둠 속으로 몸이 쑥 밀려 나갔다. 
  
넌 또 어딜 갔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엄마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혹시 날 봤어? 내가 구멍 속에 들어가 있었던 걸 알아? 
  
나는 속으로 말했다. 
  
동생들이 맞고 돌아다니는데 넌 무얼 하고 있었던 거냐. 
  
엄마는 내가 어디 있었는지 무얼 하는지 모른다. 엄마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사촌동생들이 옆 동네 아이들에게 맞고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 싸움에는 끼고 싶지 않다. 사촌동생들은 고작 일곱살 여덟살인데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도 치고 박고 싸운다. 내가 몇살 더 많다고 해서 그 아이들을 말려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말리다보면 몇 대씩 얻어맞곤 한다. 숙모는 왜 남자아이만 낳는 걸까. 내겐 여동생이 필요하다. 숙모가 여자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 
  
오후의 마당과 엄마와 숙모의 조용한 대화와 마당을 채우던 단내는 사라지고 너무 많은 목소리들과 소란과 아우성과 웃음들과 울음들과 축축한 흙냄새와 설거지통과 찌꺼기들과 더러운 침구와 한숨이 섞인 잠꼬대와 접힌 밤을 펼치는 쥐들의 찍찍거림이 우리 집을 통과해가는 밤이 온다.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아이들도 쥐처럼 찍찍거린다. 쥐가 내는 소리인지 아이들의 잠꼬대인지 모르는 소리가 밤새 들린다. 쥐들은 찍찍거리며 새끼를 치고 아이들은 찍찍거리며 꿈을 꾼다. 그리고 다시 새벽과 빛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온다. 
  
그 계절 내내 나는 마당 곳곳을 살펴보았다. 내가 들어가 있던 구멍은 어디였을까. 도저히 쥐가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작은 구멍들과 썩은 나무가 무너져내리고 벌어진 곳들을 발견했다. 구멍들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아주 작은 생쥐였을까. 나는 어디 있었을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늘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곤 했다. 처음 가보는 길로 들어서 걷다보면 모르는 집들이 나왔고 모르는 집 사이를 걷다보면 내가 아는 길로 이어지곤 했다. 각기 다른 크기의 대문들 색깔들 바랜 빛들 철문 나무 대문 대문에 잔뜩 꽃혀 있는 팻말들 우편물 아이들의 울음소리 노인들의 한숨 섞인 푸념들 취한 사람들의 욕설 수돗가의 물소리 어디선가 기름으로 요리하는 냄새 음식이 타는 냄새 대문 없는 집들 빈 집의 침묵 마당에 제멋대로 거칠게 자란 풀들 어딘가 무서운 것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오후의 냄새 인적이 끊긴 길을 걷다가 대낮의 빛이 고요가 환영처럼 느껴질 때 한적한 골목 안쪽 집에서 들려오는 명징한 피아노 소리 소리를 따라가다가 소리 가까운 곳에 멈춰 서서 소리가 멈출 때까지 서 있는 것. 반쯤 열린 대문 너머 지지 않을 것처럼 만발한 화단의 꽃들을 그림처럼 감상하고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내가 아는 길을 찾아내는 것. 그러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내고 바삐 걷곤 했다. 문득 좋아하는 반 친구를 만나면 가까운 곳에 집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안녕! 웃고 지나갔다. 
  
하루는 멀리까지 갔다. 모르는 길이 아는 길로 늘 이어졌는데 그날은 계속 모르는 길만 나왔다. 집에서 아주 먼 곳이라는 걸 알았다. 차들만 달리는 도로였다. D시 74km라고 적힌 표지판이 공중에 떠 있었다. 반대편에는 A시 32km라고 적혀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차들이 쌩쌩 지나갔다. 두 길 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갓길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떤 차가 던지고 간 음료수 깡통에 머리를 맞았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새로운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가도 A시나 D시로 밖에 못 가는 걸까. 그건 맘에 들지 않았다. 
     
차 한대가 멈췄다. 창문을 열고 남자가 어디 가냐고 물었다. 태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우리아빠가 저기 데리러 와요. 말했다. 그리고 저 멀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남자는 두리번거리더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내가 오늘 납치당할 뻔 했다는 건 비밀이다. 엄마가 알면 혼날 것이다. 집에서 쫓아낼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지. 생각하며 학교 운동장에서 모래로 두꺼비집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내가 집으로 돌아와 구멍 속에 들어간 걸까. 캄캄한데 엄마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쥐는 집이 좋을까. 이렇게 작고 좁은 집이.   



4회에 계속됩니다.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가 있다.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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